214화. 간자의 정체
얼마 전 고해가 양축을 연주할 때도 그의 관심을 끌었다.
거기다 한 무리의 용까지 죽여버리는 고해를 보니, 그 역시 고해의 실력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천금은 얻기 쉬워도 훌륭한 장수 한 명 구하기는 힘들지.”
한편, 파군은 싸늘한 눈빛으로 구진의 대군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흥!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직 해골왕은 등장하지 않았다! 어디 한번 끝까지 들어봐라!”
딩딩딩! 디딩딩딩!
파군은 더욱 열정적으로 거문고를 연주했다.
그 순간, 이전의 해골에 비해 열 배가 넘는 크기의 해골왕이 나타났다.
빨간 망토를 걸친 해골왕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쿠아아아!!!
해골왕이 포효하자, 해골 대군의 기세가 순식간에 되살아났다.
그들은 해골왕을 중심으로 모이더니, 수요들을 물리치고 청갑대군을 향해 돌진했다.
기세가 더없이 강해진 해골들은 청갑대군과 막상막하의 힘을 자랑했다.
대진 안에 있는 구진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 주인님! 상대의 힘이 갑자기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고해는 흔들리지 않았다.
“뭐가 걱정이야? 계속 연주해! 조금 있으면 더 강력한 매복이 시작될 거다! 그러니 연주를 멈추지 마라!”
“예! 주인님!”
십면매복 연주가 계속될 때마다 청갑대군은 대오를 맞추어서 방대한 권역에 진을 갖추었다.
이번 진의 크기는 정화곡의 오분의 일이 아니라, 정화곡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밖에 있던 파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번에는 거대한 진지에 매복했습니다!”
정화곡에서는 말이 울부짖는 소리, 칼과 석궁 소리, 대군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계곡을 들썩였다.
청갑대군의 함성을 들은 여양왕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죽이자! 죽여라!”
청갑대군은 해골 병사들을 중앙으로 밀어붙이면서 해골왕을 향해 돌진했다.
파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어떻게… 해골왕까지 포위당했어!”
여양왕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십면매복, 정말 훌륭한 매복이구나!”
청갑대군은 기세등등하게 해골 대군을 점점 안으로 밀어 넣었다.
파군의 거문고 연주는 절망적이었다. 해골왕 역시 궁지에 몰려 갈 곳을 잃었다.
반면 신이 난 구진의 연주는 점점 더 빨라졌다.
어느새 파군의 연주 소리는 사라졌고 구진의 연주 소리만 들려왔다.
구진의 연주는 해골왕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구진은 이를 악물고 연주했다. 그때 해골왕이 천천히 칼을 들더니 칼끝을 자신의 목으로 향했다.
파군이 놀라서 외쳤다.
“안 돼! 해골왕을 자결시킬 수는 없어! 안 돼!!”
이 순간, 여양왕은 ‘십면매복’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는 십면매복이 적의 대장까지 자멸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푹!
슬픈 선율이 흘러나오더니 해골왕이 쓰러졌다. 이 역시 이번 곡조의 마지막 단계인 ‘우강자문’이었다.
위잉!
청갑대군도 공격을 멈췄다.
쌍방의 치열한 전투가 끝나고, 해골 대군이 참패했다.
펑!
순간, 파군이 연주하던 거문고 현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이를 본 파군은 화들짝 놀랐다.
여양왕이 가슴이 벅찬 듯 말했다.
“십면매복. 정말 훌륭한 곡조구나.”
밖에 있던 백만 대군은 조금 전의 긴박한 혈투를 보며 넋을 잃은 듯했다. 백만 대군은 좀처럼 평정심을 찾을 수가 없었다.
쿵!
대진 안에서 굉음이 들렸다.
순간 가장 큰 정화 나무뿌리가 황보조가를 감싸더니 땅 밑으로 꺼졌다.
파군은 지금도 조금 전의 혈투에 빠져 있다고 보니 황보조가의 움직임을 발견하지 못했다.
순간, 누군가의 괴성이 들렸다.
“금극목의 경금 기운으로 베어버려라!”
쿵!
순간 불빛이 번쩍이더니, 땅 밑으로 들어가 나무뿌리를 절반으로 베어버렸다.
정화 파파가 분노해서 노성을 내질렀다.
“초신?!!!”
초신이 여양왕을 향해 소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초신에게로 쏠렸다.
“왕 어르신, 황보조가가 도망갑니다! 빨리 잡아야 합니다!”
* * *
‘십면매복’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효월산장에도 고요함이 찾아오는 듯했다.
유년대사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정화 파파가 있는 방향에서 굉음이 들렸다.
유년대사는 고개를 돌렸다.
“뭐지?”
초신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진을 쳐라!”
이천여 명의 금타 부하들이 함성을 질렀다.
“이얏!”
순간, 이천 자루의 칼이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유년대사를 억압했다.
유년대사는 눈을 부릅떴다.
“젠장!”
이천 명의 금타 부하들이 유년대사를 꽉 잡고 있었다.
유년대사는 한 명, 아니 열 명의 금타 부하들을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천 명이 합세하여 달려드니 역부족이었다.
유년대사는 초신을 노려보았다.
“초신! 정말로 네가 간자였더냐!”
금타 부하들이 괴성을 지르며 유년대사를 꽉 조였다.
“으야야야!”
“어림없다!”
유년대사는 염주 열여덟 개로 맞받아쳤다.
초신은 유년대사의 말을 무시하고는 곧장 정화 파파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유년대사는 주변에 있던 목타 부하들을 보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냐! 빨리 가서 막아!”
한 무리의 목타 부하들이 어리둥절해 있다가 유년대사의 다그침을 듣고 달려갔다.
그러나 다른 금타 부하들이 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목타와 금타의 부하들이 충돌하며 싸움이 벌어졌다.
“이놈들!”
유년대사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염주가 점점 커졌다.
바로 그때, 저 멀리에서 초신의 소리가 들려왔다.
“왕 어르신, 황보조가가 도망갑니다! 빨리 잡아야 합니다!”
유년대사는 악을 쓰듯 소리쳤다.
“깨버려라!”
콰광!
유년대사의 강력한 힘에 이천여 자루의 칼이 폭발하듯 풍비박산 났다.
한 무리의 금타 부하들이 저 멀리 내동댕이쳐졌다.
유년대사는 싸늘한 눈빛으로 금타 부하들을 보더니 곧장 초신이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가시나무 대진 밖.
여양왕은 여전히 ‘십면매복’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초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양왕은 미간을 찌푸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가시나무 대진을 응시했다.
여양왕은 자리에 앉더니 냉랭하게 말했다.
“황보조가가 도망간다고? 흥! 미생인, 가서 가시나무 대진을 깨버리게!”
비주 위에 있는 여양왕의 옆에는 괴상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반흑반백(半黑半白)의 그림자가 있었다.
여양왕이 말을 마치자 반흑반백(半黑半白)의 그림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놀랍게도 천도해에서 온 미생인이었다.
미생인이 덤덤하게 말했다.
“왕 어르신, 이번이 벌써 두 번째로 도와드리는 겁니다.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여양왕이 말했다.
“알았어. 빨리 처리해.”
미생인이 한 발 나서자 가까이에 있던 파군이 뒤로 물러섰다.
미생인은 뱃머리에 서서 하늘을 찌를 듯한 가시나무 대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앙상하게 뼈만 남고 검버섯이 올라온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하늘이 수명을 주었으나 누릴 복이 없구나. 돌려주거라!”
늙은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방이 순식간에 흐려지고 음산한 바람이 불았다. 주변은 더할 것 없이 으스스해졌다.
미생인이 손을 내밀자 허공이 찢어지듯 열렸다. 그 사이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맞은편에 있는 가시나무 대진을 향해 날아갔다.
마치 지옥의 문에서 지옥의 기운이 뿜어져 나온 것 같았다.
스스스스스스.
검은 기운과 가시나무 대진이 만나니 가시나무 대진이 메마르기 시작했다.
“하늘이 수명을 주었으나 누릴 복이 없구나. 돌려주거라~”
“하늘이 수명을 주었으나 누릴 복이 없구나. 돌려주거라~”
미생인의 목소리가 저주에 걸린 것처럼 하늘과 땅에서 메아리쳤다.
가시나무 대진이 빠르게 시들기 시작했다. 가시나무들이 순식간에 말라서 오그라들었다.
오순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가시나무 대진을 말려 죽이는 건가?”
“하늘을 대신하여 목숨을 뺏는 것입니다. 하늘의 기운을 해쳤으면 벌을 받아야지요.”
두루루룩.
하늘을 찌를 듯한 가시나무 대진이 빠르게 말라가고 있었다.
무너져버린 대진에서 나뭇가루와 먼지가 피어올랐다.
“아악! 살려주세요!”
가시나무 대진의 전망대에 있던 한 무리의 수요들이 고통스럽게 소리쳤다.
어떤 수요들은 순식간에 썩은 나무가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수요들이 순식간에 말라 죽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산산조각이 났다.
사방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 있던 수요들은 그 광경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파파! 가시나무 대진이 무너집니다!”
“백만 대군이 대진을 뚫고 들어옵니다!”
“파파. 이제 어떡합니까?”
정화곡에서 간간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미생인은 오른손을 내렸다.
후우우!
순간 검은 기운이 찢어진 구멍을 통해 되돌아왔다.
미생인이 허공에서 찢어진 곳을 살짝 만지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의 상태로 회복했다. 다만 기세등등하던 가시나무 대진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미생인이 덤덤하게 말했다.
“어르신, 대진은 깨졌습니다. 두 번째 요구를 들어드렸다는 것만 잊지 마십시오.”
말을 마친 미생인은 한쪽으로 가서 쉬었다.
여양왕은 미생인을 보더니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돌리고 명령을 내렸다.
“안으로 들어가라!”
사방에서 힘찬 대답이 들렸다.
“예!”
“복명!”
“가자!”
수많은 비주가 계곡을 향해 날아갔다.
료아의 부대도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고해, 용완청, 구진, 목신풍과 수요들은 화들짝 놀랐다.
은월성의 대진보다 더 견고하던 대진이 깨지고 말았다.
관기 노인이 배치한 대진이!
“여양왕의 대군이 오고 있다!”
“놈들이 온다!”
한 무리의 수료들이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
구진이 다급하게 말했다.
“주인님! 십면매복을 한 번 더 연주할까요?”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십면매복만으로는 부족해. 구진, 음파 장벽을 만들어라!”
“예? 예!”
구진이 대답하며 손을 휙 저었다.
후우웅!
사람들 사이에 음파 장벽이 만들어졌다. 파군도 내부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용완청이 다급하게 말했다.
“고해, 어떡하지? 파파가 위험해.”
고해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곧바로 용완청을 보며 말했다.
“당주님, 이제야 뭔가 확실하게 알 것 같습니다.”
용완청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황보조가의 말은 전부 거짓입니다. 황보조가는 우리를 이용하여 여양왕과 싸우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뭐? 우리를 속였다고? 그럼 여양왕이 우리 어머니를 죽인 게 아니란 말이야?”
“예. 확실합니다.”
용완청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녀도 어리석은 여인이 아니었기에 고해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래? 그럼 내가……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거란 말이네. 이제 어떡하지?”
그때, 료아의 부대가 고해 일행을 포위하려고 달려들었다.
몇몇 용들은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곧 해수면으로 올라와서 소리쳤다.
“대장님! 바닷속의 용과 패하가 전부 죽었습니다! 뼈만 남았습니다!”
용들은 그들의 뼈를 육지로 올렸다.
패하와 교룡의 뼈를 본 용들은 식은땀이 흘렀다. 먼저 도망가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죽었을 것 아닌가 말이다.
료아는 흉악한 표정으로 고해 일행을 응시했다.
“흥! 내 부하들을 죽여? 이제는 내가 너희들을 전부 죽여버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