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26화 (226/243)

226화. 신무왕

여안의 눈이 번쩍였다.

“네? 고해를 죽인다고요?”

묵객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여양왕은 그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그래.”

묵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어르신…… 그렇게 훌륭한 인재를 왜……?”

“고해는 용완청과 함께 있네. 내 사람이 아니면 언제든지 나와 적으로 만날 수 있어. 그러면 더 골칫덩어리가 될 수 있네. 그런 위험은 미리 제거하는 게 좋아.”

단호한 여양왕의 말에 묵객은 옅은 한숨을 쉬었다.

“어르신께서 그렇게 결정하셨다면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다만, 이번에 미생인이 고해를 죽이지 못한다면 돌아오는 건 고해의 복수일 겁니다.”

여안이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묵 선생님,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관기 노인도 미생인을 깍듯이 대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실력이 뛰어나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고해가 미생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묵객은 어이없다는 눈으로 여안을 보더니, 이내 시선을 여양왕한테로 돌렸다.

여양왕은 묵객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쉬운 상대는 아니지. 사람을 보내서 소식을 좀 들어야겠네. 그런데 지금쯤이면 죽지 않았겠나?”

묵객은 한숨만 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유년대사는 슬픔을 안고 고해의 일행을 잠시 떠나 대건천조의 성도로 향했다.

두 달 후, 유년대사는 조도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황궁으로 들어가 대건성왕을 만났다.

황궁 안에는 커다란 대전이 있었고, 수많은 호위병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궁녀 하나가 다급히 커다란 대전의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군주님, 군주님! 유년대사께서 오셨습니다!”

대전 안에서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뛰어나왔다.

소녀의 외모는 용완청과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성격은 그녀보다도 훨씬 더 급했다.

“유년? 그 늙다리가 왔다고? 혼자 왔어?”

“네, 혼자 오셨습니다!”

소녀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확실해. 어제 꿈에 어떤 사람이 언니를 죽였어! 언니의 혼패도 깨졌었어!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얼른 가서 유년, 그 늙다리를 만나야겠어. 도대체 언니를 어떻게 보호한 거야?”

소녀는 대전을 뛰어나갔다.

그때, 주변에 있던 호위병들이 소녀를 가로막았다.

호위병 중 한 사람이 말했다.

“군주님, 성왕께오서 나오시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착!

소녀는 갑자기 기다란 채찍으로 그 호위병의 몸을 때렸다.

소녀는 눈까지 빨개졌다.

“비켜!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이다! 또 가로막으면 그땐 죽여버리겠다!”

다른 호위병이 와서 소녀를 가로막았다.

착착……!

소녀는 채찍으로 호위병을 내리쳤지만, 호위병은 물러서지 않았다.

호위병이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

“군주님, 성왕께서 나가시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소녀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안 돼! 가야 해!”

슥!

한 호위병이 손을 뻗어 그 소녀를 붙잡았다.

소녀는 채찍을 휘두르며 울었다.

“비켜! 가야 한단 말이야! 얼른 비켜!!!”

호위병들은 고통을 참아가면서 소녀를 막아섰다.

소녀가 그런 호위병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영감한테 가서 전해라! 계속 막아서면 난 몸속에 있는 귀신의 영혼과 융합할 수밖에 없다! 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으니, 반드시 가서 유년을 만나야겠다!”

영감?

한 무리의 호위병들이 화들짝 놀랐다. 만천하에서 성왕을 영감으로 부르는 사람은 눈앞의 여자밖에 없었다.

한 호위병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호위병이 떠난 후, 소녀는 호위병들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잠시 후, 그 호위병이 돌아오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성왕께서 유년대사님이 곧 오실 테니 조급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소녀는 손에 있는 채찍을 휘두르며 마음속 분노를 식혔다.

* * *

유년대사는 성왕에게서 군주를 만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는 하늘이 무너질 것만 같은 표정으로 대전 안에 들어섰다.

석양 아래에서 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채찍을 들고 싸늘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군주!”

빨간 옷을 입은 소녀, 용완옥이 유년대사를 보며 물었다.

“유년! 떠나기 전에 내가 뭐라고 당부했어? 언니는? 언니 어딨어?!”

유년대사가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당주님의 혼이 흩어지면서 시체도 사라졌습니다.”

용완옥이 채찍으로 유년대사를 때렸다.

착!

유년대사의 옷이 찢어지고 핏자국이 났다.

“흑흑! 언니가 때리지 말라고 했는데…… 때려야겠어! 때려야겠다고!! 언니 살려내! 흑흑흑! 언니를 지키라고 했잖아! 왜 죽어! 언니가 왜 죽었냔 말이야!”

용완옥은 채찍을 연속 열 번 넘게 휘두른 후 채찍을 내려놓고 대성통곡했다.

“흑흑! 언니!!!”

용완옥은 절망한 표정으로 울어댔다.

유년대사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 것 같았다.

옆에 있던 궁녀들이 소녀를 부축했다. 대성통곡하던 소녀는 이제 흐느끼고 있었다.

용완옥이 유년대사를 보며 소리쳤다.

“언니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죽였어! 말해! 누가 죽였냐고!!!”

유년대사는 그 어떤 거짓도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다.

용완옥이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미생인? 난 그런 아버지는 없어! 죽여버릴 거야! 내가 직접 죽여버리겠어!”

“미생인이 당주님의 지혼을 찾으러 지옥으로 갔습니다.”

“찾아서 뭐 하게? 미생인은 사람도 아니야! 언니가 맨날 아버지는 하늘을 뒤흔드는 영웅이라고 할 때 난 사람도 아니라고 했어! 처자식을 버리고 가버린 사람은 아버지가 될 자격도 없어!”

용완옥이 어금니를 깨물며 악을 썼다.

“그리고 고해도 죽여버릴 거야! 고해만 아니었어도 언니는 안 죽었어! 전부 고해 탓이야!”

유년대사는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는 용완청의 남편입니다. 군주의 형부란 말입니다.”

“흥! 인정 못 해! 그 사람은 내 형부가 아니야! 그놈이 언니를 해친 거야! 그놈 때문이라고!”

“고해는 목숨을 바쳐 용완청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인정하든 안 하든 언니의 선택을 존중해야 합니다.”

용완옥은 유년대사를 째려보았다.

“내 일에 신경 쓰지 마!”

유년대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용완옥이 다시 유년대사를 보며 말했다.

“영감은 뭐래? 언니의 복수를 하겠대? 그렇게 말했냐고!”

유년대사는 묵묵히 침묵하고 있었다.

용완옥이 소리쳤다.

“말해 봐!”

유년대사는 성지를 꺼냈다.

“성왕께서 알겠다고만 하고 성지를 주셨습니다. 고해를 만나기 전까지 절대 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용완옥은 재빨리 손을 뻗어서 성지를 빼앗았다.

유년대사가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군주! 그러면 안 됩니다!”

용완옥은 신경도 쓰지 않고 성지를 열었다.

“흥!”

옆에 있던 한 무리의 궁녀와 호위병들은 못 본 척 뒤돌아섰다.

용완옥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뭐? 언니가 죽었는데 복수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잖아? 고해를 새로운 일품당 당주로 삼는다고? 흥! 언니가 죽었는데 이렇게 바로 당주를 시킨단 말이야?”

슥!

유년대사는 성지를 빼앗은 후 조심스럽게 품속에 넣었다.

사실 그는 일부러 성지를 꺼냈다. 자신은 성지를 열어 볼 자격이 없으니 용완옥을 이용한 것이다.

용완옥은 채찍을 들고 울면서 말했다.

“언니는 영감탱이의 손녀가 아니야? 알았다는 말 한마디면 끝난 거야? 언니의 복수는? 됐어! 내가 직접 갈 거야! 아무도 말리지 마!”

* * *

은월성!

사마장공은 중년 남자와 함께 ‘이 거리 제일 금루’에 들어섰다.

중년 남자는 수수한 복장에 얼굴은 넓적했고 눈망울이 맑아 보였다.

남자의 걸음걸이에서는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옆에 있는 사마장공도 만만치 않았으나 이 중년 남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이 거리 제일 금루? 역시 훌륭하구나! 천도해에서 이런 인재가 다 나오다니, 놀랍구만!”

중년 남자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사마장공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르신, 우리가 보낸 간자가 말하기를, 고해와 용완청 일행이 정화 산골짜기에서 여양왕 대군과 싸울 때, 고해의 ‘십면 매복’이 ‘파동풍’을 박살 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인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중년 남자는 머리를 끄덕였다.

“뭐니 뭐니 해도 멸송계획이 최고였어. 내가 인재를 찾으려고 그렇게 많은 사람을 천도해에 보냈었는데 결국 아무도 찾아내지 못했지. 한데 그를 놓치다니…… 아쉬운 일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천도해에 인재 찾으러 보낸 사람들의 실책이야. 전부 잘라버려.”

“예.”

사마장공이 대답하고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은 선학차에 올라탔다. 중년 남자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묵객도 고해를 탐낸다고?”

사마장공이 웃으면서 답했다.

“예. 그때 저나 묵객이 너무 바빠서 한발 늦게 도착했었습니다. 고해는 이미 떠나간 뒤였지요.”

“상관없어. 아마 고해도 여양왕부에 들어가기 싫어서 벗어날 궁리를 했을 거야. 여양왕은 그를 설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커. 어쩌면 고해가 내 동생이 죽은 원인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사마장공은 고개를 돌려서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직 저희한테도 기회가 있습니다. 고해를 우리 신무왕부에 데려와야 합니다.”

중년 남자가 바로 대건천조의 삼왕인 신무왕이었다.

신무왕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마 힘들 거다. 일품당은 성왕께서 통솔하고 있지. 성왕께서는 무관심해 보여도 많은 일을 꿰뚫고 있을 거다. 아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게 분명해. 그런데 성왕께서 가만둘 리 있겠나? 그는 이런 인재를 절대 놓치지 않아.”

사마장공이 눈썹을 찌푸리자, 신무왕이 미소를 지었다.

“성왕께서 그를 욕심내지 않는 이상 우리한테 기회는 없다. 하지만 성왕께서 욕심내지 않으면 우리한테 기회가 오는 거지. 전에 자네도 성왕을 화나게 해서 외면받지 않았는가? 그래서 내가 냉큼 우리 왕부에 데리고 왔지. 하하하.”

사마장공이 눈을 가늘게 좁히고 말했다.

“어르신의 말씀은…… 용효월의 죽음이 여양왕과 관계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신무왕이 차가운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십중팔구는.”

“그럼 성왕께서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겠군요. 용효월은 성왕의 따님 아닙니까? 그런데 그걸 알았다면 왜 아직도 가만히 있는 걸까요?”

신무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여양왕을 회유하고 있는 거야. 여양왕이 반역만 저지르지 않으면 전부 눈감아 주는 거지. 하지만 그 때문에 내 동생은…….”

그는 말끝을 흐리며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사마장공이 말했다.

“성왕께서 눈을 감아 주는 이유가 천조의 평화를 위해서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여양왕을 건드리면, 여양왕 편에 있던 대신들도 반역에 가담할 거라는 말씀인데…….”

“그래. 이번에 여양왕이 선을 좀 넘었어. 용완청이 너무 억울하게 죽었단 말이다. 성왕께서 가만히 있으니 지나치게 손을 쓰고 있어. 훗.”

신무왕이 가볍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이신기가 신기영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았나? 여양왕이 선만 잘 지키면 별일 없을 거야. 하지만 반역을 저지르면, 성왕께선 직접 나서지 않고 나를 보낼 거다. 결국 나만 나쁜 사람이 되는 거지 뭐.”

“영주 주변이 전부 나라 안의 나라가 되어 여양왕이 통솔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힘을 모아 황제가 되고 싶은 거겠지. 흥! 여양왕에게는 훌륭한 모사가 있다. 묵객이. 그래서 욕심을 내는 걸 거다.”

“묵객이라…… 저도 그자에 대해 조사해 봤습니다만, 정체를 얼마나 철저히 숨겼는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신무왕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영원히 숨길 수는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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