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27화 (227/243)

227화. 이중 음모

* * *

신록왕조의 신록성 밖에 있는 산골짜기.

두 달이 지났음에도 수요들의 단전은 회복되지 않았다.

고해는 용완청의 방을 정리하고 용완청의 머리카락을 봉안했다. 이제 용완청의 머리카락은 고해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보물이었다.

목신풍도 건강을 되찾았고, 구진은 혼자서 창작에 열심이었다.

고해가 옆에 있는 황보조가를 보며 말했다.

“수요들의 단전은 회복하기 힘든 겁니까?”

황보조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두 명은 가능한데, 이천 명은 나도 역부족이네.”

“저번에 사용하신 것이 혹시 경금신수 아닙니까?”

“그래, 우리 신록왕조 산하에 경금종이라는 종문이 있네. 일품당 금타주 초신이 바로 경금종 출신이야. 경금종의 실력은 천도해의 종문과 달라. 실력도 우리 신록황조보다 나쁘지 않아. 그런데 경금종 산하에 거대한 성지가 열여덟 곳이나 있지.”

“경금종이요?”

“경금종의 근본은 바로 죽은 ‘금계의 신’이었어. 금계의 신이 지금 경금종을 수호하고 있어. 금생수(金生水). 금신이 모여 ‘경금신수’를 형성했고 경금신수가 수생목인 수요들의 단전을 회복시켜 주는 거야.”

고해로선 모두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금신?”

그때 땅이 뒤흔들리더니, 땅 밑에서 회색 포(袍)를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녹석신이었다.

녹석신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폐하, 전장에서 온 소식인데, 여양왕이 우리의 성지 세 곳을 더 무너뜨렸습니다. 해서 남은 곳은 이제 열일곱 곳밖에 안 됩니다.”

고해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좁혔다.

“신록왕조의 스물다섯 개 성지에서 벌써 여덟 개나 무너졌군요.”

황보조가도 쓴웃음을 지었다.

“여양왕의 목표는 모든 성지를 빼앗는 걸세. 그러면 신록왕조의 기수도 모두 사라지겠지. 그런 다음 나를 꼼짝달싹 못 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야.”

“저도 똑같이 그자를 사면초가의 상태로 만들어줄 겁니다.”

고해의 그 말에 녹석신이 답했다.

“고 선생의 요구에 따라 이백여 명의 녹석인을 영주의 여러 성지에 보냈습니다. 영주의 백 곳이 넘은 성지에 녹석인이 두 명씩 상주하고 있지요. 하지만 성지에 있는 여양왕의 대군을 물리치려면 그 녹석인들만으로는 힘이 부족합니다.”

“가서 싸우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틀 후에 제가 말씀을 드리지요. 모레부터 움직이면 됩니다.”

녹석신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들이 움직인다고 이번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고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여양왕은 무조건 철군할 겁니다.”

“네?”

고해의 눈에서 독기가 번뜩였다.

“예. 그들은 철군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여양왕의 영주에 불을 붙이면, 여양왕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녹석신은 믿기지 않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한 성지에 녹석인이 고작 두 명밖에 없습니다. 두 명으로 뭘 하신다는 말씀이신지요?”

“가서 불만 붙이면 됩니다. 크게 할 일은 없습니다.”

녹석신은 황보조가를 바라보았다.

황보조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됐다. 고 선생의 말대로 해.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면 제때에 얘들한테 전달하고.”

녹석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고해는 싸늘한 눈빛으로 북쪽을 바라보았다.

“모레부터 시작하지요.”

* * *

멸록성의 여양왕 서재.

소식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서재에 있던 한 무리의 모사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르신, 신록왕조가 벌써 성지 여덟 곳을 잃었습니다. 놈들의 멸망이 이제 눈앞에 보입니다.”

“이제 여덟 곳 정도만 더 장악하면 나머지 성지들은 알아서 항복할 것입니다.”

여양왕은 머리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묵객은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양왕이 묵객을 보며 물었다.

“묵 선생, 왜 그러는가?”

묵객이 답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하하하. 묵 선생, 뭐가 걱정인가? 신록왕조 주변의 종문, 나라들이 신록왕조를 도와줄 일은 없네.”

옆에 있던 모사도 머리를 주억이며 말했다.

“네, 묵 선생. 신록왕조의 성지만 무너뜨리면 기수는 자연히 사라집니다. 그때 어르신께서 직접 녹신성을 무너뜨리면 되지요.”

묵객은 고개를 저었다.

“어르신, 고해가 문제입니다.”

여양왕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

“아직 미생인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만약 고해가 신록왕조와 손을 잡았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옆에 있던 모사가 물어보았다.

“묵 선생, 고해 혼자서 뭘 한다는 말씀이신지요?”

묵객은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듭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이틀이 지나갔다.

이른 아침, 한 줄기의 햇살이 은월성을 비추고 있었다. 밤새 성문을 지킨 호위병들은 근무를 교대했다.

순간 한 호위병이 눈을 비비며 한곳을 응시했다.

‘내가 잘못 봤나?’

그 호위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 글자, 뭐야?”

주변에 있던 군병들이 물어보았다.

“조장. 무슨 일이십니까?”

저 멀리 산벽(山壁)에 커다란 글씨가 쓰여 있었다.

마침 성문을 지나던 수련자가 읽었다.

“분열된 대영은 힘을 합쳐 대건을 몰락시키자…….”

성문에서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조장이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썼어?!”

주변에 있던 백성들이 귓속말을 하며 소곤거렸다.

“영? 설마 예전의 대영왕조? 대건이 망하고……. 이건 대역무도한 말이 아닌가?”

성문을 지키던 조장이 말했다.

“얼른 지워버려라! 아니지. 빨리 가서 어르신께 말씀드려!”

“예!”

군병들이 대답하고는 쏜살같이 달려갔다.

같은 시각, 은월성의 동쪽에서도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

군병들과 백성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떤 백성들은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대건천조는 이미 몰락하고, 영천이 서게 되니, 갑자년이 되는 해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백성들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대건천조가 몰락하고 영천이 선다고? 이건 반역이야! 이건…….”

성문을 지키던 군병들도 식은땀이 줄줄 흘렸다.

호위병들 중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가서 어르신께 말씀드려라! 나머지는 날 따라와! 누구 짓인지 알아봐야겠다!”

그 소식은 빠르게 성부까지 흘러갔다.

그때 사마장공과 신무왕은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부하의 보고를 받은 두 사람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신무왕이 조용히 말했다.

“앞장서라.”

비주가 신무왕과 사마장공, 그리고 일부 관료들과 부하들을 싣고 빠르게 날아갔다.

신무왕의 비주는 그 어떤 제약도 없이 빠르게 날아서 순식간에 동쪽 성문에 있는 산벽에 도착했다.

신무왕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대건천조는 이미 몰락하고, 영천이 서게 되니, 갑자년이 되는 해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비주는 다시 빠르게 남쪽 성문으로 날아갔다.

사마장공이 굳은 표정으로 글을 읽었다.

“분열된 대영이 힘을 합쳐 대건을 몰락시키자?”

한 관료가 다급히 달려와서 말했다.

“어르신, 서쪽 성문에도 있습니다!”

신무왕이 차갑게 눈을 빛나며 말했다.

“가보자.”

비주는 빠르게 날아서 서쪽 성문에 도착했다.

“대영이 흥하고, 여양을 황제로…….”

신무왕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대영이 흥하고, 여양을 황제로? 여양왕이 황제가 되고 싶은 건가? 대영왕조란 말이지?”

또 다른 관료가 달려오며 보고를 올렸다.

“어르신! 북쪽 성문에는 ‘대건을 반대하고 영주를 복원하자!’라고 쓰여 있습니다. 백성들이 모두 몰려와서 그 글귀를 보고 있습니다.”

신무왕과 사마장공의 안색이 굳어졌다.

신무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양왕이 안달이 난 건가?”

사마장공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왜 하필 이 시국에 반역을 저지르려고 하겠습니까? 더구나 이런 대역무도한 말을 대놓고 하다니요?”

신무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여양왕이 이 시국에 반역을 저지르는 건 무척이나 어리석은 짓이지. 묵객도 말렸을 테고. 만약 여양왕의 짓이 아니라면…… 누구지?”

사마장공이 말했다.

“어르신…… 아, 아닐 겁니다. 제가 괜한 생각을 한 것 같군요.”

“할 말이 있으면 해.”

사마장공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고해가 꾸민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하니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고해?”

“네, 대역무도라는 말은 보기에는 쉬워도 그리 쉬운 단어는 아니지요.”

“그건 그렇지.”

“반역을 부추기는 격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격문은 흔하지 않지요. 저기 몇 글자가 평범해 보여도 막상 하려면 절대 쉬운 말이 아닙니다.”

신무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 관료가 물어보았다.

“어르신, 글자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신무왕이 냉랭하게 명을 내렸다.

“전부 없애버리고, 누구의 짓인지 당장 찾아내라!”

“예!”

사마장공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고해의 짓이라면, 이제부터 시작일 겁니다.”

* * *

은월성뿐만이 아니었다. 영주에 있는 백여 곳의 성지에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성지 밖 여기저기에 대역무도한 글이 적혀 있었다.

“분열된 대영이 힘을 합쳐 대건을 몰락시키자!”

“대건천조는 이미 몰락하고, 영천이 서게 되니, 갑자년이 되는 해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대영이 흥하고, 여양을 황제로!”

“대건을 반대하고 영주를 복원하자!”

성주들은 재빠르게 글을 지우고 범인을 찾아 나섰다.

대부분의 사람은 코웃음을 치며 지나갔으나, 일부 사람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같은 시각, 멸록성.

신록성을 멸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성에 있던 사람들은 소식을 접하고 화들짝 놀랐다.

묵객은 보고로 올라온 글을 반복적으로 읽어보았다.

옆에는 여양앙과 한 무리의 모사들이 서 있었다.

여양왕은 눈을 부릅뜨고 부하들을 응시했다.

“누가 쓴 것이냐!”

여양왕의 최측근들도 여양왕이 군사력을 키우고 반역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여양왕이 대영왕조를 세우기만 하면 높은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서 그에 대한 사항을 여러 차례 여양왕한테 말했지만, 묵객과 여양왕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양왕의 최측근들 짓인가?

묵객이 고개를 돌려서 부하들을 보며 말했다.

“석벽에 있는 글자들을 전부 지워버리고, 누구의 짓인지 당장 찾아내라!”

“예!”

그때 파군이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르신, 군부대 장령들도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여양왕이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한 부하 장수가 흥분하며 말했다.

“어르신, 이건 하늘의 뜻입니다! 이제 시작해도 된다는 하늘의 계시입니다!”

여양왕이 눈을 부릅뜨고 다그쳤다.

“한 번 더 허튼소리 하면 죽여버리겠다!”

그 장수는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푹 숙였다.

뒤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

여양왕이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차가운 눈으로 둘러보며 말했다.

“허튼소리 하는 놈들은 전부 죽여버릴 것이니,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라!”

모두가 일제히 대답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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