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28화 (228/243)

228화. 범인은 밝혀지지만

부하 장수와 모사들이 물러가자 파군과 묵객만 남았다.

파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르신, 대부분 장령들이 콧방귀를 뀌고 있습니다.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양왕은 머리를 끄덕였다.

하지만 묵객은 미간을 좁혔다.

“우리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여양왕이 흠칫하며 묵객을 바라보았다.

“뭐야?”

“여기에 있던 최측근들은 찍소리 못 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내부 사람이 쓴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 쪽 사람이 쓴 게 아니라고?”

“예 어쩌면 적들이 썼을 수도 있습니다.”

“신록황조?”

묵객은 고개를 저었다.

“신록황조가 썼다면 별로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만, 만약 성왕이 사람을 파견하여 쓴 글이라면…….”

여양왕의 눈동자가 떨렸다.

“성왕이? 설마……?”

“아직은 알 수가 없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수군거리는 것도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지금은 천하가 태평하니 이런 구호들도 별로 작용을 못 하고 있지요.”

여양왕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간단해 보이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글이야. 영리한 놈이 썼어.”

묵객이 그를 보며 말했다.

“어르신, 다른 성지에도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반드시 범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지금은 그 어떤 문제가 생겨서도 안 됩니다.”

여양왕은 무겁게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래. 자네 말이 맞아.”

며칠 후.

여러 성지에서 똑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열흘 후, 여양왕부.

여양왕이 굳은 표정으로 부하들을 다그쳤다.

“멍청한 것들! 아직도 범인을 못 찾았단 말이냐!”

한 부하가 말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잡을 뻔했습니다만, 땅을 파고 들어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파군이 확신에 판 표정으로 말했다.

“녹석인입니다, 어르신.”

여양왕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녹석인? 성왕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군.”

하지만 옆에 있던 묵객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르신, 제가 가장 걱정하는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뭐?”

“고해입니다. 황보조가는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낼 인물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그가 고해와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여양왕이 오만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묵 선생, 성지 사방에 이런 격문이 새겨져 있어도 사람들은 콧방귀를 뀌고 지나가네. 일부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수군거리고 나머지는 이런 사실을 알지도 못해. 지금은 천하가 태평하여 사람들이 믿지도 않지.”

“만약 고해의 짓이 확실하다면 위험합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옆에 있던 파군이 물어보았다.

“그렇지만, 백성들이 믿지도 않는데, 이런 반역 격문을 새기는 이유가 뭡니까?”

묵객은 생각에 잠겼다.

불안한 마음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 * *

신록성 밖 산골짜기.

황보조가가 고해를 보며 말했다.

“이 글로 여양왕을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좀 부족한 거 아닌가?”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여양왕이 반역을 저지를 마음이 없으면 힘들 수도 있겠으나, 반역을 저지를 마음을 먹었다면 충분합니다.”

“뭐?”

“한동안 이런 헛소문이 나돌게 놔두십시오.”

단호하게 말을 맺은 고해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

* * *

은월성의 어느 한 찻집에 백성들이 모여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노란 옷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분열된 대영이 힘을 합쳐 대건을 몰락시키자’라는 말, 자네도 들어봤지? 그 글이 적힌 돌비석의 글자에서 피가 흘러내리더라니까?”

“정말인가? 글자에서 피가 흐른다고? 누군가 몰래 그렇게 한 것 아니야?”

“어찌 되었든 요즘 맨날 글씨가 새겨지잖아. 대건천조는 이미 몰락하고, 영천이 서게 되니, 갑자년이 되는 해에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갑자년? 올해 갑자년이잖아?”

“관부에서도 범인을 쫓고 있는데 보름이 넘어도 감감무소식이라네.”

“휴우.”

“그래. 누가 헛소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어림도 없는 소리지.”

“응? 아직도 안 믿는 건가? 자네들이 대영왕조를 몰라서 그래. 대영왕조의 황제가 누구였는지 알아? 바로 여양왕의 아버지였다고. 그땐 대천건조도 없었어.”

“뭐?”

“영주 땅이 과거에는 대영왕조의 영토였어. 그때의 성왕은 볼품도 없었지. 그때 여양왕은 대영왕조의 유일한 태자였는데, 성왕과 의형제를 맺었지. 그리고 둘이서 같이 천하를 다스리기로 약속했었어. 그래서 여양왕이 대영왕조를 순순히 넘겨준 거야. 그런데 지금 봐봐. 대건천조가 이렇게 강해졌는데도 여양왕한테 영주나 지키게 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뭐? 그럼 자네의 말은 여양왕이 마땅히 받아야 할 몫을 받으려고 할 거란 말인가?”

“만약 자네라면 기분이 좋겠어? 서로 의형제를 맺고 황제 자리까지 양보했는데 돌아온 건 구석진 곳의 영주 취급이라면 당연히 화가 나지.”

“그럼 이 구호도 여양왕이……?”

순간 찻집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한 사람을 주목하고 있었다.

정말로 여양왕이 정말로 반역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여양왕이 사람을 보내서 쓴 글이라고? 그럼 그 부하들은 왜 범인을 찾으려는 거지?”

“도둑이 도둑을 잡으라고 고함을 친다고……?”

“…….”

찻집에 있던 사람들은 뭔가 알았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거나 깊은 생각에 잠겼다.

대란이 일어나는 건가?

그러한 소식은 성부까지 흘러들어 갔다.

사마장공과 신무왕은 부하의 보고를 듣고 표정이 무거워졌다.

신무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백성들이 여양왕의 짓으로 몰고 간단 말인가?”

보고를 올린 부하가 공손하게 말했다.

“네, 대부분은 예측이긴 합니다만, 전부 여양왕 쪽에서 했다는 것으로 의견이 쏠리고 있습니다.”

사마장공이 말했다.

“어르신, 백성들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누군가 여양왕을 해치려고 꾸민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여양왕의 짓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습니다.”

“으음…….”

“그러나 백성들은 다릅니다. 많은 백성은 여양왕의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일부 백성들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믿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자네 말은……?”

“자기 주관도 없이 남이 말하는 대로 따라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여양왕이 범인이라고 믿는 사람도 많아지면, 결국 ‘여양왕이 범인이다’라는 말이 기정사실처럼 될 수도 있지요.”

신무왕이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으음, 하나 지금까지는 소수의 사람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닌가? 이런 유언비어로 여양앙을 자극하기에는 역부족이야. 백성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로 여양왕의 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네.”

“만약 저라면, 계속해서 성지에 사람을 보낸 다음 여양왕을 모함할 겁니다. 그러나 많은 인력과 물력이 필요하겠지요. 게다가 성지에서 범인을 찾지 못해 경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여양왕을 모함하려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고해의 손에 뭐가 있습니까? 텅텅 비었습니다.”

신무왕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일단 지켜보도록 하지.”

* * *

멸록성.

여러 성지의 소식이 여양왕부로 모여들었다.

왕부의 서재에서는 모사들이 성지에서 온 소식을 분석하고 있었다.

여양왕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흥! 녹석인의 짓이야. 그런데 보름이 지나도록 못 잡고 있다니.”

파군의 청력으로 녹석인의 짓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함부로 말을 퍼트렸고, 그에 대한 혐의를 여양왕이 뒤집어쓰고 있었다.

한 모사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어르신, 이미 사람을 파견하여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있습니다. 곧 어르신의 결백도 드러날 것입니다.”

여양왕의 안색은 굳어 있었다.

머리가 영리한 사람들은 한눈에 알아채는데, 저런 멍청한 백성들 때문에 내가 혐의를 뒤집어써야 하다니!

여양왕은 고개를 돌려 묵객을 바라보았다.

묵객은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에 잠겨 있었다.

여양왕이 물어보았다.

“묵 선생, 왜 그러는가?”

모사들도 묵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묵객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저는 이런 격문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 말에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예?”

“신경을 안 쓰신다니요?”

묵객이 입을 열었다.

“천하는 태평합니다. 어르신이 반역을 준비한다고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극소수의 사람들만 그렇게 예측할 뿐입니다. 어르신께서 절대 아니라고 주장하면, 이런 분위기도 곧 잦아질 겁니다.”

모사들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요?”

허위 사실을 유포한 사람들을 찾으려고 불철주야 뛰어다니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하지만 여양왕의 표정은 한껏 편해졌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백성들도 잊어버리겠지. 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데 녹석인들이 무슨 수가 있겠나? 시간이 지나면 백성들도 이해하고 넘어갈 거야.”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구나.

그렇게 생각한 여양왕의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묵객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여양왕이 묵객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묵 선생,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건가?”

묵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쪽도 보름 동안이나 허위 사실을 유포했으니 이제는 더 하지 않을 겁니다. 계속 날조하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지요. 문제는 고해가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가 걱정입니다. 고해의 계략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때 서재 밖에서 여안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부님! 찾았습니다, 찾았습니다!”

여양왕이 싸늘하게 반문했다.

“뭘 찾았단 말이냐?”

여양왕의 싸늘한 반응에 여안이 멈칫했다.

“내가 회의할 때에는 방해하지 말라고 했었지? 여안, 겁도 없구나.”

겁에 질린 여안은 용서를 빌었다.

“조부님, 잘못했습니다. 제가 좋은 소식이 있어서 한순간 흥분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조부님.”

여양왕이 이마를 찌푸렸다.

“좋은 소식? 들어와서 말해.”

여안이 곧바로 서재에 들어와서 말했다.

“조부님, 조금 전에 녹석인이 격문을 쓸 때 성에 있던 백성들이 그들을 발견했습니다. 성에 있는 백성들도 황보조가가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여양왕이 놀란 눈치였다.

“뭐?”

여안이 쾌재를 부르며 다시 말했다.

“저기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렸습니다. 파군 선생이 손을 휙 저으니 한 줄기의 빛이 나타나 산벽을 비추었지요. 그때 마침 녹석인이 글을 새기고 있었습니다. 법술로 빛을 밝게 비춰서 모든 사람이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한 모사가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붙잡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녹석인이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팠군요.”

여양왕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묵객이 미간을 좁히고 중얼거렸다.

“우연인가?”

여안이 묵객을 바라보았다.

“네? 뭐가 말입니까?”

“멸록성 말고 또 다른 성지에서도 녹석인의 흔적을 발견했을지 모르네.”

“글쎄요. 저희만 본 것 아닐까요?”

여안이 묵객의 말에 토를 달자, 여양왕이 차갑게 말했다.

“선생의 말씀이 곧 내 뜻이다.”

여안은 찔끔해서 목이 쑥 들어갔다.

“예, 조부님…….”

묵객은 개의치 않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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