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무중생유(無中生有)
* * *
묵객의 예측대로 거의 같은 시간에 영주에 있는 백여 곳의 성지에 녹석인들이 나타났고, 백성들이 그들을 발견했다.
녹석인들이 글자를 새기는 모습을 본 백성들은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저기 봐. 녹석인이야!”
“녹석인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하필이면 눈에 제일 잘 띄는 곳에 새기고 있네? 하하하!”
“여양왕의 반역이 아니라 녹석인의 모함이었어!”
“신록황조가 여양왕을 모함한다고?”
“그래, 여양왕은 반역을 저지를 생각도 없는데 신록황조가 이간질한 거였어!”
여기저기서 백성들이 모여 수군거렸다.
비록 녹석인을 붙잡진 못했으나, 백성들은 여양왕이 역모를 꾸미지 않았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성주들은 황급히 여양왕의 결백을 알렸다.
“여양왕께서 대군을 데리고 신록황조에 들어가니 이를 막지 못한 신록황조가 허위 사실로 백성들을 이간질하고 있다! 백성들은 절대 적들의 음모에 속지 마라!”
백성들은 순식간에 말을 바꿨다.
“황보조가도 정말 음흉한 놈일세. 하마터면 여양왕을 반역자로 생각할 뻔했지 뭐야?”
“그래. 전부 황보조가의 모함이었어. 어르신이 반역자라니, 그럴 리가 있나?”
“누가 감히 성왕의 권위를 넘보겠어? 절대 못 해.”
“그래. 우리 대건천조는 절대 흔들리지 않아.”
* * *
백성들이 나누는 말은 성도까지 들려왔다.
신무왕은 부하의 보고를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녹석인의 실수가 맞을 거라 보나?”
그 말에 사마장공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실수일까요? 아니면 고해가 일부러……?”
부하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르신, 녹석인이 조심하지 않아서 그만 들켜버렸습니다. 저들은 이미 백성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고, 모두들 황보조가가 주제를 모른다며 비웃고 있습니다.”
사마장공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잠깐! 방금 뭐라고 했지? 다시 말해봐라.”
그 부하가 다시 말했다.
“이미 백성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고, 모두들 황보조가가 주제를 모른다며 비웃고 있다 말씀드렸었습니다만…….”
사마장공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백성들의 웃음거리?”
신무왕이 명을 내렸다.
“즉시 다른 성지에도 녹석인의 흔적이 나타났는지 알아봐라! 얼른!”
“네? 네.”
부하는 대답을 마치고 물러갔다.
사마장공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어르신, 멸송계획을 보면, 고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타고난 인물입니다. 처음에는 일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지금은 모든 백성, 모두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고해가 뭘 하려는지 잘 알지는 못하겠으나, 고해의 칼이 여양왕의 목을 향하는 건 틀림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신무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지만, 이미 노출된 마당에 고해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여양왕의 결백을 알려준 셈 아닌가? 이 상황에서 여양왕의 목을 찌를 수나 있겠나?”
사마장공은 사색에 잠겼다.
백여 곳의 성지에서 녹석인들이 나타났다.
성지의 성주들은 황급히 여양왕의 결백을 주장했고 모든 백성은 신록황조를 비웃고 있었다.
녹석인은 여양왕의 혐의를 풀어줬고, 또 신록황조를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렸다.
‘뭐지? 뭔가 이상해…….’
* * *
열흘 후.
은월성 성도.
사마장공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이제야 알겠다! 고해, 정말 대단하구나!”
멸록성. 여양왕의 왕부.
묵객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큰일이다! 고해의 함정에 빠졌어! 그것이 고해의 함정이었어!”
* * *
신록황조의 신록성 밖. 고해가 있는 산골짜기.
녹석신이 고해를 보며 말했다.
“이게 끝입니까?”
녹석신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이백 명의 녹석인들이 한 건 단지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행동이 들통 난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라고?
녹석인들의 행동이 무슨 소용이 있었던 거지? 도대체 저 사람은 뭘 하려는 거지?
그때 고해가 싸늘한 표정으로 북쪽을 보며 말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거로 충분하네. 이번 작전의 이름은 바로 무중생유(无中生有). ‘소음(少陰)’, ‘태음(太陰)’, ‘태양(太陽)’이 세 가지 단계가 있지. 소음과 태음은 이미 시작했으니 마지막 태양만 하면 돼. 하지만 그건 우리가 직접 나설 필요가 없어. 여양왕이 알아서 우리를 도와줄 테니까.”
* * *
은월성의 성도에 있던 사마장공은 뭔가를 깨닫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 이제야 알겠군. 고해, 정말 대단하구나!”
옆에 있던 신무왕은 눈을 지그시 감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래, 쉬우면서도 심오한 계략이었어.”
고해의 계략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두 사람은 앞에 있는 부하를 응시했다.
신무왕이 먼저 물었다.
“열흘이 지났는데,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하더냐?”
부하가 허리를 숙인 채 대답했다.
“은월성 외에 다른 성지에서도 여양왕의 결백을 믿고 있습니다. 신록황조는 이미 웃음거리가 되었고, 아무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사마장공이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점점 여양왕을 목 조르고 있군요. 여양왕도 초조하겠습니다. 고해가 대놓고 사용하는 계책에 여양왕이 속수무책으로 당하다니. 하하하. 대놓고 사용하는 계책이라…… 정말 처음 보는 계략입니다.”
신무왕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양왕이 덫에 걸린 거지. 신록황조의 위기는 가셨고, 이제 우리가 힘들어지겠구만.”
사마장공은 옅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예. 결국은 저희도 끌려 들어간 셈입니다. 여양왕뿐만 아니라 우리도 고해의 덫에 걸린 것이지요.”
신무왕이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여양왕부에서도 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구만.”
* * *
멸록성의 여양왕부.
묵객이 머쓱하게 말했다.
“어르신, 제가 무능하여 고해의 계략에 당했습니다.”
여양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묵 선생, 자책할 필요 없네. 흐으음, 좀처럼 고해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가 힘들군.”
여안은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부님, 뭐가 문제입니까? 조부님께선 결백한 사람이 되었고 백성들은 신록황조를 비웃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우리 쪽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고, 유언비어는 이미 우스갯소리로 변했지 않습니까?”
여안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모사들은 사색에 잠겼고, 또 일부 모사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으며, 다른 모사들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지 곤혹한 표정이었다.
묵객이 한숨을 쉬며 여안을 바라보았다.
“여 공자 말대로, 어르신은 결백해졌고 유언비어는 웃음거리가 되었지. 그리고 모든 백성이 신록황조를 비웃고 있다네. 모든 백성이…….”
여안은 그 말을 듣고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만약 어르신이 패권 쟁탈을 하지 않을 거라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네. 그저 유언비어에 불과하고, 웃음거리로 남다가 사라지겠지. 그런데 만약 어르신께서 패권 다툼을 벌인다면?”
“……?”
“고해는 지금까지 두 단계의 계책을 펼쳤네. 첫 번째는 어르신께 역모의 죄를 덮어씌운 거지. 그로 인해 일부 백성들이 어르신을 의심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두 번째는 녹석인을 폭로시키면서 어르신의 누명을 벗겨줬지.”
“그건 저도 압니다만…….”
묵객이 답답해하는 표정으로 여안을 보며 다시 말했다.
“성주들도 모두 고해한테 이용당했네. 뭘 이용당했냐고? 어르신께서는 패권 다툼에 관심이 없다고 널리 선전한 거야. 덕분에 모든 백성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 결국 고해의 계략에 모든 여론이 움직였어. 정말 보통 놈이 아니야.”
여안은 여전이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묵객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한 모사가 그제야 뭔가를 깨닫고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여 공자, 겉으로 보기에는 어르신이 유리한 것 같지만, 절대 아니오!”
“아니라니?”
“왕 어르신은 누명이 벗겨졌지만, 이제는 절대 반역을 저지르지 못하오. 백성들의 마음에 이미 여양왕은 반역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영주 땅은 원래부터 어르신의 것이었으니, 영주를 지키기 위해 신록황조와 싸운 것은 반역이 아니오. 하지만…… 어르신이 대영왕조를 세우려고 군사력을 키우고 전쟁을 일으키는 건…… 반역이 된단 말이오.
“…….”
“앞의 싸움은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고, 뒤의 싸움은 대역무도한 것이 된단 말이오. 명분이 있어야 민심도 따라주는 법인데…….”
옆에 있던 다른 모사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백성들이 신록황조를 비웃고 있소. 같은 이치로, 만약 어르신께서 반역을 저지른다면 백성들은 어르신을 비웃고 욕할 거요. 백성들은 대건천조의 사람들, 반역자는 자연히 백성들의 적이 될 수밖에 없소.”
“그건 이전에도 비슷했지 않소?”
“전이었다면 반역을 저질러도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거요. 왜? 백성들은 힘이 없으니까 말이오. 그래서 자신들에게 피해만 가지 않는다면 누가 이기든 구경만 했을 거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오. 반역을 저지르는 자는 백성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비웃음의 대상이 될 거요.”
그제야 여안이 화들짝 놀랐다.
묵객은 그런 여안을 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는 보통 놈이 아니네. 이렇게 손쉽게 성주와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다니. 그 바람에 어르신만 난처한 상황에 빠졌어.”
“그, 그렇지만 백성들은 힘이 없지 않습니까?”
묵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여안을 응시했다.
옆에 있던 모사가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여 공자. 민심이 곧 천심이오. 왕조의 기운이 어디에서 오는 거요? 기수가 모여서 오는 거 아니오? 그럼 기수는 어디서 오는 거요?”
여안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원 기수는 이십구만 구천육백 개의 공덕으로 만들어지고, 하나의 공덕은 백성들의 느끼는 생각으로 만들어진다.
백성들이 여양왕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끼지 않으면 공덕도 없고, 기수도 없고, 기운은 더더욱 없을 수밖에 없다.
한 모사가 조용히 말했다.
“신록황조를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방대한 기수 때문입니다. 기수가 끊이지 않으니 왕조도 멸망하지 않지요.”
묵객은 씁쓸한 표정으로 여양왕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어르신,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모사들도 머리를 숙였다.
“어르신,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여양왕은 한숨을 내쉬며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서 한기가 흘렀다.
“고해의 짓이 분명하다고 봐야겠지?”
묵객이 답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어르신께서 왕조를 세우면 수많은 기운을 얻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힘들 것 같습니다. 손해가 너무 큽니다.”
여안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네? 그럼 고해의 음모론 때문에 대영왕조의 건립이 힘들단 말입니까?”
묵객이 이마를 찌푸리며 답했다.
“그렇다네. 그래서 어르신께서는 더 늦기 전에 얼른 왕조를 세워야 하네. 민심이 변하기 전에 얻을 수 있는 기운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해.”
여안은 도무지 묵객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백이 밝혀지면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왜 음모에 휘말렸다고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