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30화 (230/243)

230화. 대영황조

옆에 있단 한 모사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묵 선생의 말씀대로 최대한 빨리 왕조를 세우셔야 합니다! 일단 남아 있는 기운이라도 얻은 다음에 백성들의 인식을 천천히 바꾸면 승산이 있습니다!”

여양왕은 입을 꾹 다문 채 침묵을 지켰다.

그 모습을 보고 모사들이 너도나도 말했다.

“고해의 음모 때문에 수많은 기운을 잃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얼른 성주들과 손을 잡아야만 합니다!”

“어르신께서 왕조를 세우면 대건천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대건천조의 대군이 대영왕조를 습격할 수도 있으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합니다!”

모사들의 목소리가 커질 즈음, 옆에 있던 오순이 한숨을 쉬더니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해 용효월이 어르신께서 왕조를 세울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만 증거가 없었지요. 이번에도 증거는 없지만, 고해는 어르신이 스스로 인정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의 민심을 이용하여 어르신의 발목을 잡다니……. 정말 조심해야 할 놈입니다.”

여안은 상황을 이해하고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여양왕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모든 군대를 각 성으로 돌려보내라! 그리고 너희들은 나를 따라 영성으로 돌아가자! 도읍을 영도로 정하고, 대영왕조를 건립할 것이니라!”

마침내 그가 선언하듯 말하자, 한 무리의 대신들이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예!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만약 이번 일이 있기 전에 왕조를 건립했다면 여양왕도 더할 나위 없이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결코 즐길 수 없었다.

황제의 자리를 등 떠밀려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적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여양왕이 두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고해, 내가 쉽게 당할 줄 아느냐? 흥! 그리 생각했다면 나를 너무 쉽게 봤다!”

* * *

신록황조의 어느 한 산골짜기.

녹석신이 흥분하며 말했다.

“폐하! 고 선생! 여양왕이 철군하고 있습니다. 전부 철군했습니다! 하하하! 드디어 위기를 넘겼습니다!”

고해는 혼자 바둑을 두고 있었다.

녹석인의 목소리를 들은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북쪽을 보며 말했다.

“신록황조의 위기는 넘겼지만, 여양왕의 위기는 이제 시작이지. 반역? 흥! 대건천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여양왕도 사면초가의 맛을 봐야 해! 흥!”

* * *

영성은 영주에서 가장 큰 성이었다.

여양왕이 영성에 들어서자 거리에 군인들이 가득 깔렸고 한기가 가득했다.

부우웅!

부우우우웅!

나팔 소리가 들리자 백성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왕궁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료들이 영주로 몰려들면서 백성들에게도 영주에 대영왕조가 생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백성들은 너무 놀라고 의아해서 우왕좌왕했다.

신록황조의 음모라고 하지 않았어?

왕 어르신이 왜 반역을……?

행여나 백성들이 폭동이라도 일으킬까 봐 군대가 성내에 주둔해서 백성들을 감시했다.

그러는 와중에 왕부에서는 제천의식이 시작되었다.

여양왕의 소리가 영도 하늘에 울려 퍼졌다.

“대영왕조의 고아 여양이 하늘과 땅에 맹세합니다! 오늘 조상님의 제도를 회복하고 나라를 세우려고 합니다! 저의 피를 제물로 바치고 백성을 선대(善待)하고 새 나라를 선대하겠습니다!

과거 대영왕조의 남은 기운을 토대로 ‘영성’을 조도로 하되, 이름을 ‘영도’로 개명하고 ‘천영전’을 대영왕조의 중심으로 하여 천하의 기운을 받겠습니다! 하늘이시여! 땅이시여! 새 나라를 받아주시옵소서!”

여양왕의 목소리를 들은 백성들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왕부, 아니 이제는 황궁이었다.

여양왕은 황궁에 있는 제단에 올라섰다. 손에는 파란색의 옥새를 들고 있었다.

옥새는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제단 밑에는 수많은 관료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서 있었다.

여양왕은 파란색 용포를 입고, 머리에 평천관(平天冠)을 쓰고서 손으로 옥새를 잡고 대지에 눌렀다.

크아아아앙!

순간 옥새에서 갑자기 용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쿵!

옥새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 영도 전체가 뒤흔들렸다.

옥새에서 커다란 용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땅속으로 들어갔다.

대지용맥이었다.

쿠구궁!

용이 땅속으로 흘러가자 영도 땅이 뒤흔들렸고, 뒤따라서 천지의 영기가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용이 땅속으로 흘러갔으니 영기가 모여들겠지?

쿵쿵쿵!

성밖에 있던 산봉우리들이 갈라 터졌다. 과거 대영왕조의 용맥이 수천 년 만에 풀려나면서 영주의 대지를 기어 다녔다.

순간 영주의 대지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르르릉!

영주의 성지에서 용명이 울렸다.

용맥이 풀려나니 옥새에서는 기운이 용솟음쳐 나왔다. 과거 묶여 있던 대영왕조의 기운이 용맥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오늘날 여양왕이 새롭게 왕조를 세우니, 그 기운이 하늘로 높이 올라갔다.

같은 시각.

영주의 성지에서 여양왕을 따르던 성주들이 삼 일 전부터 이 소식을 전해 받고 준비하고 있었다.

백성들이 반대하든 말든 대영왕조는 세워진 것이다.

하영성의 성주가 소리 높이 외쳤다.

“하영성주가 알현하옵니다! 대영왕조 만세 만세 만만세!”

“위대한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대영왕조 만세 만세 만만세!”

…….

…….

여양왕한테 충성하던 관료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오체복지(五體伏地) 했다.

좌영성 성주가 소리 높이 외쳤다.

“좌영성이 알현하옵니다! 대영왕조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

백 곳의 성주들 가운데서 구 할에 달하는 성주들이 여양왕과 대영왕조에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수많은 백성은 몹시 초조한 마음이었다.

여양왕과 관계에 있는 귀족, 세력들도 여양왕한테 충성했다.

여양왕은 그동안 수많은 세력, 귀족, 대가족 등 다양한 집단과 이익 관계를 형성하여 하나의 거대한 이익 집단을 만들었다.

그러던 차에 여양앙이 왕조를 세우니 그들은 당연히 충성을 맹세했다.

그들의 마음이 기수로 만들어져서 하나의 기운이 되더니 영도 하늘을 구름처럼 뒤덮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대영황조를 인정하기 싫은 눈치였다.

얼마 전까지 신록황조를 비웃었지 않은가. 그런데 그들의 말이 사실이 되었으니, 얼굴이 붉어질 일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현재 대건천조의 백성이지 대영왕조의 백성이 아니었다.

비록 투쟁할 수는 없지만 자신들의 마음을 기수로 만들 생각도 없었다.

그럼에도 과거 대영왕조의 기운을 토대로 영주의 사방팔방에서 기수들이 모여들면서 기운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대영왕조의 기운은 순식간에 신록황조 기수의 여섯 배를 넘어섰다.

여양왕과 묵객, 오순, 료아, 여안와 관료들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들끓는 기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운이 들끓더니 천천히 윤곽을 드러냈다.

저거 혹시 용 모양 아닌가?

모든 사람이 두 손을 모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용 모양의 기운은 점점 더 선명해지면서 미친 듯이 주변에 있는 기운을 빨아들였다.

여안도 두 손을 꽉 잡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황금 기운! 반드시 만들어져야 합니다!”

순간, 완전히 기운으로 만들어진 황금 용이 크게 울부짖었다.

크아아아앙!

황금 용이 울부짖으니 하늘에 만 장 크기의 노을과 빛이 반짝였다.

주변에 있던 관료들도 흥분한 채 외쳤다.

“됐다! 드디어……!”

그때였다.

쿠궁!

황금 용이 폭발하면서 기운이 조각조각으로 나누어졌다.

“뭐, 뭐야? 조금 전까지 황금 용이 됐었잖아?!”

“왜 갑자기 폭발한 거지? 왜? 도대체 왜?!!”

관료들은 화들짝 놀라서 망연한 표정이 되었다.

여안이 와락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결국엔 기운이 부족했어. 전부 고해 때문이야! 조금만 더 모였으면 성공할 수 있었는데……!”

여양왕은 표정이 굳어진 채 이를 악물었다.

묵객은 흩어진 기운을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짓고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황조의 주인을 폐하라고 부르고, 그 위인 왕조의 주인을 대제(大帝)라고 부른다.

비록 한 글자 차이지만 그 차이는 대단히 컸다.

황금 용이 흩어지면서 왕조가 만들어지는 것을 실패했으니 그 아래인 황조가 되었다.

대영황조라니…….

백관들은 감히 여양왕과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묵객이 운을 뗐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대영황조, 만세 만세 만만세!”

문무백관들도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대영황조, 만세 만세 만만세!”

그러나 여양왕의 안색은 굳어져서 펴질 줄 몰랐다.

대영황조가 세워졌다는 소식은 발 빠르게 영주의 모든 성지에 전해셨다.

소식을 들은 성주들은 놀라서 눈이 커졌다.

“뭐야? 대영황조? 왕조가 아닌 황조라구?”

* * *

신무왕과 사마장공도 대영황조의 소식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무왕이 웃으면서 말했다.

“고해가 힘도 들이지 않고 왕조를 날려버렸구나! 하하하!”

사마장공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대영황조라니…… 여양왕의 타격이 작지 않겠는데요?”

“얼른 이 소식을 성도에 전해라. 반역자의 결과를 똑똑히 보라고 해!”

* * *

같은 시각, 영주.

성주 구십여 명이 여양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십여 명은 충성을 맹세하지 않고 반발했다.

하지만 이곳은 여양왕이 장악하고 있는 구역. 당연히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이런 배신자들! 성왕께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신록황조의 음모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여양왕이 배신하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곳곳에서 여양왕에게 충성하는 군대와 대건천조의 군대들이 교전을 벌였다.

영주 땅은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해 버렸다.

* * *

신록황조의 서쪽. 십만 장 크기의 산언덕에 ‘경금종’이라는 세 글자가 보였다.

그 산언덕이 바로 경금종의 총단이었다. 하늘에는 구름 같은 기운이 맴돌았는데, 신록황조의 기운에 뒤지지 않았다.

언덕 주변에는 커다란 성이 세 개 있었는데 경금종을 위해 만들어진 성이었다.

경금종에도 대진이 배치되어 있었다. 주변에서는 구름과 안개가 떠 있었다.

언덕 가장 중심에 있는 대전의 현판에는 ‘경금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대전 안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한 사람은 일품당 금타주 초신, 또 다른 남자는 금발의 노인이었다.

초신이 말했다.

“종주님, 폐하께서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영황조군요.”

금발 노인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폐하가 숨겨놓은 기운까지 모두 사용했다면 왕조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초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그럼 경금종 외에 또 다른 황조와 종문이 폐하를 따르고 있단 말입니까?”

금발 늙은이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라.”

“예…….”

역시나 여양왕의 세력은 영주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신록황조에 뒤지지 않는 경금종 등 여러 세력을 숨기고 있었다.

초신은 깍듯하게 성지를 건네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걸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록황조를 공격하여 고해를 반드시 죽이라는 명령서입니다.”

금발 노인은 천천히 성지를 펼쳤다.

그는 성지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고해를 반드시 죽이라고? 그런데 그가 겨우 금단경이었어?”

초신이 비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예, 전에 제가 고해와 싸워봤는데, 제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금발 노인은 미간을 좁혔다.

“장로들을 부르거라. 신록황조를 공격할 것이다.”

“예.”

초신은 대답을 마치자마자 빠르게 대전을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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