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검마(劍魔)
경금종 대진이 흔들리긴 했으나 깨지지 않았다.
한 무리의 운수 장군들이 힘을 합쳤다.
“깨버려라!”
쿠구궁!
여전히 깨지지 않았다.
경금종 부하들이 운수를 비웃었다.
“하하하! 꿈쩍도 않는구나! 흥! 종주님이 오시면 각오들 하고 있어라, 이놈들!”
녹석신이 고해를 보며 불만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자네가 말한 대진인가? 경금종 대진도 깨지 못하는데, 이십억 상품 영석을 쓰다니…….”
고해는 대꾸하지 않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구진.”
“네.”
구진이 당나귀 운수 위에 올라탔다.
고해가 말했다.
“조금 전 싸울 때 안에 있는 음파 장벽을 깼나?”
“그럼요. 주인님. 제가 그런 쪽에 전문가 아닙니까?”
“그럼 여기에 있는 사람들한테 음파 장벽을 만들고, 저 안에 있는 경금종 부하들한테 노래를 불러줘라.”
고해의 말을 들은 녹석신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옆에 있는 구진을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래요?”
구진은 무척이나 아쉬운 표정이었다.
“주인님, 제가 재밌는 노래를 창작했는데, 정말로 안 들으실 겁니까?”
고해가 냉랭하게 다그쳤다.
“잔말 말고 얼른 해!”
“네…… 흑흑. 아쉽네요.”
고해는 고개를 돌려서 싫은 티를 확실하게 냈다.
“빨리 하기나 해!”
구진이 입을 삐죽이고는 손을 휙 저었다.
위이잉!
음파 장벽이 펼쳐졌다.
이제 이십구 천지종횡대진에 있는 고해, 황보조가, 녹석신, 그리고 운수를 조종하는 장군들은 구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구진은 당나귀 운수를 타고 경금종으로 향했다.
구진이 다시 손을 휙 저었다.
위이잉!
허공에서 천 장 크기의 운무로 된 거문고가 나타났다. 바로 천금이었다.
구진은 마른기침을 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부터 구진이 너희들한테 내가 창작한 노래 총각무를 들려주겠다!”
천금의 소리는 경금종 여기저기로 흘러갔다.
수많은 경금종 부하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미친놈 아니야? 지금 이 판국에 노래를 부르겠다고?”
“총각무? 제목이 뭐 그래? 바보 아니야?”
“황보조가가 미쳤군! 싸우다 말고 노래를 부르다니! 하하하!”
경금종 부하들의 비웃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고해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녹석신은 순간 한 걸음 물러섰다.
황보조가는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망연한 표정을 지었다.
구진의 노래 실력이 그렇게 대단한가?
황보조가는 구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입 모양을 보니 첫 구절을 내뱉은 모양이었다.
밑에 있던 경금종 부하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구진이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들을 수는 없었지만 큰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밑에 있는 경금종 부하들의 표정들은 점점 더 일그러졌다. 심지어 일부 부하들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경금종 부하들은 귀를 막고는 구진을 향해 욕설을 내뱉었다.
구진은 가슴에 손을 얹고는 자신의 노래에 심취되었다. 자신의 노래에 감동이라도 받은 듯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밑에 있는 경금종 부하들은 하나같이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파 장벽을 펼쳐! 어서!”
“음파 장벽이 고장 났어! 전부 고장 났단 말이다!”
“듣기 싫어! 으아아!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살려줘!”
“진원으로도 막을 수 없어! 노래가 영혼을 파고드는 것 같아!”
“그만 불러라, 이놈! 계속 부르면 죽여버리겠다!”
경금종 부하들은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황보조가와 절대 강자들은 그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래 한 곡 부르는데 왜 저렇게 야단법석이지?
그때 마침 경금종 부하들이 한계에 이르렀다.
“죽여버릴 거다!”
“죽여!!!!”
경금종 부하들이 칼을 들고 구진을 향해 날아왔다.
“역발산혜기개세!”
항우 운수가 돌진하면서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쿵!
경금종 부하들이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
그럼에도 경금종 부하들은 겁을 먹지 않고 구진을 향해 돌진했다.
항우의 칼도 구진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는 두렵지 않았다.
곧, 멈췄던 혈투가 재개되었다.
경금종 부하들은 죽어가면서도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뛰어오는 놈, 날아오는 놈, 비주를 타고 오는 놈, 선학차를 타고 오는 놈.
경금종 부하들은 구진을 죽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백만 운수 대군이 그들과 맞섰다.
운수들은 포악스럽게 울어대며 경금종 부하들을 죽였다.
“아아악.”
“크아아악!”
하늘에서 시신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기이하게도 경금종 부하들은 밑으로 추락하면서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저 노래를 듣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들은 바닥에 떨어지며 죽어갔다.
눈 깜짝할 사이 경금종 부하 삼십만 명이 죽어버렸다.
살아 있는 경금종 부하들은 산골짜기로 도망치면서 소리쳤다.
“종주님! 살려주십시오! 제발! 흑흑흑!”
바로 그 순간, 산골짜기에서 눈부신 검의 기운이 나타났다.
콰아아아!
검의 기운이 하늘로 솟아오르자 백만 운수도 멈칫했다.
산골짜기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다.
“경금 기운! 나를 따라 움직이고, 경금 백성들은 무량경금을 읊으면서 나에게 힘을 실어주거라!”
쿠구궁!
순간, 경금종의 기운이 들끓기 시작하더니, 그 목소리가 기운을 통해 모든 경금종 부하들과 열여덟 개 성지로 흘러갔다.
경금종 열여덟 개 성지의 백성들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
백성들은 귀신한테 홀리기라도 한 듯 하나같이 ‘무량경금’을 읊어댔다.
곧 열여덟 개 성지에 있는 백성들한테서 온 기운이 산골짜기로 모여들었다.
쿠르르릉!
백성들의 기운이 모이니 강력한 힘이라도 생긴 듯 산골짜기가 들썩였다.
고해가 황보조가를 보며 물었다.
“천하의 힘을 움직이는 건가요? 예전에 오순과 싸울 때처럼 나라의 힘을 빌려 개천궁 절대 강자를 이긴 것과 같은 이치겠군요.”
황보조가는 굳은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맞네.”
고해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힘은 종주쯤 되어야 움직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경금종 종주는 지금 신록황조에 있을 텐데요.”
“경금종의 영보(靈寶)네. 우리의 옥새와 비슷하지. 그런데 그 영보에 영지(靈智)가 있을 줄은 나도 몰랐네.”
쿵쿵쿵쿵!
산골짜기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순간 황금색으로 된 호랑이가 송곳니를 보이며 나타났다. 등에 있는 털은 칼자루 모양이었는데,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대지가 진동했다.
황보조가가 그걸 보고 말했다.
“검치호? 금신이 꼭두각시가 되어 경금종을 수호하고 있었군.”
녹석신이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검치호가 힘을 모으다니, 정말 큰일입니다. 비록 폐하에 비할 수는 없으나, 검치호 역시 개천궁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해. 자네의 대진으로 저 검치호를 막을 수 있겠나?”
콰아아!
검치호가 포효하고 있었다.
검치호 주변에서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하늘로 말려 올라갔다.
“역발산혜기개세!”
“삼천 월갑(越甲)! 베어라!”
“호표기! 베어라!”
“함진영! 죽여라!”
백만 운수가 거의 동시에 포효하며 맞서 싸웠다.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억만 개의 칼날이 백만 운수를 향해 날아왔다.
그 기세가 어찌나 거센지, 백만 운수가 점점 뒷걸음치고 있었다.
신록황조의 고수 하나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폐하! 한계입니다! 막을 수 없습니다!”
구진도 겁에 질려 소리쳤다.
“아아악! 주인님! 살려주세요!”
한 무리의 경금종 부하들이 소리 높이 외쳤다.
“검치호. 저놈들을 죽여버려!”
검치호는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
콰아아아아!
백만 운수가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으아악!”
신록황조의 절대 강자들이 밑으로 추락했다.
후우우웅!
고해는 구름을 띄워 절대 강자들을 떠받쳤다.
녹석신이 다급하게 외쳤다.
“개천궁의 위력이 너무 강력합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 겁니까?”
고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한 번 더!”
위이잉!
대진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또 다른 운수를 내오는 것 같았다.
녹석신이 말했다.
“고 선생, 고 선생의 운수가 쓸모가 있는 건가? 검치호는 십팔억 백성들의 힘이네. 아니지, 모든 백성의 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수억 명의 힘은 되네. 조금 전에도 자네의 운수가 순식간에 폭발하지 않았나?”
고해는 싸늘하게 말하고는 새로 나타나는 운수 앞으로 향했다.
“수억 명의 힘이라고요? 저의 대진은 이십억 개의 상품 영석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고해는 곧바로 운수에 올라탔다. 고해가 올라타는 순간 운수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강호를 누비며 간악한 자들은 전부 죽였습니다. 영웅호걸들을 전부 죽여 천하에는 적수가 없어서 깊은 골짜기에 은거하여 조각을 벗으로 삼았습니다. 한평생 적수를 만나지 못했으니 적막하고 외롭기 그지없었습니다.”
운수 검객(劍客)이 슬프게 탄식하면서 천천히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났다.
비록 수수한 옷차림의 노인이었지만 온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검객이 한 발 내딛자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찬찬히 살펴보니 그건 먹구름이 아니라 검의 기운이었다. 마치 하늘의 위세가 아래로 향하는 것 같았다.
쿠웅!
검객이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하늘에 있는 검의 기운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주위에서는 칼바람이 맹렬하게 불고 있었다.
검객의 기세를 느낀 경금종 부하들은 겁에 질렸다.
“이, 이 괴물의 기운은 뭐지? 뭐 이렇게 강력해?”
“검치호의 기운과 비슷하잖아? 어떻게 이럴 수가! 저건 뭐야?”
한 무리의 경금종 부하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해의 운수 검객을 바라보았다.
황보조가도 화들짝 놀랐다.
“이…… 이건?”
녹석신이 경악하며 말했다.
“이것도 개천궁의 기운일까요? 고해의 대진이 저렇게 강력하다니!”
구진이 의기양양해서 말했다.
“그럼요. 누구의 주인님이신데요!”
검치호는 강력한 적수를 만났다는 것을 느끼기라도 한 듯 울부짖으며 말했다.
“검의 기운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너는 누구냐?!”
“난 검마. 독고구패다!”
검마 독고구패.
운수 검객은 싸늘하게 대답하고 냉랭한 눈빛으로 밑을 내려다보았다.
밑에 있던 경금종 부하들은 독고구패와 눈을 마주치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심지어 수많은 경금종 부하들은 겁에 질려서 벌벌 떨었다.
녹석신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정말 강력한 검이구나!”
그때 검치호가 차가운 어투로 소리쳤다.
“경금 검기!”
황금빛 검기가 솟구쳤다. 그 검기는 날카롭고 위엄이 있었다.
백만 줄기의 검기는 파도처럼 출렁거리며 기세등등하게 뻗어갔다.
황금빛 검기가 지나는 곳마다 독고구패의 하얀색 검기가 빙빙 돌고 있었다.
콰과과광!
황금빛 검기와 하얀색 검기가 충돌했다.
순간 하얀색 검기가 두 동강 나더니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황금빛 검기는 지나는 곳마다 하얀색 검기를 무너뜨렸다.
녹석신이 다급하게 말했다.
“경금 검지는 순금 속성을 가지고 있어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독고구패도 이대로 무너지는 겁니까?”
수많은 경금종 부하들도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하하하. 한 방에 끝나는구나!”
그러나 오직 검치호만은 굳은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검기로 보였겠지만 검치호의 눈에는 검의(劍意)로 보였다.
독고구패의 하얀색 검기가 끊어지긴 했으나 검치호는 자신보다 수없이 강한 검의를 느껴야만 했다.
조금 전에 깨진 하얀색 검기는 일부분에 불과했다. 하늘에는 한기로 가득 찬 검의 기운이 가득했다.
독고구패는 싸늘한 눈빛으로 검치호를 응시했다.
독고구패의 싸늘한 반응을 본 검치호는 겁에 질렸다.
그 순간, 독고구패가 검도 들지 않고 냉랭하게 소리쳤다.
“깨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