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누가 누굴 무서워해
이십구 천지종횡대진 속.
쿵! 쿵!
거대한 굉음이 들리면서 대진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고해, 황보조가, 구진, 녹석신, 한 무리 신록황조의 절대 강자들은 경금전에서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대진을 보고 있었다.
고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제 대진은 밖에서 쉽게 건드릴 수 없습니다. 만약 외부에 충격이 생기면 특수한 법보를 지녔거나 절대 세력을 지닌 자들이 왔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녹석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경금종 종주가 왔단 말입니까? 그렇다고 해도 경금종 종주는 원영경에 불과합니다.”
고해가 말했다.
“보면 알겠지요.”
고해는 말을 마치고 손을 휙 저었다.
순간 구름이 옅어지더니 대진에 커대란 구멍이 생기고, 외부에서 대진을 두드리는 소리도 멈췄다.
위이잉!
구멍을 통해서 바깥 상황을 볼 수 있었고, 밖에서도 내부가 보였다.
밖을 보자 거대한 비주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위에는 청색 옷을 입은 오순과 경금종의 절대 강자가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수많은 병사가 서 있었다.
오순은 장검을 들고 싸늘한 표정으로 고해의 일행을 노려보았다.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
“드디어 대진을 열었구나! 흥!”
초신이 대진의 틈 속을 들여다보며 눈을 치켜떴다.
“우리 경금종의 십만 대산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단 말인가?”
경금종 종주는 일그러진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삼 할 정도의 기운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한 경금종 장로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검치호가 죽었습니다! 그것도 산에 박혀 죽었습니다, 종주!”
검치호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화가 치밀어 오른 한편으로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다.
개천궁의 위력을 지닌 검치호가 죽었다니!
오순도 개천궁의 경지인지라 은근히 겁이 났다.
그 와중에도 경금종 종주는 경금전을 응시하고 있었다.
고해 일행이 그곳에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경금종 종주는 한눈에 황보조가를 알아봤다.
“황보조가! 이 악독한 놈! 감히 우리 경금종을 없애려 해?”
황보조가도 경금종주를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종주, 우리 신록황조를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인과응보라고 생각해라!”
오순은 맨 앞에 서서 냉랭한 눈빛으로 황보조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예전에 황보조가가 신록황조의 세력을 동원하여 오순과 싸웠고, 결국 황보조가의 승리로 끝났었다. 오늘 또 황보조가를 보니 그때의 치욕이 떠올랐다.
돌연 초신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고해? 고해다! 이 대진을 만든 사람이 고해였어!”
사람들의 시선은 순식간에 고해에게로 쏠렸다.
경금종 종주는 고해와 첫 대면이었으나 오순은 정화 산골짜기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고해는 여양왕의 관심을 받았지만 오순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여양왕의 말이었기 때문에 토를 달지 못했을 뿐.
고해는 정화 산골짜기에서 대진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하였던 아룡을 죽인 자였다, 은월해에서는 수십 마리의 수룡들도 죽였다고 했다.
그 사실을 떠올린 그의 가슴은 고해를 향한 복수심으로 차올랐다.
“고해! 폐하께서 그렇게 받들어줬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겠다는 거냐?!”
그의 말에 고해가 답했다.
“여양왕 말인가? 하하하! 받들어주다니? 뭐를? 오히려 내가 여양왕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나를 죽이려 했지 않은가? 거기다 나를 막아서려 했던 내 아내마저 죽였다. 여양왕의 손에 내 아내가 죽었단 말이다! 그런 게 받들어주는 건가?”
“흥! 그래서 영주의 기운을 빼앗고 폐하를 압박하여 나라를 세우게 했던 거냐?”
고해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래. 여양왕을 압박하여 나라를 세우게 한 것이 첫 번째 단계이고, 경금종을 멸종시키는 것이 두 번째 단계이다. 아직 세 번째가 남아 있지. 난 여양왕의 날개를 하나씩 전부 잘라버릴 것이다. 하하하하!”
오순, 경금종 종주, 초신 등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역시 고해였다. 여양왕을 압박하여 강제로 나라를 세우게 만든 사람, 대영왕조가 아닌 대영황조로 만들어버린 사람. 그 모든 일이 전부 고해의 짓이었다.
고해가 한 걸음 한 걸음 나설 때마다 여양왕이 받은 타격은 엄청나게 컸다. 그런데 아직 세 번째 단계가 남았다고?
뭐지?
초신이 입을 열었다.
“묵 선생의 말이 맞았어. 고해, 보통 놈이 아니야.”
예전에 초신은 고해를 하찮은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실력도 안 되는 놈을 묵 선생이 왜 저렇게 중시할까 생각했었는데, 역시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해의 계책이 여양왕한테 큰 타격을 주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경금종 종주가 고해를 노려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를 살려두면 안 돼. 절대 안 돼!”
오순도 고해의 계책이 얼마나 무서운지 절감한 터였다. 여양왕을 위해서는 고해를 반드시 없애버려야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위이이잉!
대진 내부에서 수많은 칼자루가 뭉치더니 검은 기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검은 기운 사이에서 회색포를 입은 검객 운수가 나타났다.
구진의 눈이 반짝였다.
“독고구패?”
그랬다. 독고구패가 나타난 것이다.
고해는 천천히 독고구패의 몸에 올라탔다.
“나를 죽이려고? 하하하! 오순, 실력이 안 돼 태자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하! 신록성에서 여양왕이 없었으면 황보 선생의 손에 죽었을 텐데…. 하하하. 안 그런가?”
독고구패는 냉랭한 눈빛으로 맞은편에 있는 오순을 응시하고 있었다.
경금종 종주가 소리쳤다.
“용 태자. 흔들리면 안 되네! 일부러 도발하는 거야!”
오순 역시 방대한 대진에서 수많은 공간이 나타나더니 자체적으로 세계를 형성한 것 같은 광경을 보고 있었다.
오순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 진법으로 검치호를 죽였단 말인가?”
그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개천궁인 검치호도 이 대진에서 죽었다면 더더욱 침착해야 했다.
그 와중에도 고해는 여전히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개천궁 강자가 나와 같은 금단경 앞에서 쩔쩔매고 있다니. 용 태자답지 않구나!”
오순이 냉랭하게 말했다.
“흥! 금단경? 나와 봐! 어디 한번 나와 봐!”
오순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고해의 도발 앞에서는 최대한 조심하며 독기 품은 눈빛으로 고해를 노려보았다.
고해가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하! 태자. 뭘 그리 망설이나? 내가 도망칠 구멍을 하나 만들어줄까? 어때?”
고해가 그 말을 하고는 손을 휙 저었다.
순간, 대진의 운기가 위로 모여들더니 천천히 거대한 그물망을 만들었다.
스물아홉 개의 구름과 안개로 형성된 거대한 그물망이 경금종의 십만 대산을 뒤덮었다.
그런데 그 중간에 구멍이 하나가 있었다.
오순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독고구패에 올라탄 고해를 응시했다.
“뭐라?”
고해가 냉랭하게 말했다.
“질 것 같으면 언제든지 저 구멍으로 도망쳐라!”
옆에 있던 황보조가와 구진, 녹석신은 망연한 표정으로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 구멍은 사실 영석이 부족해서 생긴 구멍이었다. 그런데 그 구멍을 그런 식으로 포장해서 말하다니.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맞은편에 있는 오순을 응시했다.
오순으로서는 치욕적인 말이었다.
금단경 따위가 자신을 도발하다니! 그것도 도망칠 구멍까지 만들어주면서!
으드득, 이를 간 그가 냉랭하게 말했다.
“고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겁나지 않으면 한번 덤벼볼 텐가?”
고해도 속으로는 다급한 마음이었다. 독고구패를 불러낸 순간부터 영석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로서는 촌각이 아까웠다.
그런데 고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격분한 오순이 검을 들고 고해를 향해 날아왔다.
“오냐! 내 손으로 죽여주마!”
독고구패도 마주 보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그딴 검으로 뭐가 어째?! 나는 중검이 아니면 사용하지도 않느니라!”
순간 하늘에서 갑자기 천 장 크기의 현철로 만든 중검이 나타나더니 오순을 맞이했다.
콰앙!
거대한 굉음이 울리면서 오순의 검과 ‘현철중검’이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고해는 오순의 실력에 화들짝 놀랐다. 천하의 힘을 끌어모은 검치호보다도 더 강한 듯했다.
오순도 놀라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바로 저 칼이 개천궁의 실력을 자랑하는 검치호를 죽인 듯했다.
그때 독고구패가 또 소리쳤다.
“산천초목을 검으로!”
쿠궁!
대지에서 산천초목으로 만들어진 검이 나타나더니 곧장 오순을 향해 날아갔다.
쿵쿵쿵!
오순은 맹렬하게 날아오는 산천지검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손에 들려 있는 칼을 휘두를 새도 없이 황급히 도망쳤다.
그 광경을 목격한 경금종 종주와 초신 등 다른 사람들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산천지검은 너무나 강력했다. 자신들의 실력으로 받아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저게 무슨 진법이지? 어떻게 저런 일이?!”
“개천궁인 오순이 물러서다니!”
“검치호도 저 검에 죽은 것 아냐?”
고해도 점점 초조해졌다. 대진의 영석이 점점 줄어드고 있었다.
비록 오순이 황급히 도망치긴 했지만, 그는 아직 어떤 상처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겉으로는 초조함을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더 냉랭하게 말했다.
“왜? 힘든가! 무서운가! 하하하. 그럼 도망쳐라! 얼른! 하하하!”
도망치라고? 금단경 앞에서 도망을?
“흥!”
콰아아아아!
오순이 포효했다.
순간 오순이 자색 용으로 변하더니 꼬리를 휘저었다. 그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산천지검을 쳐냈으나, 몸에 수많은 목검이 가시처럼 꽂혔다.
쿠아아아!
천 장 크기의 용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오순은 얼른 이 대진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금단경 앞에서 도주하면 남들이 비웃을 것 같아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고해 역시 점점 더 초조해지고 있었다.
‘시간이 부족하거늘….’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당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독고구패가 말했다.
“구 일 전의 그 검치호는 정말 별로였지. 그런데 너는 좀 하는구나. 그렇다면 내가 직접 검으로 상대해 주마!”
그 말을 들은 경금종 부하들은 화들짝 놀랐다. 저 검객한테 따로 검이 있다고? 그럼 지금까지 검을 사용하지 않은 거야?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오순이 저렇게 곤경에 빠지다니!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오순의 표정도 점점 일그러졌다.
순간 독고구패가 오른손으로 청동 장검을 빼 들었다.
위이잉!
장검을 빼 드는 순간 검에서 차가운 한기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대지가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다.
오순은 그 광경을 보고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독고구패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이 검의 이름은 ‘무덤’이다. 나를 빼고 그 누구도 본 적이 없지. 왠지 알아? 이 ‘무덤’을 본 사람들은 전부 죽었거든.”
오순은 갑자기 공포에 휩싸여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주변은 이미 꽁꽁 얼어붙었고, 한기만 가득했다.
무덤? 저 무덤을 본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고?
고해도 줄어드는 영석을 보며 점점 더 초조해졌다.
오순을 죽이는 건 힘들어졌고 대신 겁을 줘야 했다. 고해는 대진을 조종하는 방식으로 독고구패를 조종했다.
흰 눈이 흩날리고 찬바람이 불어왔다. 독고구패의 칼을 본 오순은 겁에 질려 심장이 두근거렸다.
독고구패가 덤덤하게 말했다.
“한평생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오늘은 내 상대가 되어줄 테냐? 검을 봤으니 죽어야겠지. 죽기 전에 내 이름을 알려주마. 내 이름은 독고구패이다.”
검을 봤으니 죽어야겠지?
대진 밖에 있던 경금종 종주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얼른 도망쳐!”
오순뿐만 아니라 밖에 있던 절대 강자들도 살기를 느꼈다. 비록 독고구패는 덤덤하게 말했으나 이를 들은 사람들은 겁에 질려 황급히 도망치려고 했다.
산천초목으로 만들어진 검을 보고 황급히 도망쳤던 오순이었다.
그런데 검을 빼 들었다는 말은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우우웅!
독고구패의 장검 덕분에 꽁꽁 얼어붙은 대지가 흔들거렸다.
단전에서 죽음의 신호가 몰려왔다.
오순이 괴성을 질렀다.
“아악!”
정말로 죽을지 모른다. 얼른 여기에서 나가야 해!
쿵!
콰르르릉.
오순은 돌풍처럼 순식간에 저 멀리 도망쳤다.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초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얼른 도망쳐! 비주! 비주! 얼른 서둘러!”
경금종 부하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려는 찰나.
쿠구궁!
독고구패와 이십구 천지종횡 대진이 갑자기 폭발해 버렸다.
독고구패와 대진은 마치 버섯구름처럼 하늘로 솟구쳤다.
오순은 저 멀리에서 버섯구름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대경실색했다.
오순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독고구패?”
오순은 머리도 안 돌리고 황급히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