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38화 (238/243)

238. 일품당 당주, 고해

* * *

경금종 총단.

경금종은 거의 멸망에 가까울 지경으로 무너졌다. 도망친 사람도 별로 없었다.

백만 대군은 악마의 소굴을 구경한 후 진실을 알고 더 이상 경금종에 충성하지 않았다.

충성은커녕 백만 대군의 가슴에는 분노만이 가득 차 있었다.

자신들이 따르고 인정하던 경금종이 사람의 뇌나 먹는 악마들이었다니!

성주들은 즉각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 성에 알리거라! 경금종의 부하들을 수배하고, 그들을 잡은 사람들한테는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이 악행을 세상천지에 알려라! 주변의 백성들도 괴물들의 악행을 알아야 하느니라!”

“우리 성은 이제부터 경금종과의 모든 관계를 끊는다!”

황보조가가 나서지 않아도 사람들은 이미 충분히 분노에 차 있었다.

고해가 황보조가를 보며 말했다.

“황보 선생, 경금종도 멸종되었으니 남은 성을 얼른 손에 넣으셔야 합니다. 늦어지면 다른 세력들이 엿볼 수도 있습니다.”

황보조가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지. 고맙네, 고 선생.”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놈들은 여양왕의 앞잡이들입니다. 황보 선생의 신분도 노출되셨으니 얼른 조도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자네는 우리와 함께 가지 않겠는가?”

“예전에 여양왕을 압박하여 나라를 세우게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고 두 번째는 경금종을 멸종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세 번째가 남았습니다. 여기에서 멈출 수 없습니다. 이번에 오순이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갔으니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곧바로 가서 세 번째 단계를 준비해야지요.”

황보조가는 옅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끄덕였다.

“경금종에서 뺏은 영석이네, 우리 신록황조와 절반씩 나누세. 받게나.”

상품 영석 팔억 개의 절반을 고해한테 넘기겠다고 하는데도 누구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대한황조와 신록황조가 합작하여 경금종을 없애버렸다. 황보조가는 돈을 냈고 고해는 대진을 배치했으니 둘 다 서로한테 너무 소중한 존재였다.

고해는 거절하지 않았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바로 그때, 저 멀리에서 한 줄기의 빛이 드리우더니 한 척의 비주가 날아왔다.

사람들은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곧바로 표정을 풀었다. 유년대사의 비주였다.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 유년대사가 말했다.

“녹신성에 갔더니 없어서 여기로 왔네.”

유년대사는 경금종이 무너졌다는 걸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고 타주야, 결국 경금종까지 없애버렸구만.”

고해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해봤는데, 다행히 성공했습니다.”

황보조가가 물어보았다.

“대사, 혼자 오셨습니까?”

“그렇소이다.”

유년대사가 대답하고는 고해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고해, 성왕의 성지네. 받게.”

그러나 고해는 고개를 저었다.

“감사합니다만 이 성지를 받지 않겠습니다.”

“뭐? 고해. 성왕이 자네를 새로운 일품당 당주로 책봉하려고 하네.”

“제가 일품당에 들어온 이유는 대건천조의 관직이 탐나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일품당 당주라니요? 저는 수락할 수 없습니다. 저는 대한황조도 있어서 대건천조의 관직은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완청이도 없으니 일품당에 있고 싶지 않습니다.”

유년대사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 타주, 고 타주가 완청이를 만난 건 고 타주의 복이었네. 완청이가 고 타주를 만난 것도 완청이의 복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성지는 얼른 받게.”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유년대사를 바라보았다.

“받게. 일품당이나 예전의 신기영은 대건천조의 공식적인 편제 부서가 아니라 ‘외사부’였을 뿐이야.”

“외사부요?”

“외사부는 조당의 제약을 받지 않아. 특성상 성왕을 도와 특수한 사무만 해결하면 되지. 그 외에는 간섭하지 않네. 자네처럼 나라를 세운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야. 신기영주 이신기도 외사부의 일원이었으나 독립적으로 종문을 만들지 않았나?”

“외사부가 대건천조의 제약을 받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그저 성왕이 시킨 일만 처리하면 되네. 일품당 당주가 되었다고 해서 자네의 대한황조에 영향을 미칠 일은 없을 거야. 오히려 일품당을 발판으로 삼아 대한황조를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지.”

고해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결국 머리를 저었다.

“저는 받을 수 없습니다. 좋은 점이 있다는 건 알겠으나, 저의 대한황조는 외부의 세력에 기대지 않을 겁니다. 한 나라의 주인이라면 반드시 자강자립(自强自立) 해야만 합니다.”

옆에 있던 황보조가는 화들짝 놀라며 고해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이런 유혹이라면 곧바로 넘어갔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고해는…….

유년대사가 씁쓸한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고 타주, 받으면 안 되겠나?”

“네.”

“이건 결국 용완청 모녀의 일이야. 자네가 안 받으면 결국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지. 자네도 용완청 모녀의 일품당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걸 원하지 않잖아.”

“…….”

“그리고 자네가 완청이의 여동생 용완옥을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일품당주 신분도 아니면 어떻게 보살피겠다는 말인가?”

고해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빠졌다.

고해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결국 머리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당분간만 제가 권한대행 역할을 하겠습니다.”

고해는 성지를 받아들었다.

유년대사가 보라색 영패를 꺼내며 말했다.

“완청이의 영패는 이미 훼손되어 성왕께서 새로 하나 주셨네. 이건 일품당 영패네, 기존의 후작과는 달라.”

고해는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순간 황금색 기류가 밀려오더니 순식간에 고해를 뒤덮었다.

고해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이건…… 기, 기수? 기운?”

경금종에서 얻은 기수의 절반에 가까운 양이었다.

고해의 주변에서 기수가 감돌더니 갑자기 보라색 영패 속으로 들어갔다.

유년대사가 말했다.

“원래는 용완청이 자네를 데리고 조도에 들어가 성왕의 옥새를 받으려고 했었네. 그래야만 이 기운을 받을 수 있어. 그러나 이번에는 성왕이 직접 성지를 전달하라고 했기 때문에 기 절차를 면할 수 있었지. 이건 일품당 당주의 기수야. 십 년에 한 번씩 받을 수 있어. 지금 한 번 받았으니 다음은 십 년 후에 받을 수 있지.”

고해는 영패를 내려다보았다.

정면에는 ‘일품’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고, 뒷면에는 ‘고해’라고 새겨져 있었다.

모양은 수타주의 영패와 비슷했으나 영패에 있는 공간은 수타주 영패의 공간보다 열 배나 더 컸다. 수많은 기운이 영패 공간에 흘러 들어갔으니 언제든지 꺼내서 사용할 수 있었다.

고해는 머리를 끄덕였다.

유년대사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 그리고 용완옥이 자네한테 차갑게 대할 수도 있네. 아마 자네가 완청이를 죽였다고 생각할 거야. 조심해야 하네.”

고해가 물어보았다.

“용완옥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성왕께서 용완옥을 나오지 못하게 했더니 계속 소란을 피우고 사람들을 힘들게 했지. 지금은 신무왕 진영에 있네. 그나마 안전하다고 할 수 있지. 난 이 성지를 줬으니 가서 용완옥을 보살펴야겠네.”

“대사님, 용완옥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아, 그리고 목신풍과 수요들은 어디에 있나?”

“목신풍은 제가 일을 좀 부탁했습니다. 이번에 오순을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전적으로 목신풍의 성과에 달렸습니다.”

옆에 있던 황보조가가 말했다.

“세 번째 단계가 오순을 죽이는 거였어?”

유년대사가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오순? 그는 개천궁의 절대 강자 아닌가?”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군사는 신속성이 첫째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간단히 말을 마친 고해는 황보조가의 부하 세 명과 함께 백운호 비주에 올라탔다. 그리고 상품 영석 사억 개와 경금종의 공법 서적을 싣고 빠르게 동북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대영황조의 영도.

영도 밖은 온통 큰 호수로 가득 차 있었고 호수의 입구는 수많은 패하, 교룡, 그리고 수룡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호숫가에는 커다란 상자를 실은 선학차가 있었다. 한 무리의 용들을 발견한 선학들은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고, 맨 앞에는 관복을 입는 남자가 서 있었다.

주변의 용들은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쿠궁!

호숫가에서 굉음이 들리더니 호수의 물이 용솟음치고 거대한 용의 머리가 나타났다.

료아였다. 예전에 고해와 용완청이 만났던 용, 정화 산골짜기에서 거룡들을 지휘하던 용, 그리고 고해가 은월성에서 죽인 흑룡의 삼촌이었다.

료아가 앞에 있는 관료를 보며 말했다.

“장 어르신, 여기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폐하께서 보내셨습니까?”

장 어르신이라 불린 관료가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닙니다.”

“네?”

“제가 아직 직급이 낮아 폐하 앞에서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번에 조회에서 우연히 료아 장군이 다른 사람과 은월해의 용의 시체에 대해 나누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요?”

“그래서… 제가 신경을 좀 써서 물건을 좀 준비해 왔습니다. 비록 폐하께는 볼품없는 물건일 수 있겠으나 장군에게는 분명히 쓸모가 있을 겁니다. 다만 다음에 폐하 앞에서 저의 미담을 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료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오?”

관료는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이곳에서 말하기 어려워하는 표정이었다.

슥.

료아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갑자기 외눈박이 중년 남성으로 나타났다.

외눈박이 료아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 관저로 가시지요.”

관료는 머리를 끄덕이고 료아를 따라갔다.

관료는은 관저의 정원에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용의 뼈로 만든 악기들이 있었다.

료아가 펄쩍 뛰었다.

“이 기운은 설마…… 도깨비 탈의 뼈?”

료아가 천천히 거문고를 들었다.

거문고를 천천히 쓰다듬던 그는 거문고의 끝자락에서 작은 글씨 한 줄을 발견했다.

[대한, 고해가 은월해에서 참살, 용음 거문고]

그 글씨를 본 료아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료아가 분노하여 외쳤다.

“고해! 고해!! 그때 죽여버렸어야 했어! 죽여야 했다고!!”

료아는 조카의 시체를 본 후 마음속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관료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료아 장군, 은월해에서 죽은 용들의 시체로 고해가 악기를 만들었습니다. 듣기로는 천여 개의 악기를 만들었는데, 인기가 상당하다고 합니다. 저는 그중 일부분만 샀습니다.”

료아가 흉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고해!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여버릴 것이야! 감히 내 조카를 죽여?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야!”

옆에 있던 관료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음, 이 말을 하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해가 료아 장군의 가족을 죽였으니 료아 장군도 고해의 가족을 죽일 수 있지 않습니까?”

료아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게 무슨…?”

료아는 거문고에 새겨진 글씨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표정이 점점 흉악해졌다.

“대한? 대한황조? 그렇군요, 고해의 아들이 대한황조에 있지요? 그래, 천도해의 구오도라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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