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불멸의 패왕-239화 (239/243)

239화. 용을 동쪽으로 유인하다

관료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폐하의 동의 없이는 그 어떤 병력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료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관료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면 황태손? 폐하께서 황태손을 그렇게 예뻐하니 황태손이라면…… 하지만 장군, 절대 황태손을 찾아가면 안 됩니다.”

료아가 한껏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여 공자? 여안을 말하는 거요?”

“장군, 왜 그러십니까?”

“알겠습니다. 하하하! 황태손이라면 가능하겠군요. 태자만 데리고 가면 폐하도 제 탓을 못 하겠지요. 하하하.”

관료가 다급히 말했다.

“장군, 안 됩니다. 만약 폐하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저, 저는 용의 뼈를 전해 주려고 왔을 뿐인데….”

“하하하. 장 어르신의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만약 기회가 있으면 폐하 앞에서 장 어르신의 미담을 말씀드리지요.”

“어이구, 감사합니다. 장군.”

관료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료아의 관저를 나왔다.

료아가 냉랭하게 말했다.

“별것도 아닌 놈이 뇌물을 들고 와? 흥.”

관료는 들뜬 기분을 안고 선학차에 올라탔다. 호숫가를 벗어난 관료는 갑자기 표정이 돌변하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남쪽을 바라보았다.

“폐하, 신록황조는 아직 괜찮지요? 대영황조에서 신하를 하는 것은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힘쓰겠습니다.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신록황조, 영원토록 편안하길 바랍니다.”

* * *

영도, 여양왕의 서재.

묵객과 한 무리의 모사들이 양쪽에 서서 중간에 있는 오순을 보고 있었다.

여양왕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고해가 설치한 대진에 경금종이 멸종됐다고? 음, 독고구패라…….”

오순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독고구패는 정말 강했습니다. 저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옆에 있던 묵객이 눈썹을 치켜세우더니 오순을 보며 말했다.

“오순 태자, 일의 경과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오순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일의 경과를 설명했다.

묵객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동안 침묵하더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오순 태자, 태자가 속았을 수도 있네.”

오순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요? 내가 속았다고요?”

“고해가 수작을 부린 거야.”

“설마…? 독고구패를 막을 사람이 없었습니다. 개천궁 검치호도 독고구패의 손에 죽었단 말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자네가 고해의 말에 겁을 먹는 건가? 아니면 독고구패의 실력에 겁을 먹은 건가?”

오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해가 아니라 독고구패가 직접 말했습니다.”

묵객이 쓴웃음을 지었다.

“고해가 독고구패를 조종하는 거 아닌가? 독고구패는 고해가 시키는 말만 하지. 독고구패가 그렇게 강력한 놈이면 단칼에 자네를 죽일 수도 있었어. 그런데 왜 한참이나 쓸모없는 얘기를 하면서 자네를 겁먹게 놔두었겠는가?”

오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묵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고해는 자네한테 겁을 주려고 했을 뿐이야. 자네는 고해의 꼼수에 당한 거고.”

“그 말은 제가 겁을 먹었단 말입니까? 묵 선생, 제가 겁을 먹을 사람입니까? 독고구패가 워낙 강력해서 제가 싸움을 원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겁을 먹지 않았다면 독고구패가 없는 녹신성에 가지 않고 왜 여기로 돌아왔는가? 황보조가가 없는 녹신성은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헐레벌떡 조도에 돌아온 건가? 녹신성만 무너뜨리면 신록황조는 무너졌을 텐데 말이야.”

오순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

그때 여양왕이 조용히 말했다.

“됐다. 오순, 묵 선생의 말씀이 맞다. 겁을 먹은 건 먹은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황급히 도망쳐 올 필요도 없지 않으냐?”

오순의 얼굴은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오순은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며 말했다.

“아마 당황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독고구패는 너무 강했습니다.”

묵객은 쓴웃음만 지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무리의 모사들도 가만히 있었다. 이들 앞에서 체면을 구긴 오순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오순이 말했다.

“폐하, 고해가 이미 우리에게 두 번이나 큰 손실을 입혔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계책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고해의 행방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제가 병사들을 거느리고 고해의 대한황조에 쳐들어가서 고해의 아들과 부하들을 잡아오겠습니다. 그러면 고해도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순간 묵객이 소리쳤다.

“안 되네!”

오순은 미간을 찌푸리며 묵객을 바라보았다.

“뭐요? 왜 안 된다는 거요?”

묵객은 고개를 저었다.

“오순 태자, 신무왕의 병력이 영주(永州)에 집중되어 있네. 변경 지역에서는 벌써 작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지. 지금 대영황조의 병력은 더없이 중요해. 태자도 개천궁의 절대 강자이니 여기에 남아서 전투 준비를 해야 하네. 일촉즉발의 위기가 닥칠 수도 있어.”

“그렇지만….”

여양왕이 명령을 내렸다.

“됐다. 묵 선생의 말대로 해라. 오순, 병력을 정돈하고 내 옆에 있거라.”

오순은 미간을 찌푸리며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순은 답답한 마음을 안고 서재를 갔다.

사흘 후.

얼마 전, 료아에게 거문고를 주러 갔던 관료가 오순의 관저로 찾아왔다.

오순은 미간을 찌푸린 채 그 관료를 보며 말했다.

“장오, 여기에는 무슨 일인가?”

관료인 장오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으나 대영황조에서는 비주류에 속해 있었다. 이런 사람이 야심한 밤에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을까?

장오가 말했다.

“오순 태자님, 밤늦게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니다만, 제가 황자와 황손의 생활 일지를 작성하고 있는데, 이틀 전 황태손께서 아무도 몰래 부하들을 데리고 성문을 나갔습니다. 이렇게 예민한 시기에 황태손이 성문을 나가면… 혹시라도….”

“황태손이 성문을 나갔는데 왜 내 관저에 찾아왔느냐?”

“황태손이 태자의 용족과 함께 나갔습니다. 용족 대장과 한 무리의 아룡들이 이번에….”

오순이 미간을 와락 구겼다.

“이런 젠장! 전쟁을 앞두고 폐하께서 금단경 이상인 장군들은 성문을 나가지 말라고 분부를 내리셨다. 그런데 어찌 내 허락도 없이 성문을 나갔다는 말이냐!”

장오는 쓴웃음을 짓더니 인사를 하고 오순의 관저를 나섰다.

오순은 용족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 홍룡(紅龍)이 말했다.

“태, 태자님. 료아 대장이 이틀 전에 거룡 열 마리, 교룡 백 마리 그리고 패하 열 마리를 데리고 성문을 나갔습니다.”

오순이 냉랭하게 말했다.

“내 말은 그들이 어디로 갔냐, 이 말이야!”

홍룡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아마 천도해, 구오도에 가서 고해의 아들을 잡아온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뭐야?! 이런 멍청한 놈들!”

* * *

영주 동쪽. 비주 위.

료아와 여안이 뱃머리에 서서 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안이 흥분한 채 말했다.

“료아, 네 말이 맞아. 하하하! 고해의 아들을 잡으면 고해도 나타나겠지. 흥! 고해. 이번에는 확실하게 복수를 하겠다! 하하하하!”

* * *

영도.

오순은 료아가 성문을 이탈했다는 소식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끔 막았다. 만약 여양왕이 알게 되면 태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고, 료아도 죽을죄를 면치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순은 혼자 관저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료아. 이 멍청한 놈! 돌아오면 보자!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그때 한 관료가 와서 보고했다.

“태자님. 폐하께서 서재에서 기다리십니다.”

오순은 울분을 식히고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는 묵객과 한 무리의 모사들이 있었고, 경금종에서 황급히 도망친 세 장로가 있었다.

오순이 말했다.

“경금종은 어떻게 됐나?”

세 장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서재에 침묵이 흘렀고, 사람들은 오순을 보고 있었다.

오순이 냉랭하게 말했다.

“어떻게 됐냐고 묻잖아!”

세 장로는 더듬거리며 그날의 일을 설명했다.

오순이 뒤로 나자빠질 뻔하며 말했다.

“뭐? 고해가 진짜로 나를 속였단 말인가? 설마… 독고구패가….”

무서워서 도망친 것만 해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고해한테 속았다니.

오순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여양왕이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됐다. 고해의 능력이 뛰어난 건 틀림없다. 나도 그를 너무 얕잡아봤어.”

오순이 이를 갈며 말했다.

“폐하! 지금 바로 병사들을 데리고 가서 대한황조의 뿌리를 뽑게 해주소서!”

묵객이 말렸다.

“오순, 고해에 대한 복수는 나중에 하게. 지금 우리의 가장 큰 적은 신무왕이네.”

오순이 단호하게 말했다.

“폐하!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빠른 속도로 다녀오겠습니다! 신무왕과 싸우면 굳이 제가 없어도 되지 않습니까? 폐하! 허락해 주소서!”

이뿐만 아니라 여안과 료아를 위해서라도 가야만 했다. 오순이 한 무리의 용을 데리고 가야만 이들의 죄를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여양왕은 미간을 찌푸리며 오순을 바라보았다.

오순이 다시 말했다.

“폐하. 고해가 혼자서 두 가지 일을 꾸몄습니다. 매번 신무왕의 위력보다 강력했지요. 이번에 가서 그의 아들놈과 부하들을 잡으면 고해의 기를 꺾을 수 있을 겁니다. 신무왕과 싸울 때 고해가 와서 행패라도 부린다면 더욱 힘들어지지 않겠습니까? 폐하, 허락해 주시옵소서!”

묵객도 눈썹을 치켜세우며 생각에 빠졌다.

여양왕은 묵객을 바라보았다. 묵객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았다.

여양완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대신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돌아와야 한다.”

오순은 명을 받들고 기세등등하게 대답했다.

“예!”

오순은 곧바로 군대를 모으고 한 무리의 용들과 함께 비주를 타고 구오도로 날아갔다.

묵객은 서재에서 고심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사흘 후, 장오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한 관료가 그 사실을 여양왕에게 보고한 것이다.

“폐하, 장오가 사라졌습니다. 지금 사방을 수색하고 있습니다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여양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오? 그는 있으나 마나 한 사람 아닌가?”

하지만 묵객은 표정이 굳어졌다.

“장오가 사라졌다고?”

뭔가 수상했다.

장오는 지위가 낮아서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봐라. 가서 장오의 최근 행적을 철저하게 알아봐라.”

얼마 지나지 않아 장오가 료아와 오순을 만난 사실이 밝혀졌다.

그 사실을 안 묵객이 펄쩍 뛰며 말했다.

“젠장! 폐하, 장오는 간자입니다. 오순 태자가 고해의 덫에 걸려들었습니다. 오순 태자가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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