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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화 (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화

수상한 면접

“임시현 씨. 20대 초반부터 일을 바로 시작하셨다고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서 바로 취업 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비록 대학은 가지 못했지만, 그만큼 많은 사회 경험으로 충실히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예상범위 내의 질문, 나는 침착하고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면접관은 20대 초반에 내가 했던 일들에 관해 관심을 보이더니 추가로 질문 몇 개를 더 던졌다.

나는 준비된 대답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갔고, 면접관은 썩 마음에 들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까지는 잘되고 있어.

수많은 면접 경험을 통해 얻은 감각으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여기서 방심하지 않고 최대한 편안한 미소를 지으려 노력했다.

제출한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대충 뒤적거리던 면접관 중 한 명이 흠칫 몸을 떨었다.

“어엇?! 임시현 씨? 혹시 ‘부적응 각성자’이십니까?”

아…….

여러 번 겪어본 불길한 패턴을 감지했지만, 일단 침착하게 준비한 대로 답변했다.

“네. 몇 년 전에 그렇게 판정을 받았습니다.”

“흐음.”

“거기에 관련해서는 병원에서 검사를 다 끝마쳤고, 지금까지 별다른 이상도 없었습니다. 주기적으로…….”

“…….”

면접관들은 내 말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서로 귓속말로 소곤거리더니 모두 살펴보던 이력서를 완전히 덮어버렸다.

불편한 듯 시선을 피하는 눈동자, 내려간 입꼬리, 심지어 팔짱을 끼고 의자 깊숙이 몸을 뒤로하기까지.

차게 식어버린 그들의 관심에 나 역시 순식간에 의욕을 잃어버렸다.

이번에도 글렀나?

그 뒤에 이어진 형식적인 질문과 형식적인 대답을 끝으로 나는 면접 장소를 빠져나왔다.

* * *

세상은 몇십 년 전에 큰 변화를 맞이했다.

정체 모를 균열에서는 괴물들이 쏟아져나왔고.

현대세계와 전혀 다른 이세계로 통하는 통로도 열렸다.

그리고 지구에 사는 인간들도 변하기 시작했다.

각성!

이 미증유의 현상은 마치 게임 속의 캐릭터가 된 것처럼 엄청난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인간 사회 역시 그들에게 발맞춰 빠르게 변해갔다.

-부우우우웅!

-최고의 길드! 아스토라(Astora) 길드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버스 광고판에 광고 문구.

게임 속에서나 있을 법한 길드 광고가 이제는 평범한 일상이 돼버렸다.

하지만 각성이라는 현상이 모두에게 축복이 된 건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버스 정류장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는 나처럼.

“하아. 이 빌어먹을 부적응 각성…….”

각성이 축복이라면, 부적응 각성은 저주나 다름없다.

정확히 ‘마나 부적응 각성’ 또는 ‘불완전 각성’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각성을 한 사람이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이런 경우 능력을 사용 못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상태창도 열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같이 발생하는 증상들이었다.

원인 모를 쇼크 증상으로 온몸이 마비된다거나, 신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거나…….

물론 이런 심각한 증상들은 소수의 인원에게만 나타나고. 대부분은 평범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부적응 각성자란 타이틀은 나의 취업 활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입사 원서는 대충 통과되는 작은 회사일지라도.

언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는 직원을 쓰고 싶지 않을 테니까.

오늘도 면접에서 허탕을 치자 머리가 아파졌다.

어머니 치료비로 은행에 남아 있는 빚, 거기다 앞으로 필요한 치료비까지.

들어갈 돈은 많은데 지원하는 회사마다 이런 식이다.

주간 아르바이트 말고 야간에도 일을 더 늘려야 하나?

버스를 기다리며 한탄하고 있을 때.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평소처럼 스팸 문자라도 왔나 싶어서 별생각 없이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응?”

-안녕하세요. 임시현 씨. 채용정보 사이트에 공개된 이력서를 보고 연락드립니다.

-농장에서 일해보신 경험이 있다고 하셨는데. 현재 관련된 업무를 맡아주실 분을 구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시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세요.

갑자기 채용정보 사이트를 통해 온 문자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 농장에서 소를 키우셨다.

농가의 자식이 늘 그렇듯. 나는 어려서부터 농장 일을 도왔고, 개인적으로도 동물을 좋아해 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아마 아버지의 농장이 망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쪽으로 진로를 정해 대학까지 갔을 거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의 농장은 망해버렸고. 그 일을 계기로 아버지는 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그 뒤로 농장에 관련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관련된 자격증도 없는데 뜬금없이 농장에 관련된 일자리?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의심이 떠올랐다. 가끔 공개된 이력서를 통해 취업 사기를 치려는 놈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현재 사정이 좋지 않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관심이 생겨났다.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연락만 해보자. 이상한 것 같으면 바로 거절하면 되니까.

문자에 남겨진 연락처를 입력하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채용정보 사이트를 통해서 문자 주셨죠? 아. 맞습니다. 네? 지금 당장이요?”

* * *

나는 약간 수상해 보이는 사무소 문 앞에 도착했다.

“인페리스(Inferis) 사무소?”

통화했던 남자가 보내준 주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주소는 틀리지 않았다.

망설이다가 사무소의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열려 있습니다. 들어오세요!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천천히 문을 열었다. 사무소 안에는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성이 나를 반겨줬다.

“임시현 씨 맞으시죠?”

“아. 네. 맞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 사무소를 맡은 ‘발레리안’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스스로를 ‘발레리안’이라 소개하고 예의가 바르게 명함을 건넸다.

외국인인 건가? 아니면 교포? 생소한 이름에 내심 당황스러웠다.

“아…… 예. 죄송합니다. 저는 명함이 없어서.”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죠.”

그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 차를 내온다며 옆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둘러본 사무실은 방금 본 남자와 같이 묘한 느낌을 줬다.

서류들이 놓여 있는 업무 책상, 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과 의자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걸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던가?

방안을 둘러보는 사이, 발레리안은 두 잔의 종이컵을 가지고 돌아왔다.

“대접할 게 커피뿐이네요.”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컵에서는 익숙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흔히 마시는 인스턴트커피였다.

“저는 이걸 꽤 좋아하거든요. 뜨거운 물만 있으면 이렇게 간단하게 차를 즐길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 네…….”

특이한 분위기의 남자였다.

칠흑같이 어두운 눈동자와 머리칼.

성공한 영업 사원 같은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에, 아이돌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외모까지 더해져 묘한 매력이 흘렀다.

물론 같은 남자가 봤을 때는 좀 재수 없…….

“갑작스러운 연락에도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시현 씨.”

“괜찮습니다. 저녁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 그러니까 발…… 레…… 리안 씨?”

“편하게 ‘리안’이라고 부르셔도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리안 씨.”

형식적인 통성명이 끝난 뒤, 발레리안은 본격적으로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취업 사이트에 공개하신 정보를 조금 살펴봤는데. 농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시다고요?”

“네. 어렸을 적에 아버지 농장에서 소 키우는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유려한 말솜씨 때문이었을까?

약간 몽롱한 기분이 들더니. 그의 질문에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술술 풀어놨다.

아버지 농장이 망한 이야기부터, 크게 병을 앓은 어머니, 최근에 연달아 취업에 실패한 것까지.

뭐지?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그의 질문에 빠짐없이 대답한 뒤였다.

“솔직히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음…….”

기분이 묘했다.

뒤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사무실에 오면서 생각했던 질문을 꺼냈다.

“리안 씨. 어떤 업무인지 먼저 설명을 들을 수 있을까요? 아직 어떤 일을 맡기시려는지 몰라서.”

“아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의욕이 앞섰네요. 흠.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시는 게 좋겠죠?”

발레리안은 자리에 벌떡 일어섰다.

나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보내고 옆방으로 향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나도 따라서 움직였다.

함께 들어간 옆방은 탕비실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는 문이 하나 더 보였다.

발레리안이 안쪽 문을 열자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운 공간이 나타났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

나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덥석!

“저기. 잠시만요!”

“하하. 괜찮습니다. 처음에만 조금 이상할 뿐입니다. 같이 들어가시죠.”

“어. 어어?!”

발레리안은 버둥거리는 나를 간단히 잡아끌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순식간에 검은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의식이 돌아왔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동굴 같은 곳에 와 있었다.

“여기는……?”

“입구는 저 앞입니다.”

“지금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먼저 나가서 이야기하죠.”

당황스러운 상황에 화가 났지만, 일단은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두운 동굴 내부를 따라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환한 빛이 새어 들어오는 출구가 나타났다.

밝아진 주변 때문에 잠시 눈을 찡그렸다.

눈부심이 사라지고 다시 눈을 뜨자, 놀라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아…….”

청명한 하늘과 따스한 햇볕.

구름에 닿을 듯 높은 산맥, 그 아래 펼쳐진 푸른 초원과 숲.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정말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에 자연스레 감탄이 흘러나왔다.

“시현 씨. ‘인페리스(Inferis)’ 차원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네? 뭐라고요?”

“인페리스! 지금 도착하신 차원의 이름입니다. 아! 시현 씨 입장에서는 마계(魔界)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마계(魔界)요?”

인터넷이나 뉴스에서나 가끔 들어본 마계(魔界)?

나는 얼굴에 불신을 가득 담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발레리안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한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처음에 이곳을 설명해 드리면 모두 다 비슷한 반응이네요. 하지만 거짓말이 아닙니다. 여긴 정말로 시현 씨가 살던 곳과 다른 곳입니다.”

“…….”

“직접 보시면 제 말을 믿으실 수 있을 겁니다. 조금만 더 가볼까요? 이곳에서 농장이 멀지 않거든요.”

“……일단 알겠습니다.”

속는 셈 치고 다시 발레리안을 뒤따랐다.

동굴 입구부터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초원을 살랑이던 바람이 풀 내음을 담아 스쳐 지나가고. 이름 모를 산새가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이따금 바닥에 피어 있는 형형색색 들꽃들을 구경하다 보니, 최근에 취업으로 고통받던 마음이 치유되는 듯했다.

이곳이 정말로 마계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일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풍경에 취해 걷는 사이.

금방 목장 건물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레리안은 성큼성큼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똑똑…… 똑똑똑…….

발레리안이 현관문을 두드리며 인기척을 냈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던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리를 비우시지는 않았을 텐데. 잠깐만 기다리세요. 뒷문이 열려 있나 확인하고 올게요.”

발레리안은 나를 남겨두고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혼자 남게 된 나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농장 건물과 멀지 않은 곳에 커다란 축사와 길게 이어진 울타리가 보였다.

천천히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울타리 너머 아주 먼 곳에 커다란 무언가가 보였다.

농장에서 키우는 동물인가?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는데. 그 커다란 몸집의 동물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어엇?!”

가까이 다가온 녀석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컸다.

위압감이 느껴지는 커다란 몸집. 머리에 자라난 커다란 두 개의 뿔. 온몸을 뒤덮은 두꺼운 털.

이 거대한 생명체는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처음에는 그 압도적인 크기에 두려움이 생겨났지만, 커다랗고 잔잔한 녀석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니 조금씩 마음이 안정됐다.

“안녕?”

-부우우우.

어색한 내 인사에 녀석은 짧게 울었다. 낮은음에 큰 울림이 마치 커다란 관악기 소리처럼 들렸다.

예전에 아버지 농장에서 기르던 소들이 생각나, 자연스럽게 친근한 감정이 생겼다.

나도 모르게 녀석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다가오는 움직임에 녀석은 약간 경계심을 내보였다.

나는 손을 멈추고 경계심이 사라질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

-…….

잠깐의 대치상황 끝에 녀석은 내 쪽으로 커다란 머리를 내밀었다.

나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아주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녀석의 목덜미 부분을 쓰다듬었다.

“그래. 착하다.”

-부우우우.

녀석은 내 손길이 마음에 드는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손바닥과 팔을 통해 따스한 기운이 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온몸에 가득 찬 기운으로 충만함이 느껴지더니.

[일시적으로 마나를 받아들입니다.]

[불완전했던 각성이 다시 진행됩니다.]

“어?”

처음 각성을 했을 때 들었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새로운 능력을 얻었습니다.]

[당신은 ‘마수(魔獸) 사육사’로 각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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