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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화 (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화

각성 그리고 첫 출근(2)

1시간이 넘는 지옥철 사투 끝에 나는 ‘인페리스 사무소’에 도착했다.

-똑. 똑. 똑.

-들어오세요. 시현 씨.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평범한 인간 모습의 발레리안이 책상에 앉아 나를 맞이했다.

“말씀드렸던 시간보다 훨씬 일찍 오셨네요.”

발레리안이 내게 말해줬던 출근 시간은 아침 9시.

내가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8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네. 지하철 시간도 확인해 볼 겸 오늘은 조금 먼저 나왔습니다.”

“첫 출근이니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죠.”

나를 칭찬하는 발레리안의 말에 내심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8시 정도의 출근이 부지런해 보일지 몰라도,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게으름뱅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아버지가 보셨으면 욕을 한 바가지 하셨을지도…….

오늘 일찍 출근한 것도 지하철 시간 때문만은 아니라, 이런 속마음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가방에 많이 챙겨오셨네요? 혹시 뭐가 들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갈아입을 옷이랑, 작업에 필요한 것들 몇 개 챙겼습니다. 주머니에는 일하면서 먹을 사탕이고. 아! 점심이 제공되는지 몰라서 도시락도 준비했습니다.”

“아아. 점심은 농장에서 제공해 줍니다. 준비해 주긴 하는데…… 어쩌면 도시락을 준비해 오신 게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네요.”

발레리안은 뭔가 찝찝한 여운을 남겼다.

그의 반응에 잠시 의문이 생겼지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자. 이거 받으세요.”

“저번에 그 통역 반지군요.”

“이게 없으면 대화를 할 수 없으니까요. 웬만하면 계속 가지고 다니게 해드리고 싶은데, 이게 좀 많이 귀한 물건이라서요. 번거롭지만 퇴근할 때는 반납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진짜로 첫 출근을 시작해 볼까요?”

발레리안은 특유의 매력 넘치는 미소를 보이며, 저번의 탕비실로 나를 이끌었다.

그리고 구석의 문을 열며 나를 배웅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들어가시죠. 농장으로 가시는 길은 알고 계시죠?”

“어? 리안 씨도 같이 가는 게 아니었나요?”

“가끔 농장 일을 돕기는 하지만 원래는 여기가 제 일터라서요.”

“아…….”

혼자 가야 한다는 말에 순간 인상이 어두워졌다.

농장에서 봤던, 한량 같은 남자와 인형 같은 메이드, 두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안하네.

발레리안과는 달리 그 두 사람은 붙임성이 전혀 없어 보이던데.

내 불안함을 눈치챘는지 발레리안이 말을 덧붙였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두 분이 약간 괴짜 같은 면이 있어서 그렇지 나쁜 분들은 아니니까요.”

“걱정까지는 아니고…….”

“하하. 그러면 다행이네요.”

속마음을 읽힌 탓에 민망해진 나는 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흠흠. 그럼 출발해 보겠습니다. 리안 씨도 수고하세요.”

“네. 나중에 퇴근할 때 뵙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마친 뒤.

나는 어두운 공간을 향해 나아갔다.

저번에 경험했던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순식간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익숙한 동굴에 도착해 있었다.

이번에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출구로 향했다.

동굴의 출구를 나서자마자 신선한 공기와 햇살이 나를 맞이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그것들을 한껏 만끽했다.

“하아아. 다시 왔구나.”

쌀쌀한 아침 공기는 비슷했지만.

도시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분 좋은 촉촉함과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대자연을 만끽하던 나는 뭔가를 생각해내고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꺼내든 핸드폰의 화면에는 ‘신호 없음’이 표시됐다.

쩝. 역시 통화는 안 되는구나.

집에 돌아가면 일하는 중에는 통화가 힘들다고, 어머니에게 따로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핸드폰을 다시 집어넣고 농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길게 펼쳐진 울타리를 따라 걸으며.

혹시 저번에 봤던 커다란 마수가 있을까 둘러보았지만, 아쉽게도 찾을 수 없었다.

농장 건물에 도착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번에 보았던, 메이드가 문을 열어줬다.

그녀는 차분한 태도로 나를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안에서 카네프 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곳으로 먼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꺼낼 새도 없이, 나를 이끌고 1층의 어디론가 향했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방 안에는 역시나 회색 머리 남자가 있었다.

그는 앉아 있는 의자를 최대한 뒤로 기울이고, 다리는 옆 탁자 위에 올린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카네프 님. 시현 님을 데려왔습니다.”

“…….”

“…….”

메이드의 말에도 남자는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 때쯤, 그의 두 눈꺼풀이 스르륵 움직였다.

“으으으윽. 하아암.”

그는 커다란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그에 맞춰 왼손의 체인이 작게 잘그락거렸다.

쭉 뻗은 양팔의 반동으로 의자는 넘어질 듯 흔들거렸는데, 신기하게도 남자는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았다.

마치 하나의 묘기 공연을 보는 듯했다.

반쯤 눈을 뜬 남자는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두 눈동자에는 저번과 마찬가지로 귀찮음이 가득했다.

“이봐. 인간.”

“예?”

“일단 발레리안의 의견에 따라 너를 데려오는 건 허락했지만, 내가 마음에 들어서 한 일은 아냐. 애초에 나는 이 농장에 대해서 발레리안과 생각이 전혀 다르거든.”

“…….”

“그렇다고 너를 방해하거나 막을 생각은 없어. 따로 시키고 싶은 일도 없고. 위험한 짓만 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이.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옆에 리아네에게 말하고.”

으음…….

이게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툭툭 내뱉는 모습은 조금 불쾌해도, 한편으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 딱히 불만을 표하기도 어려웠다.

“다른 질문 있어?”

원래는 농장 업무에 관한 질문을 준비해 왔는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특별한 건 없고. 저도 카네프 님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아니면 다른 호칭이 있으신지?”

“흠. 이런 경우 그쪽 세계에서는 뭐라고 부르지? 돈을 받고 고용된 자가 고용주에게 말이야.”

“으음…… 사장님?”

“그럼 앞으로 그렇게 불러.”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카네프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나와 메이드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시현 님. 앞으로 사용하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나는 다시 메이드의 뒤를 따랐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건물 2층 중앙에 있는 방.

꽤 널찍한 방 내부에는 책상과 책장, 옷장에 침대까지 마련돼 있었다.

최근까지 누군가의 손길이 닿았는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럼 편히 쉬시길.”

“자, 잠깐만요.”

나는 떠나려는 메이드를 급히 붙잡았다.

“더 필요하신 거라도?”

“그게 아니라. 저는 여기에 쉬러 온 게 아니거든요.”

“……?”

애초에 그녀는 나를 완전 손님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혹시 바쁘시지 않다면 농장 구경 좀 시켜주실래요? 중간에 궁금한 것도 알려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리아네 님? 맞죠?”

“그냥 ‘리아네’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일단 리아네 씨라고 부를게요. 바로 출발하죠.”

나는 가져온 짐을 대충 구석에 던져두고, 리아네와 함께 농장 구경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집 내부였다.

구조는 평범한 2층 주택 구조였고, 특이한 점은 몇몇 생활용품이 마법으로 사용된다는 점이 전부였다.

다음은 집 밖으로 나서 근처에 있는 커다란 축사로 향했다.

축사는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지, 완전히 지어진 새 건물 그대로였다.

“여기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나요?”

“원래는 야쿰 무리를 위해 만들어졌는데, 워낙 예민해 축사에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군요.”

쓸쓸한 축사를 뒤로하고.

우리는 이층집 건물의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 두 채와 마구간이 있었다.

우리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두 마리의 말이 마구간에서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푸르르릉.

-푸릉.

“와…….”

검붉은 색과 갈색 털을 가진 두 녀석은 지구의 말과 비슷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머리에는 마족과 같이 두 개의 뿔이 자라나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녀석들을 살피는데, 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마수와 교감을 시도합니다.]

[대상은 당신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대상은 배고픔을 느낍니다.]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놀라는 것도 잠시.

나는 금세 이 현상이 내 각성 능력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각성 능력이 마수 사육사 그리고 교감이었지?

흐음. 이걸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머릿속에 울린 목소리를 곱씹던 나는 리아네에게 슬쩍 질문했다.

“리아네 씨. 혹시 얘네들 밥 줘야 할 시간인가요?”

내 질문에 그녀는 깜짝 놀라며 작게 탄성을 터뜨렸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안내해 드리다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놀람과 감탄이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그런 것 같아서…… 어렸을 적부터 농장에서 자라서 동물들이랑 잘 통하는 면이 있거든요.”

대충 둘러대는 말에 리아네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차분한 첫인상과는 다른,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반응은 약간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새롭게 생긴 능력의 사용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것 같아 내심 뿌듯해했다.

“죄송합니다. 시현 님. 잠시 기다려주시면 금방 끝내겠습니다.”

그녀는 닫혀 있는 마구간을 열고 두 마리의 말들을 밖으로 이끌었다.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네?”

“어차피 한동안은 여기서 일할 텐데. 하나하나 배워놓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혹시 안될까요?”

“음……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나는 그녀의 부탁을 받아 함께 마구간 일을 시작했다.

먼저 리아네가 두 말을 이끌고 싱싱한 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그사이에 비어 있는 마구간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미리 전해 들은 대로 옆 창고에서 수레와 청소도구를 가져온 뒤, 마구간 바닥의 더러운 곳을 치워냈다.

꽤 규모가 컸던 아버지의 농장을 생각해 보면, 이 작은 마구간 청소는 나에게 정말 손쉬운 일이었다.

리아네가 풀 근처에 말을 묶어놓고 돌아왔을 때는 청소가 깔끔하게 끝난 뒤였다.

“벌써 다 끝내셨어요? 아직 알려드린 것도 없는데.”

“하하. 농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이 정도는 눈치껏 해야죠. 제대로 했는지 확인만 해주세요.”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오히려 저보다 더 잘하시는 것 같네요.”

이번에도 차분한 그녀의 얼굴에 감탄이라는 감정이 엿보였다. 살짝 인정받은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청소를 끝낸 마구간에 말들에게 줄 먹이와 깨끗한 물을 채워 넣은 뒤, 다시 두 마리의 말을 마구간으로 데려왔다.

-히히힝. 푸르릉.

깨끗해진 마구간이 마음에 드는지.

말들은 기분 좋게 울음소리를 내며 자연스럽게 식사를 시작했다. 덩달아 나도 흐뭇하게 말들의 식사를 지켜봤다.

“리아네 씨. 혹시 제가 직접 먹이를 줘봐도 되나요?”

“으음. 움직임을 크게 하거나, 갑자기 소리만 지르지 마세요. 생각보다 겁이 많은 녀석들이거든요”

나는 리아네의 허락을 받고 먹이통에서 당근과 비슷하게 생긴 채소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손 위에 올려두고 조심스럽게 검붉은 말 쪽으로 내밀었다.

녀석은 먹이를 확인하고 내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생각보다 더 커다란 뿔도 함께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움찔 물러날 뻔했다.

-킁. 킁킁.

한참을 킁킁거리던 녀석은 내 손의 먹이를 덥석 베어 물었다.

먹이를 먹는 사이, 반대 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경계심이 풀렸는지 녀석은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고, 그 뒤로는 아주 편안하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잘 먹는다. 더 줄까?”

-푸르르릉.

-푸르릉.

먹이를 다 먹어갈 때쯤에는, 검붉은 말뿐만 아니라 갈색 말도 내 손길을 전혀 피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수와 친밀도가 상승했습니다.]

[대상은 당신에게 ‘관심’을 드러냅니다.]

[대상은 포만감에 만족스러워합니다.]

각성할 때 느꼈던 따스한 기운이 팔을 타고서 느껴졌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충만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내 능력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교감 능력으로 마수와 소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친밀도를 올린다.

지금은 낮은 단계의 ‘관심’ 정도지만. 좀 더 높아진다면 다른 효과가 나타날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사라지는 따스한 기운의 여운을 즐기는 사이. 완전히 흥분한 리아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떻게 하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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