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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6)화 (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6화

각성 그리고 첫 출근(5)

우리의 주변은 당장에라도 터져나갈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고,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만!”

짧고 우렁찬 외침과 함께, 제삼자의 등장으로 주변의 긴장감은 잠시 누그러들었다.

외침의 주인은 우람한 체격에 새까만 털로 뒤덮인 고양이 수인이었다.

그는 대치하고 있는 리아네와 수인들 사이로 천천히 끼어들었다.

“레빌 아저씨!”

“레빌 아저씨!”

돼지와 사슴, 두 명의 수인은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리아네는 새로운 수인의 등장에 포악한 기세를 더 내뿜기 시작했다.

“아저씨 잘 왔어. 저기 마족 놈들이 마을에서 행패를…….”

-콱! 콱!

“으악!”

“켁!”

고양이 수인은 가차 없이 두 녀석의 머리에 꿀밤을 날렸다. 얼마나 소리가 살벌했는지, 보고 있는 내가 움츠러들 정도였다.

“내가 분명히 위험한 물건을 함부로 꺼내지 말라고 했지? 이건 네놈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라고.”

“하지만 저 마족 놈들이…… 컥!”

돼지 녀석은 괜히 말대꾸하다가 한 번 더 꿀밤을 맞았다.

“마족이든 마왕이든 상관없어. 한 번만 더 내 말 어기면, 다음에는 정말 후회하게 해줄 거다. 알아들었어?”

“네…….”

“네…….”

“그럼 당장 집에 돌아가.”

돼지와 사슴 수인은 축 처져 마을 뒤편으로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우리와 레빌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수인뿐이었다.

잠시 우리를 살피던 그는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말투로 대화를 시도했다.

“일단 그 흉흉한 것 좀 집어넣지? 보아하니 휘두를 생각은 없는 것 같은데.”

“…….”

“손님 대접해 줄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싸울 생각은 없다. 필요한 게 있으면 적당히 대화로 해결하자고.”

이전의 수인들과는 전혀 다른 태도에 리아네는 기세를 거둬들였다.

변했던 오른손도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리고 그녀는 한걸음 물러나 내 뒤편에 섰다. 대화는 내게 맡기려는 듯 보였다.

고양이 수인도 그 의도를 이해하고 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래서 형씨. 뭐 때문에 이곳에 방문한 거지?”

“아. 네. 이렇게 생긴 식물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보신 적이 있거나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나는 메모장을 들어 고양이 수인에게 보여줬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찬찬히 메모장의 그림을 살폈다.

“흐음. 확실히 근처에서 본 적이 있는 식물이군.”

“정말입니까?”

“근데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네.”

잠시 고민을 하던 그는 끝내 기억을 되살리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기억나질 않아.”

“이런…… 아쉽네요.”

“대신 알 만한 사람을 소개해 주지. 저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약재가 걸려 있는 가게가 보일 거야. 거기 있는 영감한테 물어보면 아마 대답해 줄 거다.”

친절한 그의 설명에 나는 기뻐하며 감사를 표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필요 없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면, 최대한 빨리 이 마을을 떠나. 그래야 더는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을 테니까.”

레빌이라는 고양이 수인은 그 차가운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의 싸늘한 태도가 조금은 껄끄러웠지만,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와 리아네는 설명대로 가게를 찾아 움직였다.

“리아네 씨. 이곳에 있는 수인들과 무슨 일이 있었나요? 마족을 아주 싫어하는 것 같은데.”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마족과 수인은 사이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수인은 ‘뿔 없는 마족’, ‘반마족’이라 불리며 마족에게 차별받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아…….”

“저도 엄밀히 말하자면 마족이 아니지만, 마을에 올 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시현 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드렸네요.”

“아뇨. 저는 오히려 도움을 받았는데요. 그리고 아까 저를 지켜주실 때 엄청 믿음직스러웠어요.”

“……감사합니다.”

리아네는 내 칭찬이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

길을 따라 걷던 우리는 고양이 수인이 말했던 가게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갖가지 약재 냄새를 맡으며 가게 안쪽으로 발을 옮겼다.

“실례하겠습니다.”

“누구야?”

그곳에는 할아버지 느낌의 너구리 수인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이쿠! 고귀한 마족님께서 누추한 가게에도 직접 찾아오고.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군.”

너구리 수인의 비꼬는 듯한 말투.

하지만 아쉬운 쪽이 굽히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레빌이라는 분의 소개로 찾아왔습니다. 식물을 찾고 있는데, 이곳에 잘 아시는 분이 계신다고 해서요.”

“찾아오기는 제대로 찾아왔군. 그래. 뭘 찾고 있는데?”

나는 메모장의 그림을 보여줬다.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이, 너구리 수인은 단번에 그림 속 식물을 알아봤다.

“뭔지 알겠네. 어디서 자라는지도 알고.”

“이 식물을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하지?”

“예?”

너구리 수인은 당황하는 모습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클클. 그러니까 내가 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런 일을 해야 하느냐 이 말이다.”

“돈이 필요한 거라면…….”

“필요 없어. 마족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면 더더욱.”

돈을 내겠다는 리아네의 말에도 너구리 수인은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말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입을 열게 할 수 없는 노릇.

난감한 상황에 골머리를 썩이는 와중, 너구리 수인이 내 쪽으로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너는 도대체 정체가 뭐냐?”

“저…… 요?”

“그래. 뿔이 없는 걸 보니 마족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우리 쪽인 것 같지도 않은데.”

“예. 저는 인간입니다.”

“인간? 이야기로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실물로 보게 된 건 처음이군.”

너구리 수인은 나를 이리저리 훑어봤다.

그러다 내 주머니 쪽에 얼굴을 대고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킁. 킁. 이건 무슨 달콤한 냄새지? 인간이란 원래 이렇게 달콤한 냄새가 나는 건가?”

“아! 이건 제 냄새가 아니라…….”

나는 주머니 속에서 아기 토끼에게 주려고 했던 사탕을 꺼내 들었다.

달콤한 사탕 향기에 너구리 수인의 시선이 내 손바닥 위에 쏠렸다.

“호오? 이건 도대체.”

그리고 그는 홀린 듯이 사탕을 집으려 손을 뻗었다.

-휙!

-휙!

“…….”

“…….”

사탕을 집으려는 너구리 수인의 손길을 반사적으로 피했다.

그가 사탕을 집으려 손을 뻗을 때마다, 나는 얄밉게 그 손길을 전부 떨쳐냈다.

너구리 수인은 약이 올랐는지 기다란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늙은 사람을 두고 장난치는 거야?”

“하하. 장난이라뇨. 저도 똑같이 했을 뿐인데.”

“뭐야?”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이걸 넘겨드릴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렇죠?”

“끄응…….”

나는 아까 너구리 수인이 했던 말을 똑같이 되돌려줬다. 그는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결국 졌다는 표정으로 두 손을 들었다.

“좋아. 아까 그 식물에 대해서 알려줄 테니, 그 달콤한 물건을 나한테 넘겨라.”

“먼저 말씀해 주시죠.”

“보랏빛 물망초, 또는 호수 물망초라 불리는 식물이다. 주로 습기가 많은 곳. 호수나 습지대에서 자라지.”

“어디서 구할 수 있죠?”

“여기서는 쪽빛거울 호수가 제일 가깝지. 그곳에 가면 아마 지천으로 널려 있을 거다. 이제 됐지?”

너구리 수인은 말을 끝마치고 당당하게 손을 내밀었다.

나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탕을 건넸다.

그는 사탕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냄새를 맡았다.

혀를 살짝 내밀어 맛을 보더니 몸 전체를 부르르 떨었다.

“오오. 이렇게 강한 단맛이라니?!”

추잡스럽게 보일 정도로 사탕을 할짝거리더니, 마지막에는 입안에 넣고 그 맛을 가득 음미했다. 살랑 흔들리는 통통한 너구리 꼬리에서 행복한 감정이 느껴졌다.

“리아네 씨. 쪽빛거울 호수가 어딨는지 아세요?”

“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르는 곳이네요.”

“저기요. 너구리 할아버지. 쪽빛거울 호수가 어딘지 알려주시면 안 돼요?”

“응? 그건 너희들이 알아서 해야지. 거래에 호수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으니까.”

너구리 수인은 관심 없다는 듯 대답을 회피했다. 하지만 능글맞은 표정과 눈빛은 내 주머니로 향해 있었다.

아오! 저 너구리 같은…….

나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하나 더 꺼내 들었다.

“하나로는 부족해. 두 개 줘.”

“…….”

“대신 호수까지 직접 데려다줄게. 그 정도면 만족하지?”

“좋아요. 그럼 하나는 미리 드리고, 나머지 하나는 호수에 도착해서 드릴게요? 괜찮죠?”

“흐흐. 계약 성립이다.”

나는 너구리 수인에게 먼저 사탕 하나를 건넸다.

사탕을 확인한 그는 가게 뒤편으로 소리를 질렀다.

“미루! 거기 있지? 잠시 나와봐.”

“네! 부르셨어요?”

가게 뒤편에서 8, 9살쯤 돼 보이는 고양이 여자아이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미루. 이 손님들을 데리고 쪽빛거울 호수에 다녀와라.”

“손님이요? 흐엑?”

여자아이는 리아네의 존재를 확인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 할아버지. 저 사람은 마족인데요?”

“거래했으면 마족일지라도 손님인 법이지. 금방 다녀와라. 그리고 올 때 이 달콤한 물건 받아와야 한다. 알았지?”

“으으. 알았어요. 두 분 따라오세요.”

뭔가 불안한 소녀의 모습에 나와 리아네는 서로 시선을 맞췄다. 하지만 딱히 대안이 없었기에 우리는 고양이 소녀를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 * *

고양이 소녀는 마을을 벗어나 숲으로 우릴 안내했다.

지나다닌 흔적이 없는 숲길이지만, 소녀는 곧잘 방향을 잡아 걸음을 옮겼다.

문제는 길을 찾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

-힐끔. 힐끔.

소녀는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계속해서 우리가 있는 쪽을 살폈다.

마치 우리에게 쫓기는 것 같은 모습에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앞으로 가는 길에 집중 안 하면 넘어질 텐데…….

-턱. 철푸덕!

“아얏!”

말이 씨가 됐는지.

소녀는 높게 자라난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와 리아네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괜찮니?”

고양이 소녀는 다가온 우리를 보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아앙!”

“왜. 왜 그래? 많이 다쳤어?”

“잘못했어요. 잡아먹지 마세요오오.”

“……??”

“저는 많이 안 먹어서 맛없어요. 흐아앙!”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에 나는 물론, 리아네도 어쩔 줄 몰라 했다.

일단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대화를 시도했다.

“이름이 미루라고 했지?”

“흑. 흐윽.”

“안 잡아먹어. 안 잡아먹을 테니까 진정해.”

“흐으윽. 흑. 훌쩍.”

소리는 약간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울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달래줄 방법을 생각하다가, 주머니의 마지막 남은 사탕을 꺼내 소녀의 입에 쏙 넣어줬다.

-뚝!

달콤한 사탕 맛이 느껴지자 고양이 소녀는 거짓말처럼 울음을 뚝 그쳤다.

함께 지켜보던 리아네도 신기한 것을 본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완전 만능 사탕이네, 만능 사탕이야.

-오물오물.

물기 가득한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야무지게 양쪽 볼을 움직이는 모습은 너무나도 귀여웠다.

아직 바닥에 쓰러진 소녀를 향해 조심히 양팔을 뻗었다.

만능 사탕 덕분인지 소녀는 아무런 저항 없이 품에 안겨들었다.

“이제 괜찮아?”

-끄덕끄덕.

“호수가 어느 방향인지 알려줄래?”

“저기…….”

우리는 고양이 소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마음을 진정시킨 고양이 소녀는 완전히 경계심을 내려놨는지, 재잘재잘 말을 쏟아냈다.

“너구리 할아버지 정말 너무하죠? 이렇게 연약한 소녀를 모르는 사람이랑 덜렁 보내버리다니.”

“그러게. 그건 좀 너무하긴 하네.”

“처음에 제가 얼마나 무서웠는데요. 거기다 마족을 따라가라니. 아저씨랑 언니가 착한 분이 아니었으면 잡아먹혔을지도 몰라요.”

“잡아먹혀?”

“네. 마을 어른들이 그러는데요. 나쁜 마족들은 어린아이를 산 채로 잡아먹는데요.”

충격적인 증언에 놀란 감정을 담아 리아네를 바라봤다.

그녀는 정말 억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얼마나 세게 흔드는지 목이 아파 보일 정도였다.

아무래도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마을 어른들의 거짓말인 것 같았다.

“미루라고 불러도 되지? 미루야. 아까 넘어졌을 때 다친 곳은 괜찮아?”

“무릎이 살짝 까진 것 같은데. 괜찮아요”

“그럼 이제 내려줄까?”

“아저씨. 조금만 더 안아주시면 안 돼요? 네?”

살짝 떨리는 목소리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애절한 부탁.

“물론 괜찮지. 나중에 내리고 싶으면 말해. 얼마든지 안아줄 테니까.”

“에헤헤. 고마워요. 아저씨.”

고양이 특유에 갸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애교를 부리자, 절로 내 입꼬리가 위쪽으로 솟구쳤다.

리아네는 미루를 안고 있는 나를 부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고양이 소녀는 아직 마족이 무서운지, 그녀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내 품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미루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지 어느덧 30분이 지나자, 약간에 습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눈앞에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커다란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쪽빛거울 호수에요.”

호수는 이름처럼 거울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투명하고 잔잔했다. 잠시 호수의 풍경을 구경하다가 시선을 돌려 보랏빛 물망초를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야쿰과 교감하던 도중에 보았던 장면, 그 안에 빛나던 식물과 똑같은 것을 호숫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보랏빛 물망초를 캐기 위해, 미루를 잠시 내려줬다.

“아저씨. 혹시 이거 안 필요하세요?”

“그 자루는 어디서 났어?”

“저는 너구리 할아버지 일 때문에 항상 챙겨 다니거든요. 이거 빌려드릴게요.”

미루에게 자루를 건네받으며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고맙다. 마침 필요했어.”

“헤헤.”

나는 건네받은 자루를 가지고 보랏빛 물망초를 찾기 시작했다. 너구리 할아버지의 말대로 물망초는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덕분에 금방 자루를 채울 만큼 물망초를 찾아냈다.

채집을 끝내고 리아네와 미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저씨! 이거 보세요. 마족 언니가 치료해 줬어요.”

미루의 무릎에는 깨끗한 손수건이 감싸져 있었다.

내가 보랏빛 물망초를 찾는 사이, 리아네가 무릎의 상처를 치료해 준 모양이었다.

나는 신이 난 미루를 자연스럽게 안아 들었다.

“이제 안 아프겠네.”

“네. 고마워요. 마족 언니!”

미루의 감사 인사에 리아네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보랏빛 물망초를 찾아 돌아오는 길에도 귀여운 고양이 소녀는 끊임없이 재잘댔다.

그사이, 리아네와도 조금 친해졌는지 짧게나마 대화하기도 했다.

덕분에 숲길을 걷는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어느덧 숲을 빠져나와 마을 입구가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마음 같아서는 미루를 마을 안까지 데려다주고 싶지만, 괜히 일이 커질까 무서워 멈춰서야 했다.

이런 속사정을 아는지.

미루는 아쉬워하면서도 떼를 쓰지는 않았다.

“아저씨, 마족 언니. 저 가볼게요.”

“그래. 미루야. 오늘 안내해 줘서 고마워.”

마을로 가기 전에 미루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정말요?”

“다음에는 더 맛있는 거 가지고 올게.”

“약속이에요. 아저씨!”

약속을 받아내고 미루는 밝게 웃으며 마을 입구로 뛰어갔다.

귀여운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나와 리아네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지켜봤다.

“아! 시현 님. 너구리 수인에게 줄 사탕을 전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제 사탕 남은 게 없어요. 그리고 약속은 이미 지켰으니까 괜찮아요.”

“네?”

“하나는 미리 주고, 나머지는 호수에 도착해서 준다고 했지. 누구한테 준다고 말한 적은 없으니까요.”

리아네는 아까 미루에게 줬던 사탕을 기억해내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당했다는 표정의 너구리 수인을 상상하며 함께 소리 내 웃었다.

* * *

다시 목장으로 돌아왔을 때는 벌써 산꼭대기에 붉은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야쿰 무리를 보았던 울타리로 향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아직 떠나지 않은 야쿰 무리를 찾을 수 있었다.

“여기. 여기야! 이거 찾아왔어!”

야쿰 무리를 향해 물망초가 담겨 있는 자루를 흔들며 소리쳤다.

다행히 목소리가 닿았는지, 무리 사이에서 야쿰 한 마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바로 나와 교감을 나눴던 그 야쿰이었다.

나는 자루에서 물망초를 꺼내 야쿰을 향해 내밀었다.

“이거 맞지? 네가 나한테 보여줬던 그 식물.”

-부우우우우!

야쿰은 보랏빛 물망초를 발견하고는 기쁨의 울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조금씩 물망초를 먹기 시작했다. 나는 자루에 물망초를 조금씩 꺼내 야쿰에게 건네주었다.

잠시 후.

자루의 물망초를 다 먹은 야쿰에게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나는 빛에 이끌리듯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야쿰에게 향했다.

-부우우우웅!

이번에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아주 강렬한 기운이 팔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뻐근함을 느낄 정도로 쏟아지는 기운에 정신이 점점 아득해졌다.

[마수와 친밀도가 상승했습니다.]

[대상은 당신에게 ‘친밀’한 감정을 가집니다.]

[대상은 물망초를 가져다준 당신에게 고마워합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이전과 비슷한 목소리.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대지 영혼의 파편’을 얻습니다.]

[일부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임시현 : 마수(魔獸) 사육사》

【체력 : 8】【마력 : 2】

【근력 : 7】【민첩 : 7】

【지식 : 5】【저항 : 2】

《교감(交感)》[고유]

-대상이 되는 마수와 감정을 소통할 수 있다.

-친밀도에 따라 능력이 다르게 적용된다.

-적대적인 대상에게는 사용할 수 없다.

《대지 영혼의 파편》[측정불가]

-세상을 구성하는 대지의 힘.

-완전해질수록 더욱 강한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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