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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화 (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화

평온한 일상, 다가오는 위기(3)

“폭주…….”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직 야쿰이 흥분하거나, 공격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와 친밀도가 오르는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야쿰 무리의 우두머리는 달랐다.

녀석은 언제나 나를 경계했으며 지금도 접근을 불편해하고 있다.

까칠한 성격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속사정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안드라스 씨.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이 책을 써낸 저자는 몇 년에 걸쳐 야쿰 무리를 관찰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야쿰의 습성과 특이점을 책을 기록했습니다.”

안드라스는 책의 마지막 부분을 펼쳐 보이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자신의 연구에서 아쉬웠던 점을 책 마지막 부분에 남겼는데. 그중에 하나가 야쿰의 출산 장면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시기만 되면 우두머리가 너무 예민해져서, 멀리서 지켜보는 것조차 위험했다고 합니다.”

“그럼 저 큰뿔이도 폭주한다는 말씀인가요?”

“저도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만. 책의 내용대로라면 지금의 상황은 꽤 위험한 것 같습니다.”

안드라스의 말투에서 상황의 심각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농장 주변에 펼쳐져 있다는 결계로는 힘든가요?”

“제가 결계를 만드는데 많은 공을 쏟아붓긴 했지만, 완전히 폭주하는 야쿰을 막아낼 수는 없을 겁니다. 약간의 시간을 버는 정도. 그 이상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그는 냉정하게 지금의 상황을 판단하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폭주를 막을 방법이 없을까요?”

“한 번 폭주가 일어나면 그것을 억지로 제어하기는 어렵습니다. 혹시 이전에 야쿰이 폭주했던 일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아. 들어본 적 있어요. 리아네 씨가 말해준 적이 있어요. 폭주한 야쿰 무리가 도시를 반파시켰다고.”

“그 사건이 있었던 도시에 저와 카프네 님도 있었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폭주하는 모습을 직접 보신 거군요?”

“네. 맞습니다. 꽤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두렵고, 가슴이 떨립니다.”

이야기 도중에 나는 뭔가를 생각해내고 급히 질문했다.

“잠깐만요. 그때 폭주하는 야쿰 무리를 돌려보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진정시킨 거죠?”

“저도 정확히는 잘 모릅니다. 저는 뒤에서 부상자를 수습하고 있어서. 아마 카프네 님이 정확히 아실 겁니다. 그날 가장 큰 공로를 세우신 분이니까요.”

“그러면 일단 돌아가죠. 사장님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구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야쿰의 울음소리를 뒤로하며, 다급히 농장 건물로 되돌아갔다.

* * *

농장 건물로 도착하자마자 카네프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부족한 부분은 안드라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설명을 듣고서도 카네프의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평소처럼 나른한 표정으로 하품을 할 뿐이었다.

“하아암.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네?”

“나는 야쿰을 편하게 해주는 방법 같은 건 몰라. 여기가 마음에 안 들어서 폭주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어버버 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첫 출근 때도 말했던 것 같은데. 농장 일에 대해서는 별로 관여할 생각이 없다고.”

“설명 들으셨잖아요.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요. 야쿰 무리가 폭주하면 농장은 끝이라고요.”

“나도 알아. 만약에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내가 나서야겠지.”

담담한 어조로 자신이 나설 거라는 카네프.

나는 약간의 기대를 하고 물었다.

“혹시 폭주를 진정시킬 방법을 알고 계신 건가요?”

“알고 있지. 한 번 해보기도 했고.”

하지만 이어진 카네프의 말에 나의 표정은 물론 방 안의 분위기까지 싸늘하게 변했다.

“야쿰의 우두머리를 죽이는 것.”

“……?!”

“전쟁에서도 그렇잖아? 대장을 죽이면 따르던 병사들도 자연스레 전의를 상실하게 마련이지.”

“그러면 그때도?”

“맞아. 가장 강했던 우두머리를 내가 처치했어. 그랬더니 나머지는 난동을 부리지 않고 물러가더군.”

예상할 수 있는 답변 중 가장 최악의 답변이 돌아왔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옆에 있던 안드라스를 바라봤다. 그는 어느 정도 예상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방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기에, 쥐어짜 내듯 그의 말을 반박했다.

“그 뒤에는 어떻게 하실건데요? 야쿰의 젖을 짜려는 목표는요?”

“어쩔 수 없지. ‘젖’을 구할 수 없다면 ‘피’라도 구해야 하니까. 그리고 한 마리가 새끼를 가졌다고 하지 않았나? 그 녀석을 죽이면 조금이나마 ‘젖’을 구할 수 있을지도…….”

“그건 절대 안 돼요!!!”

무감각하게 흘러나오는 끔찍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안드라스는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휘적거렸고, 카네프는 흥분한 나를 담담하게 바라봤다.

방안에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을 때쯤, 카네프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발레리안은 평화적으로 야쿰의 젖을 짜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았어.”

“…….”

“의견은 달랐어도 최종적인 목표는 같았으니, 서로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 농장의 결계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발레리안의 방식대로. 결계가 무너진다면 내 방식대로.”

적극적으로 나를 데려오려던 발레리안. 그리고 농장 일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카네프.

두 사람의 전혀 달랐던 반응이 교차하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시현. 네가 농장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건 알고 있어. 발레리안이 데려온 인간 중에는 그나마 쓸 만한 녀석이라고 생각해.”

“…….”

“처음부터 돈 때문에 하게 된 일이잖아? 지옥 같던 식사시간에서 구해준 은혜도 있으니, 목표 달성과는 상관없이 최대한 챙겨주라고 발레리안에게 말해 놓을게.”

카네프는 이미 농장이 망한 것처럼 말했다.

“하아암. 오래 말했더니 피곤하네. 이제 나가봐. 더 할 이야기는 없으니.”

“사장님. 아직…….”

말을 꺼내려던 내 앞에 안드라스가 나섰다.

“알겠습니다. 카네프 님.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안드라스는 내 쪽을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더 대화를 이어가 봤자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카네프와의 대화를 멈추고, 안드라스와 함께 방을 빠져나왔다.

“죄송합니다. 시현 님. 하지만 지금은 카네프 님에게 무슨 소리를 해도 소용없었을 겁니다.”

“하아. 답답하네요.”

“그것보다 아까 전에 소리치셨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카네프 님에게 누군가 그렇게 소리치는 건 정말 오랜만에 봐서.”

“그때는 욱하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시현 님과 있으면 평생 보기 힘든 장면을 여러 번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하하.”

칭찬인지 악담인지 모를 말에 나는 애매하게 웃어 보였다.

“그보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이대로라면 야쿰은 폭주하고, 카네프 님은 자신의 방식으로 막아낼 텐데요.”

“글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안드라스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사장님의 말대로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인데. 굳이 위험하게 나설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과 함께 짧았던 농장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다.

요리는 못해도 나를 잘 챙겨줬던 리아네, 게으르고 제멋대로이지만 가끔은 재밌는 장난으로 웃게 만드는 카네프 사장님.

신기했던 수인 마을을 방문했던 일이나, 오늘 안드라스를 만났던 일까지.

마지막으로.

가장 잊을 수 없는, 야쿰과의 첫 만남이 생각났다.

야쿰과 만남으로써 각성을 하게 됐고, 나는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됐다.

처음 교감을 하고, 작은 생명의 파동을 느꼈을 때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히 가슴속에 남아 있다.

안드라스가 나에게 말했던 것처럼. 나도 여기에 와서 평생 겪어보기 힘든 일들을 경험했다.

아마 앞으로도 이런 신비한 경험, 해보기 힘들겠지.

예전에 스치듯 지나갔던 생각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이곳으로 오게 되고, 각성하게 된 일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안드라스 씨.”

“……?”

“아무래도 저는 아직 포기 못 할 것 같아요. 분명 사장님의 방식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폭주를 막을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안드라스는 내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았습니다.”

내가 이 농장에 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면, 분명 아직 나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이 생각은 마치 사명감처럼. 불안했던 나의 마음을 강하게 이끌었다.

“안드라스 씨. 하나만 부탁해도 될까요?”

“남아 있는 책들의 번역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부탁하는 처지에 정말 염치없지만, 최대한 빨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안드라스는 손을 들어 볼을 긁적거리더니, 복면 위에 드러난 눈매가 휠 정도로 밝게 웃어 보였다.

“며칠 밤샘한다고 죽지는 않으니까요. 최대한 빠르게 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드라스 씨!”

안드라스는 갑자기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상체를 숙여 나에게 속삭였다.

“설마 리아네 양이 저녁을 준비하는 건 아니겠죠? 시현 님이 하시는 거죠?”

진심으로 걱정하는 그의 물음에 나는 믿음직스러운 제스쳐와 함께 확실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제가 준비해야죠. 걱정하지 마세요. 최대한 자신 있는 음식으로 준비할 테니.”

그제야 안드라스는 안심했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날.

안드라스는 저녁부터 아침이 될 때까지 밤새 번역 작업에 매달렸고. 내가 출근했을 때는 완벽하게 정리된 번역본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더 짙어진 다크써클과 시체처럼 퀭해진 눈.

생기가 빨려 나간 모습으로 번역본을 건네는 그의 모습에 고마움과 안쓰러움으로 눈물을 흘릴 뻔했다.

어렵게 완성된 번역본은 리아네의 도움으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나는 빠르게 계획을 준비해 나갔다.

목표는 단 하나.

농장을 완벽한 야쿰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큰뿔이의 폭주를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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