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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화 (1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2화

평온한 일상, 다가오는 위기(6)

“하아암.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야?”

“…….”

“그동안 바쁘게 뭘 준비하더니. 잘 안된 모양이네? 그렇게 너무 상심한 표정 짓지 마.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카네프는 가벼운 태도와 말투로 나를 위로했다.

“사장님.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어요.”

“뭔데?”

나는 큰뿔이와 교감하며 보았던 장면을 그에게 설명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카네프의 얼굴은 조금씩 굳어졌다.

“장면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지막 장면만은 확실히 기억나요. 그건 분명 큰 뿔을 가진 야쿰을 사장님이 쓰러뜨리는 장면이었어요.”

“…….”

“처음에는 그 큰 뿔을 가진 야쿰이 지금 농장에 우두머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거죠?”

내가 본 것은 큰뿔이의 기억.

그렇다면 기억 속 장면에서 죽은 야쿰은 큰뿔이가 될 수 없다.

“사장님. 말씀해 주세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하아아. 별일 아냐.”

그는 긴 한숨과 함께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놨다.

“도시를 반파시켰던 야쿰 이야기는 들었지? 야쿰이 아무 이유 없이 도시를 공격한 건 아냐. ‘창조의 육망성’이라는 조직의 미친놈들이 야쿰의 새끼를 납치했기 때문이지.”

“……창조의 육망성?”

“그 미친놈들은 5마리의 새끼를 납치했는데, 내가 놈들을 발견했을 때는 1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실험체로 사용해 죽인 뒤였지.”

“…….”

“남은 한 마리라도 야쿰 무리에 돌려주려 했지만. 이미 새끼가 죽었다는 걸 안 우두머리는 폭주하는 상태였어. 도시의 피해와 희생자는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방법은 하나뿐이었지.”

나는 어지러웠던 기억의 진실과 두려움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었다.

큰뿔이는 자신을 구해준 카네프가 부모를 죽이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이었다.

“그게 끝이야. 뒷이야기는 네가 아는 대로고.”

“…….”

나는 큰뿔이의 기억 속 감정을 되새기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큰뿔이는 사장님을 두려워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

“그 녀석은 분명 기억하고 있었어요. 자신을 구해준 사장님에 대한 은혜를.”

“큭큭. 은혜? 방금 이야기 못 들었어? 내가 그 녀석의 부모를 눈앞에서 죽였다니까?”

“저번에 말했죠? 아무리 말 못 하는 동물이라도 사람의 행동과 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큰뿔이는 사장님의 어쩔 수 없었던 상황을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

방 안에는 잠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 먼저 입을 연 쪽은 카네프였다.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게 전부예요. 만약 누군가 지금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건 사장님밖에 없겠죠.”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방 문고리를 잡았다.

“저에게 음식을 해준 빚이 있다고 하셨죠? 돈은 필요 없어요. 대신 도와주실 수 있다면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저는 이만 퇴근해 볼게요.”

“잠깐!”

“……?”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돈까지 포기하면서?”

카네프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예전에 아버지가 소중히 여기던 소들이 있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전부 죽어버렸어요. 소들이 죽어가며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저는 아무것도 못 했거든요.”

내가 돕지 못했던 것은 소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농장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에는 많은 빚과 병마에 시달렸다.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여기 마계농장에서.

그때의 일을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그렇게 무기력하게 끝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저녁은 미리 해놨으니 나중에 드세요.”

“…….”

아무 대답 없는 카네프를 뒤로하고 나는 방을 빠져나왔다.

* * *

“…….”

“…….”

“…….”

농장의 식당에는 수저가 움직이는 소리 외에는 어떠한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꾸역꾸역 식사를 이어가던 카네프는 조금 거칠게 수저를 내려놨다.

-툭!

“아! 더럽게 분위기 안 좋네.”

“…….”

“…….”

카네프는 눈치를 보는 리아네와 안드라스를 두고 식당을 빠져나갔다.

혼자 방으로 돌아온 그는 특유의 자세를 취하고 눈을 감았다.

평소 같았으면 금방 잠에 빠져들었겠지만, 오늘은 계속 떠오르는 잡념들이 그의 수면을 방해했다.

아까 임시현과 나눴던 대화, 과거의 기억, 그동안 농장에서 있었던 일까지.

그의 고뇌는 밤이 깊어질 때까지 편안한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 * *

깊은 밤.

야쿰은 모두 잠이 들었지만, 우두머리인 큰뿔이는 잠들지 않았다.

무리를 지켜야 하는 그의 책임감은 모두가 잠든 순간에도 계속 이어졌다.

-……!

무엇인가를 느낀 큰뿔이는 편한 자세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강한 존재감이 느껴지는 곳으로 발을 움직였다.

“오랜만이네.”

-…….

그곳에는 혼자 이곳까지 찾아온 카네프가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이 굉장히 어색한지 계속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를 기억하긴 하는가 보네. 쩝.”

-…….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미안하다.”

카네프는 큰뿔이의 앞에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놨다.

“너의 부모를 죽인 건 나에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지금 네가 너의 무리를 지키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땐 지켜야 할 것들이 있었으니까.”

-…….

“그때의 일을 용서해 달라는 뜻은 아니야. 그래도 혹시나 내게 조금이나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만은 알아줘.”

-…….

“그 녀석이 너희들을 위하는 노력은 진심이야. 약간 어리숙해 보이고, 빈틈도 많아 보이지만 분명 너에게 도움이 될 녀석이니까.”

그의 긴 이야기에도 큰뿔이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지켜만 봤다.

“하아.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그럼 나 간다.”

-…….

“혹시 복수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공격해. 한 번은 살려줄 테니까.”

카네프는 뒤돌아 걷다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아직 가만히 서 있는 큰뿔이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다면서? 축하해!”

그때.

지금까지 아무런 반응 없던 큰뿔이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부우우우!

카네프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녀석. 좋긴 좋은가 보네. 그럼 나 진짜 간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카네프는 다시 왔던 길로 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의 잡념이 조금 사라진 덕분인지 나른한 기분이 몰려왔다.

그는 길게 하품을 하며 누군가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하아암. 이 정도면 밥값은 한 거다?”

* * *

-Good Morning! 바빠빠! 빠빠!

“으음…….”

휴대폰 알람 소리와 함께 나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평소 같았으면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을 텐데, 오늘은 영 컨디션이 안 좋았다.

머리를 울리는 휴대폰 알람을 겨우 끄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어제 너무 능력을 연달아 사용한 탓인지 숙취에 찌든 것처럼 머리가 아프고 몸이 무거웠다.

출근해야 하는데…….

어제 농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자, 몸이 아픈 것과 더불어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지금쯤 모든 직장인의 머릿속에 떠오를 생각이 나에게도 떠올랐다.

오늘 쉴까?

짧은 고민 끝에 휴대폰 화면을 켜고 발레리안의 연락처를 입력했다.

오늘 하루 쉰다는 짧은 메시지를 남기고 휴대폰을 대충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다시 침대에 몸을 맡기니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일을 즐기는 일탈의 짜릿함과 행복함이 밀려들었다.

내가 다시 눈을 뜬 건.

방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에 위장이 반응했을 때였다.

내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타나자, 어머니의 놀란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어머! 너 출근 안 했었니? 오늘은 어째 준비하는 소리가 안 들린다 했는데.”

“응. 오늘 하루 쉰다고 이야기했어.”

“어디 아픈 데라도 있는 거야?”

“좀 피곤한 것 같아서 하루만 쉬려고.”

“그래 잘했다. 사람이 쉬는 날도 있어야지. 조금만 기다려. 아침 금방 준비해 줄게.”

어머니는 오랜만에 아들의 아침을 차려주는 것이 즐거운지 콧노래를 부르셨다.

나도 평소에는 느낄 수 없는 느긋함을 느끼며 식탁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식탁에 막 뜨거운 된장찌개가 올라오는데.

-♪♩∼♪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막 뜨려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발레리안의 이름이 표시돼 있었다.

“여보세요? 리안 씨?”

-지금 어디세요?

“네? 집인데요. 혹시 제가 보낸 메시지 못 보셨어요?”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나오셔야겠습니다.

뜬금없이 나오라는 이야기에 나는 반문했다.

“예? 저 지금 밥 먹으려고 했는데. 거기다 지금 준비해서 나가도 1시간은 걸릴 텐데요?”

-지금 제가 차를 몰고 시현 씨 집으로 가고 있습니다. 5분이면 도착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지금 당장 시현 씨를 안 데려오면, 카네프 님이 농장의 야쿰을 다 없애버린다고…….

“예에?!”

충격적인 이야기에 식탁 의자가 쓰러질 정도로 벌떡 일어섰다.

-곧 도착합니다. 빨리 나와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가겠습니다.”

제대로 씻지 못해 부스스한 머리에 옷만 대충 걸쳐 입고.

발레리안과 함께 마계의 문을 통과했다.

허겁지겁 농장 건물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데, 멀리서부터 야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나는 다급한 마음에 발레리안을 뒤로하고, 전력으로 농장을 향해 달려갔다.

농장 앞에는 카네프, 리아네, 안드라스가 모두 나와 있었다.

“헉! 허억! 도대체…… 헉! 무슨 일이에요?”

“시현 님!”

“시현 님! 오셨군요.”

나를 반기는 리아네와 안드라스에게 말을 건네기도 전에, 카네프가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빨리 저것들 좀 해결해. 안 그러면 당장 없애버릴 거니까.”

그의 살벌한 협박에 나는 표정을 어둡게 했다.

“혹시…… 벌써 폭주를 일으켰나요?”

“뭔 소리야? 아침에 뭐 잘못 먹었어?”

“그게. 아침은 못 먹고 나왔는데…….”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빨리 축사에나 가봐.”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축사에 다가갔다. 그 안에는 애처롭게 울고 있는 예쁜이의 모습이 보였다.

“예쁜이? 네가 왜 여기에?”

-부우우우!

예쁜이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와 반가움을 표했다.

얼떨결에 녀석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이 상황을 전혀 이해할 수 없어 뒤따라온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리아네 역시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침에 일어나니까 야쿰 무리가 모두 여기에 와 있더라고요. 배가 고픈지 계속 울어서 카네프 님이 엄청 짜증을 내셨어요.”

“축사에 먹이통에 있던 건 어쩌고?”

“먹이통에 담아둔 건 손도 안 대더라고요. 아마 시현 님이 오기를 계속 기다린 것 같아요.”

나는 먹이통에 있던 열매를 꺼내 예쁜이에게 내밀었다.

계속 참고 있었는지 예쁜이는 그제야 열매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야쿰의 울음소리도 잦아들었다.

나는 축사 빠져나와 주변에 야쿰 무리를 둘러보았다.

그중에는 편안한 모습의 큰뿔이도 보였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카네프에게 달려갔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정말로.”

“뭐야. 왜 나한테 감사해!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아무튼, 감사합니다.”

“아아! 몰라. 저 녀석들 다 네가 데려온 거니까 알아서 잘 관리해. 다음에 또 이렇게 시끄럽게 만들면 내가 폭주해 버릴 거니까.”

카네프는 잔뜩 불만을 내뱉고는 농장 건물로 들어가 버렸다.

“축하드립니다. 시현 님.”

“축하드려요.”

안드라스와 리아네가 웃는 얼굴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뒤늦게 농장에 도착한 발레리안은 멍하니 야쿰 무리를 바라보다가 내 쪽으로 달려왔다.

덥석 내 손을 붙잡더니 손목이 아플 정도로 흔들기 시작했다.

“역시 믿고 있었습니다. 시현 님이라면 해낼 줄 알고 있었다고요.”

“진정하세요. 리안 씨.”

“드디어. 드디어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발레리안은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지 살짝 눈시울을 적셨다.

덩달아 나도 그간의 고생이 떠오르며 가슴이 뿌듯해졌다.

-부우우우!

“알았어. 예쁜아!”

나는 다시 축사로 돌아가 예쁜이에게 직접 열매를 먹여주었다.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선명한 생명의 파동이 더는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쓸쓸하게 느껴지던 축사를 가득 메워줘 나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지금껏 허울뿐이던 농장이 진정한 의미의 농장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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