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3화
두근두근(1)
야쿰 무리가 농장으로 찾아온 뒤.
마계농장에서의 일상이 조금 달라졌다.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며 기분 좋게 출근한 다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축사의 예쁜이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벌써 일어나 풀을 뜯고 있는 다른 야쿰들과는 달리 예쁜이는 아직 축사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기 야쿰들이 태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인지, 예쁜이는 잠이 많아지고 점점 움직임이 둔해졌다.
별문제 없이 쉬고 있는 걸 확인하고 조용히 축사를 빠져나왔다.
방에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마구간 청소하기 전에 잠시 야쿰 무리를 살펴봤다.
풀을 뜯던 야쿰 한 마리가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크지 않은 울음소리와 함께 얼굴을 들이밀었다.
-부우우우.
“초롱아. 좋은 아침이지?”
최근에는 예쁜이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나에게 인사를 하러 오는 야쿰들이 생겨났다.
아예 나에게 무관심한 녀석들도 있지만, 확실한 건 나를 경계하는 야쿰은 이제 한 마리도 없다.
우두머리인 큰뿔이도 마찬가지다.
가끔 큰 목소리로 ‘큰뿔아!’라고 부르면 자신의 이름을 알아듣는지 흘긋 이쪽을 바라봤다.
물론 금방 귀찮다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돌려버리지만, 그 모습도 최근에는 꽤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살피다 보니 자연스럽게 녀석들의 모습을 구분하게 됐다.
쉽게 구분 가능한 덩치, 뿔의 크기나 모양.
디테일하게 보자면 눈매, 털의 밝기나 윤기, 미세한 울음소리의 차이까지.
다른 농장의 식구들은 도저히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내 눈과 귀에는 조금씩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지금 나에게 다가와 인사하는 녀석은 눈동자가 초롱초롱해서, ‘초롱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중이었다.
조만간 야쿰 무리 모두를 완벽히 구분해 낼 수 있을지도…….
야쿰과의 아침 인사를 끝내고 마구간으로 향했다.
말들과 인사를 나누고 평소와 같은 청소와 먹이 주기를 시작했다.
마구간 정리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더 축사로 향했다. 청소하는 사이에 일어난 예쁜이가 나를 맞이했다.
-부우우우.
“일어났구나?”
예쁜이는 몸이 무거운지 힘주는 소리와 함께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나는 바로 양동이에 깨끗한 물을 담아 마시기 편하게 가져다주었다.
어제부터 먹이도 안 먹고 이렇게 물만 조금씩 마셨다. 아무래도 모두가 기다리던 날이 코앞으로 다가가온 듯했다.
“조금만 더 힘내자.”
-부우우우.
잠깐 예쁜이를 살펴보고 축사를 나서 농장 건물로 향했다.
이제 아침의 두 번째 업무를 시작할 시간이었다.
* * *
오늘의 아침 메뉴는 팬케이크, 스크램블에그, 소시지와 샐러드였다.
팬케이크와 시럽은 내가 챙겨온 재료들이었고, 나머지는 안드라스가 가져다준 마계의 재료들이었다.
특히 마계의 소시지는 지구의 것과 제작 방법과 맛이 매우 유사했다.
수제로 만들었기 때문에 기성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쫄깃한 식감과 풍부한 육즙이 일품이었다.
물론 마족들의 관심은 고소한 냄새에 폭신하고 달콤한 팬케이크에 모두 쏠렸다.
워낙 달콤한 맛을 좋아하다 보니 가끔은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팬케이크 맛은 괜찮으세요?”
“괜찮네.”
“시럽이랑 같이 먹으니까 너무 맛있어요.”
“이런 맛이라면 매일 아침에 먹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차례로 카네프, 리아네, 안드라스가 각자의 평을 남겼다.
식사를 준비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누군가 자신의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것은 굉장히 기쁜 일인 것 같았다.
“근데 안드라스.”
“네. 카네프 님.”
“너는 왜 여기서 아침을 먹는 거냐?”
“흠흠. 생필품이나 음식 재료도 보급해 드리고, 저번에 시현 님이 부탁한 것도 있어서 겸사겸사.”
그의 해명에 카네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예전에는 이렇게 자주 안 온 것 같은데. 거기다 너, 이동 마법을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거야? 개인 마석을 사용해서 여기 오는 건 아닐 거 아냐?”
“…….”
듣기로 안드라스는 뛰어난 차원 마법의 능력자라고 했다.
마술사처럼 품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도 차원 마법의 한 가지.
그가 이곳 농장에 방문할 때면 ‘공간 도약’이라는 차원 마법을 사용하는데, 난이도는 둘째치고 꽤 많은 마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점점 안드라스의 표정이 굳어지자, 카네프의 추궁은 더 집요해졌다.
“이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라고 위에서 마석을 주지는 않았을 텐데? 오랜만에 내가 직접 연락해 볼까?”
“오, 오해입니다. 절대 제 마음대로 사용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그저?”
“연구용으로 받은 마석 중에서 비상용으로 남겨둔 몇 개만 썼을 뿐입니다.”
마치 뱀 앞에서 꼼짝 못 하는 먹잇감처럼.
안드라스는 카네프의 매서운 눈길에 옴짝달싹 못 한 채 눈만 데구르르 굴렸다.
적당한 타이밍에 내가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만하세요. 사장님. 안드라스 씨도 다 생각이 있겠죠. 그리고 농장에도 도움을 많이 줬잖아요.”
“흐음…….”
나의 변호 덕분에 카네프는 매서운 눈빛을 거둬들였다.
“조심해. 이상하다 싶으면 내가 직접 찾아갈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카네프 님.”
카네프는 적당한 경고와 함께 자신의 접시로 시선을 돌렸다. 안드라스는 눈빛으로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안드라스 씨. 저번에 제가 부탁했던 거 혹시 찾아보셨나요?”
“야쿰의 출산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죠? 찾아보기는 해봤는데, 별다른 정보는 발견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끄응. 아쉽네요.”
눈앞으로 다가온 예쁜이의 출산에 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많은 동물, 심지어 인간도 생명을 탄생시키는 출산은 부담이 컸다.
조금이나마 정보를 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야쿰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야쿰 무리를 이곳으로 끌어들였고, 예쁜이가 나에게 많이 의지하는 만큼, 스스로 적지 않은 책임감과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얼굴 좀 펴라. 어차피 그렇게 어두운 표정 짓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야.”
“카네프 님 말씀이 맞아요. 시현 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카네프와 리아네의 말에 나는 짐짓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다 그렇듯.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마음은 그렇게 잘 따라주지 않았다.
제발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 * *
가장 먼저 시작을 알린 건.
야쿰 무리의 이상한 행동들이었다.
그들은 예쁜이가 있는 축사를 중심으로 포위하듯 둘러싸더니, 긴장한 표정으로 사방을 살피기 시작했다.
명백히 주위로부터 축사를 지키려는 모양새였다.
이상함을 눈치챈 나와 농장 식구들이 축사 쪽으로 달려 나왔다.
“드디어 시작하는군요.”
리아네의 중얼거리는 듯한 말에, 모두의 시선이 멀찍이 떨어진 축사로 향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예쁜이의 모습이 축사의 열린 입구를 통해 보였다.
좀 더 다가가고 싶었지만, 주변을 둘러싼 야쿰 무리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본능적으로 취약한 상태의 동료를 지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일단 발레리안을 통해.
오늘은 집에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어머니에게 전했다.
출산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최대한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 * *
출산의 고통이 시작된 지 8시간째.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나서 깊은 밤이 되었다.
아직도 예쁜이는 출산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고, 다른 야쿰들은 철통같이 주변을 지켰다.
나도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나마 예쁜이를 응원했다.
“하아아암. 시현. 너 계속 여기에 있을 거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카네프가 크게 하품을 하며 물었다.
“네. 사장님. 웬만하면 끝까지 지켜보고 싶어요. 피곤하시면 사장님은 먼저 들어가세요.”
“끄으으. 나는 그러고 싶은데. 네가 이상한 짓을 저지를 것 같아서 못 들어가겠다.”
“……?”
“시현 님. 몸을 덮을 수 있는 담요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확실히 여름이 가까워지는 계절임에도, 이곳의 밤 날씨는 굉장히 쌀쌀했다.
고도가 높은 곳이어서 그런지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위에 바람막이를 걸쳤는데도 춥긴 하네요. 담요 부탁드릴게요. 리아네 씨.”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나는? 나는 안 물어봐?”
카네프의 물음에 리아네는 대답 대신 눈살을 찌푸리다가, 쌩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반응에 카네프는 그저 헛웃음만 내뱉었다.
그때.
-부우우우우!!
예쁜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첫 번째 새끼 야쿰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장님! 새끼가 보여요.”
아주 천천히 빠져나오다가 몸의 윗부분이 반쯤 빠져나왔을 때, 쑤욱하고 한 번에 미끄러져 나왔다.
옆에서 기다리던 다른 야쿰이 방금 태어난 새끼를 핥으며 출산의 찌꺼기를 치워냈다.
오랜 시간 기다렸던 첫째의 출산에 나는 크게 기뻐했다.
옆에 있던 카네프 역시 진지하게 신비한 탄생의 순간을 지켜봤다.
리아네가 담요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두 번째 새끼 야쿰이 모습을 드러냈다.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이번에도 큰 무리 없이, 첫 번째보다 더 수월하게 두 번째 새끼가 세상에 탄생을 알렸다.
순조로운 상황에 나는 한결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다.
세 번째 새끼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앞선 두 녀석 때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첫째와 둘째는 상체 쪽 머리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는데, 셋째는 하체의 뒷다리가 먼저 나왔다.
“뭔가 이상한데…….”
전문적인 지식은 없지만,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카네프와 리아네 역시 얼굴을 굳혔다.
우리의 생각이 괜한 걱정이기를, 보란 듯 금방 출산을 마무리해 주길 바랐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 갔다. 축사 주변의 다른 야쿰들의 긴장감 역시 점점 고조됐다.
나의 머릿속에는 위험 신호가 끊임없이 울렸다.
이대로라면 새끼와 어미 모두 위험하다.
생각과 동시에 나는 불쑥 앞으로 나섰다.
“제가 가봐야겠어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축사로 뛰어나갔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촤르르르르륵!
“컥!”
푸른색 쇠사슬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건 안 돼.”
“사장님?!”
내 두 눈에 왼손으로 푸른색 기운을 휘두르는 카네프의 모습이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