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14화
두근두근(2)
“끄응. 이거 사장님이 하신 거예요? 빨리 풀어주세요!”
“안 돼. 지금 어딜 뛰어들어 가겠다는 거야?”
“저기 예쁜이가 힘들어하는 모습 안 보이세요? 빨리 가서 도와야 해요. 아니면 둘 다 위험하다고요!”
“그럼 너는 나머지 야쿰들의 모습은 안 보이냐?”
축사에서 힘들어하는 예쁜이.
그리고 나머지 야쿰들이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었다.
큰뿔이마저도 행동에서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납치된 새끼들 때문에 도시로 쳐들어올 만큼 동료의식이 강한 녀석들이야. 만에 하나 출산하던 야쿰이 잘못되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어.”
“하지만 저라면…….”
“그래. 누군가 도와주러 간다면 너밖에 없지. 그래서 더더욱 안 된다는 거야. 만약에 네가 잘못되면 남은 야쿰은 누가 책임지지?”
“…….”
“네가 있었기 때문에 이곳이 농장이라 불릴 수 있게 된 거야. 만약에 네가 없어진다면 이곳은 울타리 쳐진 감옥일 뿐이야.”
지극히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말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의 말대로 내가 없어진다면 야쿰은 다시 이곳을 떠날 테니까.
“네가 저 야쿰을 각별하게 생각하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겨우 저 한 마리 때문에 네가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건 두고 볼 수 없다.”
“…….”
“최악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남은 야쿰들이 있어.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잖아?”
카네프는 나를 타이르듯 말했다.
확실히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나와 친밀도를 쌓았다고 해도,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사장님. 보내주세요.”
“지금까지 내 말 못 들었어? 위험하다니까!”
“알아요. 그 정도는 각오했어요. 저 녀석들은 저를 믿고 찾아온 녀석들이에요. 조금 위험하다고 믿음을 저버린다면 결국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거예요.”
카네프는 와락 인상을 구겼다.
서로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을 때, 옆에서 담요를 들고 있던 리아네가 입을 열었다.
“카네프 님. 시현 님을 보내주세요.”
“뭐?”
“저번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때, 저와 안드라스 님도 똑같이 반응했었어요. 하지만 시현 님은 위험을 무릅쓰고 저들에게 다가갔고 결국에는 믿음을 얻어냈어요.”
그녀는 큰뿔이에게 처음 교감을 시도했을 때를 이야기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도 불안하지만. 야쿰이 시현 님을 믿는 것처럼, 우리도 시현 님을 믿어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
카네프는 나와 리아네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쳇…….”
-딱!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나를 속박하던 쇠사슬이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갑자기 풀려난 탓에 휘청거리던 나를 리아네가 옆에서 부축해 줬다.
“아! 몰라. 너네 알아서 해!”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럼 다녀올게요. 리아네 씨.”
“기다리고 있을게요. 꼭 성공하셔야 해요.”
나는 곧바로 야쿰이 둘러싸고 있는 축사로 달려갔다.
야쿰들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녀석들이 엄청나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졌다.
축사의 입구를 막고 있던 큰뿔이 앞에 도착했다.
“비켜줘. 시간이 없어!”
-…….
내 모습을 보고 잠시 망설이는 큰뿔이.
하지만 이내 옆으로 뒷걸음질 치며 나에게 길을 열어줬다. 큰뿔이를 시작으로 다른 야쿰들도 지나갈 수 있도록 입구 쪽에서 물러섰다.
인사를 할 여유도 없이 야쿰들을 지나 예쁜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예쁜아. 괜찮아?”
-부우우우…….
예쁜이는 옆으로 반쯤 누워서 힘겹게 울음소리를 냈다.
길게 이어진 진통과 출산 때문인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 보였다. 이대로라면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급히 뒤로 돌아가 새끼가 나오는 쪽을 살폈다.
아직도 하체의 뒷발 부분만 밖으로 삐죽 나와 있는 상태였다.
그냥 당겼다가는 오히려 새끼의 목 부분이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지……?
고민도 잠시.
나는 윗옷을 벗어 던지며 축사 구석으로 향했다.
양팔을 걷어붙이고 양동이에 담긴 깨끗한 물로 손과 팔을 씻어냈다.
그리고 새끼가 걸려 있는 부분에 직접 손을 집어넣었다.
조심스럽게 머리와 목 부분을 감싸며 끌어당겼다.
안쪽에서 뭔가 단단히 걸린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와줘!”
나는 옆에 있던 야쿰에게 도움을 구했다.
녀석은 나의 의도를 알아채고, 영리하게 고개를 숙여 자신의 뿔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야쿰의 뿔을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넣은 순간. 야쿰이 고개를 돌리는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쑤우욱!
순간적인 힘으로 꽉 끼어 있던 새끼가 빠져나왔다.
묵직한 녀석을 거의 몸으로 받아내며,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줬다.
주변에서 기다리던 야쿰들이 새끼 야쿰에게 다가가 혀로 이물질들을 걷어내 줬다.
그런데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할 새끼 야쿰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싸한 느낌과 함께 이상함을 느끼고 새끼 야쿰에게 다가갔다.
-부우우우!
-부우우우우!
이미 주변에 있던 야쿰들은 크게 동요하며 울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본 새끼 야쿰은 축 늘어져 아무런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숨을…… 안 쉬어……?”
* * *
망연자실한 표정의 임시현과 축 늘어져 미동도 하지 않는 새끼 야쿰이 카네프의 눈에 들어왔다.
거기다 크게 동요하는 야쿰들까지.
점점 좋지 않게 흘러가는 상황에 그의 인상이 다시 한번 구겨졌다.
“카네프 님. 지금 어떻게 된 거죠?”
“설명할 시간 없다. 리아네. 저기 시현이 있는 곳까지 얼마나 빠르게 도착할 수 있지?”
그의 물음에 리아네는 축사 쪽을 바라보며 거리를 가늠했다.
“5초…… 4초…….”
붉은 눈동자가 기운을 내뿜기 시작했다.
-우득…… 우드득!
그녀의 온몸에서 살벌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벗지 못한 흰색 장갑은 날카로운 손톱에 찢겨나갔고, 두 개의 뿔은 더 커지고 뾰족해졌다.
치마의 뒤편으로 붉은색 꼬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변화를 끝마친 그녀의 입에서 그르렁거리듯 소리가 흘러나왔다.
“3초…… 3초면 충분합니다.”
“좋아.”
-촤르르르륵!
-촤르르르륵!
카네프의 왼손 주변에 생성되는 수많은 쇠사슬. 그중 하나가 리아네의 허리를 단단히 감쌌다.
“너는 시현에게 도달하자마자 그를 감싸서 보호해. 여기로 바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내가 당겨줄 테니까. 그 사이 야쿰의 돌발행동은 내가 막는다.”
“알겠습니다.”
리아네가 축사로 달려들려는 순간.
“잠깐만요! 아직 살아 있어요!”
임시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그는 축 늘어진 새끼 야쿰에게 뭔가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카네프와 리아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위험해질지도 모르는 상황.
임시현의 시도를 무시하고 데려올 것이냐?
아니면 그를 믿고 기다릴 것이냐?
“카네프 님. 어떻게 하죠?”
“이런, 제기랄…….”
* * *
숨을 쉬지 않는 새끼 야쿰을 보며 끝이라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빨리 왔으면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늦었기 때문에…….
안타까움과 자괴감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순간, 아주 익숙한 파동이 나의 정신을 일깨웠다.
“이건……?”
죽은 줄 알았던 새끼 야쿰이 미약하지만 생명의 파동을 내보내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곧바로 새끼 쪽으로 다가갔다.
“잠깐만요! 아직 살아 있어요!”
나는 급히 새끼의 입과 코에 이물질을 치워내고, 입으로 직접 숨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식어가는 몸을 주무르며 열성적으로 마사지를 해줬다.
제발…… 제발…… 일어나. 아가야.
주변의 상황도 잊은 채, 새끼 야쿰을 다시 살리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온 힘을 다했다.
-…….
-움찔!
“아!”
지금껏 아무런 반응이 없던 녀석이 처음으로 발끝을 움찔거렸다.
동시에 생명의 파동이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자.
나는 힘든 것도 잊고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새끼 야쿰의 몸을 계속 주물렀다.
그리고 마침내.
-쿡. 쿨럭!
-……무우우!
처음으로 새끼 야쿰은 세상을 향해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힘겹게 눈을 뜨더니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올려봤다.
-무우우!
“아직 끝이 아니야. 일어나! 얼른 일어나!”
나의 말을 알아들은 걸까?
새끼 야쿰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후들거리는 다리로 우뚝 몸을 바로 세웠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대견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스스로 일어선 새끼 야쿰을 들어 예쁜이의 근처에 내려주었다.
새끼 야쿰은 휘청휘청하면서도 어미의 젖을 찾아 앞으로 나갔고, 먼저 도착해 있는 두 형제의 옆에서 젖을 물었다.
엄마 품에 옹기종기 모여 젖을 빠는 아기 야쿰 형제들.
여유를 되찾은 나는 예쁜이에게로 다가갔다.
“예쁜아. 괜찮아?”
-부우우우…….
큰 체력소모로 아직 힘 빠진 울음소리였지만, 한결 편안해진 표정과 호흡이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대견한 마음을 담아 예쁜이를 쓰다듬어줬다.
“고생 많았어. 그리고 잘 버텨줘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부우우우.
[마수와 친밀도가 상승했습니다.]
[대상은 당신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냅니다.]
[대상은 당신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합니다.]
[마수와 친밀도가 마지막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교감(交感)’ 능력이 향상됩니다.]
머릿속을 울리는 알림들.
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생명 탄생’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만으로 마음이 벅찼으니까.
예쁜이와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순간 긴장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내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힘겹게 고개를 돌리니 큰뿔이가 새끼 야쿰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들 너무 예쁘지?”
-…….
나에게 시선을 옮긴 큰뿔이는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더니, 땀범벅이 된 내 얼굴을 마구 핥기 시작했다.
“으윽! 갑자기 왜 이래. 큰뿔아!”
힘이 남아 있었으면 조금이라도 저항했을 텐데. 완전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무방비하게 내줘야 했다.
그렇게 큰뿔이가 한참을 핥은 뒤.
다시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당신은 야쿰 무리에게 인정받았습니다.]
[새로운 능력 ‘야쿰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대지 영혼의 파편’이 조금 더 완전해집니다.]
나는 큰뿔이를 보며 작게 웃었다.
“드디어 너도 날 인정해 줬구나.”
-부우우우.
큰뿔이는 작게 울음소리를 내고 다시 축사 밖으로 나갔다.
나도 예쁜이와 아기들에게 인사를 한 뒤, 벗어둔 옷가지를 챙겨 축사를 나섰다.
휘청휘청 걸음을 옮기다 보니 멀리서 기다리고 있는 카네프와 리아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꽤 엉망진창이 된 모습으로 멋쩍게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시현 님.”
리아네는 휘청거리는 나를 부축하며,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친절하게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런데 평소의 손이 아닌, 비늘로 뒤덮인 손이어서 그런지 힘 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리아네 씨. 죄송한데 원래의 손으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목이 좀 아픈데…….”
“네? 아앗! 꺄아악!”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깨달았는지 리아네는 부끄러움에 비명을 질렀다.
손수건을 내 얼굴에 던지다시피 하며 집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중얼거렸다.
“꼬리도 가지고 계셨구나…….”
“뭘 그렇게 중얼거리냐?”
“아니에요. 사장님.”
“아무튼, 정말 고생했다.”
카네프는 평소에는 보기 힘든 미소와 함께, 손으로 내 머리를 살짝 두드렸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평소에 보여준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이 정도면 그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으윽! 이건 뭐야?”
카네프는 손에 묻은 끈적끈적한 액체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 아까 큰뿔이가 머리를 핥아서.”
액체의 정체를 듣고 더욱 불쾌한 표정으로 변했다.
뭔가를 쏘아붙이려다 꾹 참은 그는 대신에 손가락을 튕겼다.
-촤르르르륵!
-덥석!
다시 나타난 푸른 쇠사슬이 내 몸을 휘감았다. 그리고 마치 짐짝처럼 공중에 붕 떠올랐다.
“으윽. 이건 또 무슨 짓이죠?”
“힘들어 보여서 손수 욕실에 넣어주려고.”
“사장님, 혹시 좀 더 상냥한 방법은 없을까요?”
“시끄러워. 이렇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 계속 나불거리면 땅바닥에 집어 던져버릴 거야.”
“넵.”
그렇게 나는 사장님의 쇠사슬에 이끌려 농장 건물로 옮겨졌다.
다행히 땅바닥에 내던져지지는 않아서 무사히 욕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씻고 나온 뒤에 나는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맡겼다.
예쁜이와 아기들의 상태를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온몸에 몰려오는 피로와 무력감에 그만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마계농장에서 지내는 첫 번째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