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3화
이게 무슨(4)
갑자기 생겨난 균열로 인해 주변은 금방 아수라장이 되었다.
“으아악! 괴물이다! 도망쳐!”
“어째서 균열이?!”
서예린은 교육받은 대로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이미 균열에 괴수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어.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한해야 해!’
그녀는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끝에 영롱한 빛을 내는 보석을 감싸 쥐었다.
<영혼의 계약자여……>
<내 부름에 따라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라.>
소환 주문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덩치의 소환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환수의 등 뒤에는 뾰족한 바위들이 촘촘하게 솟아나 있었고, 온몸을 감싼 두꺼운 가죽은 갑주를 장비한 것처럼 보였다.
양 앞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번쩍거렸다.
또 다른 괴수의 등장에 사람들이 당황하려는 찰나, 서예린은 주변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건 제 소환수입니다. 균열의 괴수들은 제가 막을 테니, 일반인분들은 모두 건물 안으로 피해 주세요!”
“각성자다! 각성자가 있다!”
“와아!”
“조금만 버티면 진압팀이 도착할 겁니다. 절대 무리하게 움직이지 마시고, 최대한 조용히 모습을 숨기세요.”
주변의 많은 사람을 혼자서 통제하기 힘들다고 판단. 그녀는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것보다 가까운 곳에 몸을 숨기도록 유도했다.
균열의 규모가 크지 않았기에 진압팀이 올 때까지 혼자 막아보려는 계획이었다.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이었다.
“두 분도 어서 몸을 숨기세요. 여긴 제가 맡을 테니.”
“예린 씨…….”
“아주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면 그렇게 위험한 균열은 아니거든요. 남자분, 얼른 어머니 모시고 몸을 숨기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옆집 남자는 어머니를 이끌고 가까운 건물 안으로 피신했다.
북적이던 거리는 순식간에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제야 서예린은 균열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차르르륵!
-츠츠츠.
‘소형 땅벌레. 수는 20마리 정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괴수의 종류와 숫자를 파악했다.
평소의 전투라면 차분히 상대를 살폈겠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을 지켜야 하는 상황.
그녀는 좀 더 과감하게 움직이기로 정했다. 목걸이의 보석을 감싸 쥐고 소환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돌격해.>
-크룩!
소환수는 짧은 울음소리를 내며 적을 향해 돌격했다. 묵직한 앞발 공격이 벌레 무리를 덮쳤다.
-콰직!
-츠츠츳! 끼이익!
한 번에 네다섯 마리가 터져나갔다.
남은 벌레들이 반격을 해보려 했지만, 소환수의 두꺼운 가죽에 큰 타격을 주기 어려웠다.
벌레들은 소환수와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닫고, 서예린 쪽으로 공격대상을 변경했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그녀는 소환수와 거리를 적절히 유지하며, 마법으로 적을 요격했다.
<솟아올라라, 날카로운 대지의 창!>
-퍽!
-끼이이익!
뾰족하게 솟아오른 바위가 벌레 한 마리를 꿰뚫었다.
점점 줄어드는 동료의 숫자에 벌레들은 주춤하며 거리를 벌렸다.
-츠츠츠츳! 끼익!
-끼익! 끼익!
벌레들은 단체로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주고받더니, 돌연 앞다리로 땅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런…….”
서예린은 벌레들의 꿍꿍이를 눈치채고 소환수와 함께 급히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몇 마리만 해치웠을 뿐, 열 마리 가까이 되는 벌레들이 땅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드드드드!
-드드드드!
땅속에서 벌레가 이동하며 생기는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진동음은 그녀와 소환수를 포위하듯 좁혀왔다.
‘이건 좋지 않은데…….’
정면으로 싸우면 별거 아닌 놈들인데, 이렇게 숨기 시작하면 여러모로 피곤했다.
특히 그녀의 대지 마법과 소환수 모두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 때문에 더 그랬다.
범위 공격 마법을 사용하면 주변에 숨은 적들을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지만, 주변에 일반인들이 가까이 숨어 있어서 사용이 제한됐다.
자신의 안전과 주변 사람들의 안전,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그녀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범위 공격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 진압팀이 도착할 때까지 내가 미끼가 돼서 버텨야 해!’
서예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주변 사람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다.
미끼 역할을 위해 최대한 수비적인 자세로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드드드드…… 부욱!
땅밑에 숨어 있던 벌레가 튀어나오며 달려들었다.
그녀는 목걸이에 손을 올려 소환수를 움직여 공격을 차단했다.
하지만 적의 공격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제대로 된 반격도 하지 못하고 막아내는 데 급급한 상황.
‘조금만 더.’
-드드드드…….
-부욱! 끼이이익!
초인적인 집중력으로 적들의 공세를 막아냈으나, 결국에는 벌레 한 마리의 움직임을 완전히 놓치고 말았다.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벌레 괴수 앞에 서예린의 등이 무방비하게 노출됐다.
뒤늦게 벌레의 기척을 눈치챘지만. 이미 벌레는 공격을 위해 달려들기 직전이었다.
-끼이이이익!!
마법을 시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소환수에게 명령을 내리더라도 특유의 느린 반응속도 때문에 방어할 수 없는 상황.
“아아…….”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충격과 고통에 대비했다.
그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뒤쪽을 막아줘!”
-크룩!
소환수는 외침에 반응해 몸을 움직였다.
계약자인 서예린이 명령을 내렸을 때보다 훨씬 빠른 반응속도였다.
-퍼억!
벌레는 빠른 반격에 제대로 공격도 하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덕분에 서예린은 아무런 상처 없이 무사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안도의 표정이 아닌,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괜찮으세요?”
“……?”
소환수를 움직였던 외침의 주인공, 임시현이 서예린의 눈앞에 서 있었다.
* * *
여자의 말에 따라 어머니를 모시고 가까운 가게 안으로 대피했다. 가게 안에는 이미 도망쳐온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었다.
가게 주인에게 짧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어머니를 구석 자리로 데려갔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균열의 영향으로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확인하며 진압팀의 도착 시각을 예상해 봤다.
“시현아. 옆집 아가씨는 괜찮을까?”
“전투 경험이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아마 괜찮을 거야.”
가게 밖에서 괴수의 비명이 들려왔다.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된 것 같았다. 몇몇 겁 없는 사람들은 가게 창문 쪽에 붙어 전투를 구경했다.
“오! 싸운다!”
“각성자는 저렇게 싸우는구나.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야.”
그녀는 우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데.
마치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보는듯한 태도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머니와 몇몇 사람들도 비슷한 표정을 했다.
잠시 후.
창밖을 구경하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변해갔다.
“어? 어어? 위험해 보이는데.”
“뭐가 저렇게 약해? 저러다 지는 거 아니냐?”
위험을 느꼈는지 구경하던 사람들이 창문에서 슬금슬금 물러섰다.
덕분에 창문 너머로 그녀가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땅속에 숨어버린 벌레 괴수들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고전하는 듯 보였다.
“누가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같은 일반인이 뭘 어떻게 도와줘?”
“…….”
가게 안의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지는 와중에, 내 눈동자가 망설임으로 흔들렸다.
나에게는 땅속 벌레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상황이 눈에 그려질 만큼 강렬했다.
어쩌면 홀로 싸우고 있는 옆집 여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계농장에서 영향을 받은 탓일까?
예전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잠시 내 가방 좀 맡아줘.”
“그게 무슨 말이니?”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시현아…….”
어머니는 내 팔을 붙잡으며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래도 끝내 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으셨다.
“괜찮아. 나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래.”
“…….”
“금방 다녀올게.”
팔을 잡고 있던 손이 스르륵 풀려나갔다.
나는 곧바로 가게 입구로 향했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뭐라 소리쳤지만, 무시하고 달려나갔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가까워지자 벌레들의 움직임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지면 아래에서 여자와 소환수를 포위하듯 둘러싼 상황이었다.
여자는 정신없이 튀어나오는 벌레들의 공세를 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내 시야에 땅을 뚫고 나온 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의식하지 못했는지 무방비하게 등을 보여준 상황.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벌레의 공격에 크게 당할 것 같았다.
이미 몸을 웅크리고 공격할 준비를 끝낸 벌레를 보며 경고하기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커다란 소환수가 눈에 들어왔다.
소환수라는 것을 직접 본 것도 처음이었을뿐더러, 소환수가 계약자의 명령만 따른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알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소리를 질렀다.
“뒤쪽을 막아줘!”
[‘대지 영혼의 파편’이 대상에게 영향을 줍니다.]
-크룩!
내 외침 소리에 소환수는 눈을 번쩍이더니, 뒤쪽에서 공격해 오는 벌레를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퍼억!
벌레는 빠른 반격에 제대로 공격도 하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뒤를 돌아본 여자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도대체…… 어떻게…….”
“괜찮으세요?”
“……?”
“상황이 급하니 짧게 말씀드릴게요. 벌레의 위치를 알려드릴 테니까 공격은 그쪽이 해주세요.”
“그보다 어떻게 내 소환수를…….”
“옵니다! 2시 방향!”
“윽!”
말이 끊겨서 여자의 얼굴에 잠시 불만이 생겨났지만, 이어지는 벌레들의 공격에 금방 진지한 얼굴로 돌아갔다.
“뒤쪽 조심!”
“솟아올라라, 날카로운 대지의 창!”
나는 계속 벌레들의 위치를 알려줬고, 여자는 그에 맞춰서 적절한 방어와 공격을 이어나갔다.
내가 합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주변에는 벌레 괴수들의 시체로 가득해졌다.
“하아. 끝난…… 거죠?”
주변에서 더는 위협적인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네. 이제는 더 느껴지지 않네요.”
옆집 여자는 그제야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거친 숨을 몇 차례 내쉬고는 내게 인사를 해왔다.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전하고 있었거든요.”
“다행이네요. 혹시 괜히 끼어든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자신이 있게 나서 놓고 창피하지만,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크게 상처를 입었을 거예요.”
그녀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다시 한번 내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나는 쑥스러움과 뿌듯함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근데 아까 그건 어떻게 하신 거죠?”
“네?”
“제 소환수에게 명령을 내리셨잖아요. 맞죠?”
“아. 그게…….”
다급했던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소환수를 움직였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났고, 지금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옆집 여자가 집요한 눈빛으로 다시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
“제발 누가 도와주세요! 여기 사람이 쓰러졌어요!”
누군가의 간절한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내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익숙한 목소리.
바로 카페 앞에서 헤어졌던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