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4화
이게 무슨(5)
“도와주세요!”
나는 곧바로 외침이 들려온 방향으로 달려갔다.
등 뒤에서 옆집 여자도 뒤따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투를 벌였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인파를 헤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쓰러져 있는 사과 아저씨와 옆을 지키고 있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아저씨!”
“흑. 시현아.”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나도 잘 모르겠다. 균열이 생기고 힘들어하더니 그냥 이렇게 쓰러져버렸어.”
아저씨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헐떡이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아직 균열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잠시만요. 지나갈게요.”
한발 늦게 옆집 여자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가왔다.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능숙하게 아저씨의 상태를 살폈다.
“이분 가족이시죠?”
“네. 제 남편이에요.”
“혹시 평소에 지병이 있었나요?”
“없어요. 평소에 병원도 잘 안 가던 사람인데…….”
“으음.”
이것저것 확인하더니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일시적인 ‘마나 쇼크’가 온 것 같아요.”
“마나 쇼크요?”
“균열의 영향으로 갑자기 짙은 마나의 영향을 받게 되면, 사람에 따라 이런 증상이 나타나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곧바로 전문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거나, 임시방편으로 포션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녀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혹시 치료용 포션을 가지고 있으신 분 없으신가요?”
“제발 우리 남편을 도와주세요. 나중에 어떻게든 갚을 테니까.”
“치료용 포션이요. 혹시 가지고 계신 분!”
나도 간절한 마음으로 치료용 포션을 찾아 헤맸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가지고 다닐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을 뿐, 포션을 꺼내놓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허억. 컥…….”
“여보. 흐윽. 제발…….”
아저씨의 숨소리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준호 아버지!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엄마.”
주변의 소란스러움을 듣고 찾아온 어머니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소리 질렀다.
그때,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내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순간 가방 안에 있던 ‘야쿰의 젖’을 생각해냈다.
“엄마, 내 가방 좀 줘봐.”
“어어?”
혼란스러워하는 어머니의 손에서 가방을 가져왔다.
그 안에서 ‘야쿰의 젖’이 담긴 유리병 하나를 꺼내 들었다.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둔 채,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리병의 뚜껑을 열고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저 좀 도와주세요.”
어머니와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젖을 먹일 수 있도록 아저씨의 자세를 잡았다.
이 모습을 본 옆집 여자가 끼어들었다.
“지금 뭘 하시려는 거죠? 그분께 아무거나 드렸다가는 상태가 더 위험해질 수 있어요.”
그 말에 아주머니의 표정에 불안감이 가득해졌다. 그러자 어머니가 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아줬다.
“동생, 시현이를 한 번 믿어보자.”
“…….”
어머니의 말에 아주머니는 어렵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저씨의 얼굴을 받치고, ‘야쿰의 젖’을 아주 조금씩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꿀꺽. 꿀꺽.
다행히 아저씨는 큰 저항 없이 그것을 받아넘겼다.
유리병이 반쯤 비워줬을 때쯤.
아저씨의 호흡이 안정적으로 변하더니, 천천히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
“으으음. 으음.”
“아저씨! 정신이 드세요?”
“시현이냐? 내가 지금 여기서 뭘?”
아저씨가 주변을 인식할 정도로 회복이 되자, 아주머니는 다시 한번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흐흑. 흑. 다행이에요. 여보!”
“아니, 왜 울고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저씨,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기억이 잘 안 난다는 것만 빼면. 지금은 괜찮은 것 같다.”
나와 어머니는 물론이고.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옆집 여자는 조용히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더니.
굉장히 기묘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약간 찔리는 구석이 있어서 그녀의 시선을 일부러 못 본 척했다.
아저씨가 완전히 회복해 다시 일어났을 때.
균열로 막혀 있던 공간이 일그러지며 무장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균열 진압팀입니다. 모두 무사하십니까?”
“괴수는 어디 있습니까?”
허허.
참 빨리도 온다.
* * *
“괜찮다니까 그러네.”
“선생님. 마나 쇼크는 후유증이 클지도 모릅니다. 일단 병원으로 가셔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시죠.”
“내일 딸기 하우스 일손 거들어야 하는데.”
“여보! 지금 그게 중요해요?!”
“끄응…….”
구급대원의 설득과 아주머니의 호통에 아저씨는 아무 말 못 하고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병원에 도착하면 연락해 달라는 말을 끝으로, 아저씨 부부를 태운 구급차가 떠나갔다.
균열이 생겨난 현장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구경꾼들과 통제하는 경찰, 괴수들의 시체를 처리하는 진압팀. 거기에 흔치 않은 균열 발생으로 특종을 잡으려는 취재진까지.
특히. 괴수들을 홀로 상대했던 옆집 여자는 마치 기자회견장에 온 것처럼, 엄청난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인터뷰 중이었다.
수습하는 직원의 질문 몇 가지와 응급대원의 간단한 몸 상태 점검이 있고 나서, 나와 어머니는 귀가해도 좋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가 이송된 병원을 찾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든 순간, 기다린 것처럼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발레리안 씨?”
-시현 씨. 근처에 균열이 생겼다는 소식에 걱정이 돼서 연락드렸는데. 계속 연결이 안 되더군요.
“네. 방금 균열에서 빠져나왔거든요.”
-헉!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다치신 곳이 있다면 제가 지금 당장…….
“아아. 괜찮아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발레리안은 몇 번이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흥분을 가라앉혔다.
-어휴. 다행이네요. 제가 소개해 드린 집 근처에서 하필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면목이 없습니다.
“그게 뭐 리안 씨 잘못이겠습니까. 그것보다…….”
나는 마나 쇼크로 위험했던 아저씨에게 젖을 마시게 했던 일을 설명했다.
-그건 굉장히 흥미로운 이야기군요. ‘야쿰의 젖’이 마나 쇼크 증상을 치료했다니.
“근데 괜찮았을까요? 급해서 사용하기는 했는데 저번에 말씀하신 게 마음에 걸려서.”
-물론 비밀 유지를 위해 조심하셔야겠지만, 이번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다만 적당히 둘러댈 만한 이야깃거리는 생각해 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아직 시현 씨가 주목받는 것을 원치 않거든요.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발레리안과 통화는 종료됐다.
* * *
나와 어머니는 아저씨가 이송된 병원을 방문했다.
아직 정밀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의사의 말로는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했다.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아저씨는 잠시 입원하는 거로 결정됐다.
농장에 일손이 부족할 거라며 잠시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지만, 아주머니의 잔소리에 아저씨는 금방 입을 다물었다.
“집사람한테 들었다. 내가 쓰러진 사이에 네가 날 살려냈다고. 고맙다, 시현아.”
“나도 정말 고마워.”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고개까지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부담스러우니까 이러지 마세요. 예전에 두 분이 도와주신 것처럼, 이번에는 제가 도와드렸을 뿐이에요.”
“그래도…….”
“저는 오히려 기뻐요.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을 수 있어서. 그러니까 편하게 생각해 주세요.”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내 말에 따스한 미소를 지었다.
멀쩡한 아저씨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와 어머니는 한결 후련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아까 준호 아버지 쓰러졌을 때,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다니까.”
“그러게. 정말 다행이야.”
어머니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꼬르르륵!
빈속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어머. 그러고 보니까 우리 아직 저녁도 못 먹었네.”
“정신이 없어서 배가 고픈 줄도 몰랐어.”
“얼른 가자. 집에 도착하면 얼른 밥 차려줄게.”
나는 어머니가 차려줄 밥상을 상상하며 발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집 근처까지 도착했을 때, 건물 입구 앞 모자를 푹 눌러쓴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은 우리를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왔다.
“조금 늦게 오셨네요?”
“예린 씨?”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아까보다 훨씬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혹시 우릴 기다리고 있었어요?”
“네. 오래 기다린 건 아니고, 저도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어요. 귀찮은 일들을 뿌리치고 나오느라…….”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요. 어디 다치신 곳은 없죠?”
“괜찮습니다. 엄청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뭘.”
다친 곳이 없다는 말에 어머니의 표정이 밝아졌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차라도 한잔 대접할게요.”
“아뇨. 오늘은 너무 시간이 늦어서…… 그것보다 아드님이랑 단둘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시현이요?”
“……?”
어머니는 물론이고 나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눈치를 살피던 어머니는 천천히 이야기 나누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집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사라지자 굉장히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그녀가 왜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머릿속이 어지러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그녀는 내 얼굴이 뚫어질 정도로 빤히 쳐다봤다.
내가 긴장한 표정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피하자,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왜…… 그러세요?”
“솔직히 말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엄청 많거든요. 제 소환수를 마음대로 움직인 일부터, 그 유리병 속 정체불명의 포션까지.”
“…….”
그녀는 갑자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도와주신 분에게 억지를 쓰고 싶지는 않아요. 애초에 이런 질문 자체가 실례이긴 하지만.”
“그런가요?”
“네. 능력에 관한 이야기는 워낙 민감한 주제니까요.”
아무래도 각성자를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이 없어서 이런 이야기는 처음 들어봤다.
“오늘처럼 남의 소환수에 영향을 준다든가, 효과 좋은 포션을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는 일은 삼가는 게 좋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너무 심각하게 듣지는 마시고요. 늦었으니 이제 들어가죠.”
대화를 끝내고 옆집 여자는 집 건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서로의 집 현관문 앞에서 그녀가 다시 나를 멈춰 세웠다.
“아! 잠시만요.”
“……?”
“아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어요. 이거 받으세요.”
그녀는 나에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서예린이라는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가디언즈’라는 길드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가디언즈 길드에 몸담고 있는 서예린이에요. 엄청 대단한 실력은 아니지만. 혹시 이쪽으로 필요하신 일 있으면 연락해 주세요.”
서예린은 당당한 소개와 함께 한 손을 내밀었다. 얼떨결에 그 손을 맞잡으며 나도 스스로를 소개했다.
“임시현입니다.”
“그게 끝이에요?”
“뭐…… 지금은 농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흐음?”
“혹시 문제라도?”
“그건 아니고. 길드나 관련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럼 연락처라도 주세요.”
그녀의 요청대로 휴대폰으로 연락처를 찍어주었다.
서로의 연락처 교환이 끝났을 때, 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왔다.
“아직 이야기 다 안 끝났어요?”
“이제 막 끝났어요.”
“저녁 드셨나요? 혹시 안 드셨으면 우리 집에 오세요.”
어머니의 권유에 서예린은 손을 내저었다.
“오늘은 너무 시간이 늦어서. 다음번에…….”
-꼬르르르르륵!!
“…….”
아까 내 배에서 났던 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집 앞 통로에 약간 메아리가 칠 정도로 우렁찼다.
서예린의 얼굴은 모자로 가릴 수 없을 만큼 빨개졌고, 어머니의 표정에는 진한 미소가 걸렸다.
“호호. 예의 차리지 말고 들어오세요. 밥 한 그릇에 수저만 더 올리면 되니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머니의 묘한 압박에 그녀는 결국 우리 집에 발을 내디뎠다.
식탁 위에는 손맛 가득한 반찬들이 가득했고, 서예린은 밥 두 공기를 비워낼 정도로 맛있게 식사를 즐겼다.
덕분에 어머니가 굉장히 흡족한 표정을 지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