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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6)화 (2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6화

교감 그리고 책임(2)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아기 여우 가까이 다가섰다.

꽤 가까이 다가왔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어서 좋지 않은 상상을 했는데, 다행히 아주 가늘게 숨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려 가까이 다가갔을 때, 비릿한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등 위쪽의 은빛 털이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아! 저기 괜찮아? 정신 좀 차려봐!”

다급한 내 부름에도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황의 심각함을 깨닫고 손을 뻗어 아기 여우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품에 안으니 곧 끊어질 것 같은 숨소리가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무우?

“잘했어. 작은뿔. 빨리 리아네 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무우우! 무우우!

의기양양한 작은뿔을 한 번 쓰다듬어주고, 리아네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제발 버텨줘…….

* * *

“이런 건 어디서 주워오는 거야?”

급하게 농장으로 데려온 아기 여우를 보고 카네프가 신기해하며 물었다.

“그건 나중에 설명해 드릴 테니까. 일단 치료부터!”

“잠시만요. 금방 치료 약 가져올게요.”

리아네가 약을 가지러 간 사이, 카네프가 아기 여우의 상처를 살펴봤다.

“그렇게 큰 상처는 아닌 것 같네. 아마 치료 약 좀 바르고 붕대만 잘 감아주면 괜찮을 거다.”

“그런가요? 그건 정말 다행이네요.”

“근데 이 여우. 털 색깔이…….”

“가져왔어요!”

리아네가 치료 약과 붕대가 담긴 상자를 가지고 돌아왔다.

“소독부터 할게요. 시현 님이 여우 좀 잡아주실래요?”

“네.”

약을 바르기 위해 다가서려는 순간, 아기 여우의 눈동자가 번쩍하고 떠졌다. 그리고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휘익!

방의 구석으로 도망간 아기 여우는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우리를 향해 이빨을 내보였다.

-아르르르르.

명백하게 경계하는 모습.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네며, 다시 조금씩 녀석에게 다가섰다.

“여우야. 착하지?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상처만 치료해서 보내줄게.”

-끄아앙! 끄앙!

아기 여우는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다가서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녀석은 어떻게든 멀리 떨어지기 위해 재빨리 방구석으로 숨어들었다.

갑자기 급격하게 움직인 탓인지. 아기 여우의 상처 주변 부분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리아네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외쳤다.

“이러다 상처가 더 벌어지겠어요.”

“경계심이 너무 심해서…….”

“하아. 둘 다 나와.”

-딱!

카네프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의 왼손을 중심으로 사슬들이 생겨났다.

아기 여우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도망치려 했지만, 카네프의 사슬을 피할 수는 없었다.

-촤르르륵! 착!

-끼이이잉! 끼잉!

사슬은 순식간에 재빠른 움직임을 제압해 버렸다. 대롱대롱 매달린 아기 여우는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뭐 해? 내가 잡아 둘 동안 빨리 치료해.”

“…….”

카네프의 과격한 행동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기 여우를 치료해 주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는 없어 보였다.

나는 리아네의 도움을 받아 아기 여우의 상처를 살폈다.

카네프가 앞서 말한 대로 상처가 크지 않았다. 소독약으로 상처를 소독하고 적당히 치료 약을 뿌려주었다.

-끄으으응. 끄으응.

상처 부위가 덧나지 않도록 깨끗한 붕대를 감아주는 사이.

아기 여우에 닿은 손가락을 통해서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들어왔다.

마치 교감 능력을 사용한 것처럼.

큰뿔이가 과거에 기억을 보여준 것과 비슷하게 아기 여우의 기억이 조금씩 나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기억 속에 담겨 있는 생생한 감정.

처음에는 작았던 감정의 파도가 점차 커져서 나의 온몸을 뒤덮었다.

두려움, 외로움, 슬픔…….

흐릿한 기억 속에 아기 여우가 느낀 처절한 감정들.

이 작은 몸으로 견뎌냈다고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상처에 붕대를 전부 다 감았을 때.

온몸이 사정없이 떨리면서, 두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뭐, 뭐야? 너는 갑자기 또 왜 이래?”

“시현 님! 괜찮으세요?”

당황한 카네프와 깜짝 놀란 리아네가 내 상태를 물었다.

“아…… 네. 괜찮아요.”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지독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며 감정을 추슬렀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에서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생각보다 내 모습이 더 안 좋게 보이는 모양이었다.

상처 치료가 끝난 아기 여우는 사슬에 매달린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내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카네프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잠시 탈진이 온 것뿐이니까. 내버려 두면 알아서 기운을 차릴 거다.”

“…….”

“이 녀석보다 너는 괜찮은 거야? 갑자기 왜 그래?”

“그게…… 그냥 갑자기 눈물이…….”

횡설수설한 대답에 카네프는 눈을 찡그렸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저녁 식사 준비를…….”

“됐어. 아까 네가 만들어둔 샌드위치랑 대충 챙겨 먹을 테니까. 오늘은 일찍 돌아가.”

평소와 다르게 카네프는 저녁 식사도 마다하고 나를 일찍 돌려보내려 했다.

“카네프 님 말대로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아기 여우는 제가 잘 보살필게요.”

리아네도 굉장히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을 더했다.

억지로 괜찮다고 하는 것도 민폐라 생각하며, 조금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 여우의 상태가 걱정됐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에 따라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 * *

다음 날.

나는 초췌한 모습으로 출근길에 올랐다.

아기 여우에게 전해 받은 감정의 여파로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가는 길에 마주친 발레리안이 걱정스럽게 휴가를 권유할 정도였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피로한 것보다, 아기 여우의 상태가 더 신경이 쓰였다.

강한 감정의 교감 때문인지 본능처럼 마음이 이끌렸다.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리아네를 찾았다.

“시현 님, 오셨군요.”

“좋은 아침입니다. 아기 여우는 어젯밤 잘 지냈나요?”

“그게…….”

그녀는 나를 이끌고 농장 건물 옆 창고로 향했다. 열려 있는 창고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구석에서 작은 기척이 들렸다.

-…….

먼지 쌓인 창고 구석에서 아기 여우가 눈을 빛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경계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어제 방 안에서 쉬게 해주려고 했는데. 너무 반항이 심해서 잠시 이곳에 놔뒀어요.”

“그렇군요.”

“다행히 자기 몸 상태는 아는지. 여기서는 그나마 편히 쉬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아기 여우를 바라봤다. 이 순간에도 녀석은 우리를 경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내 시선에 바닥에 놓여 있는 작은 그릇이 보였다. 그 안에는 우유가 차게 식어 있었다.

“리아네 씨. 저건?”

“어젯밤에 먹으라고 가져다 놨는데. 전혀 손을 안 댔네요. 분명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

바닥에 우유 그릇을 집어 들었다.

잠시 그릇을 내려다보다가 창고를 빠져나와 농장 건물로 향했다.

부엌에서 식은 우유를 씻어내고, 전용 냉장고에서 꿍유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시현 님, 설마 꿍유를 주시게요?”

“네. 그래도 꿍유는 먹지 않을까요?”

뒤늦게 따라온 리아네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꿍유를 사용하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꿍유를 따뜻하게 데웠다. 그리고 깨끗하게 씻은 그릇에 담아 곧바로 창고로 향했다.

-아르르…….

아직도 우리를 경계하는 아기 여우.

나는 그 앞에 꿍유가 담긴 그릇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녀석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전혀 경계심이 풀리지 않는 모습에 내가 먼저 움직였다.

최대한 자세를 낮추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녀석을 불렀다.

“괜찮아. 이리 나와봐. 배고프지?”

-…….

“이거 냄새 좋지 않아? 따뜻할 때 먹어야 진짜 맛있어.”

-타다닷!

나와 우유를 번갈아 쳐다보던 녀석이 갑자기 구석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콰악!

나의 오른손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살이 꿰뚫리는 엄청난 고통에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으윽…….”

“시현 님!”

지켜보던 리아네가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나는 남아 있는 손으로 그녀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며 진정시켰다.

“리아네 씨. 진정하세요.”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조금만.”

아기 여우가 문 오른손에서 뜨거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리아네가 안절부절못하며 움찔거렸다.

나는 남은 손으로 아기 여우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줬다.

녀석은 나의 손길이 공격이라 생각했는지 더 강하게 손을 깨물었다.

으으윽!

살이 뜯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애써 신음을 참으며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받는 게 가능하다면 반대로 전해주는 것도 가능할 거야.

어제 감정을 전해 받았던 것처럼, 아기 여우에게 내 감정을 전해주기 위해 집중했다.

예쁜이와 장난치며 놀던 즐거운 기억.

푸른 초원에서 리아네의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잤던 편안한 기분.

아기 야쿰에게 젖병을 물리며 느꼈던 사랑스러운 감정.

끔찍하고 어두운 감정이 아닌,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내 손을 타고 녀석에게 흘러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내 손을 물고 있던 이빨에서 점차 힘이 빠져나갔다.

덕분에 손에서는 더 많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지만, 내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생겨났다.

아기 여우의 눈빛에서 경계심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경계심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혼란이라는 감정이 차올랐다.

아마 나에게서 흘러들어온 따뜻한 감정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싱긋 웃으며 천천히 아기 여우에게서 물러섰다.

“시현 님! 빨리 손 좀 보여주세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요! 살점이 다 뜯어질 정도로 다쳤는데.”

리아네는 상처 부위를 살피더니, 손수건을 꺼내 급히 지혈했다.

손수건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나서야 출혈이 멈췄다.

“상처가 덧나기 전에 얼른 농장 건물로 가서…… 시현 님! 지금 웃을 상황이 아니라고요!”

“아아. 죄송해요.”

울상인 리아네에게 사과하면서도 내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성공했잖아요?”

“네?”

“저쪽이요.”

내가 가리킨 곳을 본 리아네의 얼굴에 놀라움이 퍼져나갔다.

그곳에는 제 발로 창고 구석에서 걸어 나와.

허겁지겁 꿍유를 마시고 있는 아기 여우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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