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7화
교감 그리고 책임(3)
“어이구! 잘하는 짓이다.”
“…….”
“귀한 꿍유를 가져다주면서 손까지 다쳐서 와?”
“꿍유는 제거를 가져다준 건데…….”
“조용히 안 해?!”
“…….”
카네프의 다그침에 나는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옆에서는 리아네가 다친 손을 소독하는 중이었다.
“쯧쯧. 그 여우 새끼가 뭐라고.”
그는 혀를 차면서 내 상처를 살펴봤다. 뼈가 보일 정도로 피부와 살점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생각보다 상처가 깊어. 이래서는 농장 일도 힘들 거야.”
“반대쪽 손은 괜찮으니까. 대충 약 바르고 붕대 감으면 문제없습니다.”
“너 계속 쓸데없는 소리 하면, 상처보다 입을 먼저 꿰매버릴 거야.”
“…….”
쭈굴…….
리아네가 상처의 소독을 끝마쳤을 때쯤, 거칠게 문을 연 안드라스가 허겁지겁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시현 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안드라스 씨?”
“카네프 님에게 연락받았습니다.”
성큼성큼 다가온 그는 품에서 이것저것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건 저희 가문에서 자랑하는 치료 연고, 그리고 이건 세레데온의 샘물이 한 방울 들어간 포션, 깨끗하게 소독한 수술 도구…….”
“그만 꺼내, 정신없어. 먼저 수술 도구부터 줘봐.”
도구를 건네받은 카네프는 탁자 위에 도구들을 늘어놨다.
“설마…… 사장님이 하시는 건 아니죠?”
“뭘 아니긴 아니야? 여기서 나만큼 직접 몸을 꿰뚫어 본 사람 없을걸?”
굉장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발언에 다급히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하하.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실제로 카네프 님은 저랑 리안의 상처를 치료해 주신 적도 있으니까요.”
“정말요?”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자! 이것부터 마시세요.”
“이건 뭐죠?”
“통증을 줄여주는 마취약 같은 겁니다. 카네프 님의 실력은 확실한데, 손이 좀 거칠어서…….”
안드라스 씨…….
점점 더 불안해지는데요?
“이 정도 상처에 뭘 마취약까지 마셔?”
“예전에 다른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셔놓고, 치료하다 기절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다 엄살이야, 엄살!”
소름 끼치도록 생생한 증언에 일단 마취약을 들이켰다. 금방 술을 마신 것처럼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카네프는 내 모습을 보며 한번 피식 웃고는 본격적으로 수술을 시작했다.
먼저 상처 난 곳에 포션을 반쯤 들이부었다.
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상처가 조금씩 아물었다.
그다음.
실을 꿴 바늘이 카네프의 손짓에 따라 허공을 떠다니더니, 순식간에 상처 부위를 봉합시켰다.
마취약의 효과가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카네프가 신경을 써준 것인지. 간질간질한 느낌만 들었을 뿐. 통증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리아네와 안드라스의 도움을 받아.
수술부위에 깨끗한 솜을 덧대고 붕대를 감았다.
“간단한 일지 작성만 빼고 나머지 농장 일은 쉬어. 괜히 무리하다가 덧나면 안 되니까.”
“네…….”
“그리고 남은 포션은 나중에 붕대 교체하면서 조금씩 뿌려줘. 저놈이 가져온 포션이니까 효과는 확실할 거다.”
“…….”
“너 설마 남은 포션을 그 여우 새끼한테 쓰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뜨금!
“그렇게 한번 해봐. 예전에 기절했던 놈들의 기분을 직접 느끼게 해줄 테니까.”
“알았으니까 무서운 소리 하지 마세요.”
카네프는 나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리아네.”
“예. 카네프 님.”
“내 몫으로 꿍유 몇 병 남아 있지?”
“지금 열 병 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럼 당분간 내 몫을 그 여우 새끼한테 줘.”
생각지도 못한 그의 결정에 나는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사장님…….”
“이상한 표정 짓지 마! 그 여우 새끼 상처만 회복되면 당장 내쫓아버릴 거니까.”
카네프는 괜히 심술 가득한 말을 하며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다.
그 츤데레 같은 모습에.
나는 물론이고 리아네와 안드라스 모두 훈훈한 미소를 지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 * *
상처 입은 오른손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까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소요됐다.
안드라스가 가져다준 포션의 효과가 좋아서인지 굉장히 빠른 회복 속도였다.
지금은 농장 일을 하는데도 전혀 무리가 없고, 오른손에는 약간의 흉터만 남아 있었다.
-무우우.
“그래. 빗질은 오랜만이지?”
오늘은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아기 야쿰에게 해주지 못했던 빗질을 해주고 있었다.
얌꿍이는 특히 빗질 받는 것을 좋아했는데, 꽤 오랫동안 빗질을 받았음에도 내 곁을 쉽게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 우리 얌꿍이 너무 욕심부리는데?”
-무우우! 무우우!
“하하, 알았어. 오랜만이니까 조금만 더 서비스해 줄게.”
평소의 모습답지 않은 얌꿍이의 투정에 나는 웃으며 다시 브러쉬를 들었다.
-슥. 스윽.
이제는 전문가라도 불러도 손색없는 빗질 실력.
섬세하고 부드러운 빗질에 얌꿍이는 녹아내릴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빗질에 집중하는 사이,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금방 시선의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윤기 흐르는 은빛 털에 살짝 붉은 기운이 감도는 눈동자, 뾰족한 귀와 앙증맞은 코.
붕대를 풀고 완전히 기운을 되찾은 아기 여우였다.
“너도 해줄까?”
-…….
내가 말을 걸자 녀석은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최근에 아기 여우는 이런 행동을 계속 반복했다.
주변을 맴돌면서 관심을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호다닥 도망쳤다.
여우는 ‘개과’ 아니었나?
하는 짓은 완전 고양이 같은데…….
-무우우?
“아. 미안. 다시 해줄게.”
* * *
농장 식구들 그리고 아기 야쿰의 점심 식사를 챙긴 뒤. 그릇에 우유를 담아 창고로 향했다.
-드르륵! 탁!
나무로 된 문이 열리고. 동시에 창고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임시로 만들어 놓은 보금자리.
그곳에서 아기 여우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자! 배고프지? 점심 먹자.”
보금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우유 그릇을 내려놨다. 그리고 내가 우유 그릇에서 멀찍이 물러서자 아기 여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주일간 꽤 열심히 돌봐줬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아직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았다.
섭섭한 마음이 아예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식사하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끔 창고를 나서려는데.
-끼이잉. 끼잉.
처음으로 아기 여우가 먼저 나에게 반응을 보였다.
내심 설레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왜 그래? 더 필요한 게 있어?”
-후다닥.
“…….”
-…….
가까이 다가서려 하자 후다닥 도망가 버렸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물러났다. 그러자 아기 여우는 다시 나와서 식사를 계속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하하하…….”
곁은 내주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떠나지는 말라는 거야?
이거 참 이기적인 여우네.
그래도 제멋대로 하려는 여우의 모습이 어이가 없으면서,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나를 의지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알았다. 알았어. 다 먹을 때까지 여기 있을 테니까.”
녀석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식사에 집중했다.
어휴. 참…… 나도 완전 호구네 호구야.
저렇게 마음대로 행동하는데. 뭐 때문에 하나하나 예쁘게 보이는 건지…….
속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멍하니 아기 여우의 식사를 지켜봤다.
* * *
늦은 오후.
농장의 하늘에는 진한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비가 내린 적은 여러 번 있었는데. 이번에는 한 번 제대로 쏟아질 분위기였다.
리아네는 재빨리 걸어두었던 빨래들을 걷었고.
나는 농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흩어져 있는 장비들을 챙기고, 마구간의 말들이 비바람을 맞지 않도록 문을 점검했다.
다음에는 축사로 향해 문을 활짝 열어뒀다.
야쿰들도 본능적으로 날씨를 예상했는지 금방 축사 안으로 몰려들었다.
아기 야쿰 삼 남매도 예쁜이를 따라 축사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축사의 상황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왔다. 농장 주변에 바람이 거세지면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농장 건물로 돌아갔을 때는 리아네도 집안의 확인을 끝내고 난 뒤였다.
-우르르르릉.
하늘에서 사나운 천둥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녁 준비를 끝마치고 퇴근할 시간이 되자,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쳤다.
-우르르르릉. 번쩍!
-콰콰쾅!!
살벌한 날씨.
하지만 이런 때를 대비했기에 준비는 완벽했다.
농장에서는 비가 와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에 우비와 장화는 미리 챙겨놓았었다.
“시현 님. 제가 모셔다드릴까요?”
“아뇨.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멀지도 않고. 우비도 미리 챙겨왔으니까요.”
나는 우비와 장화를 챙겨입고 농장 건물을 나섰다.
“조심해서 가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내일 뵐게요!”
걱정하는 리아네에게 인사를 남기고 비바람을 나아가기 시작했다.
울타리 옆을 지나던 중에 축사 건물 밖에 서 있는 큰뿔이의 모습이 보였다.
축사 안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무리를 지키기 위해 홀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 모습이 대견해 보여 큰 목소리로 응원해 줬다.
“큰뿔아! 정말 멋있어! 힘내!!”
비바람 속에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큰뿔이는 우렁찬 울음소리로 대답했다.
-부우우우!
큰뿔이를 향해 크게 손을 한번 흔들어 준 뒤에 다시 떠나려다, 문득 창고 안에 혼자 있을 아기 여우가 떠올랐다.
밤새도록 천둥 번개와 비바람이 몰아치는 동안.
아기 여우는 홀로 어두운 창고 안에 남아 어떤 기분을 느끼고 있을까?
그 모습을 생각하니 흠뻑 젖은 우비처럼.
나의 마음도 축축하게 젖어 우울해지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창고가 있는 곳을 바라보다가 다시 퇴근길을 따라 걸어나갔다.
* * *
-우르르르릉. 번쩍!
-콰콰쾅!!
-두두둑…… 두두둑…….
천둥과 바람이 들이치는 소리가 창고 안에 계속 울려 퍼졌다.
아기 여우는 그 소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듯, 창고 구석에서 숨어 몸을 동그랗게 웅크렸다.
-덜덜덜덜.
-끼이잉…….
창고 안은 비바람과 추위를 막아줬지만.
아기 여우가 느끼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여우는 더욱 몸을 웅크리고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엄마, 아빠와 함께 맛있는 걸 먹고.
온종일 뛰어놀며 보냈던 날들.
하지만 그날의 기억들은 점점 흐릿해져 아기 여우의 불안함을 더욱 커지게 했다.
점점 버티기 힘들어지려 할 때.
아기 여우의 머릿속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와 치료해 주고, 식사를 챙겨주고, 매일같이 찾아와 어색하게 말을 걸던 사람.
그리고 손을 깨물었을 때.
자신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손길과 포근했던 기운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끼이잉…… 끼이잉…….
아기 여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쓸쓸한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때.
-드르륵! 탁!
창고 문이 열리고 우비를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우비 안까지 다 젖어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