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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9)화 (2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29화

새로운 에스테르(1)

-스으윽. 스으윽.

브러쉬가 야쿰의 털을 빗으며 나는 기분 좋은 소리.

나는 그 빗질 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불렀다.

예쁜이와 삼 남매를 통해 다져진 빗질 실력은 이제 경지에 올랐다고 할 만큼 자연스럽고 거침없었다.

“어때? 시원하지?”

-부우우우…….

물음에 초롱이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더욱 열심히 빗질을 이어나갔다.

[대상은 당신에게 ‘친밀’한 감정을 가집니다.]

[대상은 편안한 기분을 느낍니다.]

자연스럽게 발동된 교감 능력에 초롱이뿐만 아니라 또 다른 파동이 느껴졌다.

과거 예쁜이를 살폈을 때 느껴졌던 작은 파동. 며칠 전부터 초롱이에게도 그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바로 초롱이도 새끼를 가진 것이다.

처음처럼 많이 놀라지는 않았지만, 다시 경험한 이 작은 생명의 파동은 여전히 나를 경이롭고 설레게 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최근 나의 관심은 초롱이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혹시 불편한 곳은 없는지, 먹이가 부족하지는 않은지 항상 살폈다.

[대상은 푸른 샛별 버섯을 원합니다.]

“오구오구. 초롱이가 샛별 버섯이 먹고 싶었구나. 조금만 기다려. 내가 잔뜩 구해줄게.”

-부우!

흐음. 푸른 샛별 버섯이 남아 있는 게 없을 텐데.

다른 것들도 부족하니 수인 마을에 한 번 다녀와야겠네.

오늘의 일정에 대해 생각하며 걸어가던 중.

멀리서 쪼그려 앉아 있는 리아네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불렀다.

“리아네 씨?”

“쉬이잇!”

“……?”

리아네는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동작을 취했다.

어리둥절한 나에게 그녀는 천천히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여우 귀를 가진 소녀가 얌꿍이와 함께 낮잠을 자고 있었다.

서로 꼭 끌어안은 모습이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장면을 꼭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에 천천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최대한 둘의 얼굴이 잘 나오는 각도로 사진을 찍어댔다.

하아.

한동안 휴대폰 배경화면 걱정은 없겠네.

나와 리아네가 귀여움에 푹 빠져 있는 사이, 뾰족한 여우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눈을 뜬 소녀는 잠에 덜 깬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졸린 눈으로 나를 발견하고는 휘청휘청 내 쪽으로 다가왔다.

혹시 넘어질까 봐 한 발짝 내디디며 양손을 벌렸다. 그러자 쏘옥하고 내 품에 안겨 왔다.

“은율아, 얌꿍이랑 같이 자고 있었어?”

은율이는 내 품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잠꼬대인지 대답인지 모를 행동을 취했다.

찰랑거리는 은빛 머리카락과 풍성한 꼬리. 뾰족한 여우 귀를 가진 소녀에게 ‘은율’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처음에는 이곳 마계의 방식으로 이름을 정할까 하다가, 그냥 내가 마음에 드는 한국 이름으로 지어줬다.

내가 느끼는 책임감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른 농장 식구들도 ‘은율’이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했다. 안드라스가 조금은 아쉬운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그렇게 새로운 식구가 된 은율이는 조금씩 농장에 적응해 나갔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보이던 경계심도 조금씩 사라져갔다.

가장 먼저 친해진 건 리아네였다.

워낙 은율이를 귀엽게 여겼고, 나보다 더 많이 챙겨줬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내가 퇴근하거나 자리를 비우면 그녀가 맡아서 돌봐주고 있다.

다음은 안드라스.

라이네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않았다. 대신 올 때마다 신기한 장난감이나 예쁜 옷들로 은율이의 관심을 끌었다.

리아네는 반칙(?)이라며 화를 냈지만, 안드라스는 허허롭게 웃으며 받아넘겼다.

마지막으로 카네프는 아직도 어색한 관계를 유지했다.

처음 만났을 때 사슬을 이용해 결박했던 일이 큰 충격으로 남아 있는지, 은율이는 카네프를 지금도 무서워했다.

카네프 스스로 ‘그 여우 꼬맹이가 날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내가 보기엔 내심 쓸쓸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도 두 사람의 어색함을 풀어주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그렇게 농장에 적응하는 사이 은율이의 모습도 많이 변했다.

조금 야위었던 과거의 모습에서.

지금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젖살을 자랑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불안함과 우울함도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는 창고의 구석이 아니라. 농장의 한가운데서 얌꿍이와 낮잠을 잘 정도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은율이가 내 품에 안기자, 얌꿍이도 슬금슬금 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왼쪽에는 은율이, 오른쪽에는 얌꿍이를 보듬는 모습이 됐다.

리아네는 그 모습을 보며 정말 부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른 화제를 꺼냈다.

“리아네 씨. 오늘 수인 마을에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벌써 야쿰 먹이가 다 떨어졌나요?”

“네. 야쿰에게 아직 부족한 건 아닌데. 초롱이에게 줄 푸른 샛별 버섯도 구해놓으려고요.”

“알겠어요. 그럼 점심 먹은 뒤에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할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리아네가 외출준비를 위해 먼저 떠나갔다.

나도 슬슬 점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코오오.”

-무우우.

“이런…….”

아기 천사처럼 잠든 은율이와 얌꿍이 때문에 나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 * *

마구간에서 말들을 데려와 장비를 채우고 마차에 연결했다. 오랜만에 외출이 신나는지 말들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짐을 싣고 출발 준비를 끝마쳤을 때.

은율이가 쪼르르 마차 쪽으로 다가왔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나 두고 어디 가려는 거야?’라고 묻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은율이를 어떻게 할지 전혀 생각을 안 했네.

리아네도 나와 같이 수인 마을에 갈 예정이니, 농장에는 사장님과 은율이만 남게 된다.

뭐.

사장님이 갑자기 은율이를 못살게 굴지는 않겠지만, 아직은 둘만 남겨두기 불안한 게 사실이었다.

금방 생각을 정리하고 은율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은율아. 나랑 외출하러 갈래?”

-끄덕끄덕.

이 작은 소녀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방긋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은율이도 데려가는 건가요?”

“네. 꽤 오랫동안 농장에만 있었으니까. 오늘은 같이 외출이라도 하려고요.”

질문에 대답하며 은율이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 * *

오랜만에 방문한 수인 마을.

우리를 태운 마차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많은 수인의 시선이 쏠렸다.

처음 왔을 때의 경계심 가득한 눈빛은 사라지고, 약간의 호의마저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익숙한 돼지 수인 그렉과 사슴 수인 헤론이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누님!”

“안녕하십니까?”

“으…… 응. 잘 지냈어?”

회색 늑대를 같이 사냥한 뒤로 두 수인은 나와 리아네를 형님, 누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좀 어색하고 부담스러웠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어서 곤혹스러웠다.

“킁, 저희는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형님, 옆에 있는 아이는 누구입니까?”

그렉이 특유의 콧소리와 함께 은율이에 관해 물었다.

“잠시 내가 보호하고 있는 아이야.”

“킁. 저는 당연히 형님과 누님의 자식인 줄 알았습니다.”

“그, 그럴 리가요?! 저랑 시현 님의 아이라니…….”

“그런 거 아니야.”

리아네는 평소 같지 않은 당황한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얼굴까지 붉어져 조금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은율이에 대해 오해를 풀던 중, 또 하나의 반가운 얼굴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사탕 아저씨!!”

날렵한 움직임의 고양이 소녀가 마차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묘기와 같은 동작으로 나와 리아네 사이를 쏙 파고들었다.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마족 언니도 안녕!”

활기찬 미루의 인사에 우리의 얼굴에 자연스레 미소가 걸렸다.

“어? 옆에는 누구예요? 아저씨 딸?”

만나는 사람마다 나와 은율이의 사이를 오해하니 굉장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은 기쁘면서도 혹시 은율이가 이런 상황을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냐. 잠시 내가 데리고 있는 아이야. 이름은 은율.”

“은율? 특이한 이름이네요.”

미루는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로 은율이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다.

“안녕! 나는 미루야.”

“…….”

은율이는 이런 관심이 부담스러운지 내 팔 뒤로 몸을 숨기며 눈을 피했다. 미루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어나갔다.

“아하. 은율이는 부끄럼이 많은 편이구나. 괜찮아 조금씩 친해지면 되니까.”

미루와 인사가 끝나갈 때쯤, 주변에 마을 아이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탕 아저씨다!”

“사탕 아저씨가 왔다!”

-우르르르.

사탕 아저씨가 왔다는 외침에 마을의 아이들이 금방 내 마차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아이들 모두가 기대감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을에 방문할 때마다 미루와 몇몇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줬었는데, 그것이 발단되어 마을의 모든 아이에게 ‘사탕 아저씨’라고 불리게 됐다.

사탕을 받지 못하면 실망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넉넉하게 양을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들 모두에게 줄 사탕을 매번 준비하게 됐다.

이번에도 짐칸에 미리 실어놓은 사탕과 과자를 꺼내 들자, 아이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자! 너희들 차례로 줄 서야 하는 거 알지? 새치기하거나 더 달라고 억지 부리면, 바로 아저씨한테 일러바칠 거야.”

마차 위에 올라선 미루가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휘어잡는 그 카리스마에 덩치가 더 큰 아이들도 순순히 미루의 말을 따랐다.

리아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한 과자와 사탕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잘 먹겠습니다.”

“사탕 아저씨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요.”

“꼬마워요. 아조씨.”

미루와 비슷한 또래부터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까지.

사탕과 과자 하나에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서는 흔한 과자일지라도 이곳의 아이들에겐 큰 행복이었다.

매번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있지만,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를 생각하면 당분간은 사탕 아저씨 역할을 계속할 것 같았다.

“자. 너희들도 받아.”

“어엇! 괜찮습니까?”

“킁, 안 주셔도 되는데.”

안 줘도 되기는.

아이들 뒤에 서서 군침 흘리고 있었으면서.

“아이들에게 주고 남아 있는 거니까. 하나씩 가져가.”

“크흠. 그럼…….”

“킁. 진짜 안 주셔도 되는데.”

내가 건네는 과자와 사탕을 보며 둘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콱!

-콱!

“아악!”

“악!”

“장비 확인하라고 시켜놨더니. 두 놈 다 왜 농땡이 치고 있는 거야.”

갑자기 등장한 레빌이 인정사정없이 두 사람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으으. 레빌 아저씨 아프잖아요.”

“컹. 농땡이가 아니라. 형님이랑 누님이 만나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얼른 가서 장비 확인이나 끝내.”

두 사람은 몸을 돌려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아직 받지 못한 과자와 사탕이 미련이 남는지 연신 뒤를 힐끔거렸다.

“자! 이거 받아.”

내가 과자와 사탕을 던져주자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움직여 받아냈다.

“헤헤. 감사합니다. 형님!”

“컹! 잘 먹겠습니다!”

둘은 과자와 사탕을 받자마자 신난 모습으로 후다닥 멀어져갔다.

“어휴. 저놈들은 언제 철들려고…… 그거 아이들한테 나눠주려고 가져온 거 아냐?”

“괜찮아요. 아이들한테 나눠주고 남은 것들이니까요. 레빌 씨도 좀 드릴까요?”

“나는 됐다. 나중에 너구리 영감님이나 더 챙겨드려라. 한동안 네가 안 와서 계속 기다리는 것 같으니까.”

사탕을 거절한 레빌의 시선이 내 옆쪽으로 향했다.

“옆에는 누구냐? 네 딸이냐?”

“……너구리 영감님 가게에서 설명해 드릴게요.”

매번 만나는 사람마다 은율이와의 관계를 설명한다고 생각하니, 살짝 머리가 어질해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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