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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0)화 (30/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0화

새로운 에스테르(2)

이제는 익숙한 너구리 영감님의 가게에 도착했다.

여느 때처럼 가게 안팎으로 특유의 진한 약초 냄새가 가득했다.

은율이는 가게에 매달려 있는 약초들이 신기한지, 내 곁에 서서 부지런히 시선을 움직였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너구리 영감님은 우리가 올 줄 알았다는 듯 반응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

“이제 오는구나.”

“안녕하세요. 영감님. 저희가 온 줄 어떻게 아셨어요?”

“아이들이 신나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데 모를 수가 있나. 아마 동네 사람들 전부 알았을 거다.”

“마을에 조금 민폐였나요?”

내가 머쓱한 표정으로 묻자, 레빌이 빠르게 나서서 부정했다.

“아니다. 시현. 조금 시끄러워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싫어할 사람은 없다. 영감님은 자기가 먹을 사탕이 부족할까 봐 심술을 부리는 거다.”

“뭐?! 내가 무슨 심술을 부렸다고 그래?”

“괜한 사람한테 심술부리지 않으셨습니까? 마음에 안 든다면 이것들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이놈아! 그걸 네가 왜 가져가? 당장 이리 내놔!”

너구리 영감과 레빌은 사탕과 과자를 두고 아옹다옹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너구리 영감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시현에게 심술부린 거 먼저 사과하세요.”

“크흠. 큼. 미안하다.”

“하하. 사과하실 것까지는 없는데. 그리고 영감님 드릴 것들은 따로 챙겨놨어요. 여기 받으세요.”

나는 가져온 사탕과 과자를 건넸다. 너구리 영감은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그 모습에 레빌은 물론이고 리아네와 미루까지도 한심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사탕과 과자를 챙긴 너구리 영감님의 시선이 내 옆에 딱 붙어 있는 은율이에게로 향했다.

“은월족의 아이구먼.”

“어떻게 아셨어요?”

“은빛 털에 여우 귀와 꼬리. 만나기 힘든 종족이라 그렇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아.”

“영감님은 은월족을 직접 만나보신 건가요?”

“아주 오래전에 이곳저곳 돌아다녔을 적에 몇 번 본 적 있지. 딱히 잘 안다거나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건 아냐.”

혹시나 은월족에 대해 정보를 기대했는데 너구리 영감님도 많은 걸 알고 있지는 않았다.

“보면 볼수록 너도 신기한 놈이야. 자기는 인간이면서 용마족과 은월족을 데리고 다니다니, 큰 도시에 나가면 지나다니는 것만으로 사람들이 몇 푼 던져줄 정도야.”

그 정도로 신기한 조합인가?

인간인 나는 그럴 수 있다 쳐도. 리아네 씨와 은율이도 마계에서 꽤 특이한 존재인 것 같았다.

“저 은월족 아이를 소개해 주려고 찾아오지는 않았을 테고. 이번에도 필요한 물건이 있는 거지?”

“네. 푸른 샛별 버섯이랑 저번에 필요했던 것들…….”

나는 필요한 약초와 채집물들을 말했다. 너구리 영감은 장부를 꺼내 살펴보며 대답했다.

“저번에 가져갔던 것들의 절반 정도는 내줄 수 있겠어. 푸른 샛별 버섯은 아주 조금밖에 없고.”

“그 정도밖에 없어요? 혹시 더 얻으려면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요?”

“글쎄다. 아마 금방 채워줄 수는 없을 것 같다.”

“혹시 돈이 부족한 거라면…….”

“돈이 문제가 아니야. 그러니까…….”

잠시 말을 멈춘 너구리 영감은 미루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루야. 촌장에게 가서 저번에 내가 부탁한 것들 내어달라고 해라.”

“에? 갑자기 촌장님한테요?”

“그래. 내가 보냈다고 하면 알아서 내어줄 거다.”

미루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너구리 영감님의 말대로 가게를 빠져나갔다.

미루가 떠나고 나자 영감님은 어두운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에휴. 요즘 마을의 사정이 별로 안 좋아.”

“무슨 일인데요?”

“마을 주변으로 마수들이 날뛰기 시작했어. 약초 캐는 건 물론이고, 도시로 나가는 길도 위험할 정도야.”

“레빌 씨랑 같이 회색 늑대도 잡았었잖아요?”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레빌의 입에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때 너희들의 도움으로 잠시 상황이 좋아지긴 했다만, 지금은 다시 상황이 안 좋아졌다. 회색 늑대뿐만 아니라 다른 마수들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야.”

“그럼 이번에도 저희가 좀 도와주면 안 될까요?”

“마음은 고맙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 같다. 우리를 돕겠다고 마을에 계속 머물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잖아?”

“…….”

“저희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도시의 용병 길드에서 용병을 구하면 되지 않나요?”

리아네의 물음에 너구리 영감님이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클클. 마족 아가씨. 우리도 당연히 그 생각을 해봤지. 하지만 용병 길드에서 수인 마을의 의뢰를 맡을 용병은 없다더군.”

“영감님 말대로다. 용병 길드뿐만 아니라. 영주성에도 찾아가 도움을 구했지만, 문전박대당하고 말았다. 세금은 칼같이 받아가는 놈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마을에 찾아오는 상인들도 발걸음을 끊게 될 거다. 생필품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다 떠나고 말겠지.”

생각보다 심각해 보이는 상황에 나와 리아네도 덩달아 표정이 어두워졌다.

상황을 모르는 은율이만 내 손을 잡고 멀뚱멀뚱 지켜봤다.

* * *

“잘 갔다 왔냐?”

“네.”

“꼬맹이는?”

“오다가 잠이 들어서 리아네 씨가 방에 데리고 갔어요.”

“응?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뭐 또 필요한 거 못 구했냐?”

카네프의 물음에 나는 수인 마을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는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뭐, 용병들이 수인을 싫어한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긴 하지.”

“이유가 따로 있나요?”

“다 밥그릇 싸움이지. 옛날부터 신체 조건과 전투능력이 뛰어난 수인은 용병들의 견제 대상이었으니까.”

대화를 나누던 중간에 리아네가 은율이를 방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다.

“수인 마을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셨군요.”

“네.”

“오면서 조금 생각해 봤는데. 보통은 저렇게 마수가 갑자기 늘어나는 경우가 흔치 않거든요? 이건 제 추측일 뿐이지만, 어쩌면 우리 농장이 마을에 영향을 줬을지도 몰라요.”

“네? 우리 농장이요?”

전혀 생각지 못한 이야기에 깜짝 놀라 되물었다. 리아네는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풀어놨다.

“보통 마수들은 자신과 다른 마수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해요. 원래 이 주변의 영역은 모두 야쿰의 영향권이었을 거예요.”

“그렇겠지. 야쿰은 가장 강력한 마수 중 하나니까.”

“그런데 농장이 만들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죠. 엄청나게 넓게 울타리를 쳤지만, 원래 야쿰이 영향을 미치던 영역에 비해서는 좁아진 거죠.”

“리아네, 네 말은 야쿰의 좁아진 영역만큼 다른 마수들이 영향권을 넓혔다?”

“네. 일단은 추측일 뿐이지만요.”

“잠깐만요. 그럼 정말로 우리 농장 때문에 수인 마을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거예요?”

내 다급한 물음에 카네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야.”

“그럼 어떻게 해요?”

“뭘 어떡하긴. 자기들이 알아서 해결해야지.”

“네? 아니. 우리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카네프의 무책임한 모습에 나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반박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더 냉정한 태도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 수인 마을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야. 주인이 누구였더라?”

“셀베르크 가문입니다.”

“맞아. 셀베르크! 처음 농장을 계획하면서 이미 그 가문과 합의를 끝냈어. 우리 쪽에서는 적절한 보상을 제시했고, 셀베르크는 수락했지. 하지만 합의한 내용에 수인 마을에 대한 건 없어. 굳이 우리가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

분명 레빌은 도움을 청하러 간 영주성에서도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했다. 수인 마을의 주인도 책임을 포기한 것이다.

“시현, 잘 들어. 야쿰을 키우기 위한 먹이는 다른 곳에서 충분히 구해올 수 있어. 마왕성에서 그 정도는 충분히 지원해 줄 거고.”

“…….”

“하지만 그 수인 마을을 돕는 건 전혀 다른 문제야. 마왕성에서도 이 일은 관여하려 하지 않을 거다. 괜한 문제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

마왕성도 절대 나서지 않을 거란 말에 나는 고개를 푹 떨궜다.

짧지만 수인 마을에서 만났던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귀엽고 발랄한 미루,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이 많은 레빌, 심술궂은 너구리 영감님, 철없는 헤론과 그렉.

그리고 작은 사탕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는 순수한 아이들까지.

낙담한 내 모습에 카네프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부스스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아∼ 진짜! 또 저러네. 너는 왜 항상 귀찮은 일만 만들어 오는 거야.”

“…….”

“죽을 것 같은 표정 그만해. 전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까.”

“정말이요?”

나는 번쩍 고개를 들어 카네프를 똑바로 응시했다.

“마왕성이 나서거나, 우리가 직접 도와주는 건 어렵지만.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건 괜찮을 거야.”

“간접적으로?”

“용병 말이야. 네가 용병 구하는 일을 도와주면 되잖아.”

“하지만 제가 무슨 수로요?”

이번에는 카네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 그 멍청한 전령이 주고 간 거 잊어먹었냐?”

“아…….”

“아무리 수인을 무시하는 용병이라도 마왕이 임명한 에스테르를 무시하지는 않겠지. 안 그래?”

그때 리아네가 기다렸다는 듯이 상자 하나를 내게 건넸다. 마왕의 전령이 전해주고 간 그 상자였다.

상자 안에는 마왕의 문양이 새겨진 신분패와 고급스러운 장신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은은하게 푸른 기운을 내뿜는 신분패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근데 이것만 가지고 될까요? 용병들을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쉽게 대화가 통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걸 보고도 뻗대는 놈들은 없을 거야. 그래도 뭐…… 확실한 게 좋긴 하겠지. 그거 이리 줘봐.”

카네프는 신분패를 받아들고 뭔가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왼손에서 가느다란 사슬들이 생겨나 신분패를 휘감았다.

잠시 후 신기하게도 신분패를 휘감았던 사슬은 흡수되어 사라지고, 끄트머리에 한 뼘 정도 되는 쇠사슬만 남겨졌다.

“자. 받아라. 혹시 용병 길드에서 말이 안 통하는 놈 있으면 그 쇠사슬을 잡아당기면 돼. 그럼 다 해결될 거다.”

카네프가 휙 던진 신분패를 받아들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듯했다.

슬쩍 옆으로 다가온 리아네이처 함께 신분패와 카네프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다.

“뭐야? 둘 다 왜 그런 표정이야?”

“사장님. 혹시 이상한 짓 하신 건 아니시죠?”

“내가 뭘?”

“갑자기 폭발한다거나,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난다거나…….”

내 말에 리아네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네프는 짜증이 뒤섞인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니, 이 녀석들은 해줘도 난리야. 내가 설마 마왕이 내려준 하사품에 허튼 짓거리를 했겠어?”

“네.”

“사장님이라면…….”

“…….”

나와 리아네의 즉답에 카네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에 삐진 사장님을 달래느라 나와 리아네는 한동안 고생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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