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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화 (3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1화

새로운 에스테르(3)

“그러니까 네가 용병을 고용하는 걸 도와주겠다고?”

레빌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옆에 너구리 영감님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지켜봤다.

“네. 저도 여기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 어떻게든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고맙기는 한데…….”

레빌이 복잡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와는 달리 너구리 영감님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일단은 촌장에게 한번 데려가 봐. 도와준다는데 지금의 우리 처지에서는 감지덕지한 일이지.”

“알겠습니다. 시현, 나랑 같이 이 마을의 촌장에게 가보자. 아마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야.”

너구리 영감님의 제안대로 우리는 수인 마을의 촌장을 만나보기로 했다.

“은율아?”

이동하려고 보니 근처에 있던 은율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은율이는 어느새 미루의 옆에 딱 붙어 있었다.

“이거 봐봐. 예쁘지?”

“…….”

미루는 꽃과 줄기로 만든 꽃 팔찌를 자랑했다. 그리고 은율이의 손에 직접 꽃 팔찌를 채워줬다.

“어때, 마음에 들어? 마을에서는 내가 잘 만들거든. 이건 선물로 줄게.”

“…….”

은율이는 꽃 팔찌가 마음에 들었는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눈을 반짝였다.

이제 겨우 두 번 만났을 뿐인데 농장의 사장님보다 더 친해진 것 같았다.

“은월족의 아이는 두고가. 일이 끝날 때까지 나랑 미루가 돌봐줄 테니까.”

“그래 주실래요?”

“마을에 도움을 주겠다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너구리 영감님의 제안대로 은율이는 잠시 이곳에 맡기기로 했다.

은율이는 꽃 팔찌에 온 신경이 뺏겨 내가 나가는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레빌의 안내에 따라 나와 리아네는 가게 밖으로 나섰다.

이미 여러 번 보아왔던 마을의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이상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평범해 보이는 집 앞에 레빌의 걸음이 멈췄다.

-똑똑똑.

“라구스! 나다. 있으면 나와봐.”

레빌의 부름에 안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곧바로 문이 열렸다.

안쪽에서는 사슴의 모습을 한 수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빌? 네가 이 시간에는 무슨 일이야?”

“용병을 고용하는 문제로 이야기를 좀 나누려고.”

“그건 이미 없었던 일로…… 이런, 손님이 계셨군.”

“소문은 들어봤겠지? 이쪽이 시현, 여기는 리아네.”

“안녕하세요.”

“…….”

내가 인사를 건네는 동시에 리아네도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예정에 없던 갑작스러운 방문에 잠시 당황하는 듯 보였지만, 금방 표정을 수습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반갑습니다.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엘든 마을의 촌장을 맡은 ‘라구스’라고 합니다.”

여기 수인 마을의 이름이 ‘엘든’이었구나…….

그리고 긴 수염을 가진 인자한 할아버지가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젊은 촌장의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전에 아들이 폐를 끼쳤다고 들었습니다.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

“헤론이 바로 라구스의 아들이다.”

“아…….”

인상과 분위기가 전혀 달라서 몰라봤는데, 둘의 관계를 알고 나니 닮은 모습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들어오시죠.”

라구스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의 모습은 평범한 가정집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그나마 특이한 점은 한쪽 탁자 위에 수북이 쌓인 서류들과 두꺼운 책들이었다.

“요즘 일이 바빠서 집이 좀 어지럽습니다.”

“괜찮습니다. 불쑥 찾아온 저희가 잘못이지요.”

“잠시 기다리시죠. 마실 거라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그냥 앉아. 너희들도 상관없지?”

레빌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구스도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려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용병 고용을 돕고 싶다는 말에 처음에 라구스는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다가, 회의적인 표정으로 변해갔다.

“도와주고 싶으시다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죠? 저희는 수인이 아니니까 용병들은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아마 형식적으로 의뢰는 접수하겠죠. 하지만 의뢰 내용을 확인하면 아무도 지원하려 하지 않을 겁니다.”

계속된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자 가만히 있던 리아네가 입을 열었다.

“아마 쉽게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시현 님은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추고 계시니까요.”

“그 말씀은…… 혹시 귀족의 신분을 가지고 계시는 겁니까?”

“뭐야? 너 귀족이었어?”

“아…… 그게…… 그렇다고 할 수 있겠죠?”

나의 애매한 대답에도 레빌은 작게 탄성을 터뜨렸고.

라구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정말로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용병 길드라고 해도 대놓고 귀족을 무시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괜히 우리 때문에 나쁜 소문에 휘말릴지도 모르는데?”

걱정스러운 물음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스스로 떳떳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니까 상관없어요. 누군가 억지로 나쁜 소문을 만들어낸다면, 애초에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니 더더욱 상관없고요.”

“하하하! 역시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니었어.”

레빌은 크게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흥분했는지 몸 전체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어때 라구스? 이 정도면 믿을 만하지 않아?”

“그래. 소문이 과장이 아니었어.”

라구스는 잠시 레빌과 눈빛을 교환한 뒤,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시현 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시지 않아도 돼요. 저도 이 마을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까요.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죠.”

“좋은 말씀이십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 * *

라구스의 준비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용병 길드가 있는 도시로 출발했다.

이동은 우리가 농장에서 가져온 마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혹시 은율이가 따라오겠다고 떼를 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미루와 친해져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수인…… 아니, 엘든 마을에서 마차로 세 시간.

우리는 커다란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멈춰라!”

성문 앞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우리의 길을 막아섰다.

그중 선임 병사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아는 척을 했다.

“또 엘든 마을에서 온 건가?”

“그렇습니다. 용병 길드에 용건이 있어서 방문했습니다.”

라구스는 선임 병사에게 다가가 슬쩍 뭔가를 건넸다.

살짝 들려오는 짤랑거리는 소리, 아마도 뒷돈을 건넨 것 같았다.

선임 병사는 금액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잠시 노려봤지만, 이내 귀찮아졌는지 쌩하고 고개를 돌렸다.

“쯧, 통과. 길을 열어줘라!”

“옛!”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멈춰 있던 마차는 다시 천천히 성문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병사들과 거리가 멀어지자 라구스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매번 이런 식으로 들어와야 하나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렇게 하지 않으면 검문을 핑계로 귀찮게 하는 경우가 많아서…….”

“흠. 그렇군요.”

“시현 님 입장에서는 불쾌하셨을 수도 있겠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뇨. 아뇨. 불쾌했다기보다는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쳇! 그다지 이상할 것 없어. 이 도시에서 우리가 환영받지 못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까.”

레빌의 볼멘소리를 끝으로 마차 안에는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조금 어색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이 도시의 거리로 향했다.

‘칼디니움’이란 이름의 도시는 엘든 마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엘든 마을이 동화에 나오는 아기자기한 느낌이라면, 칼디니움은 커다란 영화 세트장을 보는 듯했다.

거리를 지나다니는 평범한 마족 주민, 시끄럽게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 무리를 지어 뛰어다니는 아이들. 확실히 도시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조금씩 그 너머의 것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더러워 보이는 뒷골목을 차지한 수인들과 그 틈바구니에서 구걸하는 아기들까지.

확실히 이 도시에서 수인은 환영받지 못하는 듯했다.

뒷골목 쪽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을 때, 레빌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약 엘든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저들과 같은 신세를 면하기 힘들 테지.”

“…….”

“거의 다 왔습니다.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이 용병 길드입니다.”

라구스가 가리키는 방향에 커다란 2층 건물이 보였다.

건물 주변에는 용병으로 보이는 마족들이 흉흉한 무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오갔다.

건물 옆에 말과 마차를 세우고, 일행은 용병 길드 입구로 들어섰다.

용병 길드의 첫 느낌은 마치 한밤중의 술집을 보는 것 같았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이따금 커다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석에는 연초를 태우며 각자의 시간을 보내거나,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아직 해가 머리 위에 있는 시간임에도 벌써 술판을 벌이는 용병들도 눈에 띄었다.

일단 우리는 라구스를 따라 안쪽으로 향했다.

접수창구로 보이는 자리에 손톱을 정리하는 여직원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힐끔 우리를 확인하더니 전혀 관심이 없다는 태도로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의뢰를 맡기러 왔습니다.”

“하아…… 저번에도 말했을 텐데요. 수인의 의뢰는 안 받는다고.”

“이번에는 이분이 의뢰하실 겁니다.”

길드 접수원의 시선이 잠시 나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때…….

“냄새나는 털북숭이들. 왜 우리 귀여운 접수원을 귀찮게 해?”

시비를 걸려는 의도가 다분해 남성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쭉 찢어진 눈에 뾰족한 턱을 가진 그는 술 냄새까지 풍겼다.

“어이, 레빌! 염치도 없이 또 찾아왔구나.”

“데얀, 술 마셨으면 조용히 구석에 처박혀 있어라.”

“그럴 순 없지. 냄새나는 짐승들이 들어왔는데, 이 데얀 님께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크하하하하!

-역시 데얀이야. 주둥이 실력은 최고라니까!

-이봐, 데얀! 저 짐승 새끼들 5분 안에 내쫓으면, 오늘 술값 내가 쏜다.

용병들 사이에서 크게 웃음이 터져 나오자, 데얀이라는 마족은 더 의기양양해졌다.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었나? 짐승 새끼면 짐승답게 행동해야지. 왜 마족이랑 비슷한 척을 하려는 거야?”

“이 녀석!”

“레빌…….”

대놓고 모욕을 받자 레빌의 눈에 살기가 맴돌았다.

라구스가 급하게 그의 어깨를 잡아 뒤로 끌었다. 그리고 문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눈빛을 보냈다.

레빌도 그 사실을 알기에 주먹만 부르르 떨었다.

그사이에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무례한 행동은 그만두시죠.”

“이놈은 또 뭐야?”

“우리는 정당한 절차에 따라 여기에 의뢰를 맡기러 온 겁니다.”

라구스의 말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수인도 용병을 고용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게 잘못이 아니었다.

“네 녀석이 뭔데 날 가르치려고 들어!”

데얀이 허리춤의 무기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내 뒤쪽에 있던 리아네가 빠르게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오른손을 변화시키며 위압감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경하던 용병들의 분위기도 덩달아 흉흉해졌다.

“저것들 뭐야? 한번 해보자는 건가?”

“털북숭이 놈들 정신이 나갔구먼. 오늘 여기 어딘지 제대로 보여줘야겠어.”

분위기가 급격히 과열되려는 순간.

리아네가 뒤로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시현 님. 그걸 꺼내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신분패를 꺼내 보여줬다.

솔직히 내가 보여주면서도.

고작 신분패 보여준다고 저 과격한 용병들이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분패를 본 용병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놀라웠다.

“저건……?!”

“마왕님의 문양이잖아.”

“저 볼품없어 보이는 놈이?!”

기세등등하던 용병들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내 눈을 피하는 건 기본이었고, 황급히 무기를 숨기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놀란 건 용병뿐만이 아니었다.

라구스와 레빌도 입을 떡하니 벌리고. 나와 신분패를 끊임없이 번갈아 봤다.

처음 시비를 걸었던 데얀이 발작하듯 외쳤다.

“이…… 이 멍청한 놈들아. 저게 진짜일 리가 없잖아.”

“…….”

“마왕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이 겨우 짐승 새끼들이랑 다닌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데얀의 선동에 용병들은 다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런가?”

“하긴 이런 곳에 갑자기 귀한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이상하지.”

“뭐야? 그럼 우리한테 사기를 친 거야?”

그리고 점차 내가 사기꾼인 분위기로 흘러갔다. 데얀은 다시 기세가 올라 여유를 부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뿔도 하나 없는 저 볼품없는 모습을 보라고. 사기를 치려면 제대로 했어야지.”

거참. 뿔 없는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그래도 어디서 못났다는 소리는 안 듣고 자랐는데.

뿔 차별을 당하자 나도 슬슬 감정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웬만하면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신분패에 달린 쇠사슬을 꽉 잡았다.

“리아네 씨.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

리아네에게 짧게 경고한 후, 쇠사슬을 쭉 잡아당겼다.

-촤르르르르륵!!!

-촤르르륵!!

신분패를 중심으로 수많은 쇠사슬이 퍼져나갔다.

그것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허공을 수놓더니 하나의 문양을 만들어냈다.

바로 마왕의 문양이었다.

그리고 그 문양을 중심으로 엄청난 위압감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건물 안의 모든 사람은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힘겨워하기 시작했다.

기세등등하던 데얀도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했다.

여기까지만 했어도 괜찮았겠지만, 사장님은 절대 그럴 인물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장님은 죽어도 어중간한 타협은 하지 않을 사람이니까.

문양을 만들어낸 사슬이 잘게 진동하더니, 사방으로 퍼트린 기운을 다시 끌어모았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치 천둥이 치는 것처럼, 엄청난 목소리가 문양을 중심으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여기 길드장 당장 튀어나와!!!!

나와 리아네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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