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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4)화 (34/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4화

어머니의 마계 나들이(1)

“어어…… 내가 일하는 농장?”

“응. 꼭 가보고 싶은데, 안 될까?”

“으음, 그게…….”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에 조금 전까지 호기롭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최대한 당황스러운 모습을 숨기며 화제를 살짝 돌렸다.

“농장은 옛날에도 많이 봤잖아. 평범하게 제주도나 가까운 해외로 놀러 가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곳에 놀러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런데 예전부터 아들이 일하는 곳이 많이 궁금했거든.”

“왜?”

“빚을 갚을 수 있게 도와주신 것도 고맙고, 또 가져온 우유 덕분에 몸도 많이 좋아진 것 같고. 그래서 농장에 계신 분들에게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었거든.”

“으음.”

“거기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농장에서 일하고 난 뒤로 아들 얼굴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르지?”

“내가?”

“그래. 처음에는 혹시 말 못 할 나쁜 일을 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하루하루 웃음이 늘어가는 걸 보고 안심했을 정도니까.”

내가 그랬나?

민망함에 괜히 얼굴을 매만지며 시선을 피했다.

“길게 있을 수 없으면 짧게 인사만 드리고 나와도 괜찮아. 그래도 안 되겠니?”

“…….”

만약 다른 사람이 부탁했다면 고민하지 않고, 적당한 거짓말로 핑계를 대며 거절했을 거다.

하지만 어머니의 부탁은 거절이 쉽지 않았다.

가족을 위해 긴 세월 자신을 억누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주 오랜만에 드러낸 어머니의 소망을 무시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이야기라도 해볼게.”

“어려우면 무리 안 해도 돼.”

“알았어. 내가 알아서 잘 이야기해 볼게.”

“고마워. 아들.”

“고맙긴. 점심은 오랜만에 외식할까?”

* * *

오랜만에 발레리안이 안드라스를 대동하고 농장을 방문했다.

“어서 오세요. 리안 씨, 안드라스 씨.”

“네, 농장에서 뵙는 건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반갑게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눴다.

“오늘 아침에는 사무실에 안 계시던데.”

“마왕성에 볼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입니다. 겸사겸사 농장 식구들도 볼 겸, 이 친구랑 같이 왔습니다.”

“두 분 다 들어오세요. 마치 잘됐네요. 조금 있으면 점심 준비하려고 했거든요. 점심 아직 안 드셨죠?”

“네. 신세 좀 지겠습니다. 그보다 마왕성에 소문이 자자하더군요. 식사 시간만 되면 안드라스 이 친구가 매번 사라진다고.”

“크흠. 쓸데없는 말을…… 시현 님,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두 사람을 농장 건물 안으로 이끌었다.

“그러고 보니 시현 씨. 저한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 나중에 식사할 때 말씀드릴게요.”

식당으로 향하던 중, 우리는 리아네와 그녀의 뒤를 따르던 은율이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발레리안 님 오랜만에 방문해 주셨군요. 그리고 안드라스 님은 또 오셨네요?”

두 손님을 향한 전혀 상반된 반응에 발레리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리아네 양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마왕성의 소문이 정말 사실인가 보군요.”

“끄응…….”

안드라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한편, 낯선 손님의 등장에 은율이가 재빨리 내 다리 뒤로 숨어들었다.

발레리안은 그런 은율이를 보며 관심을 드러냈다.

“이 아이군요. 이름이 은율이라고 했던가요?”

“네. 은율아. 인사해야지?”

“…….”

예전 같았으면 절대 다리 뒤에서 나오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불안감이 많이 사라져서 빼꼼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발레리안도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이미 여러 번 얼굴을 비쳤던 안드라스와는 쉽게 인사를 끝냈다.

다시 움직여서 도착한 식당에는 부스스한 모습의 카네프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는 발레리안을 발견하고 대충 인사를 건넸다.

“여어. 왔냐?”

“오랜만에 뵙습니다. 카네프 님.”

성의 없는 인사에도 발레리안은 정중히 예의를 표했다.

카네프의 나른한 눈동자가 옆쪽으로 향했다.

“근데 넌 또 왜 왔냐?”

“아…… 진짜…….”

은율이를 제외한 모두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점심 식사가 끝나고.

식당에는 리아네가 준비한 차 향이 가득해졌다. 차를 못 마시는 은율이 앞에는 과일 주스 한 잔이 준비됐다.

나는 은율이가 편하게 주스를 마실 수 있도록 옆에서 컵을 잡아줬다.

-꿀꺽. 꿀꺽.

“맛있어?”

“웅…… 마시써.”

내 질문에 은율이가 귀엽게 대답했다. 최근에 은율이는 짧은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놀라운 것은 이곳 마계의 언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분명 통역 반지를 사용하고 있는데도 은율이는 마계의 언어보다 한국어를 먼저 사용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한국어로 대답을 할 뿐, 마계의 언어도 곧잘 알아듣는 것 같았다.

은율이의 입가의 흘러내린 주스를 닦아주고 있을 때,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발레리안이 입을 열었다.

“은율이랑 생각보다 잘 지내고 계신 것 같네요.”

“처음에는 저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진 것 같아요. 요즘에는 리아네 씨도 곧잘 따르고요.”

“그러고 보니 아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고 하셨죠?”

“네. 그러니까…….”

나는 천천히 어머니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약간의 쓸데없는 이야기가 더해져 이야기가 조금 길게 이어졌다.

“흠. 그러니까 시현 씨의 어머니를 농장으로 모시고 싶으시다는 거죠?”

“네. 힘들겠죠? 아무나 쉽게 오갈 수 없는 곳이니까…….”

“상관없습니다.”

“네?”

“오래 체류하시는 것만 아니라면 크게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어느 정도 비밀을 지켜주셔야 한다는 약속은 해주셔야겠지만요.”

발레리안은 남아 있는 차를 홀짝이며 별일 아니라는 듯 쉽게 이야기했다. 나는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부탁하는 처지에서는 좀 이상한 질문이겠지만. 그렇게 쉽게 허락해 주셔도 되는 건가요?”

“아시다시피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절차적으로 귀찮은 일도 해결해야 하고,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제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그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시현 씨의 부탁이라면 괜찮습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죠? 아직 해드리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았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어머니를 모시고 오세요.”

“감사합니다. 리안 씨!”

“편하신 날을 미리 말씀해 주세요. 그럼 일정 조정해 놓을게요.”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려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남았음을 깨달았다.

“…….”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사장님은 괜찮으세요? 방금 이야기 듣긴 들으셨죠?”

“당연히 들었지. 어머니가 농장 구경하고 싶다며?”

카네프는 차와 함께 나온 과자를 입에 넣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마왕성에서 이상한 놈들이 찾아오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 나는 상관없으니까 발레리안이랑 알아서 해.”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적휘적 흔들었다.

어머니의 방문이 거의 확정되는 분위기로 흘러가자, 리아네는 다급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아. 집이 너무 더러운데…… 손님 방도 새로 치워야 할 것 같고…… 지금 바로 청소를 시작해야 하나?”

“리아네 씨. 그냥 인사만 하고 가는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안 돼요! 이곳의 유일한 메이드로써 그런 안일한 마음가짐은 용납할 수 없어요.”

그녀는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강경한 표정으로 외쳤다. 그러고는 당장 손님방부터 확인해야겠다면서 식당을 빠져나갔다.

“흠흠. 시현 님의 어머님이 오시는데 저도 빠질 순 없죠. 저도 그날은 휴가를 내고…….”

“어이, 제르무어 부단장 씨? 계속 그렇게 농땡이 칠 생각만 해봐. 다음에 마왕성으로 보내는 보고서에 그대로 다 적어서 보내버릴 테니까.”

살벌한 협박에 안드라스는 곧바로 찌그러졌다.

어머니를 모셔오고 싶다고 했을 때.

농장의 식구들 모두 이렇게까지 쉽게 허락해 줄 줄은 몰랐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손님을 맞을 준비까지 하는 모습에 살짝 뭉클해졌다.

어머니와 함께 농장을 방문하는 날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 * *

“엄마. 뭘 이렇게 많이 준비했어?”

“손님이 어떻게 빈손으로 찾아가니?”

“아니, 그건 알겠는데. 이건 좀 너무 많은 거 같은데, 누가 보면 한 달 정도 해외로 여행 가는 줄 알겠어.”

“얘도 엄살은. 요리할 음식 재료랑 후식으로 먹을 과일 조금밖에 안 챙겼어.”

어머니는 이것도 부족하다는 말투로 타박했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묵직한 짐들을 들고 집 앞으로 나섰다.

우리가 집 앞으로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발레리안의 차량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아침부터 눈부시게 잘생긴 그는 친근하게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니. 처음 뵙겠습니다. 시현 씨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발레리안이라고 합니다.”

“어머, 안녕하세요. 이렇게 마중 안 나와주셔도 되는데.”

“제가 꼭 하고 싶다고 시현 씨에게 억지를 좀 부렸습니다. 짐은 이리 주시죠.”

차 트렁크를 꽉 채울 만큼 짐을 싣고, 발레리안의 정중한 에스코트까지 받으며 차에 올라탔다.

“어머니. 농장에 대해서는 시현 씨에게 들으셨죠?”

“네. 솔직히 아직도 실감이 안 나긴 하네요. 우리 아들이 마계에서 일하고 있었다니. 그런 건 뉴스에서나 보는 줄 알았거든요.”

농장 방문에 대해 허락이 떨어진 뒤, 나는 오랫동안 비밀로 하던 것에 대해 전부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처음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 얼마나 놀라시던지, 아직도 그 모습이 선명히 기억날 정도였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곳에서도 해외로 나가서 일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처럼, 이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해 주세요.”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네요.”

발레리안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며 어머니의 긴장감을 풀어주었다.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써주는 배려심에 고마움을 느꼈다.

* * *

“마계는 정말 좋은 곳이구나?”

처음 마계에 도착한 어머니의 첫마디였다.

몇 분 전만 해도 갑갑한 도시 속에 있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들판, 푸르른 숲과 산맥을 보고 있으면 다 비슷한 소감이지 않을까?

어머니는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마음껏 누리며 즐거운 표정을 지으셨다.

그 모습이 마치 처음 내가 마계에 왔을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어머니, 일단 이 반지를 착용해 주세요. 그러면 농장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실 수 있을 겁니다.”

발레리안은 어머니에게 나와 똑같은 통역 반지를 건넸다. 그리고 천천히 우리를 농장 쪽으로 안내했다.

어머니는 농장으로 향하면서 끊임없이 주변의 경관을 감탄했다.

예쁜 꽃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만히 서서 풍경을 구경하기도 했다.

어느덧 멀리서 농장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이제 다 왔어. 저기 보이는 건물이야.”

“생각보다 훨씬 크네?”

농장 근처까지 왔을 때,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인.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별말씀을요. 기다리고 계신 줄 알았으면 서둘러서 올 걸 그랬네요.”

“…….”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는 남자를 보면서,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매번 부스스하던 머리는 단정하게 뒤로 묶어 정리했고.

잠옷이나 다름없던 평상시 옷차림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귀족 파티에 초대될 것 같은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복장.

그리고 무엇보다!

매번 의욕을 떨어뜨리게 만들던 귀찮은 표정과 나른한 목소리는 사라지고, 정기 넘치는 눈동자와 또렷한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시현아. 이분은 누구시니?”

“어…… 그게…….”

남자는 여유로운 미소로 나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농장을 책임지고 있는 카네프라고 합니다.”

저기 진짜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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