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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5)화 (35/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5화

어머니의 마계 나들이(2)

어머니를 농장으로 모시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존재는 당연히 사장님, 카네프였다.

경험상 그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나 예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물론 직접 겪어보면서 그런 행동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성격에서 생겨났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그것이 좋고 나쁨을 떠나서, 손님 대접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는 건 아주 당연해 보였다.

거기다 번거롭게 귀찮은 일을 싫어하다 보니, 초대를 허락했을 때도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정말…….

“농장의 대표분이 이렇게 젊은 분이신 줄은 몰랐네요? 저는 당연히 나이 지긋한 분이실 줄 알았거든요.”

“마족의 기준으로 적은 나이는 아니지요. 그보다 제가 더 놀랐습니다. 너무 젊어 보이셔서 시현의 어머님이 아니라 누님이 오신 줄 알았습니다.”

“어멋, 빈말이라도 이렇게 멋진 분에게 들으니 기분이 좋네요.”

“……?!?!”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발레리안을 바라봤다.

그도 카네프의 행동에 놀랐는지 나와 비슷한 상태였다.

“들어가시죠, 부인. 농장의 다른 식구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무거운 짐은 제게 주시죠.”

카네프는 아주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에스코트했다.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일이 너무 잘 풀리자 오히려 걱정…… 아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저번에 전령이 찾아왔을 때처럼 깽판 안 치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은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를 뒤따랐다.

현관문을 지나자 리아네가 차분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이했다.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오르게 만드는 우아한 메이드의 모습이었다.

“어서 오세요.”

“리아네 양 맞죠?”

“네, 어머님.”

“아들한테 많이 들었어요. 처음 농장에 왔을 때부터 많이 도와주셨다면서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도움은 제가 더 많이 받은 걸요. 그리고 편하게 리아네라고 불러주세요.”

“그렇게 할게요.”

어머니는 살며시 리아네의 손을 붙잡고 고마움을 표했다.

그녀는 잠시 당황한 듯 보였지만, 금방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의 손을 마주 잡았다.

-다다닷!

2층 쪽에서 들려오는 앙증맞은 발소리.

잠시 후 은율이가 계단 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은율이는 나를 발견하고 뛰어오다가, 곁에 있는 낯선 존재를 인식하고 순간 걸음을 멈췄다.

“시현아, 저 귀여운 애가 은율이 맞지?”

“응, 맞아.”

“안녕, 은율아?”

“…….”

어머니의 반가운 인사에 은율이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차선책으로 리아네의 등 뒤에 숨어들었다.

그 모습에 어머니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무거운 짐부터 먼저 정리하시죠. 그다음에 농장 구경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카네프의 지시에 따라 리아네가 방 안내와 짐 정리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 * *

-무우우.

-무우. 무우!

“호호호. 애들아 간지럽잖니.”

호기심이 폭발한 야쿰 삼 남매의 공격에 어머니는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셨다.

첫 만남에 가장 먼저 다가온 것은 역시 작은뿔이었다.

그래도 경계심을 조금이라도 보이게 마련인데, 녀석은 굉장히 저돌적으로 어머니에게 들이댔다.

가까이 다가와 냄새를 맡거나, 옷을 잡아당기기도 하고, 갑자기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작은뿔 덕분에 얌꿍이와 아꿍이도 어머니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금방 지금의 모습처럼 아기 야쿰들에게 둘러싸였다.

어머니는 삼 남매의 장난을 여유롭게 받아주거나, 귀여운 애교를 구경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농장의 마족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기 야쿰들과 저렇게 빨리 친해지시다니, 역시 시현 씨 어머님은 다르시군요.”

“시현 님 가문의 핏줄에는 마수를 길들일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있는 게 아닐까요?”

“흐음. 그것참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그게 사실이라면 어떻게든 저희 가문으로 끌어들이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하하…….”

발레리안과 리아네의 진지한 대화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물론 어머니가 다른 마족들에 비해 어머니가 빨리 친해지긴 했지만, 뭐 신비한 힘 같은 건 절대 아니었다.

아기 야쿰들은 냄새, 분위기, 그리고 나의 행동을 통해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가깝게 느끼고 행동했을 뿐이었다.

-꼬옥.

옆에 있던 은율이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여우 소녀의 시선은 즐겁게 놀고 있는 어머니와 아기 야쿰들에게 향해 있었다.

“은율이도 같이 놀고 싶어?”

“…….”

은율이 표정에 망설임이 가득해졌다.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에 자리 잡은 경계심 때문인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은율이의 등을 억지로 떠밀기보다는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기로 했다.

언젠가 경계심을 이겨내고, 스스로 한걸음 내디뎌 다가설 수 있도록.

어머니는 아기 야쿰뿐만 아니라 예쁜이와도 첫만남을 가졌다.

“예쁜이라고 했지?”

-부우우.

“네 꿍유 덕분에 아줌마 몸이 많이 좋아졌어.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우리 아들 잘 부탁할게.”

어머니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예쁜이는 슬쩍 고개를 들이밀어 친근함을 표했다. 어머니도 웃으면서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야쿰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어머니는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내게 말을 걸었다.

“어머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

“왜 그렇게 놀라?”

“왜긴 왜야. 이제 점심 식사 준비를 해야지.”

“벌써?”

너무 빠른 것 같다는 내 반응에도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챙겨온 게 많아서 준비할 게 많아. 빨리 요리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줘.”

“으, 응. 알았어.”

“저도 도와드릴게요.”

“리아네, 고마워요.”

우리는 야쿰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급하게 농장 건물로 향했다.

* * *

“시현아 저것 좀 넣어줄래?”

“재료 손질하는 동안 끓고 있는 것 좀 보고 있어.”

“리아네! 내가 가져온 짐 좀 가져다줘.”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나와 리아네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리아네는 주로 잡일을 맡았고, 나는 간단한 재료 손질을 도왔다. 익숙하지 않은 부엌인데도 어머니는 능숙하게 요리를 완성시켜 나갔다.

순식간에 부엌에는 맛있는 냄새로 가득찼다.

“리아네. 잠시만 이거 간 좀 봐줄래요?”

“제가요?”

“네. 여기 계신 분들 입맛에 괜찮을까 걱정이 돼서요. 한번 드셔보세요.”

어머니는 막 완성한 잡채를 리아네에게 직접 먹여주었다. 그녀의 입에서 금방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이것도 먹어보세요.”

맛있다는 말에 어머니도 신이 나는지 음식 이것저것을 리아네에게 먹여주기 시작했다.

애초에 내가 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웠으니, 농장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 리가 없었다.

“시현 님도 그렇고 어머님도 요리를 잘하시네요. 정말 부러워요.”

“별로 어렵지 않아요. 리아네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저는 재능이 없어서…….”

“재능은 필요 없어요.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해요.”

“정말 그럴까요?”

“그럼요!”

어머니의 응원으로 다시 요리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는 리아네.

그녀의 요리를 직접 목격한 사람으로서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마 사장님이 이 모습을 보았더라면 두려움에 떨지 않았을까?

아무튼, 점심 식사 준비가 끝나고.

준비된 요리들이 하나둘 식탁 위에 올랐다.

야들야들하게 잘 익은 갈비찜, 어머니의 손맛이 가득 담긴 잡채, 어제저녁부터 정성 들여 준비한 다른 밑반찬까지.

짧은 시간에 준비한 것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식탁 위에는 많은 음식들로 가득 찼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준비하실 줄 몰랐습니다. 너무 고생하신 게 아닌지.”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리고 제가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 한 일이니까요.”

“잘 먹겠습니다. 부인.”

카네프을 시작으로 발레리안, 리아네도 어머니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내 옆에 자리 잡은 은율이도 힐끔힐끔 어머니를 바라봤다.

하나둘씩 식탁 앞에 자리를 잡을 때, 또 다른 누군가가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덩치에 로브를 뒤집어 쓴 안드라스였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너 이 새…… 큼. 안드라스 왔구나.”

순간 카네프는 본모습을 뿜어낼 뻔했지만, 엄청난 의지력으로 다시 여유롭고 품위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머! 한 분이 더 계셨군요.”

“죄송합니다. 다른 일이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주기적으로 농장의 시설을 관리하는 안드라스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신세를 지고 있는 시현이 엄마예요.”

“저도 식사 자리에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어머니와 리아네의 도움으로 식탁에는 금방 안드라스의 자리가 만들어졌다.

물론 카네프의 뜨거운 눈길을 피해서 가장 떨어진 곳에 자리 잡았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정말로 농장의 모든 식구들이 모이고 식사가 시작됐다.

다른 사람들이 식사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챙기던 어머니도 식탁 앞으로 다가왔다.

어머니는 은율이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와 어머니 사이에 은율이가 낀 모양새였다.

아직 약간의 경계심이 남아 있는지 은율이가 움찔하며 놀랐다.

그래도 내 쪽으로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본격적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다행히 어머니의 음식이 입맛에 맞았는지, 모두 손과 입을 움직이기 바빴다.

특히 카네프의 위협까지 무릅쓰고 찾아온 안드라스는 굉장히 흡족해 보였다.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은 당연히 갈비찜.

질기지 않고 야들야들한 육질에 달콤하고 진한 양념이 깊숙이 배어 있었다.

얼마나 인기가 좋았던지 부엌에서 갈비찜 한 냄비를 금방 더 꺼내와야 할 정도였다.

어머니는 모두의 식사를 살피면서, 옆자리에 앉은 은율이를 살뜰히 챙겼다.

“갈비찜 먹고 싶어?”

“응.”

“자. 아줌마가 먹기 편하게 해줄게.”

맛있는 음식 덕분인지,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은율이도 아주 자연스럽게 보살핌을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은율이의 아기 새 같은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점심 식사가 끝나고 나는 어머니와 은율이, 그리고 발레리안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

리아네는 쌓여 있는 설거지와 뒷정리를 하겠다고 남았다.

거기에 안드라스도 카네프의 강렬한 눈빛에 못 이겨 뒷정리에 동참했다.

은율이는 어머니에 대한 경계심을 완전히 지워냈는지, 손을 꼭 잡고 나란히 걷는 중이었다.

나는 다정한 둘의 모습을 보며 약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발레리안이 말했다.

“확실히 어머님과 시현 씨가 닮아서 그런지 은율이도 금방 친해지시네요.”

“제가 엄마랑 닮았다고요?”

“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어머니와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

내 반응에 발레리안은 슬며시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겉모습이 닮은 게 아니라 분위기라던가, 첫인상이 닮으셨습니다. 아마 농장의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셨을 겁니다.”

“그런가요?”

잠시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다 큰 성인이 되어서 부모님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기분이 좋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낯간지러웠다.

나는 그런 마음을 숨기려 다른 화제를 꺼냈다.

“오늘은 깜짝 놀랐습니다. 리안 씨도 바쁘신데 시간을 내주시고, 다른 농장 식구들도 너무 반갑게 맞아주셔서…… 솔직히 조금 걱정을 했거든요.”

“하하하. 사실 저희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어머님이 우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나’하고요.”

“어어. 그게 정말인가요?”

“으음. 이건 웬만하면 말씀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발레리안은 내 쪽으로 얼굴을 가까이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중에서 가장 걱정한 사람은 아마 카네프 님일 겁니다. 실제로 저한테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 지 물어보기도 하셨으니까요.”

“예에? 사장님이요?”

“쉿! 이건 비밀입니다. 제가 말했다는 걸 카네프 님이 아시면 절 죽이려 드실 겁니다.”

그는 입 앞에 검지를 들어올려 보이며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나는 오늘 카네프가 보였던 이상한 행동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래서 오늘 사장님이 그렇게 행동한 거군요.”

“카네프 님은 나름대로 예의를 보인 겁니다. 평소에는 막무가내로 행동하셔도, 꽤 책임감이 강하시거든요. 시현 씨가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께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겠죠.”

“…….”

발레리안의 설명을 듣자 마음이 뭉클해졌다.

농장 일과 전혀 상관없는 어머니를 모셔오는 일.

당연히 그들에게는 번거로운 일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신경을 써주고 진심으로 맞이해 줬다는 사실에 감동이 몰려왔다.

“저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랑받고 있었네요.”

“하하하! 모르셨습니까? 아마 이 농장에서는 마왕님도 그런 대접을 받기 힘들 겁니다.”

내 입으로 말하고도 너무 쑥스러워져서, 멀리 보이는 산을 향해 다급히 시선을 돌렸다.

발레리안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큭큭거리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다행히 저 멀리 앞서가던 어머니와 은율이가 나를 부르기 시작했고, 재빨리 걸음을 옮겨 어색한 분위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를 모시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내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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