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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6)화 (3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36화

어머니의 마계 나들이(3)

은율이는 들판의 꽃을 꺾어 모으더니 미루가 알려준 방법으로 꽃 팔찌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도 엉성한 실력이었지만, 앙다문 입과 신중한 손을 보면 굉장히 진지한 모습이었다.

작은 손을 바쁘게 움직인 끝에 빨간 꽃이 눈에 띄는 팔찌가 만들어졌다.

은율이는 완성된 팔찌를 수줍게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머, 아줌마 주는 거야?”

-끄덕.

“고마워. 은율아. 너무 잘 만들었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으로 팔찌를 받아들었다.

조심스럽게 팔찌를 손에 찬 뒤,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은율이는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크게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

이번에는 어머니가 꽃 몇 개를 꺽어들더니, 금방 팔찌의 모양새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완성된 팔찌를 직접 은율이의 손목에 채워줬다.

은율이는 정말 예쁘게 완성된 팔찌를 보며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약간 흥분한 듯 뾰족한 두 귀가 쫑긋 세워졌다.

“호호.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줄까?”

-끄덕끄덕!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어머니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은율이를 거의 품 안에 안다시피 하며 팔찌 만드는 법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발레리안이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이제는 어머님께서 시현 씨보다 더 친해지신 것 같은데요?”

“조금은 질투가 날 것 같네요.”

“하하하.”

반쯤은 농담 삼아 한 말이면서도. 사실 조금은 진심으로 질투가 났다.

그래도 내가 애지중지하며 보살펴준 시간이 얼마인데, 오늘 처음 만난 엄마한테 저렇게 해맑은 웃음을 보여주다니…….

이게 평소에 리아네 씨가 나를 바라보는 심정이었나?

다정한 두 사람을 지켜보던 발레리안이 시간을 확인했다.

“시현 씨.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요?”

“네. 저도 오랜만에 편히 쉬는 날인데 정말 짧게 느껴지네요.”

그의 말에 따라 나는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 이제 슬슬 돌아갈 시간이래.”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니?”

“응. 돌아가서 농장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어머니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율이도 불안한 표정으로 따라 일어섰다.

농장 건물로 돌아가자 이미 다른 마족들은 우리를 배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쉽다는 얼굴로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눴다.

“사장님. 우리 시현이 잘 부탁드릴게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은 늦게 오셔서 많이 이야기를 못 나눴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물론입니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리아네도 잘 지내요. 그리고 좀 더 자신감을 가져요.”

“네. 꼭 그렇게 할게요. 어머님. 그리고 이거 받으세요.”

리아네는 어머니에게 작은 가방을 건넸다. 그 안에 꿍유 몇 병이 들어가 있었다.

“어머님이 꿍유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제일 신선한 걸로 골라서 넣었어요.”

“어머나, 이런 거 안 챙겨주셔도 되는데…….”

“저희는 정말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았으니까요. 얼른 가져가세요.”

리아네가 억지로 가방을 떠넘기자, 어머니는 마지못해 가방을 받아들었다.

이때 지켜보던 안드라스가 헛기침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흠흠. 저도 개인적으로 준비한 물건이 있는데,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드라스는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어머니에게 건네줬다.

그 안에는 반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몇 가지 유용한 마법을 걸어둔 아티팩트입니다. 혹시 급한 일이 있을 때 이쪽으로 신호를 보내는 마법도 걸어뒀습니다.”

“이런 건 엄청 비싼 물건 아닌가요?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될지.”

“괜찮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거라 재료값만 조금 들어갔을 뿐입니다.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마워요. 안드라스 씨. 잘 쓸게요.”

어머니가 반지를 챙겨 들자 안드라스는 살짝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카네프와 리아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를 지켜봤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은율이에게 다가갔다. 자세를 낮춰 눈을 마주하고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은율아. 오늘 정말 재미있었지? 아줌마 다음에 또 놀러 올 테니까 그때도 같이 재미있게 놀자.”

“…….”

은율이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지, 뾰족한 귀가 축 처져서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은율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었다.

“이제 가시죠.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발레리안의 말에 따라 나와 어머니는 농장 식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모두 반갑게 맞아주셔서 고마웠어요.”

“저도 가볼게요. 남은 갈비탕이랑 잡채 넣어놨으니까 저녁에 잘 챙겨 드세요. 그럼 내일 뵐게요!”

리아네 옆에 어두운 표정의 은율이가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발레리안을 따라 농장에서 멀어졌다.

얼마쯤 걸었을까?

뒤쪽에서 리아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짧은 발걸음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은율이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은율아?”

-와락!

양손으로 내 다리를 붙잡은 은율이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워 순간 얼어붙었다, 은율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날카롭게 내 마음을 찔렀다.

“가디마…… 가디마…….”

“……!!”

어눌한 말이었지만 내 귀에는 분명히 전해졌다. 가지 말라며 울먹이는 은율이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평소에 보여주지 않던 모습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사이, 가장 먼저 어머니가 은율이에게 다가갔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은율이를 꼭 안아주며 달랬다.

작은 여우 소녀는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품 안에서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흐아아앙. 흑!”

“그래. 은율이가 많이 외로웠구나.”

나뿐만 아니라 발레리안도, 뒤늦게 따라온 다른 마족들도 멍하니 어머니와 은율이를 바라봤다.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얼굴은 눈물 콧물로 엉망이 돼버렸지만, 안정을 되찾고 어머니의 품 안에 꼭 안겨 있었다.

어머니는 진정된 은율이를 내 쪽으로 넘겨줬다.

“자! 시현아.”

“어? 어어. 어…….”

나는 얼떨결에 은율이를 받아들었다. 다시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은율이는 얌전히 내 품에 안겼다.

어머니는 리아네에게 손수건을 건네받아 은율이의 얼굴을 부드럽게 닦아줬다.

“시현아, 은율이라는 이름 네가 지어준 거지?”

“맞아.”

“정말 잘 지어준 것 같아. 네가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어떤 이름을 지어줘야 할지 몰라서 엄청 고민했었거든.”

“…….”

얼굴을 닦아주던 어머니는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그 눈빛에 나는 은율이의 이름을 지어줄 때, 그때의 마음가짐이 떠올라 품 안의 소녀를 좀 더 꽉 껴안았다.

“발레리안 씨. 시현이는 여기에 남고 저만 돌아가도 괜찮나요?”

“예? 아…… 시현 씨는 여기에 남아 있으셔도 괜찮습니다.”

“그럼 아들은 여기 남아.”

“엄마 나 없어도 괜찮겠어?”

“내가 어린앤 줄 아니? 당연히 괜찮지.”

어머니는 밝게 웃어 보이시고는 나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셨다.

대견하다는 그 표정에 왠지 모를 감정이 울컥 솟아올랐다.

“은율아. 아줌마는 가봐야 해. 대신 아들 남겨두고 갈 테니까 너무 외로워하지 마.”

“응…….”

“그래. 다음에 다시 꼭 놀러 올게. 아줌마 잊어버리면 안 돼?”

다시 은율이와 인사를 끝내고 다시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짧게 작별 인사를 했다.

“시현 씨, 걱정 마세요. 어머님은 제가 안전하게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그렇게 어머니는 발레리안과 함께 농장을 떠나갔다.

* * *

“혹시 섭섭하세요?”

“글쎄요.”

발레리안의 물음에 어머니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이 커다란 농장에 시현이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하네요.”

“네. 시현 씨는 이제 이 농장에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죠.”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있었어요. 시현이는 저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묶여 있었거든요.”

아련한 표정을 짓던 어머니는 다시 밝게 웃었다.

“그래도 좋은 점도 있네요.”

“……?”

“오랜만에 멋진 남자분이랑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게 됐으니까요.”

“하하. 저도 아름다운 분과 함께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두 사람은 즐겁게 웃으며 나란히 걸었다.

* * *

어머니가 떠나고 나는 은율이를 데리고 방으로 올라왔다. 혹시나 내가 떠나갈까 봐 무서운지 아직도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오늘은 계속 같이 있을 거니까.”

“…….”

계속 달래주자 조금은 불안한 표정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작은 두 손은 내 옷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은율이는 갑자기 무엇이 그렇게 불안해졌던 걸까?

이전에 농장에서 퇴근할 때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불안해하는 마음을 달래주려 휴대폰으로 노래를 틀어주었다.

은율이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의 발라드. 창고에서 들었던 그 노래였다.

“코오…… 코오…….”

감미로운 노래 선율에 맞춰 은율이의 숨소리도 안정되어갔다.

깊은 잠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휴대폰 재생 목록의 노래가 끝나갈 때쯤. 나도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아주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꾸던 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생생한 영화를 보는 것처럼 빠르게 장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그곳에는 지금보다 어린 모습의 은율이와 부모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여우의 모습을 한 수인들도 함께했다.

은율이는 그곳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이나 불안함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행복한 장면은 몇 장면이 지나자 금방 사라져갔다. 그 뒤로는 칙칙하고 어두컴컴한 기억만 계속 이어졌다.

함께하던 부모님과 헤어지고, 누군가의 손길에 이끌려 낯선 곳으로 향해야 했다.

무서운 존재들에게 쫓기며 계속 힘든 길을 나서야 했다.

주변에 함께하던 이들도 점점 사라지고, 동시에 은율이의 미소도 메말라갔다.

결국 혼자가 된 은율이는 마지막에 함께 했던 사람이 알려줬던 방향으로 계속 나아갔다.

아주 오랫동안 불안과 두려움 속에 매일 밤 숨죽이며 울었다.

-끼이잉. 끼이잉.

나는 울고 있는 아기 여우를 보며 마음이 답답해졌다.

어떻게든 은율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몸을 허우적거렸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버거웠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꽉 깨물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다해 뻗은 두 손이 웅크린 아기 여우에게 닿은 순간.

와락 내 품 안에 껴안았다.

-번쩍!!

“허억! 헉. 헉.”

눈을 뜨자마자 보인 건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빛과 익숙한 농장 건물의 천장이었다.

지독한 가위에 눌린 것처럼 온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꼼지락.

품에서 느껴지는 움직임에 고개를 들었다.

은율이가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줬다.

나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꿈속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라 머리가 뒤죽박죽인 상황.

그때 꼼지락대던 은율이가 나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아…… 빠?”

“……?!”

“아빠…… 아빠?”

순간 머리에 커다란 충격이 온 것처럼 멍해졌다.

내가 잘못들은 게 아닐까?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걸까? 설마 아직도 꿈속인 걸까?

머릿속을 가득 채운 오만가지 생각에 나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은율이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벼락이 내리쳤다.

복잡했던 생각들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로지 눈앞의 소녀를 웃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은율아, 왜 불러?”

“……!”

잠시 놀라던 소녀는 이내 활짝 웃기 시작했다.

그런 은율이를 양팔을 뻗어 끌어안았다. 잠시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다가 조용히 잠들었다.

어머니가 농장을 떠나기 전에 내게 보냈던 눈빛이 떠올랐다. 나는 눈을 감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지?

편안한 마음으로 나도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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