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0화
감시관의 임무(2)
균열이 등장했던 초창기에는 이 현상은 그저 사회를 어지럽히는 재난에 불과했다.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와 재산을 망가뜨리고, 사람을 상처입히는 예측 불가한 재난.
하지만 현재 시대의 균열은 통제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가면서, 완전히 일상생활에 녹아들었다.
특히 균열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별한 것들의 가치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균열은 산업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괴수의 부산물은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와 방어구의 재료가 되었고, 마석은 수많은 마법적 장치와 아티팩트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특별한 가치를 가진 영혼석!
각성자들의 능력을 상승시키거나, 소환수를 부를 수 있게 해줬고. 무엇보다 균열을 제어하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재료였다.
비교적 자유롭게 거래가 되는 마석과는 달리.
영혼석은 아주 까다롭게 관리 됐는데, 그 중심에는 천족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적극적으로 영혼석을 통제하고 관리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영혼석만이 오만한 천족과 대등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하지만 천족이 왜 영혼석에 집착하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저 차원의 균형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형식적인 말만 반복할 뿐.
아무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 * *
“미리 말씀드린 대로 내일은 균열에 가야 할 것 같으니. 식사는 알아서 챙겨주세요. 리아네 씨, 은율이 식사랑 간식은 따로 챙겨놨으니까 부탁드릴게요.”
나는 또 엄마 모드가 되어 농장 식구들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믿음직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리아네와 달리 카네프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거 굳이 해야 해? 에르긴인가 뭔가 하는 놈한테 딸기 가져다주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런 재수 없는 놈을 위해서 일까지 쉬다니. 농장의 책임자로서 조금 불쾌한데?”
“에르긴에게 가져다줄 딸기는 상관없는데. 그러면 사장님에게 가져다줄 군것질거리들도 전부 끊기는데요?”
내가 되묻자 카네프는 진지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농장 일보다는 차원의 균형을 지키는 게 중요하지. 농장은 걱정하지 말고 영혼석을 왕창 구해오도록.”
“저는 알아서 할 테니. 사장님이나 마왕성에 보낼 보고서 밀리지 마세요. 돌아오면 그것부터 확인할 테니까.”
180도 돌변한 그의 태도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시현 님, 균열에 들어가는 일 위험하지 않나요? 직접 들어가지 않고 발레리안 님께 부탁드리면 안 되나요?”
“안타깝지만 그렇게는 안 된다네요. 천족에게 허락을 받으려면 제가 직접 영혼석을 구해야 한대요.”
한껏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리아네.
그녀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가벼운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너무 걱정 마세요. 위험한 균열에 가는 건 아니에요. 거기다 이쪽으로 경험 많은 친구도 구해놨으니, 별다른 일은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시현 님.”
리아네를 안심시킨 다음 몸을 낮춰 은율이에게 말을 걸었다.
“은율아. 내일은 내가 없을 거야.”
“아빠…… 어디…… 가?”
“응.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동안 리아네 씨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
은율이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축처진 귀와 꼬리가 안쓰러우면서도 꾹 참으려는 모습이 너무 대견해 보였다.
의기소침한 은율이를 꼭 끌어안아주며 속삭였다.
“기다리고 있으면 그 아…… 빠가 은율이 좋아하는 딸기 잔뜩 사 가지고 돌아올 테니까. 알았지?”
아직 너무나도 어색한 아빠라는 단어까지 사용하면서 은율이를 위로해 줬다.
다행히 내 위로가 통했는지 여우 귀가 다시 뾰족해졌다.
-벌컥!
은율이의 기분이 풀리고 있을 때쯤.
안드라스가 굉장히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등장했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숨까지 헐떡이고 있었다.
“헉…… 헉…… 다행히…… 헉. 늦지 않았네요.”
“안드라스 씨? 이렇게 급하게 무슨 일이세요?”
그는 넘어갈 듯한 숨을 잠시 추스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리안에게 들었습니다. 위험한 곳에 가신다고요?”
“아뇨.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은데…….”
“시간이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시현 님께 드리려고 급하게 제작해 왔습니다.”
“……?”
“일단 밖으로 나가시죠.”
* * *
농장 식구들은 안드라스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내 오른쪽 팔에 그것을 단단하게 채웠다.
“안드라스 씨, 이건?”
“제가 직접 제작한 아티팩트입니다. 시간이 없어서 많은 기능은 넣지 못했지만, 그래도 꽤 도움이 될 겁니다.”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겁니다. 일단 사용법부터 알려드릴 테니 잘 들으세요.”
안드라스는 아티팩트 사용법에 대해 아주 상세히 알려줬다.
“아티팩트에 집중하세요. 그럼 약간의 마나 흐름이 느껴질 겁니다.”
“으음. 엇? 진짜 느껴져요.”
“그럼 아티팩트를 사용할 준비가 된 겁니다. 이 느낌을 잘 기억하세요. 다음은 사용할 마법의 시동어를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는 아티팩트에 저장된 공격, 방어 마법의 시동어를 알려줬다.
작은 아티팩트가 이렇게 많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방어 마법은 위협에 자동으로 반응하게 설정해 뒀습니다. 마력 소모가 좀 크겠지만, 시현 님의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그럼 이번에는 공격 마법을 사용해 보죠. 제 아티팩트를 향해 알려드린 마법을 사용해 보시겠습니까?”
-우우우웅.
그의 소매에서 기계 아티팩트가 허공에 떠올랐다. 나는 알려준 대로 목표를 향해 시동어를 외쳤다.
“화염구…….”
-화르르륵! 퍼엉!!
순식간에 엄청난 불길이 치솟더니 목표물에 작렬했다.
생각보다 엄청난 화력에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이렇게 간단하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신기하게 느껴졌다.
불길이 걷히고 기계 아티팩트는 멀쩡한 모습으로 안드라스에게 되돌아갔다.
“잘하셨습니다.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대상이 아니라면, 아티팩트가 알아서 조준해 줄 겁니다. 그리고 이 버튼을 이용해 출력을 조절할 수 있으니 참고해 주십시오.”
“어…… 지금은 출력이 어느 정도인 거죠?”
“당연히 최소 출력으로 해뒀습니다만?”
“으음…….”
이게 최소 출력이라고?
생각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에 나는 잠시 얼빠진 표정을 했다.
그런데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카네프는 나와 전혀 다른 감상평을 내놨다.
“야. 출력이 생각보다 낮은데? 무슨 등급으로 만든 거냐?”
“인피거 등급으로…….”
“뭐어? 인피거? 너 포르체 등급까지 무난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 겨우 인피거를 만들었다고?”
“너무 늦게 소식을 전해 들어서 시간이 없었습니다. 재료도 부족해서 겨우…….”
안드라스는 크게 당황하며 변명했지만, 카네프는 오히려 더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매번 농장에 찾아올 때마다 얻어먹더니.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네. 슈나르페 가주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야.”
“안드라스 님. 저도 실망스럽네요. 시현 님이 얼마나 신경 써드렸는데…….”
“그게 아니라…….”
리아네까지 가세하자 안드라스는 정말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쩔쩔맸다.
“저는 괜찮은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서는 이렇게 챙겨준 것만으로도 굉장히 고맙게 느꼈지만, 두 사람의 맹공격에 결국에는 안드라스가 나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끝맺었다.
불쌍한 안드라스 씨…….
아무튼 아티팩트는 잘 쓸게요.
* * *
걱정하는 농장 식구들을 뒤로하고.
퇴근하는 길에 만난 발레리안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든 번거로운 일은 피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워낙 앞뒤가 꽉꽉 막힌 자들이라.”
“그렇게 위험한 균열에 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좋은 경험 해본다고 생각하죠.”
영혼석은 개인 간 거래가 불가능해서, 직접 균열에 들어가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다. 그건 발레리안도 예외일 순 없었다.
천족과 거래를 위해서는 내가 균열에서 직접 영혼석을 얻어와야 했다.
“시현 씨. 일단 이거 받으세요.”
“이게 뭐죠?”
발레리안은 내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차원관리본부…….
본부장 이기석?
“혹시 문제가 생긴다면 이쪽으로 연락을 해보세요. 아마 저보다 훨씬 빠르게 조치를 취해줄 겁니다.”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안드라스에게 아티팩트는 전달받으셨죠?”
“네. 여기 가방 안에 넣어놨죠.”
안드라스에게 받은 아티팩트를 가방에서 꺼내 보여줬다. 발레리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혹시 인피거 등급인 겁니까?”
“네. 그렇다고 하던데요.”
“어허. 안드라스 이 친구가 큰 실수를 했군요. 시현 씨에게 인피거 등급이라니! 지금 당장 슈나르페 가문에 연락해서 포르체 등급으로…….”
정말로 연락하려는 발레리안을 다급히 막았다.
“이 정도만 해도 괜찮아요. 제가 직접 전투하러 가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도…….”
“안드라스 씨도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신 거니까.”
“시현 씨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발레리안까지 연락하게 놔뒀으면 안드라스는 정말 울어버렸을지도…….
농장 식구와 발레리안이 과하게 걱정해 주는 모습이 조금 부담스러우면서도, 굉장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약속 시각에 맞춰 집을 나섰다. 마치 첫 출근을 하는 것처럼, 걱정과 설렘이 가득 차올랐다.
건물 입구에서 서예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활동하기 좋은 캐쥬얼한 복장에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화단 옆에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었다.
그녀는 뒤늦게 나오는 나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여자를 기다리게 만들다니. 이거 시작부터 감점인데?”
“나는 시간에 맞춰서 내려온 거야. 그리고 너도 방금 나왔잖아. 아까 나오기 전에 현관문 여는 소리 들었거든.”
내 볼멘소리에 그녀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긴장 안 했나보네? 좋아 신입! 그런 자신감으로 가는 거야.”
씩씩하게 외치는 서예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함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균열이 있는 곳까지는 그녀의 차를 얻어타기로 했다.
“조금 미안하네. 부탁하는 입장인데 차까지 얻어타서.”
“괜찮아. 어차피 장비를 가져가는 입장에서는 자기 차를 이용하는 게 더 편하거든. 그보다 내가 부탁한 건 준비했지?”
“응. 도시락 준비해 왔어. 그런데 원래 이런 것까지 준비하는 거야?”
“좋아 좋아. 거기 앞에 있는 식당은 전부 다 맛없단 말이야.”
서예린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뉴비 친구, 그럼 출발해 볼까?”
“근데 어디로 가는 거야?”
“처음 균열에 들어가는 경우에 갈 곳은 한 군데밖에 없지. 가까운 필드형 균열로 갈 거야.”
우리를 태운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