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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2)화 (4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2화

감시관의 임무(4)

“와아…….”

처음 들어와 본 필드형 균열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컸다. 커다란 숲과 넓은 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 공간은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느꼈다.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마치 커다란 세트장에 온 것처럼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내가 균열 내부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 사이.

서예린은 입구에 설치된 내부 지도를 보며 우리가 지정받은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E구역 11에리어…… 으윽?!”

“왜 그래?”

“끄응, 하필이면 보스 에리어랑 가까운 곳이네. 설마 오다가다가 만나지는 않겠지?”

서예린은 오늘 재수가 없는 것 같다며 투덜거렸다.

우리는 배정받은 자리 E구역 11에리어로 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괴수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혼자 사냥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여러 명이 함께 사냥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오래 걸은 뒤.

우리는 E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쪽에 엄청 커다란 숲 보이지? 저기가 보스 에리어야. 아마 그 재수 없는 놈이랑 백호 길드가 조금 있으면 사냥하러 갈 거야.”

“진짜 가깝네. 근데 우리가 여기 있어도 되는 거야?”

“재수 없는 놈이긴 해도 여기 레벨의 보스 정도는 쉽게 잡을 거야. 보스가 광폭화 상태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큰 문제 없어.”

보스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11에리어로 향했다.

각각의 에리어는 울타리로 구분되어 떨어져 있었다.

워낙 구역이 넓어 옆 에리어는 상황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는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휴게실, 화장실, 흡연실까지도 설치돼 있었다.

“드디어 11에리어 도착! 조금만 쉬었다가 들어갈래? 아니면 바로 들어갈래?”

“나는 바로 들어가도 괜찮아.”

“오케이. 그러면 준비 운동부터 먼저 해볼까?”

서예린은 자세를 잡고 서서 몸풀기 운동을 시작했다.

“시현아, 뭐해? 너도 따라 해야지.”

“어? 나도?”

“당연하지! 혹시나 무슨 일이 벌어질 때를 대비해야지.”

장난기 없는 진지한 대답에 나도 그녀의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15분 정도 꼼꼼하게 온몸을 풀어주고 나서야 그녀는 만족한 표정으로 준비 운동을 끝냈다.

“준비 운동 끝. 아! 마지막으로 저기 휴게실 옆에 빨간 상자 보이지? 저기에 비상용 전화기, 구급상자까지 있으니 기억해 둬. 이제 진짜 들어가 볼까?”

우리는 출입 카드로 11에리어의 문을 열었다.

* * *

-그으으으으…… 칵!

-콰직!

나무 밑동처럼 생긴 괴수가 소환수의 주먹질에 박살이 났다. 순식간에 주변에는 나무 파편들이 비산했다.

나와 서예린은 가져온 캠핑 의자에 앉아 멍하니 그것을 구경했다.

1시간 넘게 이어지는 똑같은 상황에 조금 어이가 없어졌다.

“저기 예린아. 이럴 거면 뭐 하러 준비 운동을 한 거야?”

“응? 그건 일종의 습관? 나만의 루틴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지. 왜 그래?”

“쩝. 그래도 균열에서 전투라고 하면 뭔가 긴박하고, 긴장감 넘치는 걸 생각했는데. 뭔가 허무한 것 같아서.”

“푸핫! 그런 걸 기대한 거야? 초보자 아니면 균열 광부들이나 오는 곳에 내가 최선을 다할 리가 없지. 애초에 네 부탁만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어.”

그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곳은 내 생각보다 안전했고, 서예린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한 각성자였다.

균열에 간다고 긴장했던 어제의 내 모습이 약간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안드라스 씨한테서 받은 아티팩트도 전혀 쓸모가 없겠는데?

“너무 실망하진 마. 조금 지루하긴 해도 이렇게 하는 게 가장 안정적으로 영혼석을 모으는 방법이니까. 굳이 전투에 경험을 쌓을 이유도 없잖아?”

“그렇긴 하지.”

“거기다 나는 여기서 마석 몇 개 챙겨봤자, 인건비도 안 나오는 일이라고. 순전히 네 부탁 때문에 따라온 거야.”

오늘 사냥에서 나오는 영혼석은 전부 내가 챙기고, 마석은 서예린이 챙기기로 했다.

하지만 꽤 능력 있는 각성자인 그녀에게는 확실히 생산적인 일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말하니까 좀 미안하긴 하네. 괜히 너한테 부탁했나 봐.”

“헤헤. 이제야 이 누님의 대단함을 좀 알아주는군. 시현아, 앞으로 잘 알아모셔. 어머니 반찬도 꼬박꼬박 가져다주고.”

그녀는 금방 기세등등해져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너 진짜 미안하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무슨 부탁?”

“저번에 니가 내 소환수 움직였던 거 기억나?”

“아. 균열에 휘말렸을 때?”

“응응. 그때처럼 한 번만 더 해볼래?”

“끄응…….”

부탁을 듣고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나도 어떻게 했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워낙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거의 본능적으로 했던 터라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었다.

그래도 오늘 나 때문에 시간까지 따로 내준 서예린의 부탁을 대놓고 거절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자리에 일어나 소환수에게 다가갔다. 기대감이 가득한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일단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다.

“…….”

-…….

여전히 든든한 모습의 소환수가 물끄러미 내려봤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갑옷처럼 단단한 몸체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교감 능력이 발동됐다.

마치 내 의식이 손을 타고 빨려들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격하게 어지러운 느낌에 잠시 의식을 놓을 뻔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마치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야쿰이나 은율이와 교감했을 때는 좋은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사방에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는데.

소환수의 안에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텅 빈 깡통 안을 보는 기분이었다.

주변을 감싸는 고독함과 허무함에 점점 숨이 막혀오려고 하는 순간.

아주 멀리서 작은 파동이 느껴졌다.

너무 희미해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나는 그 파동을 따라 공허한 기운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작은 파동에 다가갈수록 심해의 깊은 곳처럼 압박이 점점 심해졌다.

이어진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나는 파동이 흘러나오는 신비한 무언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아…….

[대상은……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의식이 끊어졌다.

다시 눈을 뜨자 서예린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너 괜찮아?”

“으응. 괜찮아.”

“갑자기 쓰러져서 깜짝 놀랐잖아. 정말 괜찮은 거지?”

“걱정하지 마. 멀쩡하니까.”

-스으윽!

몸을 일으키려는데 커다란 손이 나의 상체를 부축해 줬다.

손의 주인은 서예린의 소환수였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부축을 받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 고마워.”

-……끄덕!

“……?!!”

“뭐야?!”

형식적으로 한 감사 인사에 소환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나뿐만 아니라 주인인 서예린도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방금 네 인사에 고개 끄덕인 거 맞지?”

“어, 응. 그런 것 같은데?”

“지금껏 한 번도 저런 적 없단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한 거야? 빨리 나한테도 알려줘!”

“잠깐, 잠깐! 진정 좀…….”

거의 내 멱살을 잡다시피 하며 거칠게 몸을 흔들어댔다. 다시 어지러움을 느끼며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때.

-콰아앙!!

보스 에리어 쪽에서 커다란 폭음이 들렸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서 생겨난 소리인 듯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보스를 사냥하는 소리인 것 같긴 한데. 왜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것 같지? 보통은 숲 가장 안쪽에서 사냥할 텐데…….”

서예린도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보스 에리어 쪽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그어어어억!!

고통에 울부짖는 것 같은 괴상한 소리가 들리고, 정체 모를 무언가가 하늘에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툭. 투둑. 툭!

땅에 떨어진 그것들은 커다란 열매 같은 모습을 했다. 상하기라도 했는지 주변은 금방 썩은 내로 가득해졌다.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려는 순간, 서예린이 뾰족한 목소리로 외쳤다.

“시현아! 당장 멀리 떨어져!”

“……?”

“이건 보스 몬스터의 독 포자야. 이걸 들이마시면…… 온몸이 마비가…….”

“괜찮아?”

비틀거리기 시작한 서예린의 모습에 나는 걱정스럽게 물으며 다가갔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겨우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이러는 와중에도 주변은 온통 독 포자가 들이차기 시작했다.

주변은 온통 녹색 기운으로 시야가 보이지 않을 정도가 돼버렸다.

잠시 후, 녹색 포자가 가라앉기 시작하고.

한 남자가 11에리어에 모습을 드러냈다.

“휘유! 독 포자가 제대로 퍼졌네. 해독제가 없었으면 나도 힘들었겠어.”

장현재는 독 포자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주변의 포자가 가라앉길 기다렸다.

“이 정도면 그 재수 없는 년도 버티지 못했겠지?”

그는 허공의 손을 휘적거리며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큭큭! 이 싸가지 없는 년아, 나를 너무 쉽게 봤어. 내가 겪었던 것보다 몇 배로 수치스럽게 만들어줄게. 어딨어? 어딨냐고?”

“쿨럭! 쿨럭! 정말 하는 짓이 듣던 대로 쓰레기네.”

“X발. 뭐야?! 도대체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거야?!”

장현재는 내 존재를 확인하고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은 듯했다.

내 옆에는 서예린이 쓰러져 있었다.

나도 포자의 독을 마시고 온몸이 살짝 떨려왔지만, 아직 완전히 힘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야쿰의 신뢰’ 효과가 발동합니다.]

[신체에 영향을 주려는 독 성분에 저항합니다.]

[신체에 영향을 주려는 독 성분에 저항합니다.]

[신체에 영향을 주려는 독 성분에 저항합니다.]

발레리안이 나에게 능력을 사용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

장현재가 등장한 뒤에도 ‘야쿰의 신뢰’ 효과로 계속 독에 저항하는 중이었다.

한편, 계획에 없던 존재의 등장으로 당황했던 장현재는 쓰러진 서예린의 모습을 확인하고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일이 조금 복잡해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상관없지. 이봐!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내 쪽으로 와라.”

“…….”

“네 녀석에게는 별로 악감정이 없으니. 내 말만 따라준다면 적당히 기절만 시켜주지. 내가 관심 있는 건 땅바닥에 뒹구는 저년이니까.”

그는 마치 선심 쓴다는 듯 거들먹거렸다.

나는 당연히 쓰레기 같은 놈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쓰러진 서예린을 보호하듯 앞으로 나섰다.

“예린이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이지?”

“그렇게 나쁜 짓을 할 생각은 없다고. 저 미친년, 성격은 지랄 맞아도 얼굴은 반반하잖아. 저렇게 쓰러져 있는 지금이 적당히 즐길 타이밍 아니겠어?”

“너…… 쓰레기라는 말도 아까운 놈이구나.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당장 돌아가. 이 일은 백호 길드인가 뭔가 하는 곳에 제대로 따져 물을 테니까.”

“하핫!”

장현재는 내 대답에 코웃음을 치더니.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진압봉을 꺼내 들었다.

“글쎄? 일단 여기서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치지직! 치직!

진압봉에서는 새하얀 스파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너처럼 말 안 듣는 놈한테는 이게 제격이거든. 걱정 마. 흉터는 안 남을 테니까.”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장현재.

나는 대화를 하는 동안 미리 꺼내 두었던 아티팩트를 오른팔에 착용했다.

“뭐야? 겨우 아티팩트 하나 믿고 이렇게 까분 거야? 이거 무척 실망인데.”

“걱정 마. 너 같은 버러지한테는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새끼가!!”

장현재는 곧바로 방망이를 휘두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안드라스 씨, 나중에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드릴 테니까!

아티팩트 믿을게요!

속으로 안드라스의 이름을 외치며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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