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3화
감시관의 임무(5)
-까앙!!!
아티팩트에서 발동된 반투명한 방어막이 진압봉과 부딪치며 둔탁한 금속음을 냈다.
장현재는 계속 진압봉을 휘둘렀지만, 한 번 발동된 방어막은 쉽게 뚫리지 않았다.
“쳇! 성가시게 구네.”
“…….”
그가 한발 물러서자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겉으로 보이는 침착한 표정과는 달리, 속으로는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긴장감 넘치는 전투의 상대가 사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장현재는 자존심이 약간 상한 듯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이봐. 이제는 안 봐줄 거야. 흉터 생기는 정도로는 안 끝날 테니까 각오하라고.”
진압봉에 흐르는 새하얀 스파크가 더욱 격렬히 터져 나왔다.
점점 더 살벌한 기운을 뿜어내는 상대를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공격을 해야 하나? 그런데 이거 사람을 향해 쏴도 되나? 설마 죽기라도 하면…….
그사이 새하얀 섬광과 함께 다시 한번 진압봉이 보호막을 강타했다.
-까아아앙!!!
-찌지직!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강한 일격에 보호막에 살짝 금이 생겨났다.
장현재는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을 했지만, 나는 오히려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방어만 하다가는 나뿐만 아니라 예린이도 위험해져.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공격해야 해!
공격을 다짐하고.
상대와 잠시 거리가 벌어진 사이, 곧바로 마법의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화염구!”
-화르르륵!
새빨간 불덩어리가 곧장 장현재를 향해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공격을 피해냈다.
-콰아앙!
빗나간 화염구는 땅바닥에 부딪히며 폭발했다.
자동으로 조준하는 기능이 있다고 해도, 장현재의 움직임은 화염구를 피해낼 만큼 아주 날렵했다.
공격 마법을 사용하자. 장현재는 더 거세게 공격을 몰아붙였다. 아마 다른 마법을 시전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했다.
안드라스와 함께 아티팩트로 마법 몇 번 써본 게 전부인 데다가, 전투 경험이 전무한 나는 방어막을 사용하며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긴박한 상황이 이어지던 도중.
장재현의 몸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치직…… 치직…… 형님!
“뭐야?”
-이제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보스를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안 돼! 보스를 잡아버리면 마비 효과가 다 풀려버린다고. 조금만 더 버텨!”
-하지만 조금 있으면 광폭화…….
그는 동료의 통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이제는 여유가 사라져 독기가 바짝 오른 표정으로 나를 노려봤다.
“이제 장난은 끝이야. 뒤지기 싫으면 당장 그년 내놔.”
“…….”
대답 대신 장현재를 향해 아티팩트를 들어 올렸다.
그의 눈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곧바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곧바로 마법을 시전해 대응했다.
“느릿한 화염구 따위…….”
“바람의 추적자.”
-휘이이잉!!
“컥!”
아티팩트에서 발동된 새로운 마법.
엄청난 강풍이 장현재를 강타했다. 외마디 신음 소리와 함께 땅바닥을 뒹굴었다.
“커헉! 3가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아티팩트라고? 도대체 어떻게?!”
내가 다른 마법을 사용할 줄 전혀 예상 못 했는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아티팩트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 입장에서는 그의 반응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왜냐하면 안드라스가 전해준 이 아티팩트에는 4가지의 마법이 저장되어 있었으니까.
-그어어어어억!!!
보스 에리어 쪽 숲속에서 다시 한번 커다란 괴성이 울려 퍼졌다. 이전보다 훨씬 커다란 울음소리였다.
그리고 동시에 장현재의 동료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형님!! 큰일 났습니다. 광폭화…… 보스가 광폭화에 들어갔어요!!
“이런 X발…….”
-이제 해독제는 소용없습니다. 빨리 도망치셔야 해요!
“……알았다.”
-그어어어어억!!!
다시 한번 보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장현재는 나를 한번 노려보고는 재빨리 11에리어를 벗어났다.
나는 장현재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한동안 긴장을 풀지 않았다.
잠시 후.
장현재가 완전히 떠났다고 판단하고. 쓰러진 서예린의 상태를 확인했다.
“예린아! 예린아! 괜찮아?”
“으윽…… 상자…… 상자…….”
“뭐?”
“빨…… 간색…… 상자…… 해독제.”
“아!”
그녀가 하려는 말을 알아듣고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11에리어를 빠져나와 들어오기 전에 봤던 빨간색 상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근처에는 이곳을 지키고 있던 보안 직원 한 명도 쓰러져 있었다.
-달칵!
안에는 비상용 전화기와 구급상자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안에서 보스의 독을 해독할 수 있는 해독제를 찾아냈다.
조심스럽게 해독제의 뚜껑을 열어 서예린이 마실 수 있도록 해줬다.
다행히 약효가 금방 돌았는지 그녀는 조금씩 원래의 몸 상태로 돌아왔다.
가장 먼저 풀린 입으로 한 말은.
“그 미친 새끼…….”
“알고 있구나.”
“누워 있어도 그 새끼가 지껄이는 헛소리는 다 들었거든.”
“그보다 몸은 괜찮아?”
“응…… 고마워, 시현아.”
나에게는 한결 부드러운 눈길과 미소로 대답했다.
-그어어어어억!!!
점점 가까워지는 울음소리에 서예린의 표정이 금방 굳어졌다.
“시현아. 너는 보안 직원 좀 챙기고 있어.”
“알았어.”
나는 쓰러진 보안 직원을 일으켜 해독제를 먹였고, 서예린은 비상용 수화기를 들어 곧바로 지금의 상황을 알렸다.
-균열통제센터입니다.
“E구역. 광폭화 상태 보스 접근 중. 빨리 위험 경보 울리세요!”
-예?
“보스 에리어에서 붉은 기운 올라오는 중이에요. 빨리 균열 내의 사라들을 대피시켜야 한다고요.”
-어어…… 어. 그러니까 누구시죠? 절차상 각 에리어에 있는 보안 직원의 보고가 있어야…….
“야이, 답답하게! 보안 직원이 쓰러져 있으니까 내가 전화한 거라고! 사람 죽는 꼴 보기 싫으면 당장 위험 경보 울려!”
-아. 앗.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균열 내부에는 위험 경보와 대피 안내 방송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쓰러져 있던 보안 요원도 정신을 차렸다.
“으윽. 위험 경보?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광폭화한 보스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부축해 드릴 테니까 같이 대피하시죠.”
“자, 잠깐만요.”
“……?”
“E구역 다른 몇몇 에리어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대피를 확인해야 합니다.”
대피 방송이 울렸는데도 E구역에는 대피하는 사람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모두 마비독에 당한 상태일지도 몰랐다.
-그어어어어억!!
기분 나쁜 울음소리와 함께 숲속에서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괴한 나무의 형상. 자라난 가지와 풀은 곳곳이 썩어 있었고. 거대한 몸체가 움직일 때마다 주변에 붉은 기운을 뿌렸다.
이제 정말로 보스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급박한 상황에 가장 먼저 판단을 내린 건 서예린이었다.
“시현아. 너는 이분을 도와서 대피 못 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너는?”
“나는 어떻게든 보스의 움직임을 늦춰볼게.”
“위험합니다! 광폭화 상태에서 뿌리는 붉은 기운에 계속 노출되면 신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조금은 괜찮아요. 대피 확인이 완료되면 그때 빠져나오면 돼요. 부탁할게, 시현아!”
위험하다는 보안 요원의 만류에도 서예린은 곧장 보스가 있는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남아 있던 나와 보안 요원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사람이 입장한 곳은 3, 5, 10, 11, 12에리어입니다. 두 분께서 11에리어에서 나오셨으니 나머지 4군데만 확인하면 됩니다.”
우리는 각각 10, 12에리어와 3, 5에리어로 나뉘어 대피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이건 제가 여분으로 가지고 있는 마스터 카드입니다. 이걸 사용하시면 모든 에리어의 문을 여실 수 있을 겁니다. 확인이 끝나시면 바로 여기로 오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와 보안 요원은 흩어져 각자 맡은 에리어로 향했다.
먼저 10에리어에 도착했다.
보안요원에게서 받은 마스터 카드로 문을 열었다.
다행히 10에리어 내부에는 아무도 없었다.
곧바로 12에리어로가 문을 열었다.
“으윽…….”
문 앞에 쓰러진 20대 여자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빠르게 여자의 고개를 들어 챙겨온 해독제를 먹여줬다.
서예린 때와 마찬가지로 금방 제정신을 되찾았다.
“정신이 좀 드세요?”
“네. 쿨럭! 고맙습니다. 독이 퍼지는 걸 느끼고 도망치려고 했는데, 문 앞에서 그만 정신을…….”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광폭화 상태의 보스가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쿨럭! 알겠습니다.”
어깨를 부축해 여자의 몸을 일으켰다.
조금 비틀거리긴 했지만 금방 자신의 힘으로 걷기 시작했다.
여자를 데리고 보안 요원과 약속했던 장소로 되돌아갔다.
그곳에는 이미 보안 요원이 남자와 여자 한 명씩을 데려온 상태였다.
“그러면 E구역은 다 빠져나온 거죠?”
“네, 수고하셨습니다. 아까 그 여자분만 빠져나오면 되는데…….”
보안 요원을 포함해 다른 세 사람도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
“제가 예린이를 데려올게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나마 몸 상태가 제일 정상인 제가 가야죠. 나머지 분들은 먼저 대피하세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보안 요원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해 죄책감에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나는 가볍게 웃어주고는 서예린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 *
주변은 온통 기분 나쁜 붉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야쿰의 신뢰’ 효과가 발동합니다.]
[신체에 영향을 주려는 독 성분에 저항합니다.]
[완벽히 저항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습니다.]
녹색 독 포자 때와는 달리 ‘야쿰의 신뢰’ 효과도 붉은 기운을 완벽히 막아내지 못했다.
그러자 더욱 서예린의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최대한 빠르게 그녀를 찾기 위해 발걸음을 빠르게 했다.
거대한 나무 괴수 근처에서 소환수와 함께 전투를 벌이는 서예린의 모습을 발견했다.
“<솟아올라라, 끊임없는 대지의 속박!>”
-드드드드득!
넓게 땅이 울렁거리더니, 사방에 땅이 내려앉으며 적의 움직임을 막았다.
하지만 아주 잠시 움직임을 더디게 했을 뿐, 거대한 나무 괴수의 움직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법을 빠져나오려는 괴수를 소환수가 막아보려 했지만. 거대한 팔을 휘두르는 공격에 멀리 떨어져 나갔다.
“크흑!”
소환수가 받은 큰 충격에 서예린도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땅바닥에 쓰러진 소환수는 연기가 되어 천천히 사라졌다.
“예린아!”
나는 비틀거리는 그녀를 잡아 부축했다.
“왔구나…… 다른 사람들은?”
“네가 막아준 덕분에 전부 대피했어.”
“그래? 다행이다.”
붉은 기운에 오랫동안 노출된 까닭인지, 그녀의 안색이 너무 좋지 않았다.
코에서는 붉은 피가 주르륵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으으으윽!
마법을 빠져나온 괴수가 곧장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와 함께 도망치기에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쓰러질 듯 나에게 기댄 서예린이 계속 뭐라 중얼거렸지만, 이미 나는 결정을 내리고 아티팩트를 매만졌다.
-네 번째 마법은 가장 위력이 강합니다. 대신 컨트롤이 쉽지 않으니 위급한 상황에서만 사용해 주세요.
안드라스의 설명을 떠올리며 아티팩트의 출력을 최대로 올렸다.
-우우우우웅!!
출력을 올린 것만으로도 오른팔에 강력한 마력의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괴수를 향해 마법을 시전했다.
“파멸의 불꽃!”
-푸화하하학!!
마법이 시전됨과 동시에 새빨간 불꽃이 거대한 나무 괴수의 온몸을 휘감았다.
-끄어어어억!!
불지옥에 온 것 같은 뜨거운 열기 폭풍에 나는 서예린을 보호하며 간신히 버텨냈다.
아티팩트의 보호막이 없었다면 그대로 익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열기였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지옥의 불길이 조금씩 걷히고.
거대 나무 괴수의 처참한 모습이 드러났다.
온몸에 절반 이상이 재가되어 사라졌고, 남아 있는 부분도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쿵!
천천히 기울어지던 괴수의 몸체가 충격음과 함께 바닥에 완전히 드러누웠다.
동시에 주변에 일렁이던 붉은 기운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아. 해치운 거지?”
“으응…… 해치웠네?”
나와 서예린은 약간 멍청한 대화를 나누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붉은 기운이 사라진 덕분에 그녀의 안색도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갔다.
잠시 후 서예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현아.”
“응?”
“정말 고마워. 구하러 와줘서…….”
“당연히 와야지. 네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대피할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반쯤 내게 기대서 쑥스럽게 인사를 건넸고, 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시현아.”
“……?”
“그렇게 대단한 아티팩트였으면 일찍 일찍 도와주지 그랬니? 나 개고생하게 만들지 말고.”
“…….”
장난과 진심이 반쯤 섞인 그녀의 물음에.
나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