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4화
감시관의 임무(6)
거대 나무 괴수를 쓰러뜨리고.
나와 서예린은 뒤늦게 출동한 보안 요원, 괴수제압부대에 의해 구출됐다.
균열 내부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의료진이 있는 곳으로 이송돼 이것저것 검사를 받았다.
외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나무 괴수의 붉은 기운이 온몸에 영향을 받았고 피해를 받은 상황이었다.
검사한 의료진이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으니, 당분간은 주의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짧은 시간 동안만 붉은 기운에 노출된 나는 금방 검사가 끝났다.
반면 상대적으로 긴 시간 노출됐던 서예린의 검사는 길게 이어졌다.
30분 정도 기다리자 검사를 끝낸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실실 웃음을 지었다.
“헤헤. 기다리고 있었어?”
“그럼 당연히 기다려야지. 몸은 괜찮아? 검사 결과는 잘 나왔어?”
“일단 큰 문제는 없대. 그런데 괴수의 붉은 기운에 조금 오래 노출돼서 나중에 후유증이 찾아올 수도 있대.”
“…….”
나는 자연스럽게 드는 죄책감에 표정 굳어졌다.
이런 사건이 생기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니었더라도, 이곳에 오게 된 계기는 나의 부탁 때문이었으니까.
그녀는 내 생각을 금방 눈치채고. 짐짓 괜찮은 척 과장된 표정과 행동을 보였다.
“원래 의사 선생님은 환자 겁주려고 심각한 척 이야기하는 거야. 나 정도 되는 경험과 실력이 있으면 후유증 정도는 문제없지!”
“으응…….”
“너도 괜한 걱정하지 말고 얼굴 펴. 그리고 마음껏 기뻐하라고. 이 정도면 내가 인정할 만한 성공적인 데뷔전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서예린은 장난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그 대책 없이 장난스럽고 밝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음을 짓눌렀던 죄책감은 조금 가벼워지고, 그 자리에 그녀에 대한 감사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우리가 무거운 분위기에서 막 벗어났을 때, 익숙한 모습의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바로 다른 사람들과 먼저 탈출했던 보안 요원이었다.
“두 분 모두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그는 살짝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와 서예린의 귀환을 기뻐했다.
우리도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당연하죠. 먼저 가라고 해놓고 죽어버리면 창피하잖아요.”
“다른 분들은 괜찮으세요?”
“네. 모두 무사합니다. 치료와 약 처방을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이미 귀가하신 분도 계십니다. 그분들도 떠나기 직전까지 남은 두 분을 계속 걱정하셨습니다.”
“다행이네요.”
“두 분이 남아주지 않으셨다면 정말 위험했을 겁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안 요원은 붉어진 눈시울과 반쯤 잠긴 목소리로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의 진심 가득한 인사에 나는 괜찮다며 손을 내저었고, 장난스럽던 서예린도 뿌듯함과 약간의 민망함에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세 사람의 훈훈함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딱딱한 표정의 남자 몇 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불쑥 찾아온 불청객으로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해졌다.
“임시현 씨 맞으십니까?”
“예. 제가 임시현입니다.”
“이능범죄수사대 강홍석 형사입니다.”
남자는 자신의 경찰 신분증을 내보이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 예. 근데 형사님이 무슨 일로?”
“불법 아티팩트 사용에 대한 신고가 들어와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수사에 협조해 주시죠.”
“네??”
깜짝 놀라며 형사를 바라봤다. 옆에서 지켜보던 서예린이 화를 내며 불쑥 끼어들었다.
“아니, 갑자기 우리 시현이를 수사한다고요? 오히려 상을 줘도 부족한데!”
“맞습니다. 이분은 위험해 처해 있던 저희를 구해주신 분입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서예린뿐만 아니라 보안 요원도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강홍석 형사는 전혀 흔들림 없이 완고했다.
“임시현 씨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사용한 아티팩트가 불법적인 물건이라면 저희는 당연히 수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시현이를 신고한 건데요?”
“그건 당연히 말씀드릴 수 없…….”
“우리가 신고했다.”
형사들 뒤에서 50대 중년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장현재가 서 있었다.
“저 변태 새끼가!”
“어이, 여기에 형사님들도 계신 데 말조심하지?”
서예린의 격렬한 반응에 장현재는 뻔뻔하게 대응했다.
나는 최대한 머리를 냉정하게 하고,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형사님. 저 장현재라는 사람이 균열 내부에서 어떤 일을 벌이셨는지 알고 계십니까?”
“네, 백호 길드 분들이 필드 보스를 잡는 과정에 생긴 문제로 여기 두 분과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뒤에 있던 중년 남성이 끼어들었다.
“마찰이 아니야. 저 두 연놈이 우리 조카를 먼저 공격했어! 그 때문에 필드 보스는 광폭화 상태에 들어가서 일이 이 지경이 된 거잖아.”
“정신 나간 아저씨, 무슨 헛소리에요? 저 변태 같은 새끼가 우리를 먼저 공격했다고요!”
“이 버릇없는 년이?! 내가 누군지 알아? 백호 길드의 부길드장 장병호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진 덕에 주변에는 슬금슬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중간에 형사가 나서서 흥분한 두 사람을 진정시켰다.
“두 분 다 물러서세요. 이렇게 계속 방해하시면 공무집행방해로 모두 연행하겠습니다.”
“크흠.”
“씨이…….”
강홍석 형사는 다시 내게 시선을 돌렸다.
“임시현 씨, 아티팩트를 사용해 여기 장현재 씨와 전투를 벌이셨고, 또 필드 보스를 혼자 해치우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으음…… 네, 맞습니다.”
“장현재 씨는 전투 과정에서 임시현 씨가 불법적인 아티팩트 사용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형사님, 물어볼 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저 필드 보스를 한 방에 잡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저 아티팩트는 분명 불법적인 개조로 만들어진 게 틀림없습니다.”
장현재은 내게 손가락질하며 악을 썼고. 강홍석 형사는 뚫어질 듯 나를 노려봤다.
어허, 이것 참…….
나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티팩트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지 않지만, 안드라스가 나에게 문제가 될 만한 것을 줬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에 대한 내 믿음은 확실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이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강홍석 형사님. 저는 이 아티팩트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 만들어진 것을 전해 받았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이게 불법적인 아티팩트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 가지고 계신 아티팩트의 식별 코드를 알려주시겠습니까? 불법적인 게 아니라면 정상적인 식별 코드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식별 코드요?”
내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서예린이 직접 나섰다.
“아티팩트가 생산될 때는 무조건 고유한 식별 코드가 부여되거든. 아마 여기쯤에 코드가 찍혀 있을 텐데…….”
그녀는 내가 착용하고 있는 아티팩트를 한참 동안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고는 얼굴이 점점 당황으로 물들어갔다.
“어…… 어어?”
“……?”
“식별 코드가…… 없어…….”
서예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반면에 장현재와 장병호는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비아냥거렸다.
“큭큭. 그럴 줄 알았다.”
“형사님들 뭐하십니까? 어서 저 범죄자를 잡아가지 않고!”
장병호의 재촉에 형사들이 순식간에 나를 에워쌌다.
직접 아티팩트에 식별 코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론을 내렸다.
“임시현 씨. 그 불법 아티팩트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는 경찰서에서 나누도록 하죠.”
서예린과 보안 요원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주변에 구경하던 사람들도 나와 아티팩트를 보며 수군거렸다.
나는 다가오는 형사들을 보며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형사님. 가기 전에 전화 한 통만 해도 되겠습니까?”
“변호사를 부르실 생각이라면 경찰서로 오시게 하면 됩니다.”
“아뇨. 이 아티팩트가 문제 될 시에 연락하라고 한 사람이 있거든요.”
내 말에 완고했던 형사가 살짝 관심을 보였다.
아마도 불법 아티팩트와 연관이 있는 인물일 거라 예상한 듯했다.
그는 다른 형사들과 함께 약간 물러섰다.
“너무 길게는 안 됩니다.”
“감사합니다.”
휴대폰을 꺼내 발레리안이 줬던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짧은 연결음 뒤에 곧바로 전화가 연결됐다.
“아! 여보세요? 저 발레리안 씨 소개로 연락드렸는데요.”
-…….
“그게 상황이 좀 복잡해져서요.”
나는 최대한 간단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
“아. 예. 알겠습니다.”
통화를 잠시 멈추고 들고 있던 휴대폰을 강홍석 형사에게 건넸다.
“형사님. 이분이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다는데요.”
* * *
백호 길드의 부길드장인 장병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길드 최고의 골칫덩이인 조카의 실수를 어떻게든 덮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형님 아들만 아니었으면…… 그래도 운이 좋았어. 설마 진짜로 불법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조카의 실수로 보스 사냥에 실패했다는 소식에 1차로 화가 치솟았고, 그 속에 추악한 진실을 듣고 나서는 뒷목을 잡을 뻔했다.
일단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를 잡기 위해 먼저 경찰서에 신고했다.
백호 길드라는 이름값 때문인지 경찰 쪽에서는 바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형사 앞에서 아티팩트의 식별 코드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장병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설사 불법 아티팩트가 아니었다 해도 적당한 여론몰이와 진흙탕 싸움으로 몰고 갈 생각이었는데. 상대방은 정말로 불법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다.
‘됐어! 이제 불법 아티팩트를 물고 늘어지면 망할 조카의 실수는 덮을 수 있어. 그리고 나머지는 저놈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야.’
장병호는 속으로 음침한 계획을 세우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형사님. 가기 전에 전화 한 통만 해도 되겠습니까?”
전화를 연결하는 임시현을 보며 장병호는 비웃음을 흘렸다.
‘쯧쯧. 마지막 발버둥을 치는군.’
하지만 전화 한 통으로 상황은 그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누구시라고요?”
-…….
“아앗! 예. 이능범죄수사대 강홍석 형사입니다. 네네. 맞습니다. 반장님은 잘 지내십니다.”
갑자기 저자세로 변한 강홍석 형사.
장병호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해졌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
“장병호 부길드장님. 전화 받아주시죠.”
그는 굉장히 불쾌했지만, 형사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안녕하십니까?
“누군데 맘대로 전화를 받으라 하는 거요?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렇게…….”
-당신이 누군지는 별로 관심 없습니다. 저는 제가 해야 할 일만 처리할 뿐입니다.
안하무인인 상대방의 행동에 분노가 치밀어오름과 동시에 마음 한편으로 싸한 기분이 들었다.
경험에서 나온 본능으로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고 한결 조심스러워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백호 길드의 부길드장 장병호요. 당신도 예의를 안다면 신분을 밝히시오.”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아 보이는데. 뭐, 이쪽이 이야기가 빠를 것 같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차원관리본부의 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기석이라고 합니다.
“……!”
장병호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