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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9)화 (4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49화

꿀벌 대소동(4)

“저 왔어요.”

농장 건물에 들어서면서 돌아왔음을 알렸다.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역시 은율이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튀어나와 내 품에 뛰어들었다.

“어구구. 나 기다리고 있었구나. 내가 조금 늦었지?”

내가 늦게 돌아와 서운했는지 은율이는 말없이 꼭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한발 늦게 리아네도 나와서 나를 반겨주었다.

“시현 님, 조금 늦으셨네요?”

“네. 약간 일이 있어서…….”

두 사람에게서 따뜻한 배웅을 받던 도중, 내 오른쪽 어깨에서 누군가 쏙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여기가 시현이 사는 곳이야, 뾰?」

“어머?”

“……?”

갑작스러운 요정의 등장에 리아네와 은율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보는 거냐, 뾰?」

* * *

“쯧쯧, 그래서 또 오지랖 좋게 나선 거냐?”

“오지랖이 아니라 거래였어요. 텃밭을 살리려면 지금으로써는 요정에게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 뾰! 시현이 날 도와주면, 나도 도와주기로 약속했다, 뾰!」

카네프는 나와 요정을 번갈아 쳐다보며 해탈한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였다.

“에휴, 위험한 일은 확실히 아닌 거지?”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 그냥 꿀벌들을 좀 돌봐달라고 부탁을 받았을 뿐이에요.”

“마왕의 명령도 있었으니. 이번에도 네가 알아서 해봐라.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고.”

생각 외로 카네프가 쉽게 허락을 해주자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생각보다 뭐라고 안 하시네요?”

“아니, 왜 허락을 해줘도 난리야?”

“평소 같았으면 왜 쓸데없는 일에 끼어들었냐면서 엄청나게 잔소리하시잖아요.”

“나도 이곳저곳 떠돌며 수많은 경험을 했지만, 직접 요정을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다. 거기다 요정이 먼저 부탁을 해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데 내가 뭐라고 하라 말라 잔소리를 하겠냐?”

“저도 이렇게 요정을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카네프와 리아네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요정은 나만큼이나 그들에게도 신기한 존재인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요정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존재가 있었으니.

-콕. 콕.

은율이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요정을 날개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찔렀다.

「뭐 하는 거냐, 뾰!」

당연히 요정은 펄쩍 뛰며 화를 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작은 여우 소녀의 관심을 떨쳐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은율이는 반짝이는 눈동자로 계속 요정에게 손을 뻗었다.

요정은 귀찮게 하는 손길을 피해 다시 내 어깨로 도망쳤다. 은율이는 아쉽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은율아, 그렇게 막 만지면 안 돼. 요정이 싫어하잖아.”

“으응…… 미안해.”

「흥!」

은율이의 사과에도 요정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무래도 둘이 친해지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처럼 보였다.

* * *

다음 날.

나는 요정, 리아네, 은율이와 함께 꽃밭으로 나섰다.

오늘도 꽃밭에는 수많은 꿀벌이 바쁘게 꿀을 채취하는 중이었다.

은율이는 잠시 리아네에게 맡겨놓고, 나는 본격적으로 꽃밭의 꿀벌들에게 다가섰다.

-부우우우웅!

-부우웅!!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여왕은 꿀벌이 꽃을 망치지 않도록 통제를 부탁했는데.

한눈에 다 담기도 힘든 수십, 수백 마리의 꿀벌들을 도대체 무슨 수로 통제할 수 있을까?

내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익숙한 꿀벌 한 마리가 내게 다가왔다.

어제 계속 나를 따라다녔던 그 꿀벌이었다.

-부우웅!

“너구나? 오늘도 꿀을 채취하러 온 거야?”

꿀벌은 내 손바닥 위에 사뿐히 내려앉고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교감 능력을 통해 꿀벌이 반가움을 표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래, 일단 이 녀석부터 시작해 보자.

한 마리, 한 마리씩 통제를 시도해 보는 거야.

“요정아! 거기 있지?”

「왜 부르는 거냐, 뾰?」

“내가 지금, 이 꿀벌에게 꽃을 망치지 않고 꿀을 채취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하는데. 좀 도와줄래?”

「알았다, 뾰!」

나는 요정의 도움을 받아 꿀벌의 교육을 시작했다.

* * *

-부우우우웅!!

「그게 아니다, 뾰! 그렇게 하면 꽃이 꺾여버린다, 뾰!」

「으앙! 너무 거칠게 하면 안 된다, 뾰!」

어떻게든 꿀벌이 꽃을 상처입히지 않게 알려주려 했지만, 나와 요정의 갖은 노력에도 꿀벌의 행동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요정이 지적하면 할수록 꿀벌의 행동은 더욱 어색해지는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나는 답답한 마음에 점차 얼굴이 흐려졌다.

요정도 나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우웅…… 부우웅…….

꿀벌은 미안한지 불안하게 우리의 주변을 맴돌았다.

해결책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을 때, 리아네와 놀고 있던 은율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빠, 뭐 해?”

“으음. 꿀벌에게 뭔가를 알려주고 있었어.”

“꿀벌?”

내가 손을 앞으로 내밀자 꿀벌은 알아서 내 손바닥 위에 내려앉았다.

은율이는 내 왼쪽 팔에 찰싹 달라붙어 귀여운 꿀벌을 구경했다.

“뭘 알려준 거야?”

“꽃에서 꿀을 채취하는 방법을 알려줬어.”

은율이는 내 말을 듣고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걸 배워?”

“……?”

“꿀벌이 더 잘 알 텐데…….”

“……?!”

그 천진난만한 물음에, 나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띵해졌다.

내가 꿀벌에게 꿀을 채취하는 법을 가르치다니,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꿀벌을 통제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망각해 버리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꿀벌과 교감을 시도했다.

처음 교감을 시도했을 때보다 훨씬 더 꿀벌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의식을 연결했다.

[마수와 교감을 시도합니다.]

[대상은 당신에게 ‘친밀’한 감정을 가집니다.]

[대상은 ‘여왕벌’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대상은 지금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의식 깊숙한 곳에서 꿀벌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여왕벌이 전투 병력을 지휘하느라 뿌린 영향력이 지금 꿀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그 불안감에 접근했다.

너무 급하지 않게 천천히.

마치 은율이를 달래줄 때처럼 따스하게 꿀벌의 불안함을 감쌌다.

그리고 잠시 시간이 지나고 마음속에 불안함이 점점 줄어들더니, 마지막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천천히 눈을 뜨자 손바닥 위에서 나를 올려다보는 꿀벌이 보였다.

잠시 후 꿀벌은 내 손을 떠나서 꽃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뿐히 꽃에 내려앉은 꿀벌은 이전과 다르게 안정적으로 꿀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와아아! 드디어 꿀벌이 제대로 일하기 시작했다, 뾰!」

요정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꿀벌을 보면서 크게 기뻐했다.

나 역시 드디어 문제의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아. 이제 해결 방법은 찾았는데. 저 많은 꿀벌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 꿀벌들의 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다 은율이와 요정을 떨어뜨려 놓고, 꽃밭의 한가운데로 향했다.

그곳에 편한 자세로 앉아 차분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될지 안 될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한번 시도해 보자.

여왕벌은 분명 나에게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갖췄다고 했다.

나는 여왕벌 주변으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던 기운을 떠올리며 정신을 집중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교감 능력을 발동시켰다.

마치 그물을 펼치듯 내 의지를 넓게 퍼뜨렸다.

체감상 커다란 꽃밭을 뒤덮을 만큼 의지를 퍼뜨렸을 때, 머리의 한쪽이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 이상은 무리인가?

나는 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넓게 퍼진 교감 능력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점차 수많은 꿀벌의 감정이 나의 의지와 연결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꿀벌들의 감정에 내 의지를 불어넣었다.

머리의 지끈거림이 점차 심해졌지만, 교감 능력 유지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통증이 사라지더니 몸과 마음이 아주 편안한 상태에 접어들었다.

넓은 꽃밭의 꽃과 수많은 꿀벌뿐만 아니라, 스치는 바람결과 땅의 울림까지 의지와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자연의 일부분이 되는 듯한 즐거움!

그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하기 힘든 성취감이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내 의식은 자연스럽게 무의식의 바다로 빠져들었다.

마지막 의식이 끊기기 직전에 머릿속에 상태창 소리가 울렸다.

[‘교감(交感)’ 능력이 강화됩니다.]

[‘대지 영혼의 파편’이 조금 더 완전해집니다.]

[능력치가 약간 상승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 * *

“…….”

다시 의식을 되찾고 천천히 눈을 떴다. 주변은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꿀벌들이 날아다니는 소리가 사라진 것을 보니, 모두 둥지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어? 눈을 뜬 것 같다, 뾰!」

「진짜다. 진짜 눈을 떴다, 뾰!」

눈을 뜨고 아주 잠깐 사이에 주변은 아주 소란스럽게 변했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폈다.

소란스러움의 주인공은 나를 둘러싼 수많은 요정이었다.

「와아아!」

「마을의 은인이 일어났다, 뾰!」

갑자기 환호성을 내지르는 요정들 때문에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환호성 소리를 듣고 리아네와 은율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시현 님! 갑자기 쓰러지셔서 깜짝 놀랐어요.”

“그냥 푹 자고 일어난 것뿐이에요.”

“아빠, 괜찮아?”

“응, 괜찮아.”

불안한 표정의 은율이를 꼬옥 껴안아 줬다.

다행스럽게도 금방 은율이의 얼굴에 불안함이 사라졌다.

「역시 시현을 알아본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 뾰!」

귤색 요정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변 요정들에게 자랑했다.

“요정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시현 덕분에 꿀벌들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뾰! 꿀벌들이 더 이상 꽃을 망치지 않게 됐다, 뾰!」

“정말이야?”

「정말이다, 뾰! 그것 때문에 마을의 친구들 모두 시현을 만나러 나왔다, 뾰!」

기회만 엿보며 잔뜩 몰려 있던 요정들이 동시에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고맙다, 뾰!」

「너는 우리 마을의 은인이다, 뾰!」

「시현? 이상한 이름이다, 뾰!」

여기저기서 재잘대는 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려는 순간, 귤색 요정이 앞으로 나서며 다른 요정들을 제지했다.

「시현은 내 친구다, 뾰! 마음대로 말 걸지 마라, 뾰!」

요정의 유치한 질투심 덕분에 다른 요정들의 소란스러움이 순식간에 정리됐다.

말을 걸고 싶어 안달이 난 다른 요정들이 조금 불쌍하긴 했지만, 지금은 조용히 지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럼 네가 부탁했던 일은 잘 끝난 거지?”

「그렇다, 뾰! 이제 나랑 친구들이 은혜를 갚을 차례다, 뾰!」

* * *

내가 꽃밭의 꿀벌들을 정상적으로 되돌린 다음 날, 요정들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딸기 텃밭으로 찾아왔다.

-샤라라라락!

-반짝반짝!

수십 명의 요정이 텃밭 위를 날아다니며 반짝이는 가루를 쏟아냈다.

그러자 마법처럼 시들었던 딸기 모종이 생생한 기운을 되찾았다.

나를 포함한 농장 식구들은 그 광경을 홀린 듯 구경했다.

다시 생기를 되찾은 텃밭을 보며 은율이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기뻐하는 우리를 향해 귤색 요정이 날아왔다.

「시현! 이곳을 마을의 새로운 영역으로 만들기로 했다, 뾰!」

“마을의 영역으로 만든다니?”

「마을의 새로운 영역이 되면 요정들은 의무적으로 이곳의 식물들을 돌볼 거다, 뾰!」

“정말이야?”

「이 텃밭의 책임자는 내가 맡기로 했다, 뾰! 앞으로 잘 부탁한다, 뾰!」

요정은 내 오른쪽 어깨에 걸터앉으며 방긋 미소 지었다.

“그래, 나도 잘 부탁해.”

이렇게 농장에는 텃밭과 함께 귀엽고 작은 요정들이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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