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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51)화 (51/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51화

놀라운 성장(2)

라구스의 도움으로 새로운 딸기밭 계획이 착실히 진행되어 갔다.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계획 준비를 도왔는데.

“딸기밭의 규모는 얼마나 생각하고 계십니까? 위치는? 예산은 어느 정도로 잡으셨습니까? 규모가 크다면 미리 장비나 재료를 구매해 놓는 게…….”

괜히 젊은 나이에 마을 촌장이 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한 계획을 듣더니 곧바로 보완해야 할 부분과 필요한 것들을 줄줄이 읊었다. 그중에는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정확한 규모는 직접 확인해 봐야겠지만, 대략 10명에서 15명 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네.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네요.”

“일꾼은 어느 정도 농사의 경험이 있으면서. 제가 지켜봤을 때 성실하고, 평소 행실에 문제가 없는 주민들 위주로 철저히 선별하겠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열성적이다 못해, 이제 맹목적인 사명감까지 느껴지는 라구스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살짝 부담스러웠다.

나와 라구스가 새로운 딸기밭에 관한 이야기를 착착 진행되고 있는 사이, 옆에서 불안하게 지켜보던 에르긴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호, 혹시 새로운 장비나 건설 기술자는 안 필요하십니까?”

“흐음.”

“시현 님, 농사에 필요한 장비는 대부분 주민이 가지고 있을 겁니다. 굳이 새로 살 필요는…….”

“판매하려는 게 아닙니다. 필요하시다면 제 사비로 지원을 해드리려는 겁니다. 이왕이면 튼튼한 새 장비가 좋지 않겠습니까? 거기다 밭을 늘리시려면 보관 창고 같은 시설도 필요할 겁니다.”

새로운 딸기밭에 어떻게든 여지를 남기고 싶어 하는 듯했다.

평소의 여유로운 모습과 달리 절박한 모습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에르긴 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설을 임시로 만드는 거면 모르겠지만, 오래 두고 쓰려면 건설 기술자 몇 명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시현 님!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라구스의 말에 힘을 얻은 에르긴이 다시 한번 내게 그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럼 장비는 새로 사는 걸로 하고, 추천해 준 건설 기술자도 고용할게요. 대신 비용은 내주시지 않으셔도 돼요. 전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에르긴의 표정이 잠시 밝아졌다가, 내가 전부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말에 다시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은근한 표정으로 다시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 시현 님. 새로 만드는 딸기밭의 딸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이번에도 저에게 맡겨주신다면…….”

“아직 딸기밭이 잘될지 안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조금 이른 것 같네요.”

은근슬쩍 꺼내는 계약 이야기를 나는 단호하게 끊어냈다.

에르긴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빨리 계약을 해서 이득을 보고 싶었겠지만, 나로서는 전혀 급하게 행동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불안해하는 에르긴을 일부러 못 본 척하면서. 나는 라구스와 딸기밭 이야기를 마무리해 나갔다.

* * *

며칠 뒤.

엘든 마을에서 딸기밭에서 일할 주민들의 모집이 끝났다.

넉넉하게 일당을 쳐줬기 때문인지 꽤 경쟁이 치열했다고 했다.

라구스가 엄선해서 뽑은 15명의 인원.

그중에 익숙한 얼굴 레빌의 모습이 보였다.

“레빌 씨? 레빌 씨도 일하시는 거예요?”

“오늘만 도와주러 왔다. 첫날이니 네가 익숙한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라구스 녀석이 가보라고 하더라.”

“그렇군요.”

확실히 익숙한 레빌이 있으면 많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쏙!

레빌의 다리 뒤에서 또 한 명의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헤헤, 안녕하세요. 사탕 아저씨.”

“미루? 너는 왜 여기에?”

“쩝. 그게 나는 데리고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워낙 고집을 부리는 통에…….”

“아저씨. 저도 딸기밭에서 일하게 해주면 안 돼요?”

미루는 내 다리를 붙잡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오랜만에 보는 애교 공격에 나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허허. 이것 참…….

아마 레빌도 미루의 애교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데려온 듯 보였다.

“저는 일당 많이 안 줘도 돼요. 엄청 열심히 일할게요. 네? 아저씨∼!”

“알았다. 알았어. 대신 아저씨 말 잘 들어야 해?”

“당연하죠! 아저씨가 말할 때까지 숨도 참고 있을게요.”

미루는 양손으로 코와 입을 감싸 쥐며 귀엽게 숨을 참았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양이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 내가 그런 일을 왜 시키겠어? 어른들끼리 이야기하는 동안 리아네 씨한테 가 있어.”

“네! 리아네 언니∼!”

미루는 밝게 웃으며 리아네가 있는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에게 레빌이 멋쩍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게 됐네. 나 때문에 혹이 하나 늘었네.”

“괜찮아요. 거기다 은율이도 미루를 보고 싶어 했으니까요.”

“일단 오늘 일할 사람들부터 소개해 주지.”

레빌은 나를 데리고 기다리고 있던 마을 사람들에게 향했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나를 발견하자 하나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고용주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것 같았다.

4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였는데. 그중에서 나이가 대단히 많아 보이는 염소 수인이 눈에 띄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두 개의 뿔, 턱과 눈썹에 아주 길게 털이 자라나 있었다.

“시현, 이분은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포코 영감님이야. 농사에 대해서도 가장 경험이 많으시니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허허. 마을의 은인에게 그럴 수는 없죠. 거기다 쓸모없는 늙은이에게 일자리도 만들어주셨지 않습니까?”

강경한 포코 영감님의 태도에 나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간단한 인사를 끝내고.

우리는 마을을 떠나 딸기밭을 만들 장소로 향했다.

필요한 장비들은 마차의 짐칸에 실었다.

마부석에는 리아네와 미루가 자리했고, 거동이 불편한 포코 영감님만 짐칸 뒤쪽에 걸터앉아 이동했다.

나는 레빌과 나란히 걷다가.

문득 두 수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레빌 씨, 그러고 보니 헤론과 그렉 두 사람은 여기에 지원 안 했나요?”

“그 녀석들? 당연히 지원했었지.”

“……?”

“그런데 평소 행실이 불량했다는 이유로 바로 탈락시켰어. 애초에 농사 경험도 별로 없는 놈들이라 라구스가 뽑지도 않았겠지만.”

“하하…….”

그래도 헤론은 자기 아들인데…….

아들마저도 가차 없이 탈락시켜 버린 라구스가 여러모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엘든 마을보다 농장 쪽에 조금 더 가까운 지점.

딸기밭을 만들기 위해 미리 봐뒀던 장소에 도착했다.

마을 사람들이 장비를 내리는 사이.

포코 영감님은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질문했다.

“어르신, 이곳에 딸기밭을 만들어도 괜찮을까요?”

“저는 딸기라는 작물을 직접 키워보지 못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밭을 만들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다만. 주변 땅의 경사가 조금 심해서, 비가 왔을 때를 잘 대비해야 합니다. 배수로 작업을 꼼꼼히 해주고 토양 유실만 신경 써주면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그 뒤로 어떻게 밭을 확장할지, 주변에 시설물들은 어떻게 건설할지, 얼마나 많은 인원이 필요할지.

포코 영감님은 막힘없이 설명을 줄줄 쏟아냈다.

“시현 님만 괜찮으시다면 바로 일을 시작하고 싶습니다만.”

“아! 물론 괜찮죠.”

“알겠습니다. 이보게! 어서들 이리 오게!”

그의 지시에 따라 마을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오랜만에 힘 좀 써볼까?”

“허엇차!”

-퍽! 퍽!

-후드드득!

수인들의 육체적인 능력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가볍게 손을 휘두를 때마다 땅이 퍽퍽 파여나갔다.

심지어 여자 주민들도 나보다 더 능숙하게 땅을 개간해 나갔다.

원래는 나도 일을 거들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일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뻘쭘하게 서 있는 나에게 미루가 다가와 옷을 잡아끌었다.

“아저씨! 아저씨! 저랑 같이 돌멩이 골라내요.”

“으응…….”

어쩔 수 없이 나는 미루와 함께 돌멩이 골라내는 일을 해야 했다.

* * *

점심 무렵이 되었을 때쯤.

땅 개간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됐다. 최소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수인들은 오늘 안에 개간을 끝낼 기세였다.

나 혼자 했으면 아마 1년은 걸렸을지도…….

개간된 땅을 둘러보고 있을 때, 멀리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은율아?”

마차를 이끌고 농장 건물에 다녀온 리아네 옆에 은율이가 손을 흔들었다.

아직 움직이는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린 은율이는 곧장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어이쿠. 움직이는 마차에서 그렇게 뛰어내리면 위험하잖아.”

“헤헤. 괜찮아.”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그러다 다치면 어쩌려고.”

걱정스러운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은율이는 내 품에 안겨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와아! 은율이 왔구나.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안녕. 미루 언니.”

품 안에 있던 은율이를 잠시 미루에게 보내주고. 마차를 이끌고 돌아온 리아네에게 다가갔다.

“리아네 씨, 고생하셨어요.”

“아뇨. 시현 님이 준비를 꼼꼼하게 해두셔서 편하게 가져왔어요.”

“짐칸에서 먼저 내려주실래요? 저는 일하시는 분들 데리고 올게요.”

나는 아직도 땅을 개간 중인 수인들에게 다가갔다. 그나마 부담이 없는 레빌에게 말을 걸었다.

“레빌 씨, 그 정도만 하시고 식사하시죠.”

“엉? 그게 무슨 소리야?”

“예?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요. 점심 드셔야죠?”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보통은 일할 때 점심을 챙겨 먹는 경우가 없어서. 애초에 점심을 챙겨오지도 않았고.”

“아!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서 일하시는 분들 몫까지 제가 다 챙겨왔어요.”

“뭐?!”

* * *

엘든 마을의 수인들은 가끔 도시로 일을 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취급이 아주 좋지 못했다.

아주 힘든 노동을 시키면서도 매우 박하게 일당을 매겼고, 그마저도 제대로 계산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을 시키면서 아주 약간의 쉬는 시간만 주어질 뿐, 식사 시간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했다.

이게 대부분 고용주가 수인을 대하는 태도였고, 수인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이번 고용주는 뭔가 달랐다.

점심 식사 시간이라며 일을 멈추게 하더니, 마차에서 뭔가를 꺼내 나눠주기 시작했다.

수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었다.

눈치껏 은색으로 번쩍이는 얇은 막을 벗겨내자 고소한 향이 솔솔 올라왔다.

검은색으로 둥그렇게 말린 음식.

그 안에는 흰색 알갱이와 여러 가지 채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건 도대체 뭐지? 냄새는 엄청 좋은데?”

처음 보는 형태의 음식에 경계심도 잠시.

고된 노동으로 허기진 뱃속이 요동치자, 음식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를 거부하기 힘들었다.

성격 급한 수인 한 명이 음식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우물우물.

-꿀꺽!

“엄청 맛있잖아?!”

한 명이 허겁지겁 음식을 집어 먹자, 다른 수인들도 따라서 먹기 시작했다.

입속에서 씹히는 신선한 채소와 부드러운 흰 알갱이.

고소하면서 적절하게 짭조름한 맛이 중독성 있게 손길을 이끌었다.

음식에 감탄하면 할수록 수인들의 눈에는 고용주에 대한 의문이 켜졌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음식을 주는 거지?”

“저번에 황금시계 소속 상인이 굽신거리는 거 못 봤어? 아마 엄청난 귀족인 게 틀림없어.”

“설마 우리를 방심시킨 뒤에 노예로 팔아버리려는 게 아닐까?”

“어이, 어이! 괜히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식사나 마저 끝내. 시현은 절대 그럴 녀석이 아니니까.”

레빌의 말에도 수인들은 의심을 쉽게 거두지 못했다.

포코 영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허허로운 눈동자로 베일에 싸인 고용주를 응시했다.

촌장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곳에 따라오긴 했지만, 촌장과 레빌의 생각과는 달리 고용주의 행동을 의심하고 있었다.

수인을 향한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는 것이 오랜 경험을 통한 포코 영감의 지론이었다.

엘든 마을을 위기에서 도와준 것도 결국에는 수인들을 속이기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곳에 따라나선 것이었다.

“포코 어르신. 음식은 입맛에 좀 맞으세요?”

어느새 다가온 젊은 고용주가 말을 걸어왔다.

“……네. 아주 맛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는 그릇에 따뜻한 국물을 담아 건넸다.

“이건?”

“제가 있던 곳에서 어묵국이라고 부르는 건데. 한번 드셔보세요.”

“…….”

-후르륵.

국물을 한 모금 삼키자 진하고 시원한 맛이 느껴졌다. 쫄깃한 맛의 건더기도 굉장히 맛있었다.

“이것도 나쁘지 않군요.”

“넉넉하게 준비해 왔으니.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젊은 고용주는 포코 영감에게 한번 웃어 보인 뒤.

메이드와 함께 다른 수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러 떠나갔다.

포코 영감은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 * *

수인들의 점심을 챙기고.

기다리고 있던 은율이, 미루와 함께 나와 리아네도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와앙. 냠!

은율이는 입안 가득 김밥을 채우고 마치 다람쥐처럼 양쪽 볼을 우물거렸다.

혹시 급하게 먹다 체할까 봐 따끈한 어묵 국물을 은율이의 입에 가져가 줬다.

“미루야, 맛있어?”

“네, 정말 맛있어요.”

“그래.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내 몫의 김밥을 미루에게 덜어주며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하아아. 점심을 준비하는 것도 일이네요. 리아네 씨도 수고하셨어요.”

“준비는 시현 님이 다 하셨는데요. 뭘.”

“저도 가게에서 사 온 거라…… 그런데 리아네 씨, 수인들이 저를 보는 눈빛이 좀 이상해진 것 같지 않아요?”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흐으음.”

뭐지, 기분 탓인가? 날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 같은데.

혹시 김밥이 마음에 안 든 건가? 돈가스 김밥으로 준비할 걸 그랬나?

나는 한동안 달라진 수인들의 시선을 고민하며 골머리를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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