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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52)화 (5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52화

놀라운 성장(3)

새로운 딸기밭 만들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수인들이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예상보다 빠르게 딸기 모종을 준비해야 했다.

중간에 에르긴이 약속했던 건설 기술자도 합류했다. 동시에 건설 자재와 도구를 짐 마차에 가득가득 실어 오면서, 직접 쓴 편지도 한 통 보내왔다.

나를 찬양하는 온갖 미사여구와 직접 딸기밭을 보지 못해서 아쉽다는 서두를 시작으로.

그동안의 은혜를 갚기 위해 건설 자재는 무료로 보내며, 앞으로도 필요한 자재들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편지는 글을 못 읽는 나를 대신해서 리아네가 읽어줬는데.

그녀도 편지 속에 담긴 노골적인 의도를 알아채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정도였다.

어떻게든 딸기밭에 숟가락을 올리려는 속내가 좀 꺼림칙했지만. 보내준 건설 자재는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딸기밭 주변으로 마차가 다니기 편하게 길도 생기고, 저장고와 창고도 생겨났다. 그리고 일하다가 잠시 쉴 수 있도록 휴식 장소도 따로 만들었다.

주머니가 조금 가벼워지긴 했지만.

차근차근 완성되어가는 딸기밭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 없이 마음이 뿌듯해졌다.

* * *

“끝났다!”

“하하하, 수고했어.”

“수고하셨습니다.”

수인들은 마지막 이랑에 모종 심기를 마무리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첫 번째 목표라 할 수 있는 모종 심기가 끝났다.

어설프게 만들었던 텃밭과는 다르게, 새로운 딸기밭은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경험 많은 포코 영감의 공이 컸다.

「여기가 새로운 딸기밭인 거냐, 뾰?」

갑자기 어디선가 규리가 뿅 하고 나타났다. 익숙해진 나는 그러려니 하며 대답했다.

“어때? 마음에 들어?”

「응! 이 정도면 마을의 친구들도 만족할 거다, 뾰!」

규리는 신난 표정으로 딸기밭 이곳저곳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변에 반짝이는 가루가 쏟아지더니, 다른 요정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꺄햐햐햐!」

「우와! 딸기가 많이 있다, 뾰!」

「신난다, 뾰!」

규리의 친구들도 딸기밭이 마음에 드는지 소란스럽게 주변을 날아다녔다.

「시현, 내 부탁을 또 들어줘서 고맙다, 뾰!」

나에게 날아온 규리는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더니. 내 오른쪽 뺨에 수줍게 뽀뽀했다.

-쪽!

요정의 뽀뽀와 함께 온몸에 반짝이는 기운이 스며들었다.

[당신은 요정의 키스를 받았습니다.]

[새로운 능력 ‘요정의 장난스러운 축복’을 얻었습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당신을 감쌉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다른 요정들도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도 뽀뽀하고 싶다, 뾰!」

「뽀뽀! 뽀뽀!」

「꺄악! 안 된다, 뾰! 마음대로 시현에게 뽀뽀하지 마라, 뾰!」

질투로 가득 찬 규리가 밀어낸 덕분에 다른 요정들의 뽀뽀 세례는 피할 수 있었다.

* * *

“요정?! 진짜 요정이야?”

“맞는 것 같은데?”

수인들은 갑자기 나타난 요정들 때문에 허둥지둥거렸다.

이 중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포코 영감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요정은 마계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존재였다.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마왕일지라도 그들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런데 저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요정과 이야기를 나누고 통제하고 있었다.

수인들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자신들을 고용한 남자를 바라봤다.

* * *

딸기들은 요정의 축복과 수인들의 보살핌 속에 무럭무럭 자라났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다.

조금씩 붉어지는 열매들을 보면서, 나는 수확의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편 딸기밭에 일하는 수인들과 나의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점심을 챙겨줬을 때 수인들의 이상한 반응을 보고.

나는 더 신경을 써서 수인들의 식사를 챙겼다.

취향에 맞춰서 다양한 김밥을 준비하거나, 도시락을 나눠주기도 했다.

요리가 가능한 휴식 장소가 만들어진 뒤에는 아예 요리할 사람을 따로 고용해서 음식을 제공했다.

처음에는 뭔가 어색해하던 수인들도 점차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내가 신경을 써준 만큼 더욱더 열심히 일하고 밭을 돌봤다.

그런 노력과 정성이 빛을 본 것일까?

어느새 잔뜩 맺어진 과실들이 고혹적인 빨간빛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확의 날이 찾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다른 농장의 일을 빨리 끝내고 리아네와 함께 곧장 딸기밭으로 향했다.

오늘 수확할 거라는 걸 미리 말해뒀던 탓에 수인들도 딸기밭에 일찍 도착해 있었다.

그간의 결실을 수확하는 설렘에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반면에 수인들은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수인들 대부분이 기본적인 농사 경험은 풍부했지만, 딸기를 수확하는 건 처음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수인들 앞에 나서서 딸기 따는 법을 알려줬다.

“앞, 뒤가 빨갛게 잘 익은 딸기를 먼저 찾습니다. 잘 익은 딸기를 발견하면 손으로 가볍게 말아쥐고, 줄기 부분을 아래로 누르듯 살짝 힘주면 됩니다. 쉽죠? 너무 세게 움켜쥐어서 열매가 눌리지 않도록만 조심하면 돼요.”

딸기 수확은 딱히 어렵지 않아서 금방 배울 수 있었다.

미리 준비한 플라스틱 바구니를 하나씩 나눠 들고, 각자의 위치에서 딸기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첫 수확인데도 실하고 예쁜 딸기가 정말 많이 열렸다. 플라스틱 바구니가 묵직해질 때마다 마음이 뿌듯해졌다.

수확 작업이 끝났을 때. 밭 옆에는 딸기가 가득 담긴 바구니가 가득 쌓이게 됐다.

수인들이 잠시 쉬는 사이, 나는 리아네와 함께 수확한 딸기 수량을 파악했다.

생각보다 많은 수확량에 우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수확량 확인이 끝나고.

나는 쉬고 있는 수인들에게 다가갔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오늘 밭일은 여기까지만 할게요.”

일을 빨리 끝낸다는 말에 수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그리고 가실 때 딸기 가져가세요.”

“……예?”

“오늘 수확한 딸기요. 한 분당 한 바구니씩 가져가세요.”

“……?!?”

차분한 이어진 내 말에 수인들은 모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포코 영감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시현 님, 저희에게 딸기를 내주시겠다는 겁니까?”

“네, 그런데요?”

“저 딸기라는 열매가 상인에게 매우 비싼 가격에 팔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저희에게 나눠주시는 겁니까? 상인에게 가져다준다면 큰돈을 벌 수 있을 텐데요.”

“으음…….”

그의 진지한 질문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일당을 받고 일하시는 건 맞지만, 그래도 같이 고생해서 수확했잖아요? 직접 길러낸 수확물인데 모두 맛은 한번 봐야죠.”

“…….”

“그리고 수확하실 때 보니까 입맛 다시는 분들이 엄청 많던데. 아닌가요?”

“크흠…….”

“허헛. 큼.”

수인들은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하거나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신선할 때 가져가셔서 가족들끼리 나눠 드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많은 양을 드리는 것도 아니니까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렇군요…… 그랬었군요…….”

포코 영감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합니다, 시현 님.”

“예? 갑자기 왜…….”

“시현 님은 언제나 진심으로 대해주셨는데, 정작 저희는 그 진심을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포코 영감은 나를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다른 수인들도 잠시 눈치를 보다가 그를 따라 고개를 숙였다.

처음에는 갑작스러운 그들의 사죄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조금만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렴풋하게나마 그 의미를 깨닫게 됐다.

점심을 만들어주고, 휴식 장소를 만들어줬을 때 보였던 그들의 이상한 눈초리.

아마도 수인들은 나의 배려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별로 기분이 나쁘다거나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도시에 갔을 때 수인들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직접 경험했었다.

오랫동안 차별받았을 수인들에게 저런 의심은 어쩌면 당연한 행동이라 생각됐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았으니까, 일단 고개부터 들어주세요. 그리고 저도 여러분들이 어떤 심정으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해요.”

“…….”

“지금이라도 오해가 풀렸으면 된 거죠. 제 딸기밭이 앞으로도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만큼, 제가 여러분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은 일 아닐까요?”

“시현 님…….”

포코 영감의 긴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야기를 듣던 수인들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이러려고 한 건 아닌데…….”

그 후로.

나는 나보다 덩치 큰 수인들을 한 명 한 명 위로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 * *

새로운 딸기밭의 첫 수확은 대성공이었다.

넉넉한 수확량은 물론이고, 신선함과 맛 또한 굉장히 뛰어났다.

딸기밭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줬던 준호 형에게는 살짝 미안하지만, 선물 받았던 딸기보다 내가 기른 딸기가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요정의 축복 덕분인지, 보통의 딸기보다 몇 배는 더 신선함이 오래 유지됐다.

딸기가 다른 과일들에 비해 보관 기간이 짧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주 굉장한 장점이었다.

처음으로 수확한 딸기는 평소에 신세를 졌던 이들에게 선물로 나눠줬다.

농장 식구들은 물론이고, 안드라스와 발레리안.

엘든 마을의 레빌과 라구스.

어머니와 서예린의 몫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마계 농장의 실질적인 본부(?)라고 할 수 있는 마왕성에도 딸기를 보냈는데.

왕에게 진상품을 보내는 느낌이라, 조금 더 신경 써서 예쁜 딸기들만 골라 보냈다.

딸기밭 대성공의 영향은 단순히 이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딸기 공자님 오셨다!”

“와아! 딸기 공자님!”

“…….”

엘든 마을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나를 ‘딸기 공자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키득거리고 있는 레빌을 보며 불만을 토로했다.

“갑자기 왜 제가 딸기 공자님이 된 거죠?”

“크큭, 왜? 나름 잘 어울리는 호칭인 것 같은데.”

“저는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나도 이제 3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공자님’이라니!

그 호칭을 들을 때마다 간질거리는 느낌과 함께 굉장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나마 라구스가 나의 마음을 달래주려 노력했다.

“레빌, 너도 그만 웃어. 시현 님, 마을 사람들이 나쁜 의미로 그렇게 부르는 건 아닐 겁니다.”

“그건 알고 있는데…….”

“에스테르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잖아? 뭐, 사람들은 아직 모르지만.”

“마을 주민들이 시현 님의 지위를 알게 된다면, 엘든 마을의 촌장은 제가 아니라 시현 님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

내가 촌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은 정말 빈말이 아니었다. 변한 건 호칭뿐만이 아니었다.

딸기밭 일을 맡기며 잘 대접해 준 것과 귀한 딸기를 나눠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엘든 마을 내의 나의 입지가 급격히 상승했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과거에는 마을에 도움을 준 은인 정도였다면, 지금은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 그렇게 여겨지고 있는 것 같았다.

거기다 딸기밭에서 일하고 싶은 수인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알게 모르게 일자리 신경전이 생겨날 정도였다.

라구스도 많은 일자리가 생기도록 은근히 딸기밭 확장을 바라는 눈치였다.

딸기밭 확장을 바라는 사람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상인이 딸기밭의 성공 소식을 듣고 엘든 마을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만간 다시 딸기 수확이 있을 거란 소문이 돌면서, 엘든 마을은 외지인의 방문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황금시계 상회의 에르긴은 점점 치열해지는 경쟁에 애가 탔는지, 상회의 직원을 보내 나에게 달콤한 제안을 제시했다.

내가 만든 딸기밭의 대성공은 뜻하지 않게 수인 마을의 놀라운 성장을 끌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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