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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53)화 (5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53화

농장의 새로운 직원(1)

-무우우! 무우우!

“꺄하하하!”

「신난다, 뾰!」

달려나가는 아꿍이 등 뒤에 은율이와 규리가 매달려 웃음을 터뜨렸다.

씩씩한 아기 야쿰, 그리고 등 뒤에 올라탄 여우 소녀와 요정.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으면서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해졌다.

은율이, 아꿍이, 규리.

이렇게 셋은 갑자기 부쩍 친해져서 저렇게 몰려다닐 때가 많았다.

아직 마음의 빈자리가 많은 은율이에게는 정말 좋은 소식이었다.

셋이 뭉쳐서 사고를 치는 일도 많아졌지만, 밝아진 미소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물론 선을 넘는 장난이나 위험한 행동은 나와 리아네가 그때그때 주의를 시키는 편이었다.

-부우우우!

“아아, 미안해. 초롱아. 다시 빗질해 줄게.”

잠시 아이들의 모습에 정신이 팔려서 초롱이의 빗질을 까먹고 있었다.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으으윽. 스으으윽.

“손님, 기분 좋으시죠?”

-부우우…….

편안한 초롱이의 울음소리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초롱이의 출산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움직임이 점점 줄어들고, 식욕도 들쑥날쑥해졌다.

대부분 예쁜이가 출산할 때와 상황이 비슷했지만, 조금 다른 점은 초롱이가 훨씬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요즘은 초롱이의 스트레스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는 중이었다.

지금 하는 빗질도 그중 하나였다.

“초롱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있어. 예쁘고 건강한 아기들 만날 수 있도록 꼭 도와줄 테니까.”

-부우우우.

내 마음이 전해졌는지 초롱이는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애교를 부렸다.

잠시 그 애교를 받아주다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쉿! 다른 야쿰에게는 비밀이야.”

손바닥 위에 올려진 새빨간 딸기.

초롱이는 금방 딸기를 알아보고 입으로 가져갔다.

이번에 수확한 딸기는 야쿰에게도 아주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수확량이 많았다고 해도, 야쿰 모두에게 딸기를 나눠줄 수는 없었다.

출산 스트레스를 받는 초롱이에게만 이렇게 가끔 딸기를 챙겨줬다.

-부우우우!

초롱이는 딸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냈다.

“그래그래. 다음에 또 챙겨줄게. 난 이제 가볼 테니까 들어가서 쉬어.”

-부우우우.

옆구리를 툭툭 쳐주니 초롱이는 천천히 축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도 브러쉬와 짐을 챙겨 들고 울타리 입구 쪽으로 향했다.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오늘 해야 할 일이 줄줄 떠올랐다.

초롱이는 돌봐줬고…… 아! 삼 남매 밥 챙겨줘야 하구나. 그 후에는 점심 준비하고, 딸기밭에는 오후에 가볼까?

하아…… 빨리 딸기밭 확장도 준비해야지, 야쿰들도 마음껏 먹일 만큼 수확했으면 좋겠네. 그리고…… 어? 어?!

순간 아찔한 느낌과 함께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하늘이 빙글빙글 돌아가더니, 풀과 흙냄새가 훅! 하고 코끝에서 느껴졌다.

바닥에 쓰러졌는데도 몸이 붕 떠 있는 기분이었다.

아…… 아직 할 일이…… 여기서 이럴 시간이 없는데…….

다급한 야쿰 울음소리가 점점 멀게 느껴지더니, 이윽고 의식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 * *

손끝에서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느낌에 천천히 눈을 떴다.

농장 건물의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금방 내 방의 침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음…….”

계속 손에서 느껴지는 간지러운 느낌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쌔액…… 쌔액…….”

시선이 닿은 곳에는 은율이가 침대 끝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내 오른손을 인형처럼 얼굴에 껴안고 있어서, 숨을 쉴 때마다 손끝을 간질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 순간.

“일어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지금은 푹 쉬어야 할 때니까. 우물우물.”

나는 움찔 놀라며 목소리의 발생지를 눈으로 따라갔다.

그곳에는 긴 녹색 머리, 기괴하게 꺾인 뿔, 하얀색 가운을 입은 남자가 여유롭게 딸기를 집어먹고 있었다.

“……누구세요?”

“나? 어떤 미친놈 때문에 갑자기 끌려온 치료사.”

“……??”

“그보다 이 딸기라는 열매 엄청 맛있네. 소문으로 들었던 것보다 더 대단해. 그 미친놈은 이렇게 좋은 게 있으면 좀 나눠 먹지, 이걸 지 혼자 처먹고 있었네.”

낯선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잠들어 있던 은율이가 부스스 일어났다.

은율이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괜찮아?”

“응. 괜찮아.”

“흐윽…… 흑!”

남자의 말을 무시하고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은율이를 내 옆으로 데려왔다.

“미안해, 은율아. 많이 놀랐지?”

“아빠가…… 흑…… 갑자기 쓰러져서…… 으아앙!”

아직 나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기에, 쓰러진 내 모습을 보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은율이를 꼭 끌어안아 줬다.

정말 많이 놀랐는지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벌컥!

급하게 열린 방문을 통해 리아네가 뛰어 들어왔다. 그 뒤로 발레리안, 안드라스, 카네프까지 차례로 방 안에 모습을 드러냈다.

“시현 님, 괜찮으세요?”

“괜찮으십니까?”

“시현 님! 몸은…….”

모두 괜찮냐고 한마디씩 건네는 통에 살짝 머리가 어지러웠다.

녹색 머리 남자는 내 반응을 눈치채고 뛰어들어 온 사람들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야…… 아까 내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던 거 못 들었어? 아니면 내 말을 무시할 정도로 대가리가 커졌나?”

“…….”

“…….”

“…….”

카네프를 제외한 모두가 찔끔 물러섰다.

살벌한 대사에도 다시 방을 나서지는 않고,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힐끔거렸다.

그 모습에 고마운 것보다 미안한 마음이 불쑥 솟아올랐다.

“모두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이렇게 다 모이시고.”

“속상하게 그런 말씀 마세요. 시현 님.”

“리아네 양 말이 맞습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일은 나중에 하면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들은 녹색 머리 남자의 눈치를 보면서 나를 위로했다.

조용히 있던 카네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뭐 때문에 시현이 쓰러진 거야?”

“표면적인 이유는 풍토병. 원래 이곳에 살던 사람이라면 어렸을 때 잠시 앓고 말았겠지만, 외지인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는 병이야.”

“그럼 진짜 이유는?”

녹색 머리 남자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했다.

“너, 이름이 시현이라고 했던가?”

“네. 맞습니다.”

“최근에 신경 쓸 일이 많았지? 내가 보기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리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으음…… 그게…….”

스스로는 괜찮다며 무시하고 있었지만, 최근에 여러 가지 일들이 겹치면서 신경 써야 할 곳이 아주 많았다.

새로 만든 딸기밭은 벌써 확장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초롱이 때문에 나도 알게 모르게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 아기 야쿰 삼 남매와 은율이를 챙기는 일과, 다른 농장 일까지 겹치다 보니, 솔직히 최근에는 여유가 많이 없긴 했다.

다른 농장의 식구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방 안의 분위기가 절로 숙연해졌다.

“지속적으로 꿍유를 마시고 있어서 이렇게 버틴 거지. 조금만 더 무리했으면 크게 병치레를 했을지도 몰라.”

“…….”

녹색 머리 남자는 혀를 차면서 카네프를 바라봤다.

“쯧쯧, 그러게 적당히 일 좀 시키지 그랬어?”

“내, 내가 뭘? 나는 억지로 일 시킨 적 없어. 저 혼자 알아서 열심히 한 거라고.”

“네가 이 농장의 책임자 아냐? 밑에 사람 관리도 책임자의 몫이잖아. 예전에 단장 노릇을 하던 때는 다 잊어버린 거야?”

“끄응…….”

카네프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예전부터 누누이 말했지? 모든 사람이 너처럼 괴물이 아니라고. 네 밑에서 도련님, 뺀질이, 이 두 놈이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라니까.”

이번에는 발레리안과 안드라스가 다시 한번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에휴, 이제 더 궁금한 건 없지? 내가 할 수 있는 치료는 다 끝냈으니까, 환자 간호는 알아서 해.”

“저기……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됐으니 몸 관리나 잘해, 그래야 이렇게 맛있는 딸기도 많이 만들어낼 테니까. 아! 그리고 치료비로 딸기 좀 가져갈게.”

녹색 머리 남자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야! 도련님, 뺀질이! 가자.”

“시현 님, 저희는 이분을 다시 모셔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몸조리 잘하세요.”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리아네도 딸기를 챙겨줄 겸 배웅하겠다며 그들을 따라나섰다. 방 안에는 카네프와 나, 울음을 그친 은율이만 남게 되었다.

“…….”

“…….”

방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심심해진 은율이가 꼼지락거리기 시작했을 때, 카네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아아…… 미안하다.”

“예?”

“아까 그놈 말대로 내가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었는데. 너에게 너무 많은 걸 의지한 것 같다.”

“…….”

진지하게 사과를 하는 모습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농장 일에 관해서는 너에게 일임하겠다고 했지만, 앞으로는 나도 할 수 있는 만큼 신경 써 볼게.”

“아…… 예, 감사합니다.”

“농장의 일손도 부족한 것 같으니. 마왕성에 정식으로 인원 보충을 요청할 거다. 혹시 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라. 보고서에 같이 적어서 보낼 테니까.”

“근데 사장님.”

“……?”

“오늘치 보고서는 써두셨어요?”

“크흠. 갑자기 네가 쓰러지는 바람에 경황이 없어서…….”

카네프는 내 눈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할 거냐? 원래 네가 살던 곳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면 발레리안에게 말해서 도와줄게.”

“으음…… 아까 그분이 치료는 다 끝냈다고 했으니, 오늘은 농장에서 자고 갈게요. 집에 가봤자 어머니만 걱정하실 것 같고.”

“그럼 그렇게 해라. 나는 나가볼 테니 편히 쉬어.”

카네프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방을 나갔다.

“아빠.”

“왜? 은율아.”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야?”

“응. 오늘은 은율이랑 같이 잘 거야.”

“헤헤.”

내가 자고 간다는 이야기에 은율이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은율이를 끌어안은 채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아까 쓰러질 때 충격 때문인지 온몸이 조금씩 욱신거렸다.

침대에 누워서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쉬어야 된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오늘 하지 못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아기 야쿰들 밥은 먹었으려나…… 딸기밭에도 한번 나가봐야 하는데…… 내가 쓰러진 것 때문에 혹시 초롱이가 놀라진 않았을까?

하지만 은율이의 따뜻한 체온과 규칙적인 숨소리는 점점 나를 나른하게 만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밀려오는 졸음에 복잡한 머릿속은 깔끔히 뒤덮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에는 나와 은율이의 숨소리만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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