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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54)화 (54/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54화

농장의 새로운 직원(2)

조금 상쾌해진 기분에 천천히 눈을 떴다.

은율이가 자고 있던 자리를 더듬거리니 빈자리가 느껴졌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리아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현 님, 일어나셨어요?

“네. 방금 일어났습니다.”

-지금 들어갈게요.

천천히 문이 열리면서 리아네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손에는 쟁반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이 들려 있었다.

그녀가 침대 곁으로 다가오자 맛있는 냄새에 뱃속이 요동쳤다.

그제야 아침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배고프시죠? 버섯 수프를 가져왔어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은율이는……?”

“걱정 마세요. 지금 식당에서 저녁 식사 중이에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다가 뭔가를 깨닫고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리아네 씨?”

“네?”

“그 버섯 스프는 누가 만든 거죠?”

라이네는 금방 내 질문의 의도를 깨닫고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만든 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럼 누가……?”

“카네프 님이 만드셨어요.”

“사장님이요?!”

나는 깜짝 놀라며 버섯 수프가 담긴 그릇을 바라봤다.

수프를 만드는 카네프의 모습을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었다.

“저도 먹어봤는데 맛은 괜찮은 것 같아요.”

리아네는 직접 수프를 떠서 후후 불더니, 내 입 쪽으로 수프가 담긴 숟가락을 가져왔다.

“자, 아∼ 하세요.”

“혼자서도 먹을 수 있는데…….”

“빨리요. 저 팔 아파요.”

“…….”

그녀의 억지에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입을 열었다.

입안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버섯 수프.

특별히 개성이 넘치는 맛은 아니었지만, 적당하게 들어간 양념들과 투박하게 손질된 재료들의 씹는 맛이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처음만 부끄러웠을 뿐, 그 뒤로는 리아네가 건네주는 수프를 편하게 받아먹었다.

-다다다닷! 벌컥!

귀여운 발걸음과 함께 여우 소녀가 벌컥 문을 열고 나타났다.

은율이는 바로 침대 쪽으로 다가와 내 옆에 딱 달라붙었다.

“은율아, 밥 맛있게 먹었어?”

“응.”

은율이를 부드럽게 한 번 쓰다듬어주고. 다시 리아네에게 수프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율이가 불쑥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나도…… 나도 아빠한테 해줄래.”

“어머, 은율이도 아빠를 간호해 주고 싶은 거야?”

“응!”

리아네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숟가락을 건넸다.

은율이는 숟가락으로 수프를 듬뿍 떠서 내 입가로 가져왔다.

기대감으로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수프를 받아먹었다.

은율이는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로도 리아네와 은율이의 도움으로 그릇의 수프를 거의 다 비워냈다.

-똑. 똑. 똑.

-시현 님, 안드라스입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안드라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는 카네프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모두 걱정해 주신 덕분에 괜찮아요. 오히려 너무 걱정을 해주셔서 제가 더 민망할 지경이에요.”

카네프는 침대 끝쪽에 걸터앉으며 빈 그릇을 바라봤다.

“수프는 먹을 만했나?”

“네. 사장님이 만들어주셨다면서요?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오오. 버섯 수프인가요? 굉장히 그립네요. 부단장님도 정말 맛있게 만들어주셨…… 엇!”

“안드라스 님…….”

“…….”

안드라스가 말하는 중간에 리아네가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는 아차! 하는 표정과 함께 입을 다물었다. 잠시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안드라스는 실수를 만회하려는 것처럼.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다른 화제를 꺼냈다.

“아! 시현 님께 알려드릴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갑자기 좋은 소식이요?”

“원래는 보고서를 통해 요청할 계획이었는데. 발레리안 그 친구가 먼저 움직인 모양입니다. 마왕성에서 농장에 추가적인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와! 그건 정말 반가운 소식이네요.”

그의 말대로 정말 좋은 소식이었다.

처음 내가 농장의 왔을 때는 나와 리아네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지금은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 2명만으로는 조금 빡빡하긴 했다.

“의외인데? 마왕성이 그렇게 빨리 움직이다니.”

“그럴 만도 하지 않습니까? 농장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에스테르로 임명되신 분인데, 과로로 쓰러지셨으니…… 마왕성에서도 꽤 당황했을 겁니다.”

“흐음. 확실히 그렇겠네. 시현이 쓰러져서 곤란해지는 건 마왕성도 마찬가지니까.”

“그럼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농장으로 배정된 새로운 마족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뭐? 그게 벌써 정해졌다고?”

카네프는 조금 놀라서 되물었다. 나와 리아네도 눈을 반짝이며 기대를 하기 시작했다.

안드라스는 우리의 기대감을 고조시키려는 듯 잠시 뜸을 들였다. 기대감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밝은 목소리로 그 정체를 밝혔다.

“슈나르페 가문의 장남이자, 제르무어 마법사단의 부단장! 바로 제가 마왕성의 명령을 받아 농장으로 오게 됐습니다.”

“…….”

“…….”

“…….”

“어…… 좋아해 주시지 않는 겁니까?”

리아네와 카네프는 대놓고 싫은 표정을 했고, 나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안드라스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했는지 금방 시무룩해졌다.

“야! 너 제르무어 부단장 자리는 어떻게 하고?”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단장의 역할은 수행하면서 농장 일도 거들 겁니다.”

“그럼 이전이랑 똑같은 거잖아?”

“아닙니다. 예전에 농장에 올 때는 숨어서 도망치듯 왔지만. 이제 정식으로 올 수 있다는 겁니다.”

안드라스의 당당한 태도에 리아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카네프는 황당함과 분노가 뒤섞인 탄식을 터뜨렸다.

“허어! 이 자식 이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그 뺀질거리는 성격 이제 좀 고쳤나 했더니…… 너 이리와! 오랜만에 나랑 진지하게 면담 좀 하자.”

“허억!”

면담 이야기에 안드라스는 기겁을 하며 후다닥 내 등 뒤로 숨어들었다. 물론 그의 커다란 덩치는 반도 가려지지 않았다.

“빨리 이리로 안 와?”

“그만 하세요, 사장님. 안드라스 님도 농장에 도움을 많이 줬잖아요. 오늘 그 치료사분도 안드라스 님이 모셔왔다면서요.”

“……쳇!”

내가 그를 감싸며 변호하자, 카네프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흉흉한 기세를 낮추며 한발 물러섰다.

“안드라스 님이 도와주시면 저도 든든하죠.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솔직히 처음에는 아주 쪼끔! 실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말 진심으로 그의 합류를 환영했다.

내 옆에 있던 은율이도 그의 쭈그러진 어깨를 두드리며 나름대로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등 뒤에서 안드라스의 감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 역시 제 생각을 해주는 건 시현 님과 은율 아가씨밖에 없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 시현 님의 농장 일을 돕겠습니다.”

“저도 축하드릴게요. 앞으로는 눈치 보면서 식사하러 안 오셔도 되겠네요.”

마지막에는 리아네도 환영의 의사를 밝혔다. 카네프는 끝까지 마뜩잖은 표정을 유지했다.

“아! 그리고 저 말고도 한 명 정도 더 올 것 같습니다. 아마 시현 님의 호위 임무를 맡길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제 호위요?”

“지금까지는 리아네 양이 시현 님을 지켜드리긴 했지만, 그녀의 원래 임무는 아니었으니까요. 카네프 님은 물론이고요.”

“으으음. 굳이 호위까지 필요할까요? 농장 일을 하면서 딱히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호위라는 단어에 느낌 때문인지 개인적으로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른 농장 식구들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아니에요, 시현 님. 물론 제가 시현 님을 모시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따로 호위를 둘 수 있으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그건 리아네 말이 맞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일이니까.”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마왕성 쪽에서도 이번 일에 심각함을 느끼고 인원을 더 투입하려는 거니까요.”

아무래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이 진행될 것 같았다.

쩝. 호위라…….

너무 부담스러운 마족만 아니면 좋겠는데…….

* * *

다음 날 아침.

한결 가벼워진 몸 상태로 농장 건물을 나섰다.

생각 없이 하루 푹 쉬었을 뿐인데도 많이 재충전된 기분이었다.

멀리서 아기 야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우우우!

-무우우우!

아기 야쿰 삼 남매가 나를 보자마자 내 쪽으로 달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곧바로 장난을 쳤을 텐데, 지금은 행동이 아주 조심스러웠다.

내 주변을 맴돌며 냄새를 맡기도 하고,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아마 나의 몸 상태를 확인하려는 듯 보였다.

“미안. 내가 걱정시켰지? 이제 괜찮으니까 그렇게 걱정 안 해도 돼.”

오히려 아기 야쿰들이 나를 걱정하는 날이 오다니.

그런 행동이 뭔가 어색하면서도, 녀석들의 성장이 뿌듯하게 느껴졌다.

걱정하는 아기 야쿰들을 달래주자, 이번에는 예쁜이를 비롯한 다른 야쿰들이 내 주변에 몰려들었다.

아기 야쿰들과 마찬가지로 나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려는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하나씩 쓰다듬어주며 그들의 불안을 달랬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큰뿔이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큰뿔아, 너도 나 걱정한 거야?”

-부우우우!

내가 약간 장난스럽게 묻자, 큰뿔이는 크게 울음소리를 내고는 바로 고개를 돌려 되돌아가 버렸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워하는 모습에 혼자 키득거리며 웃었다.

* * *

「어제 시현이 갑자기 쓰러져서 깜짝 놀랐다, 뾰! 이제는 괜찮은 거냐, 뾰?」

요정 규리부터…….

“에? 사탕 아저씨 괜찮아요?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몸이 안 좋은 거야? 내가 너구리 영감한테 몸에 좋은 약초 좀 받아 올까?”

“마을 사람들을 위해 딸기밭을 확장하는 것도 좋지만, 시현 님의 건강이 우선입니다. 힘드신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미루, 레빌, 라구스까지.

몸이 안 좋아서 쉬었다는 이야기에 모두 진심으로 걱정해 줬다.

딸기밭에 일하는 엘든 마을의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열심히 일한 덕에 쓰러지긴 했지만, 덕분에 그 노력만큼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서 마음이 뿌듯해졌다.

그리고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인정을 받는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하루 대부분을 ‘괜찮다’는 말만 하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간 뒤였다.

딸기밭에서 일을 끝내고 농장으로 돌아오는 길.

농장 건물 옆에 안드라스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처음 보는 마족이 함께하고 있었다.

“안드라스 씨, 지금 오시는 거예요?”

“방금 도착했습니다. 시현 님은 딸기밭에 다녀오셨나 봅니다.”

“네, 근데 옆에 계신 분은?”

“어제 말씀드렸던 앞으로 시현 님의 호위를 맡게 될 마족입니다.”

“어어? 벌써 데려오신 거예요?”

예상치 못하게 빠른 등장에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아니, 이야기를 꺼낸 게 어제저녁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농장에 데려온다고?

“저도 조금 놀랐습니다. 아무래도 마왕성 쪽에서 미리 생각해 둔 계획이 있었나 봅니다.”

“으음. 그렇군요.”

나는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슬쩍 옆에 있는 마족을 살폈다.

칠흑같이 어두운 머리칼과 눈동자.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잘생긴 외모. 곧고 길게 뻗은 뿔까지.

누가 봐도 농장에 어울리지 않는 귀공자 느낌의 마족이었다.

“시현 님, 이분은 베르딕 가문의 삼남, ‘엘프리드 리온 베르딕’입니다.”

“안녕하세요. 이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임시현이라고 합니다.”

나는 최대한 반가운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

귀공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 위아래를 쓰윽 훑어보더니, 굉장히 무신경한 태도로 한마디 툭! 내뱉었다.

“네가 새로운 에스테르? 생각보다 별 볼 일 없군.”

“…….”

첫 만남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

이 마족…… 느낌 쎄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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