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62화
삼총사 강림!(5)
출근하지 않는 휴일임에도 평소에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눈이 떠졌다.
여느 때처럼 벌떡 일어나려다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코오…….”
「음냐…….」
-므우…….
뒤늦게 아이들이 함께 잠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던 어머니가 인기척에 나를 발견하셨다.
“벌써 일어났어? 휴일인데 좀 더 누워 있지.”
“괜찮아. 그냥 평소처럼 일어나는 게 좋아.”
뜨거운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아침 뉴스를 보면서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혹시 어제 있었던 일이 뉴스에 떴을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뉴스에는 나오지 않았다.
아침 뉴스를 보는 도중에 반쯤 잠에 취한 아이들이 방문을 열고 나타났다.
“아빠…….”
은율이는 좀비처럼 흐느적흐느적 다가오더니, 내 무릎 위에 털썩 몸을 던졌다.
아꿍이는 반대쪽 소파에 폴짝 뛰어올라 자리를 잡았고, 규리는 그런 아꿍이 등 위에 내려앉았다.
농장이 아니라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아침.
뭔가 굉장히 신선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시현아, 아침 준비 다 끝났으니까. 아이들 좀 깨워.”
“알았어! 잠꾸러기들. 할머니 이야기 들었지? 슬슬 일어나자.”
“우웅…… 조금만 더 잘래…….”
「아직 더 자고 싶다, 뾰오…….」
-무우우…….
아직도 비몽사몽인 아이들을 억지로 일깨워 식탁 앞으로 데리고 왔다.
준비된 음식의 맛있는 냄새 덕분에 아이들은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아빠. 나 저거…….”
“어머나! 은율이가 갈치구이를 잘 먹네. 할머니가 뼈 발라줄까?”
어머니는 정성스럽게 뼈를 발라 살코기를 숟가락에 올려줬다.
은율이는 갈치구이가 입맛에 맞는지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시현, 나는 저거 먹어보고 싶다, 뾰!」
“계란말이? 잠깐만 기다려봐. 작게 잘라줄게.”
-무우우! 무우우!
“알았어. 아꿍이 너도 줄 테니까.”
반찬으로 올라온 계란말이를 작게 잘라 규리와 아꿍이에게 나눠줬다.
계란말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남아 있는 계란말이 전부 둘의 몫으로 사라졌다.
아침 식사가 끝날 때쯤, 서예린이 평소보다 훨씬 활기찬 모습으로 등장했다.
“좋은 아침! 귀여운 아기들 안녕!”
그녀의 기운 넘치는 인사에 낯을 가리는 은율이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 눈치를 봤다.
「어제 봤던 여자다, 뾰! 좋은 아침이다, 뾰!」
-무우우.
규리와 아꿍이는 호기심 반, 반가움 반인 눈빛으로 서예린을 맞이했다.
“아유, 귀여워라! 시현아, 얘네 쓰다듬어봐도 돼?”
“응, 너무 억지로 쓰다듬는 것만 아니면 괜찮아.”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녀는 아꿍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아꿍이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 손길 익숙했던 터라, 거부감 없이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녀의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오히려 아꿍이가 먼저 다가가 애교를 부렸다.
-무우우. 무우우.
“이, 이거 지금 나한테 애교부리는 거 맞지? 꺄악! 진짜 너무 귀엽다!”
서예린은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꿍이를 품 안에 꼬옥 껴안았다.
갑작스러운 껴안기에 아꿍이는 잠시 버둥거렸지만, 금방 진정하고 편안한 모습을 했다.
그녀는 품 안의 아꿍이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규리에게도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아꿍이와 달리 규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꺅! 함부로 만지지 마라, 뾰! 나는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뾰!」
“미안, 미안!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사과의 뜻으로 이거 먹어볼래?”
「……그게 뭐냐, 뾰?」
“내가 좋아하는 구슬 아이스크림이야.”
서예린은 집에서 챙겨온 구슬 아이스크림을 꺼내 보였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작은 구슬들은 금방 규리의 시선을 끌었다.
규리는 구슬 아이스크림을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하나를 집어 들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으으. 차갑다, 뾰! 근데 쫀득쫀득하고 달콤하다, 뾰!」
“후훗. 맛있어?”
「응, 엄청 맛있다. 뾰!」
규리가 구슬 아이스크림에 빠져 있는 사이, 서예린은 살짝살짝 작은 요정을 쓰다듬으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불과 1분 전만 해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던 작은 요정은 구슬 아이스크림에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내 옆에 꼭 붙어 있던 은율이도 움찔거리며 서예린과 아이들을 바라봤다.
셋이 노는 모습이 재밌어 보인 듯했다.
나는 망설이는 은율이의 등을 살짝 떠밀어줬다.
은율이는 살짝 놀라면서 서예린 쪽으로 다가섰다.
“앗! 은율이 왔구나. 은율이도 이거 먹어볼래?”
“…….”
-끄덕끄덕.
“자, 차가우니까 먹을 때 놀라지 말고.”
서예린은 숟가락에 구슬 아이스크림을 떠서 은율이에게 먹여줬다.
은율이는 차가운 아이스크림 맛에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뒤에 느껴지는 쫀득하고 달콤한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여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서예린이 아이들과 친해지는 동안, 어머니가 아침 식사 정리를 끝내고 부엌에서 나오셨다.
“예린이 와 있었구나.”
“아앗! 어머니, 죄송해요. 귀여운 아기들한테 집중하느라 인사도 못 드렸네요.”
“호호호. 애들이 너무 귀여운 걸 어떻게 하겠니? 그런데 아침은 먹었니? 내가 지금이라도 챙겨줄까?”
“아뇨, 괜찮아요. 아침은 평소에도 간단하게만 먹거든요. 그보다 나갈 준비 하셔야죠? 오늘 병원에 예약 있으시다면서요.”
어머니는 시계를 보시더니 깜짝 놀라셨다.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나도 아이들 챙기느라 오전 예약을 까먹고 있었네.”
“걱정하지 마세요. 병원까지 제가 모셔다드릴 테니까 천천히 준비하세요.”
“예린이 네가? 미안하게 그럴 필요 없어. 거기다 오랜만에 휴일인데…….”
“시현이랑 약속해 놓은 게 있어서요. 일단 준비 먼저 하세요.”
서예린은 미안해하는 어머니를 억지로 안심시키며 안방으로 밀어 넣었다.
“너 진짜 가려고?”
“물론이지. 어제 나랑 약속했잖아. 아이들 데리고 쇼핑하러 가기로.”
“끄응…….”
어젯밤, 반쯤 술에 취해 주정을 부렸던 서예린을 떠올리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일단 약속을 하긴 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게 괜찮을지 걱정이었다.
“아이들이 눈에 너무 띄지 않을까?”
“괜찮아, 괜찮아. 사람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주변에 신경 잘 안 써. 그리고 이렇게 날씨도 좋은 날에 아이들 집에만 가둬두려고?”
그녀의 말대로 오늘은 확실히 나들이 나가기 좋은 날씨였다. 나도 내심 아이들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즐거운 추억을 쌓고 싶었다.
“에휴. 그래, 같이 나가자.”
“흐흐, 진작에 그렇게 나왔어야지.”
서예린은 아이들을 향해 방긋 웃으며 말했다.
“얘들아, 오늘 언니랑 재미있는 곳에서 신나게 놀자.”
“재미있는 곳?”
「어디? 어디로 가는데, 뾰?」
-무우우?
아이들의 눈동자가 벌써 기대감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 * *
병원에서 어머니의 검사는 금방 끝났다.
전보다 몸 상태가 더 좋아졌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무래도 꾸준한 꿍유의 복용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듯했다.
기분 좋게 병원을 나서서 서예린의 차량에 올라탔다.
어머니는 앞 좌석, 나는 아이들과 함께 뒷좌석에 자리했다.
“어머니, 검사 결과는 어땠어요?”
“응, 교수님이 몸 상태랑 검사 결과가 너무 좋다고 걱정 안 해도 될 거래.”
“다행이네요. 그럼 기분 좋은 소식도 들었겠다, 바로 출발해 볼까요?”
서예린의 차량이 부드럽게 출발해서 병원을 빠져나왔다.
이번이 두 번째로 차에 타보는 아이들은 오늘도 창밖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잡아주면서, 운전을 하는 서예린에게 물었다.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쇼핑하려면 당연히 백화점, 쇼핑몰이지.”
“근데 아꿍이도 있는 데 들어갈 수 있으려나?”
“걱정하지 마셔. 반려동물도 출입할 수 있는 매장으로 미리 확인해 뒀으니까.”
“으음…… 근데 아꿍이를 반려동물이라고 할 수 있나?”
“엄청 귀여우니까 인정해 주지 않을까?”
“…….”
뭔가 설득력이 없는 듯, 있는 것 같은 그녀의 말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예린이가 정말 철저히 준비했구나?”
“물론이죠, 어머니. 일할 때도, 쉴 때도 철저히 해야 프로라고 할 수 있죠.”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드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서예린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남들이 보면 우리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겠지? 어머니는 할머니, 너는 아빠, 그럼 나는…… 엄마?”
“정말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호호호.”
그녀의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어머니는 나쁘지 않다는 듯 입을 가리고 작게 웃으셨고,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서예린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은율이에게 말을 걸었다.
“은율아, 엄마∼ 하고 불러볼래?”
“…….”
은율이는 뚱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더니. 아주 단호하게 대답했다.
“바보…… 엄마 아냐!”
“…….”
“하하하. 역시 우리 은율이야. 정말 똑똑해.”
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은율이를 꼭 껴안았다. 서예린은 한 방 먹었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 * *
우리는 시내에 있는 대형 쇼핑몰에 도착했다.
다행히 휴일이 아닌 평일이라 쇼핑몰 내부는 한산한 편이었다.
서예린은 어디서 구해왔는지 챙이 넓은 모자를 은율이에게 씌워줬다.
덕분에 눈에 띄는 여우 귀를 숨길 수 있었다.
물론 은율이의 치명적인 귀여움은 숨길 수 없었기에, 자연스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규리는 일단 내 상의 윗주머니에 숨었다.
답답한 모양인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불만을 표했다.
이 호기심 많은 요정을 마음껏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걱정했던 아꿍이의 경우는 예상보다 훨씬 생각보다 쉽게 문제가 해결됐다.
안내 직원에게 해외에서 데려온 희귀 동물이라고 설명하면서, 애교부리는 모습을 몇 번 보여주자. 어렵지 않게 입장을 허가해 줬다.
쇼핑몰에서 빌린 반려동물 유모차에 아꿍이를 태웠다.
아꿍이도 유모차가 신기한지 눈을 반짝이며 우리를 올려다봤다.
-무우우?
“꺄아! 너무 귀엽다. 이건 무조건 사진 찍어놔야 해!”
서예린은 휴대폰을 꺼내 유모차를 탄 아꿍이를 사진으로 남겼다. 나는 폭주하는 그녀를 말리면서 물었다.
“사진은 나중에 찍고. 먼저 어디부터 갈 거야?”
“엣헴. 그건 이미 다 정해놨지.”
“……?”
“가장 먼저 은율이 옷부터 사러 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