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72화
소환술 수련(3)
“훌쩍…… 킁, 훌쩍.”
서예린은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낸 덕분에 코끝이 빨개져 있었다.
나와 아꿍이는 조용히 그녀의 눈치를 봤다.
“예린아, 이제 좀 진정 됐어?”
“…….”
그녀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슬쩍 고개를 돌려버렸다.
비쭉 내민 입술을 보아하니 아직 감정이 덜 풀린 듯했다.
-스윽.
-크…… 룩. 크룩!
서예린의 소환수가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몸에 이상은 없고, 잠시 충격에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일어났구나. 너도 괜찮아?”
-……크룩!
덩치 큰 소환수는 짧은 울음소리와 함께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우우…… 무우…….
아꿍이는 서예린의 소환수에게 다가가 힘없는 울음소리를 냈다.
아마 자기 나름대로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자신의 아래쪽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리고 커다란 손을 들어 아꿍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크룩. 크룩.
-무우우! 무우우!
두 소환수가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는 몰라도,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훈훈한 미소가 지어졌다.
“흐윽…… 흑!”
“어? 예린아, 너는 또 갑자기 왜 울어?”
“흐윽, 내 소환수인데, 나 빼고 다 친해. 내가 부르면 반응도 잘 안 해주는데…….”
서예린은 다시 눈물을 쏟아내며 울적한 표정을 했다.
허허. 이것 참…….
오늘 있었던 일들로 자신감을 많이 잃었는지, 평소에 자신만만하고 활기 넘치는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반응을 안 해주다니. 아까 시범 보일 때도 호흡이 찰떡이었는데?”
“흑, 그건 명령을 내린 거잖아. 나도 너랑 아꿍이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흐음.”
슬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의구심이 생겨났다.
왜 저 소환수는 나와 아꿍이에게 반응하는 걸까?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어머니와 균열에 휩쓸려서 서예린의 도움을 받았을 때, 분명히 그녀의 소환수는 나의 부름에 반응했었다.
개방형 균열에서 교감을 시도했을 때도 굉장히 이상한 느낌을 받았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뭔가 있는 게 분명해…….
나는 의구심을 직접 해결하기 위해 서예린의 소환수에게 다가갔다.
거대한 몸체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
-쿠룩?
-무우우?
“……?”
주변에 있는 모두가 나의 행동을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을 의식하며 교감 능력을 사용했다.
예전과 비슷하게 손을 타고 의식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 * *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익숙한 공간에 도착했다.
다시 한번 도착한 소환수의 의식 속은 여전히 고독함과 허무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공허한 공간을 헤치고 나아갔다.
심해의 깊은 곳처럼 주변에 엄청난 압박이 느껴졌지만, 지난번처럼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허무함에 둘러싸여 있는 깊은 곳, 미약하게 파동을 느껴지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그곳에는 붉은 쇠사슬이 감싸고 있는 커다란 구슬이 보였다.
그 구슬 안에서 영혼의 힘이 느껴졌다.
그 영혼은 도움을 요청하듯 애처로운 파동을 내뿜었다. 나는 도움을 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파지지직!!
끄윽!
붉은 쇠사슬은 나의 손길을 강렬히 저항했다. 동시에 구슬 안에서 고통스러운 감정이 흘러나왔다.
이 쇠사슬이 구슬 안의 영혼을 가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 손을 뻗었다.
-파지지지직!!!
이번에도 끔찍한 통증이 밀려들어 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교감을 시도했다.
내 의식이 구슬 속의 영혼과 이어졌다.
[‘야쿰의 신뢰’ 효과로 혼돈의 힘을 저항합니다.]
[‘대지 영혼의 파편’ 효과로 대상의 영혼을 끌어당깁니다.]
-파지지지직!!!
붉은 쇠사슬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나를 방해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영혼과 이어진 의식을 놓지 않았다.
-파삭! 쩌저적!
영혼을 둘러싼 구슬에 점차 균열이 생겨났다.
붉은 쇠사슬은 더욱 미친 듯이 발악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나는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의식을 집중했다.
그리고 마침내.
-쩌저저적!! 파악!!!
구슬이 터져나가며 붉은 쇠사슬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혼돈에 사로잡힌 영혼을 해방했습니다.]
[‘대지 영혼의 파편’이 조금 더 완전해집니다.]
[‘혼돈의 사슬 파편 조각’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구슬 안에서 흘러나온 영혼의 힘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깊은 허무함과 고독함이 금방 밀려 나갔다.
쏟아지는 영혼의 흐름 속에서 나는 감정의 파편들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고통 속에 닳아버린 감정들은 겨우 그 흔적만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 선명한 감정의 파편이 기억과 함께 나에게 스며들었다.
-와아! 드디어 소환에 성공했어!
-잘 부탁해. 내 이름은 서예린이야.
-너는…… 뽀삐! 네 이름은 앞으로 뽀삐야.
소환을 성공하고 기뻐하는 어린 서예린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기억의 주인에게 ‘뽀삐’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 뒤로도 뽀삐는 서예린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기억이 흘러가면서 그녀는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그리고 슬프고 답답한 감정과 함께 울고 있는 서예린의 모습이 보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어…… 이제는 나 혼자뿐이야.
-이렇게 슬픈데도 너는 아무런 대답도 안 해주는구나.
그때, 뽀삐는 옆에서 그녀를 위로하지 못해서 좌절감과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감정의 파편들이 모두 흩어지고, 영혼의 빛무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크룩.
-네가 뽀삐구나. 그렇지?
-크룩! 크룩!
서예린의 소환수 뽀삐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룩…….
-부탁이 있다고?
뽀삐의 영혼은 마지막으로 나에게 간절한 부탁을 전했다.
-알았어. 그렇게 해줄게.
-크룩! 크룩!
기뻐하는 뽀삐의 울음소리와 함께 빛무리에서 포근한 빛이 쏟아져나왔다.
다시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의식이 점점 아득해져 갔다.
* * *
어지러운 기분과 함께 눈을 떴다.
얼굴과 등 쪽에는 식은땀으로 축축해져 있었다.
“정신이 들어? 괜찮은 거야?”
“어? 으응. 괜찮아.”
“훌쩍, 놀랐잖아. 갑자기 눈을 감고서 식은땀을 뻘뻘 흘리길래 어디 아픈 줄 알았어.”
서예린의 빨개진 눈동자에 안도하는 감정이 깃들었다.
-무우우. 무우우.
“괜찮아. 정말 걱정 안 해도 돼.”
걱정스러움에 내 주변을 돌고 있는 아꿍이도 안심시켜줬다.
시선을 돌려 커다란 덩치의 소환수를 바라봤다.
-크룩…….
나를 응시하는 커다란 눈망울.
겉으로만 보면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이겠지만, 나는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분명 나에게 보내는 감사의 감정이었다.
붉은 쇠사슬의 정체가 뭔지,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아직 모르는 게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예린아.”
“왜?”
“손 좀 줘봐.”
동시에 나는 왼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나와 왼손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새침하게 대답했다.
“흥, 나 위로해 주는 척하면서 작업 걸려는 거야? 훌쩍. 나 그렇게 쉬운 여자 아니거든.”
퉁퉁 부은 두 눈과 훌쩍이는 것만 빼면, 조금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장난에 어울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주기 싫으면 말아. 뽀삐가 실망스러워할 텐데 어쩔 수 없지.”
“자, 잠깐?! 뭐야? 뽀삐라는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나는 분명히 말해준 적 없었는데…….”
“그래서 손 줄 거야, 안 줄 거야? 안 주면 그냥 그만둔다.”
슬쩍 압박을 가하자 서예린은 후다닥 내 손위에 그녀의 손을 겹쳐 올렸다.
생각보다 작고 부드러운 손을 꽉 잡은 채, 나머지 손을 뽀삐의 몸에 가져갔다.
서예린과 뽀삐가 나를 가운데 두고 이어진 모습.
아까 그랬던 것처럼, 뽀삐의 영혼을 조금씩 서예린 쪽으로 이끌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의 영혼이 완전히 이어지고, 나는 웃으면서 손을 놓고 물러났다.
“뭐…… 야? 지금 어떻게 된 거야?”
“후후, 직접 확인해 봐.”
어리둥절한 서예린에게 나는 뽀삐 쪽으로 손을 가리켰다.
그녀는 자신의 소환수를 바라보다가 순간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랜 기간을 함께 했으니, 본능적으로 무언가 변했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았다.
“뽀…… 삐야?”
-크룩.
“이제 내 말 알아듣는 거야?”
-크룩. 크룩.
뽀삐는 울음소리와 함께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과 함께 다시 한번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러자 뽀삐는 커다란 손을 서예린의 얼굴로 가져갔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흐윽, 흐아아앙∼! 뽀삐야!”
-크룩. 크룩.
서예린은 뽀삐의 커다란 품 안에 와락 안겨들었다.
뽀삐는 그런 그녀를 아주 소중하게 살짝 껴안았다.
감동적인 소환수와 주인의 만남.
나는 아꿍이를 품에 껴안으며 훈훈한 미소로 그들을 지켜봤다.
“아꿍아, 참 잘됐다. 그지?”
-무우우. 무우.
아꿍이도 웃으면서 신난 울음소리를 냈다.
-다다닷!
-와락!
“시현아!!”
“어엇!”
“고마워! 진짜 고마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갑자기 달려온 서예린이 다짜고짜 나를 껴안았다.
나는 물론이고 품 안에 아꿍이도 우악스러운 포옹에 깜짝 놀라 버둥거렸다.
-무우우! 무우우!
“아, 알았어. 알겠으니까. 일단 떨어져 봐.”
나와 아꿍이의 비명에도 그녀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에는 우리 둘 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포옹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좋아?”
“응! 너무 좋아.”
“그러면 다시 선생님 해줄 거야?”
“헤헤, 당연하지. 앞으로 평생 동안 선생님 해줄게.”
“딸기잼도 안 줘도 돼?”
“…….”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여우 같은 미소로 대답했다.
“……쪼, 쪼금만 받을게. 헤헤.”
“푸하하하.”
그 모습에 나는 시원한 웃음을 터뜨렸다.
* * *
가디언즈 길드의 공채 모집이 시작됐다.
모집 지원을 위해 이력서를 작성할 때.
취업을 못 해서 수십 장씩 이력서를 작성하던 과거가 떠올라 무척 감회가 새로웠다.
부적응 각성자라는 것 때문에 서류에서 탈락했던 때가 엊그저께 같은데, 지금은 길드 공채 모집에 지원하게 될 줄이야…….
사람일은 참으로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류 심사와 동시에 필기시험도 진행됐다.
문제 대부분은 각성자가 사회에서 유의해야 할 규칙과 법, 길드 활동에 필요한 균열에 대한 지식, 그리고 길드 역사에 관한 간단한 문제가 나왔다.
난이도가 어려운 시험은 아니었고, 인터넷에 떠도는 기출문제만 몇 번 훑어봐도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나는 서예린이 직접 족보를 구해다 줬다. 족보의 엄청난 문제 적중률과 함께 필기시험은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뒤.
-가디언즈 길드 전반기 공채 모집. 실기 시험 안내.
-필기시험을 통과한 지원자들은 각자 지정된 날짜에 시험장으로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정된 날짜에 참석할 수 없으면, 아래의 문자 또는 전화로 연락해 주십시오.
-자세한 장소와 시간, 준비물은 아래에 안내된 내용을 따라주십시오.
실기 시험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