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74화
실기 시험(2)
가디언즈 길드의 공채 실기 시험이 열리는 곳은 ‘독개미 균열’이라 불리는 작은 균열이었다.
규모도 작고, 출현하는 괴수와 지형 환경이 좋지 않아서, 흔히 영혼석 채광이라 불리는 반복 작업에는 부적합했다.
하지만 위험 구역만 조심하면 된다는 점과 출현하는 괴수가 까다롭지 않아서, 수련과 테스트 환경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다…….
……라고 서예린이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설명해 줬다.
“너도 감독관이 가지 말라고 한 구역만 가지 않으면 별일 없을 거야.”
“알았어.”
“그리고 시험 중에는 되도록 소환술은 사용하지 마.”
“소환술은 왜? 며칠 전까지 그렇게 열심히 연습시켜 놓고는?”
시험에 대비해 서예린과 함께 소환술 연습에 집중했다.
꽤 자신감이 올라온 상태인데, 시험에 사용하지 말라고 하니 조금 억울한 기분이었다.
“일단 보여주지 말라면 보여주지 마. 마침 검도 가져왔으니까 검술 실력 정도만 보여줘.”
“……?”
서예린은 다짜고짜 나의 소환수 소환을 금지했다.
굉장히 어이가 없었지만, 아주 완고한 그녀의 태도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집합 장소인 ‘독개미 균열’ 앞에 도착했다.
서예린은 차에서 나를 내려주고 길드 관계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갔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시험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집합 장소에는 오십여 명 정도의 지원자들이 시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볍게 몸을 풀기도 하고, 진지하게 장비를 점검하거나, 초조한 표정으로 시계를 확인하는 등, 각자의 방법으로 시험 시작을 기다렸다.
시험 지원자들을 둘러보던 중 점점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냈다.
아니…… 왜 이렇게 다 아기들밖에 없어?
전부다 10대 후반, 아니면 20대 초반인 것 같은데? 모집 조건에 나이 제한 같은 게 있었나?
자격증 시험을 치러갔는데 주변에 초등학생밖에 없는 것처럼, 눈치 없게 신입생 MT를 따라온 복학생이 된 것처럼.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가 된 것 같아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분위기에 밀려 사람이 없는 구석진 곳으로 갔다.
눈에 띄지 않는 쭈구리처럼 조용히 시험 시작을 기다렸다.
시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30대 중반의 여자가 마이크를 들고 임시로 설치된 단상 위에 올라섰다.
-아…… 아! 시험을 기다리는 지원자 여러분. 이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던 지원자들이 하나둘 단상 앞으로 모여들었다.
-가디언즈 길드의 부길드장 오하영이라고 합니다. 시험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신원 확인 절차가 있겠습니다. 옆에 설치된 간이 천막에서 신원 확인을 도와드릴 겁니다. 확인이 끝날 때 내어드린 시험 명찰은 바로 착용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여자 부길드장의 안내에 따라 지원자들은 천막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나도 그 행렬을 따라 어느새 길어진 대기 줄에 합류했다.
잠시 후, 신분증과 각성자 ID카드를 확인받고 시험 명찰을 받았다.
C조…… 3팀?
시험 명찰에는 내 이름과 함께 조와 팀이 적혀 있었다.
-명찰 받으신 분들은 바로 착용해 주시고, 각자 소속된 조와 같은 팀원끼리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원활한 시험 진행을 위해 조금만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단상 위 부길드장의 안내에 따라 명찰에 적힌 대로 팀원들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에 C조 3팀 명찰을 단 작은 여자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윤세희. 그녀의 명찰에 적힌 이름이었다.
너무나도 작은 키에 앳된 외모, 얼핏 봐서는 중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무표정한 표정 때문인지, 귀여운 인형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기, 혹시 C조 3팀 맞으시죠?”
“네.”
“반가워요, 앞으로 같은 팀이네요, 잘 부탁드려요.”
“네. 잘 부탁드릴게요.”
“…….”
“…….”
작고 귀여운 외모와는 다르게 굉장히 쿨한 반응이었다. 뻘쭘해져서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조용히 옆에 섰다.
“여기가 C조 3팀?”
마지막 팀원이 뒤늦게 모습을 드러냈다.
명찰의 적힌 이름은 정태호.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나와 비슷한 키.
얼굴은 여자아이와 마찬가지로 앳된 모습이었지만, 분위기는 정반대로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쳤다.
“안녕하세요, 정태호입니다.”
“…….”
“반가워요, 저는 임시현입니다.”
“어라? 아저씨도 신입 공채 지원? 경력자 지원을 잘못 보고 오신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신경 쓰고 있던 부분을 서슴없이 찔러 들어왔다.
최대한 웃는 표정을 일그러뜨리지 않게 노력하며 대꾸했다.
“저는 각성한 지가 얼마 안 돼서…….”
“아∼! 그렇구나. 아저씨,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시험은 제가 캐리해 드릴 테니까. 저만 믿고 따라오세요.”
정태호는 젊음 특유의 자신감과 치기 어린 언행으로 자신을 뽐냈다.
요즘 부성애가 많이 늘어나서 그런가?
옛날 같았으면 재수 없어 보였을 행동이 지금은 굉장히 귀엽게 느껴졌다.
정태호는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자신이 아는 시험에 관한 정보와 꿀팁들을 계속 알려줬다.
반대편에서 조용히 있던 윤세희가 앞으로 나오더니, 재잘대는 정태호에게 살짝 쏘아붙였다.
“저기, 조용히 좀 해줄래? 시험 전에 집중이 안 되거든?”
“뭐? 지금 중요한 꿀팁 이야기 중인 거 안 보여?”
“꿀팁은 무슨…… 다 아는 이야기 가지고 잘난 척 좀 그만하지그래?”
“뭐래? 쪼끄만 게…….”
-빠직!
어어…… 방금 윤세희한테서 들린 거 맞지? 진짜 빠직했는데?
그녀는 끌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듯, 몸을 잘게 떨었다.
“너…… 뭐라고 그랬어?”
“쪼그맣다고. 처음 봤을 때 중학생 정도로밖에 안 보여서, 옆에 아저씨가 데려온 딸인 줄 알았다니까?”
-빠직! 빠직!
아…….
친구야, 눈치 좀 챙겨!
그런 건 속으로만 생각하라고!!
아무래도 정태호는 자기도 모르게 지뢰를 밟는 타입인 것 같았다.
나는 스릴러 영화를 보는 심정으로 둘의 신경전을 지켜봤다.
“그 말 당장 취소해!”
“내가 왜? 틀린 말도 아닌데. 너나 잘난 척했다는 말부터 사과하시지.”
“이…… 이잇! 멍청한 노랑머리!”
“뭐? 이 재수 없는 꼬맹이가!”
“자, 잠깐, 잠깐! 같은 팀원끼리 왜 싸우고 그래요. 둘 다 진정하세요.”
내가 가운데 나서서 중재하자 두 사람은 신경전을 멈췄다.
싸늘해진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고민하던 나는…….
“저기…… 사탕 드실래요?”
습관처럼 가지고 다니던 사탕을 건넸다. 두 사람은 사탕과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갑자기 사탕을 꺼내주는 건 너무 아저씨 같았나? 아니면 어린애 취급한다고 싫어하려나?
“잘 먹을게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다행히 두 사람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탕을 가져갔다.
달콤한 사탕 덕분인지 싸늘했던 분위기가 살짝 풀린 느낌이었다.
분명 나도 시험을 치러온 지원자인데, 왠지 두 사람의 보호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모두 집중해 주세요. 실기 시험 시작에 앞서서 이곳에 참석해 준 모든 지원자분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바로 시험에 관한 설명을 시작하겠습니다.
-시험은 조별로 진행되며, 3인이 하나의 팀을 이뤄서 평가를 받습니다. 균열에서 많은 괴수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원 간의 연계, 협동도 중요한 평가 항목이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가는 가디언즈 길드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길드원들이 감독관이 되어 평가합니다. 오늘 감독관 역할을 맡으신 분들 잠시만 앞으로 나와주시겠습니까?
부길드장의 호명에 6명의 사람이 단상 옆에 나란히 나섰다.
-웅성웅성.
“저 여자가 ‘굉음의 대지술사’. 가디언즈 길드의 에이스 중 한 명이야.”
“생각보다 엄청 예쁜데?”
“그 옆에 마스크 쓴 호리호리한 남자는 누구지?”
“아마 다원소 마법사로 유명한 ‘남진혁’ 아냐?”
어린 지원자들은 선망과 기대가 가득한 눈빛으로 감독관을 바라보았다.
마치 유명 아이돌을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와아…… 저분이 그 유명한 서예린 님…… 정말 멋있어.”
내 옆에 윤세희도 서예린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길드에 들어가면 나도 금방 저렇게 될 수 있겠지?”
정태호는 멋있는 감독관들을 보며 앞으로의 야망을 불태웠다.
각자 다른 모습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사회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파릇파릇한 지원자들을 훈훈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휴대폰 메시지가 한 통 도착했다.
-이보세요. 우리 귀여운 병아리들 보면서 아빠 같은 미소 짓지 마시죠, 복학생 아저씨?
서예린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복학생 아저씨라는 표현에 발끈해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너도 나랑 동갑이거든요?
-어머나! 저는 동안인 편이라서 어디 가면 언니, 누나 소리 듣는답니다. 아저씨 소리 듣는 누구랑 다르게요^^;
잔인한 팩트폭력에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부들거렸다. 그녀는 앞쪽에서 나를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 * *
“예린 누나, 지원자 중에 아는 사람 있어?”
“어…… 엉? 왜?”
“아까부터 계속 누구를 살피는 것 같아서, 아니야?”
“…….”
서예린은 움찔하며 시선을 피했다.
마스크를 쓴 남진혁은 다시 지원자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나이 좀 많아 보이는 남자분 맞지?”
“어,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알아. 아까부터 계속 저쪽 보면서 히죽거렸으면서. 혹시 남자친구야?”
“무, 뭐, 뭐라는 거야? 남자친구는 무슨! 절대 그런 사이 아니야.”
이상할 정도로 당황하는 그녀의 모습에 남진혁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이렇게 당황하니까 더 수상한데?”
“수상하긴 뭐가 수상해?”
남진혁은 다시 지원자들 사이에 임시현을 바라봤다.
그를 살펴볼수록 남진혁의 얼굴에 의구심이 쌓여갔다.
‘너무 평범한데…….’
길드 내에서는 물론이고 관련 업계에서도 서예린의 인기는 유명했다.
실력만큼 뛰어난 외모와 시원시원한 성격, 항상 긍정적인 마음가짐 때문에 남녀노소 그녀를 좋아했다.
그 인기만큼 많은 남자에게 대시를 받았지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은 한 번도 들려오지 않았다.
최근에 인기와 명성을 얻으며 떠오르는 남진혁.
그가 인정할 만큼 멋진 남자들이 많았는데도 서예린은 쉽게 자신의 옆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런 남자들에 비하면 솔직히 임시현은 여러 가지로 부족해 보였다.
“확실히 남자친구는 아닌 것 같네. 누나가 저런 평범한 사람과 사귈 리가 없지.”
“그게 무슨 소리야? 시현이가 얼마나 매력 덩어리인데. 겉으로는 조금 평범해 보여도, 알면 알수록 양파 같은 매력이 있는 녀석이라고!”
“……?”
“아…….”
갑자기 화를 내는 서예린의 모습에 남진혁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바라봤다.
그녀도 뭔가 아차 싶었는지, 어색한 휘파람을 불며 시선을 피했다.
‘예린 누나가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임시현을 바라보는 남진혁의 눈빛이 조용히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