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76화
개미굴 탈출(1)
구덩이로 떨어지는 순간, 나는 손을 붙잡고 있던 두 사람을 끌어당겼다.
떨어지는 몇 초, 그 짧은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휘이이잉!
-부웅!
부드러운 바람이 온몸을 감싸더니, 잠시 몸이 부웅하고 떠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정령이 바람으로 떨어지는 우리를 지탱하고 있는 듯했다.
-쿵!
방어막이 바닥과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둔중한 충격이 온몸에 전해졌다.
정령 덕분인지 생각보다 충격이 강하지 않았다.
“끄으응…….”
“으으…….”
“쿨럭! 쿨럭!”
주변에서 충격으로 인한 신음이 들려왔다.
주변을 가득 메운 흙먼지 때문에 코와 잎을 가리며 몸을 일으켰다.
가장 먼저 고개를 들어 우리가 떨어진 구덩이를 바라봤다. 그런데 천장 쪽에 보여야 할 빛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에 당황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불덩이 하나가 생겨나며 주변의 어둠을 밝혔다.
-화르륵!
“쿨럭! 모두 괜찮으십니까?”
불덩이를 피워올린 사람은 뒤늦게 따라왔던 마스크 쓴 감독관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른 분들은……?”
주변을 살펴보니 정태호와 윤세희도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끄응, 죄송하지만 저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무슨 문제라도?”
나는 감독관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마법으로 최대한 충격을 흡수하려고 했는데, 오른쪽 다리뼈에 금이 간 것 같습니다.”
“아…….”
감독관은 정령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 같았다.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혹시 다리를 고정할 만한 게 있다면 구해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제 가방에 구급 키트도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주변을 뒤져 함께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모았다.
그걸로 고정할 부목을 만들고, 구급 키트 속 붕대와 테이프를 사용해 다리를 고정했다.
감독관이 구급처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나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된 겁니까?”
“후우…… 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를 중심으로 나머지 두 사람도 모여들었다.
감독관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다치신 분은 없습니까?”
“저는 괜찮아요.”
-끄덕끄덕.
윤세희는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정태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의 상태를 확인한 감독관은 무전기를 꺼내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무전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무전기가 고장 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천장을 한번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떨어지면서 위쪽으로 탈출할 구멍도 막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무너지는 토사에 휩쓸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네요.”
“그, 그럼 우리는 어떡해? 여기에 갇힌 거야?”
정태호는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감독관은 최대한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당장 이곳을 탈출하는 건 힘들겠지만, 우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다른 감독관들이 금방 눈치챌 겁니다. 일단 이곳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럼 시험은 어떻게 되는 거죠?”
이 와중에도 윤세희는 무표정한 얼굴로 시험에 집착했다.
“C조 3팀의 시험은 중지입니다. 그리고 3팀은 위험 지역을 넘었기 때문에 불이익이 있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빨간색 깃발을 하나도 발견 못 했는데.”
“빨간색 깃발은 정상적으로 설치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 불타버려서 훼손된 상태더군요.”
감독관의 말에 정태호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
그는 이내 뭔가를 눈치채고 윤세희를 향해 눈을 희번덕거렸다.
“아까 네가 내 불꽃을 뺏어가서 이렇게 된 거잖아?!”
“…….”
“나는 억울해! 이건 인정할 수…….”
정태호의 목소리가 높아지려는 그때.
“잠깐!”
나는 수상한 기척을 느끼고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쏠렸다.
“오는 것 같습니다.”
“……?”
“……?”
“아저씨, 갑자기 뭐야?”
세 사람 모두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지만, 마수를 감지하는 내 능력 범위 안에 움직임이 느껴졌다.
“독개미들인 것 같습니다. 점점 우리 쪽으로 다가옵니다.”
방향까지 가리키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감독관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어둠을 향해 불덩이를 비췄다.
-츠츠츠츠.
-츠츳. 츠츠츳.
어둠 속에서 독개미들의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이어 수많은 독개미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전부 일꾼 독개미가 아니잖아?!”
정태수의 비명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그의 말대로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독개미들 모두 병정 독개미였다.
만만치 않은 놈들의 등장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저 좀 부축해 주시겠습니까?”
앉아 있던 감독관이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일어설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내 어깨를 빌려 똑바로 자세를 잡았다.
“고맙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뒤로 물러서십시오.”
물러서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곧바로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얼어붙어라, 예리한 얼음의 칼날!>
<휘몰아쳐라, 무자비한 폭풍의 일격!>
그의 주문이 끝나자마자 허공에 수많은 얼음 칼날이 생겨났다. 그리고 거센 폭풍에 실려 칼날들이 엄청난 속도로 쇄도했다.
-쐐애애액!!
-파바밧! 파밧!
-키엑!
가차 없는 마법 공격으로 병정 독개미들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한 번의 공격으로 더는 움직이는 독개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나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은 감독관의 무시무시한 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 *
그 뒤로 병정 독개미의 공격이 몇 번 이어졌으나, 모두 감독관의 마법에 손쉽게 처리됐다.
우리는 죽은 개미 다리를 가져다 불을 피워놓고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렸다.
내 근처에 있던 마스크를 쓴 감독관이 작게 말을 걸었다.
“더는 놈들이 다가오지 않는 건가요?”
“네, 지금도 근처에 있긴 한데, 이곳까지 들어올 생각은 없어 보이네요.”
“굉장히 유용한 능력을 갖추고 계시네요.”
“하하하, 제가 보기엔 감독관님이 더 대단하신데요.”
“저는 남진혁이라고 합니다.”
“예? 아…… 저는 임시현입니다.”
갑작스러운 자기소개에 어리둥절 하긴 했지만, 나도 따라서 이름을 밝혔다.
“언제쯤 저희를 구조하러 올까요?”
“지금쯤이면 우리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겁니다. 벌써 수색팀이 꾸려졌을지도 모르죠.”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도 될까요?”
“이곳은 독개미 둥지의 통로인 것 같습니다. 섣불리 움직이는 것보다는 여기서 버티는 게 안전합니다.”
그의 합리적인 설명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구조를 기다리는 게 불안하긴 해도, 어둠 너머에 독개미가 우글거리는 곳으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런데…….
[‘야쿰의 신뢰’ 효과가 발동합니다.]
[신체에 영향을 주려는 독 성분에 저항합니다.]
갑자기 독에 저항했다는 알림이 떴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둘러봤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이런, 독개미 놈들이 왜 공격을 멈췄나 했더니…….”
남진혁은 핼쑥해진 표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급히 불러모았다.
“독입니다! 모두 저에게 오세요. 해독제를 나눠 드리겠습니다.”
그는 구급 키트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내 하나씩 나눠줬다.
나는 해독제를 거절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급히 뚜껑을 열고 해독제를 복용했다.
해독제의 효과 덕분인지 다른 일행들의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남진혁의 표정은 더없이 심각해졌다.
“진혁 씨? 무슨 문제 있습니까?”
“그게…….”
“……?”
“해독제의 효과는 30분 정도입니다. 그 뒤에는 다시 해독제를 복용해야 합니다.”
“……해독제는 얼마나 남았죠?”
“4병…… 4병 남았습니다.”
계산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시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진혁 씨.”
“네.”
“구조대가 한 시간 만에 우리를 구출할 수 있을까요?”
“…….”
내 질문에 남진혁은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절망의 그림자가 점점 우리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정태호가 발작하듯 외쳤다.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붉은색 깃발을 태워버렸기 때문이라고!”
“아까 물러서자는 아저씨의 말을 안 들은 게 누군데? 그때 순순히 물러섰으면 아무런 문제 없었잖아?”
“뭐? 이게 내 탓이라고? 너도 똑같이 안 물러섰으면서!”
“그래도 너처럼 병정 독개미를 해치우겠다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나서지는 않았거든!”
-채앵!
정태호는 분을 참지 못하고 검을 빼 들었다.
윤세희도 이에 질세라 정령을 불러냈다.
“이 재수 없는 꼬맹이가 정말!”
“하나도 안 무서워, 멍청한 노랑머리!”
아…… 팀 꼬락서니 잘∼ 돌아간다.
자존심 강한 둘은 치고받고 싸우기 직전이었고, 감독관 남진혁도 멘탈에 큰 타격을 입었는지 멍한 표정이었다.
농장 식구들과 야쿰, 어머니와 서예린.
마지막으로 은율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면 영영 그들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서글퍼졌다.
마음이 약해지려는 순간 양쪽 뺨을 강하게 때렸다.
-짝!
그래! 나라도 정신 바짝 차려야지. 어떻게든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거야!
탈출에 대한 마음가짐을 굳게 다졌다.
그리고 살벌하게 신경전을 벌이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얼마나 목소리가 컸던지 메아리처럼 계속 주변 공간에 울려 퍼졌다.
싸우던 두 사람뿐만 아니라 멍하니 앉아 있던 남진혁도 깜짝 놀라 나를 쳐다봤다.
“거기 두 사람! 여기에 빨리 무릎 꿇고 앉아!”
“…….”
“아니, 아저씨…….”
“쓰읍! 얼른 안 움직여!!”
서슬 퍼런 외침에 두 사람은 움찔했다. 그리고 어기적어기적 내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두 사람 다 성인이잖아.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거야?”
“저 꼬맹이가 먼저 잘못했잖아.”
“시비는 멍청이가 먼저 걸었어요.”
“다 시끄러워! 아직도 남 탓만 하는 거야?”
“…….”
“…….”
불만 가득한 정태호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고, 윤세희는 볼을 퉁퉁하게 불렀다.
“하아아. 윤세희! 아까 네가 멋있다고 했던 서예린은 지금 너처럼 행동했을까?”
-흠칫!
“정태호! 지금 이 모습이 네가 꿈꾸던 모습이야?”
-흠칫!
“잘 들어! 자기 잘못은 인정할 줄 알아야 어른인 거야. 그것도 못 하고 남 탓만 하는 사람은 나이만 많이 먹은 어린애일 뿐이야. 지금 너희들 행동이 딱 그 꼴이라고.”
“윽…….”
“읏…….”
“서예린 같은, 저기 우리를 구하려다가 다치신 감독관님 같은 유명한 길드원은 실력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아? 다른 길드원의 잘못도 감싸고 짊어질 수 있으니까 대단한 거야. 지금의 너희는 절대 꿈도 못 꿀 자리에 있는 거라고. 알았어?”
나의 감정을 담은 날카로운 비난에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윽고 어깨가 잘게 떨리더니 억눌린 흐느낌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두 사람에게서 자신에 대한 실망감, 서글픔, 분노가 느껴졌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아 그들과 시선을 맞췄다.
“에휴…… 둘 다 잘못했어, 안 했어?”
“끅…… 잘못했어…….”
“잘못…… 흑, 했어요오…….”
나는 억지로 울음을 참는 두 사람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나도 미안해 얘들아. 위험한 걸 알았을 때, 연장자로서 너희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말렸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내 책임도 있는 거야.”
“아니야…… 끅! 내가 아저씨 말만 들었어도…….”
“흐윽…… 제가 무리해서 깃발을 태워버려서…….”
이제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두 사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모두 잘못한 거네? 같은 팀원이니까 서로 용서해 주는 거야. 알았지?”
-끄덕끄덕!
-끄덕끄덕!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정태호와 윤세희.
그 모습이 너무 귀엽게 느껴져서 두 사람을 살짝 껴안아 줬다.
그러자 둘은 터져 나오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앙! 아저씨, 미안해!”
“흐아앙! 앞으로 아저씨 말 잘 들을게요.”
“그래그래. 근데 진짜 미안하면 아저씨 대신 형이나 오빠라고…….”
울음소리 때문에 내 말이 안 들리는 건지, 아니면 무시를 하는 건지.
두 녀석은 끝까지 나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에효, 어지간히 말 안 듣는 녀석들이야.
아저씨 호칭을 포기한 채 방긋 웃어버렸다.
* * *
정태호와 윤세희는 생각보다 금방 울음을 그쳤다.
울며불며 나한테 매달릴 때는 언제고, 조금 전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약간 떨어져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좋은 분위기였다.
진정한 두 사람을 두고 남진혁에게 다가갔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니, 뭐 고생까지야…….”
“아닙니다. 저도 솔직히 조금 전까지 멘탈이 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현 씨의 말씀을 듣고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남진혁은 진심을 담아 고개까지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생각지도 못한 인사에 조금은 민망하게 웃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훈훈한 분위기에 취해 여유로울 수 없었다. 나는 금방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진혁 씨.”
“네?”
“시간이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그나마 가능성이 남아 있는 방법이 뭐죠?”
“으음…….”
남진혁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구조대를 기다릴 수 없다면, 저희가 이곳을 자력으로 탈출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마법으로 위를 뚫는 방법은 어떨까요?”
“땅바닥이 무너져내릴 정도로 지반이 약해져 있습니다. 잘못했다가는 그대로 생매장당할지도 모릅니다.”
“흐음. 그럼 남은 방법은…… 앞을 뚫어내는 수밖에 없겠군요.”
“네, 맞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방법.
4명의 인원으로 독개미 둥지를 돌파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한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몰랐다.
이미 마법의 강력함을 선보인 남진혁 조차도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그때, 품속에 있던 소환석이 울렸다.
-무우우우!
「우리가 도와줄까, 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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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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