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0화
개미굴 탈출(5)
“해치웠나?”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뒤쪽에서 욕설과 함께 들려왔다.
“젠장! 장군 독개미가 마법을 막아내는 바람에…….”
“…….”
“죄송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남진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쓰러져 있던 여왕 독개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슴 쪽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지만, 숨통을 끊을 정도의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키에에에엑!!
분노에 찬 여왕의 울음소리가 커다란 동공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독개미들이 사방에서 쏟아져나왔다.
그중에는 장군 독개미도 섞여 있었다.
“아…….”
누군가에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남진혁은 완전히 탈진해 버려서 반쯤 기절한 상태였다.
윤세희와 정태호도 바닥나버린 체력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흐아앙! 힘이 빠져나간다, 뾰!」
-무우우…….
소환석에 저장된 영혼의 힘을 다 소모해 버려서, 규리와 아꿍이도 강제로 역소환당했다.
모두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의 눈동자에서는 아직 희망의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 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얘들아. 아직 포기하지 마. 여왕 독개미도 분명히 큰 대미지를 입었어. 조금만 더 대미지를 줄 수 있다면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을 거야.”
“그렇지만…… 저렇게 많은 독개미가 지키고 있으면 접근조차 할 수 없다고!”
“감독관님의 마법이 없으면 방법이 없어요.”
“아니야. 분명 아직 방법은 있어.”
“……?”
“……?”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모여들었다.
모두 나를 믿고 이곳까지 따라와 줬다.
그러니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믿음에 보답해 주고 싶었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고민하며 머뭇거릴 수 없었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해내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길을 열어줄게. 그러니까 나를 믿어줘.”
“좋아! 보스 킬의 주인공을 놓칠 순 없지. 감독관 형, 나중에 막타 뺏겼다고 불평하기 없기야.”
“…….”
대답할 힘도 없는 남진혁은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말아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바보야, 벌써 들뜨지 마. 감독관님의 마법으로도 쓰러뜨리지 못했어.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통하지 않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우리도 시간이 필요해. 한 방에 숨통을 끊어버릴 수 있는 일격을 위해서.”
한동안 우리의 동정을 살피던 여왕은 슬금슬금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장군 독개미를 포함한 녀석들이 점차 우리를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아저씨…….”
“괜찮아. 너희들은 여왕을 공격할 생각만 하는 거야. 나머지는 내가 맡을 테니까.”
“알았어요. 그럼 시작한다.”
“나는 준비됐어!”
-화르르륵!
-휘이이잉!
정태호의 검 주변으로 불과 바람의 힘이 휘몰아쳤다.
뜨거운 불의 기운이 바람에 의해 응축되기 시작했다.
-키에엑!!
여왕은 이상함을 느꼈는지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냈다.
거기에 반응해 독개미들이 빠르게 우리를 포위해 왔다.
나는 검을 아예 집어넣고, 심호흡을 하며 두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았음에도 주변의 독개미들의 움직임이 세세하게 느껴졌다.
떠올리는 거야, 그때의 기억을, 그리고 감각을…….
나는 꽃밭에서 처음으로 꿀벌들과 교감했을 때를 떠올렸다.
수많은 꿀벌과 의지를 연결했을 때처럼, 교감 능력을 넓게 퍼뜨렸다.
수많은 독개미와 하나둘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조금 전, 장군 독개미를 움직였을 때의 감각을 되살리려 노력했다.
마치 나의 기운에 의지를 담아서 쏘아 보내는 것 같은 감각.
머릿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의식을 집중했다.
-끼에에엑!
-츠츠츠!
-츠츳!
독개미들이 일행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뒤쪽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악에 받쳐 외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씨이! 끝까지 참을 거야. 아저씨가 길을 열어줄 때까지.”
“저도 아저씨 믿어요. 그러니까 절대 도망 안 쳐!”
나의 입술이 매끄러운 호선을 그렸다.
독개미의 숨결이 느껴질 것처럼 가까워진 순간!
나의 두 눈이 번쩍 뜨여졌다.
[‘마수(魔獸) 사육사’의 새로운 능력을 얻었습니다.]
[새로운 능력 ‘정신 제어(精神 制御)’를 얻었습니다.]
[대상 마수에게 ‘정신 제어’를 사용합니다.]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는 알림이 떴다.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머리에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순간 정신을 놓을 것 같은 아찔함이 느껴졌다.
겨우 의식을 부여잡으며 새로운 능력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츠츳?
몰려오던 독개미들이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장군 독개미는 이상함을 느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멈춰 있던 독개미들이 모두 장군 독개미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츠츠츠츳!
-츠츠츠츳?!
당황한 장군 독개미는 온몸을 흔들어 달라붙는 독개미들을 떨어뜨리려 했다.
큰 체격과 힘 덕분에 쉽게 떨쳐냈지만, 작은 독개미들은 많은 숫자로 밀어붙이며 계속 달라붙었다.
동료들의 공격에 장군 독개미가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여왕 독개미를 향한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내 외침에 맞춰 정태호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의 검을 휩싸던 붉은 불꽃이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바람에 넘실거리는 푸른 불꽃은 정태호를 보호하듯 주변을 감쌌다.
-끼에에엑!!
독개미들의 통제권을 빼앗긴 여왕이 분노의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독개미들을 제어하던 능력이 취소될뻔했다.
머리는 이미 타들어 가는 통증을 넘어서, 조금씩 뜯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독개미들과 연결된 의식을 절대 놓지 않았다.
콧구멍에서 뜨거운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동자가 빠질 것 같은 통증과 함께 눈앞에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였다.
하지만 점점 여왕과 가까워지는 푸른 불꽃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시엔!”
윤세희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낸 반투명한 소녀가 정태호의 주변으로 스며들었다.
힘차게 발돋움을 한 정태호가 정령의 도움으로 빠르게 튀어 나갔다.
온통 푸른 불꽃으로 뒤덮인 그 모습은 밤하늘의 혜성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이제 끝이다!!”
-화르르륵!!
정태호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검기는 초승달의 모습을 그리며 여왕 독개미를 강타했다.
-끼에에에엑!!!
전에 없던 날카로운 비명이 여왕에게서 터져 나왔다.
다른 독개미들도 혼란스러워하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쿠웅!
거대한 여왕 독개미가 쓰러지는 소리가 동공에 울려 퍼졌다.
머리에 느껴지던 엄청난 통증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리고 알람 소리가 들려왔다.
[‘여왕 독개미’를 쓰러뜨렸습니다.]
[‘대지 영혼의 파편’을 흡수합니다.]
[‘대지 영혼의 파편’이 조금 더 완전해집니다.]
멀리서 의기양양하게 걸어오는 정태호의 인영이 흐릿하게 보였다.
이미 알람이 결과를 알려주었지만, 녀석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듣고 싶었다.
나는 씨익 웃으며 정태호에게 물었다.
“해치운 거야?”
“하하하, 물론이지 아저씨!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줬다고!”
“꺄아아! 우리가 해냈어요, 아저씨!”
조용조용하던 윤세희가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옆쪽에서 껴안는 느낌이 났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세희야, 수고했어.”
“아저씨도요.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정태호는 윤세희 앞으로 가서 으스댔다.
“어때 꼬맹이! 마지막에 나 좀 멋있지 않았어?”
윤세희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잘난 체하는 건 재수 없지만…… 뭐, 조금은 인정해 줄게.”
“후후! 이제야 나의 대단함을 조금 이해한 것 같네.”
“방금 말은 취소! 역시 그냥 멍청이야.”
정태호는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지 능글맞게 웃었다.
윤세희는 그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하하하!!”
나는 두 사람의 귀여운 모습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우리들의 예상치 못한 실기 시험은 성대하게 끝을 맺었다.
“저기…… 여러분? 저도 아직 있습니다만?”
“앗?! 진혁 씨!”
“맞다, 감독관 형도 있었지.”
“……까먹고 있었어요.”
완전히 자신을 까먹고 있던 우리 보며 남진혁은 울상을 지었다.
“까먹고 있었다니 너무하네요. 그래도 탈진할 정도로 마력을 쥐어짜서 싸웠는데…….”
“아, 아닙니다. 까먹고 있었다니요. 그렇지?”
“물론이지. 감독관 형이 제일 멋있었어.”
“맞아요. 마법으로 적을 쓸어버릴 때 엄청났어요.”
우리는 뒤늦게 그에게 달려가서 달래주었다.
다행히 우리의 과장된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금방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 * *
“길드장님, 개미굴에 돌입할 인원들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돌입 명령이 떨어지면 바로 출발 가능합니다.”
“지금이 실종자들이 사라진 지 얼마나 지났지?”
“마지막 무전이 확인된 뒤로 3시간 반 정도 지났습니다.”
“감독관이 가지고 있던 해독제가 7병…… 4명이 3시간 반이라.”
가디언즈 길드장 강희섭의 얼굴에서 착잡함이 묻어나왔다.
실종자가 보고되자마자 최대한 빨리 수색대를 파견했다.
어렵게 찾아낸 구덩이를 통해, 그들이 개미굴로 빨려 들어간 것 같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수색을 통해 흔적을 찾고, 개미굴로 투입할 구조대를 꾸리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내 불찰이야. 조금 더 지원자들의 안전에 신경 써야 했는데…….’
숱한 균열에서의 전투로 죽음이라는 단어에 무감각해진 그였지만, 아직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의 죽음은 뾰족한 칼날이 되어 그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시험을 진행하던 관계자, 감독관, 부길드장까지.
강희섭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모두 한결같이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말로 꺼내지 않아도 이미 구조대가 의미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단 한 명.
서예린만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맹목적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럴 리 없어요. 분명 그 녀석은 돌아올 거예요. 절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녀석이 아니라고요.”
기이하게 보일 정도로 맹목적인 그녀의 믿음에 모두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보이는 흔한 현실 부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기, 길드장님! 길드장님!”
개미굴로 투입될 예정이었던 길드원 한 명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무슨 일이야?”
“개미굴 입구에…… 장군 독개미가…….”
여왕 둥지만을 지키는 장군 독개미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모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뭐야?! 당장 전투 준비를.”
“아니…… 그게 아닙니다.”
“……?”
“실종자들이…… 실종자들이 장군 독개미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