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1화
뒷이야기(1)
“아저씨, 이거 엄청 눈에 띌 거라고 그랬잖아요.”
입구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윤세희는 내 등 뒤로 살짝 얼굴을 숨겼다.
“그래도 편하게 왔으니까 됐잖니?”
“나는 마음에 드는데? 한 마리 키우고 싶을 정도야.”
“이 바보가! 이걸 어떻게 키워?!”
“아저씨, 아저씨는 키울 수 있지?”
“하하하!”
정태호의 물음에 나는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태호야! 정태호!!”
“아이고! 태호야!”
애타게 정태호를 부르는 중년 부부가 나타났다.
“어? 엄마, 아빠!”
그 모습을 본 정태호가 장군 독개미에서 폴짝 뛰어내려 그들에게 달려갔다.
어머니는 곧바로 아들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어디 보자?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아픈 곳은?”
“괜찮아. 괜찮아. 멀쩡해!”
“그러게, 조심하지 그랬어…… 엄마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흑!”
“아이, 또 왜 울고 그래. 멀쩡히 돌아왔으면 됐지.”
“그걸 말이라고 하니!”
“으이구! 녀석아, 이제 성인인데 엄마 속 좀 그만 썩여라.”
아버지는 속썩이는 아들의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정태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기보다 작은 덩치의 어머니를 살짝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을 때, 뒤에서 윤세희가 내 옷을 살짝 잡아당겼다.
“아저씨.”
“응?”
“내리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저도 부모님이 오셔서…….”
“응. 알았어.”
나는 장군 독개미에 먼저 내려서 윤세희가 내릴 수 있도록 잡아주었다.
그녀는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부모님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윤세희네 부모님은 달려온 그녀를 꼭 끌어안아 줬다.
정태호 가족과는 다르게 차분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누던 그녀의 부모님은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굉장히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도 덩달아 어정쩡하게 고개를 숙였다.
다리를 다친 남진혁은 의료팀이 와서 상태를 확인하고, 금방 들것에 실어 균열 밖으로 이송됐다.
그는 나중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먼저 떠나갔다.
하나둘 떠나가는 팀원들을 보며 살짝 쓸쓸함을 느끼고 있을 때, 멀리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임시현!”
익숙한 목소리에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법한 감동의 재회 장면을 떠올리며 양팔을 벌려 그녀를 맞이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그녀는 내 양팔을 쏙 피해서 뒤 포지션을 잡더니, 사정없이 내 등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야이! 나쁜 놈아, 왜 이렇게 사람을 걱정하게 만들어!”
“아얏! 아야! 예린아, 진짜 아퍼.”
“아프라고 때리는 거야. 그리고 내가 나대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사람 눈에 다 띄었잖아!”
“지금은 너 때문에 더 눈에 띄는 것 같은데…….”
“조용히 해! 뭘 잘했다고 말대꾸야!”
“…….”
그래도 힘들게 돌아왔는데…….
살짝 서운함이 생기려 할 때, 서예린의 눈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네가 만약에 잘못됐으면…… 내가 어머니 얼굴을 어떻게 봐, 흑!”
“우, 울어?”
“흑, 그럼 웃고 있겠냐고…….”
그녀의 눈물을 보자마자 서운함은 싹 사라지고 미안한 감정이 솟아났다.
“미안해…….”
나는 서예린을 살짝 껴안았다.
그녀는 아직 속상함이 덜 풀렸는지 주먹으로 계속 날 때렸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귀엽게 가슴을 콩콩 치던데…… 서예린은 주먹으로 바디 블로우를 퍽퍽 날렸다.
예린아…… 근데 진짜 아프다니까…….
그녀를 안고 있으니 주변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조금 민망하기는 했지만, 그녀의 감정이 진정될 때까지 계속 안아줬다.
약간 격해졌던 감정이 진정되고, 서예린은 다시 떨어뜨려 놓았다.
그녀는 옆에 가만히 있던 장군 독개미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얘들은 뭐야?”
“아∼. 일행 모두가 체력을 많이 소모해서 걸어오기 힘들었거든. 그래서 얘들 좀 타고 왔어.”
“잠깐, 저 뒤에 있는 건…….”
서예린이 놀라며 가리킨 곳에는 독개미들이 죽은 여왕의 시체를 개미굴 입구에서 가져 나오고 있었다.
“너희들 여왕 독개미도 잡은 거야?!”
“어…… 그게 어쩌다 보니…….”
“…….”
“시체를 놔두고 오기 아깝더라고. 그래서 쟤들 시켜서 가져왔어.”
죽은 줄 알았던 실종자들이 장군 개미를 타고 복귀하고, 그것도 모자라 여왕 독개미를 잡아버렸으니.
서예린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관계자가 질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왕 시체는 그렇다 치고. 이 녀석들은 어떻게 할 거야?”
“으음…….”
사실 뒤를 생각하고 이 독개미들을 데려온 건 아니었다.
아까 말했던 대로 걷기 힘들어서, 여왕의 시체를 가져오려고 데려왔을 뿐이다.
쩝, 순순히 내 말을 따르는 녀석들을 죽일 수도 없고, 그냥 돌려보내기도 그렇고…….
개미굴에서 지독하게 싸울 때는 지긋지긋하게 느껴졌는데, 이렇게 또 순순히 말 잘 듣는 모습을 보니 살짝 귀여운 것 같기도 하고…….
독개미들을 바라보다가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을 찾아냈다.
나는 반쯤 시험 삼아 독개미들을 향해 교감 능력을 사용했다.
놀랍게도 지금 독개미들은 서예린의 소환수, 뽀삐의 예전 상태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독개미들 모두 붉은 쇠사슬에 영혼을 구속당해 있었다.
지난번의 경험을 되살려 그들의 붉은 쇠사슬을 모두 해방했다.
[혼돈에 사로잡힌 영혼을 해방했습니다.]
[‘혼돈의 사슬 파편 조각’을 얻었습니다.]
-츠츠츠츳!
-츠츠츳!
그러자 모든 독개미는 빛에 둘러싸이더니 작은 영혼 구슬이 되어 나에게 흘러들어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독개미들이 내 소환수가 됐음을 깨달았다.
와…… 이게 되네?
시험 삼아 해봤는데 너무 쉽게 성공하자 얼떨떨하면서 약간 허무했다.
그래도 어쨌든 새로운 소환수 획득에 성공했으니 만족하면 고개를 드는데.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차!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예린아.”
“…….”
“이것도 좀 눈에 띄었나?”
그녀는 대답 대신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꼬집었다.
* * *
균열 밖으로 나가기 전에 의료진에게 몸에 이상을 확인받았다.
피부가 살짝 긁히고 약간의 타박상 정도만 제외하면 완전히 정상이었다.
긁힌 상처에 간단한 치료가 끝났을 때, 뒤쪽에서 기운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아저씨 여기 있다. 우리 왔어!”
“몸은 괜찮으세요?”
“저도 왔습니다.”
정태호와 윤세희 그리고 남진혁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남진혁은 다리에 붕대를 감고 목발을 짚고 있었다.
나는 반갑게 세 사람을 맞이했다.
“나는 괜찮아. 너희들은 어디 다친 데는 없어?”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독에 중독된 증상도 없어서 걱정할 필요 없데.”
“저도 비슷하게 말씀해 주셨어요.”
“다행이다. 진혁 씨는 다리 괜찮아요?”
“당분간은 목발을 짚어야겠지만, 후유증이 남을 정도는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모두 괜찮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절로 훈훈해졌다.
“그러고 보니 아까 독개미들은…… 헉!”
“아앗!”
갑자기 깜짝 놀라는 정태호와 윤세희.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금방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서예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태호와 윤세희는 내 쪽으로 바짝 붙어서 속삭였다.
“저분, 서예린 님 맞죠? 그렇죠?”
“아저씨! 서예린이랑 아는 사이였어?”
“어…… 그냥 옆집에 사는 이웃이야.”
사실에 기초한 설명에 서예린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눈동자에 장난스러운 빛이 반짝였다.
“너무해. 우리는 서로의 집 비밀번호를 아는 각별한 사이 아니었어?”
“……?!”
“우와! 아저씨 진짜야?”
“야이씨! 너 순진한 애들한테 장난치지 마!”
“거짓말은 아니잖아?”
“그건 네가 택배 좀 집에 넣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알려준 거고.”
서예린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귀엽게 혀를 살짝 내밀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남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두 분의 친분이 생각보다 깊으시네요.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궁금해질 정도예요.”
“뭐, 예린이한테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친해졌지. 워낙 붙임성이 좋기도 했고.”
“예린 누나랑 친구처럼 지내시는 것 같은데, 저도 편하게 형이라도 불러도 괜찮을까요?”
남진혁의 제안이 처음에는 의외라고 느껴졌다.
쉽게 친분을 허용할 만큼 붙임성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의 제안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친분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어…… 물론 괜찮죠.”
“그럼 나도 예린 누나처럼 편하게 불러.”
“으응. 알았어.”
“앞으로 잘 부탁할 게, 형.”
그는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윤세희가 불쑥 앞으로 나섰다.
“아저씨!”
“응?”
“저…… 연락처…… 알려주실래요?”
윤세희는 긴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내밀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처럼 핸드폰을 내민 두 손도 작게 흔들렸다.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이 달라진 윤세희의 모습에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의 핸드폰을 받아 내 번호를 찍어줬다.
“자! 이게 내 핸드폰 번호야.”
“고마워요, 아저씨!”
윤세희는 핸드폰을 소중히 받아들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 나도!”
“내 연락처도 받아둬.”
자연스럽게 정태호와 남진혁과도 연락처를 교환했다.
막 연락처 교환이 끝났을 때, 멀리서 윤세희와 정태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균열에서 봤던 부모님들이었다.
“아! 가봐야겠다. 아저씨 그럼 나중에 연락할게!”
“연락 꼭 받아주셔야 해요. 알았죠?”
“알았으니까. 어서 가봐.”
정태호는 힘차게 손을 흔들며 달려갔고, 윤세희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 그 뒤를 따라갔다.
“누나, 우리도 잠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길드장님이랑 부길드장님이 부르셨거든.”
“에에? 갑자기 왜?”
“왜긴, 누나가 계속 형한테만 붙어 있으니까 그러지.”
서예린은 인상을 찌푸리며 가기 싫다는 감정을 팍팍 드러냈다.
“나는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으으. 알았어. 다녀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
두 사람이 떠나기 직전에 핸드폰에 메시지 알람이 울렸다.
확인해 보니 방금 연락처를 받아간 윤세희였다.
-윤세희입니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많이 힘든 하루였으니 몸조리 잘하시길 바랄게요.
-그리고 앞으로 편하게 연락해도 되죠?
예의 바른 메시지 마지막에는 귀여운 캐릭터 이모티콘이 함께 있었다.
굉장히 윤세희다운 메시지였다.
나는 아빠 미소를 지으며 서예린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이거 봐봐. 아까 그 여자애가 보낸 거야. 굉장히 풋풋하고 귀엽지 않아?”
-꽈악!
“어이구! 귀여운 여자애한테 메시지 받아서 좋겠어!”
“아악! 왜 꼬집어?”
“몰라! 가자, 진혁아!”
서예린은 씩씩거리며 가버렸다.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억울한 표정으로 남진혁을 바라봤다.
“큭큭, 나도 가볼게. 형, 나중에 봐.”
남진혁은 어깨를 들썩거릴 정도로 웃으며 서예린의 뒤를 쫓아갔다.
뭐야?
진짜로 갑자기 왜 저런 거야?
* * *
“누나 천천히 가.”
남진혁의 부름에 서예린의 걸음이 느려졌다. 목발을 짚으며 나란히 옆에 섰다.
그녀는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씩씩거리고 있었다.
“큭큭, 왜 그렇게 화가 났어?”
“여자애한테 문자 받고 웃는 게 얄밉잖아.”
“왜? 그럴 수도 있지. 누나랑 사귀는 사이도 아니라면서.”
“…….”
그의 논리적인 질문에 서예린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형은 아마 순전히 귀여워서 그랬을 거야. 나이는 누나랑 같은데, 옆에서 지켜보면 딸 가진 애 아빠 같던데.”
그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서예린이 잠시 움찔했다.
“으응, 그렇긴 한데. 그 여자애는 전혀 그런 눈빛이 아니었어.”
“누나가 양파 같은 매력이 있다고 했잖아. 확실히 매력적인 사람이던걸?”
“뭐야? 너도…….”
“워워! 이상한 오해하지 마. 나는 그저 좋은 형이 생겨서 기쁠 뿐이니까.”
남진혁은 지금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호감이 가는 임시현을 만나기도 했고, 친하게 지내던 서예린의 새로운 일면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항상 여유롭고, 마이페이스에, 거칠 것 없던 그녀가,
별것도 아닌 일에 초조해하는 모습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졌다.
‘후후,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어.’
남진혁은 앞으로의 길드 생활이 굉장히 재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