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2화
뒷이야기(2)
길드 실기 시험이 있고 3주가 지났다.
만약에 정상적으로 실기 시험을 치렀다면, 면접까지 끝내고 최종 결과를 받았을 시기였다.
실제로 C조 3팀을 제외한 다른 지원자들은 이미 최종 합격이 결정 났다.
실기 시험 때 예기치 못한 사건이 있었던 C조 3팀.
우리는 일단 공채 모집 일정에서 제외됐다.
다행히 불합격은 아니었다.
가디언즈 길드는 일단 공채 모집에 집중한 다음, C조 3팀에 대해 논의를 하겠다고 뜻을 전해왔다.
솔직히 일정이 꼬이게 된 책임에 우리도 자유로울 수 없으니, 그냥 조용히 그들의 판단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난 3주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평소처럼 마계로 출근해 농장을 돌보는 일상.
아!
물론 실기 시험 때 있었던 사고로 발레리안과 카네프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평범한 길드 시험이라고 해서 안심했는데. 거기서 그런 사고를 당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 상황은 제가 도와드릴 수도 없단 말입니다.”
“저 녀석 완전 사고뭉치라니까. 사고뭉치!”
“그…… 제가 사고를 당하고 싶어서 당하는 게 아니라…….”
이미 그들에게는 내 변명이 들리지 않았다.
“안 되겠습니다. 조만간 제 나름대로 조치를 취해야겠습니다.”
“베르딕 애송이한테 말해야겠어. 어떤 상황에도 살아나올 수 있도록 미친 듯이 굴리라고.”
“…….”
덕분에 지난 3주 동안 검 수련을 빙자한 지옥을 맛봤다.
다시 개미굴에 들어가는 게 편할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동안 또 달라진 점이라면.
3팀의 팀원들과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는 점이었다. 아예 단톡방이 생겨서 매일매일 소소한 소식들을 주고받게 됐다.
정태호와 윤세희는 이번 개미굴에서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면서, 개인적인 단점을 보완할 수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리를 다친 남진혁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전력에서 제외되는 길드 서류 잡업에 투입 중이라고…….
그는 수련에 열중하는 두 사람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단톡방에 글을 많이 남기는 걸 보니 서류 작업이 아주 지루한 모양이었다.
마계에 있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퇴근하고 나서는 단톡방을 확인하며 글을 남겼다.
가끔 규리와 아꿍이의 사진을 올리면 꽤 반응이 좋아서 흐뭇해하기도 했다.
-[윤세희] : 너무 귀엽다. 사진 더 보내주시면 안 돼요?
-[나] : 다음에 더 찍으면 보내줄게.
-[정태호] : 아저씨 정말로 농장에서 일하네. 농장에 놀러 가도 됨?
-[나] : 안 됨. 외부인 출입금지야.
-[남진혁] : 아깝네. 가능하면 나도 쉬는 김에 놀러 가보려고 했는데.
-[정태호] : 그러고 보니 진혁 형, 우리 회식 언제 함? 진혁 형이 쏜다고 해놓고 입 싹 닦음.
-[나] : 그러게. 언제 한 번 모여야 할 텐데.
-[남진혁] : 조만간에 모일 수 있을걸? 조금 있으면 길드에서 연락이 갈 거야.
-[정태호] : 우리 어떻게 되는 거임?
-[남진혁] : 나도 정확한 건 몰라. 소문에 의하면 길드장님, 부길드장님 모두 스케줄 조정하셨다던데.
-[정태호] : 억, 진짜?
-[윤세희] : 긴장되네요.
남진혁이 단톡방에서 말한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가디언즈 길드에서 연락이 왔다.
길드 가입에 관해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내용의 정중한 초대 메시지였다.
***
“여기가 가디언즈 길드 본부야.”
서예린의 차를 타고 도착한 기다언즈 길드 본부.
원래는 혼자서 오려고 했는데. 그녀는 거의 억지로 나를 차에 태우고 이곳에 왔다.
이름값에 비하면 조금 평범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거대 길드들의 휘황찬란한 빌딩과는 거리가 멀었다.
“생각보다 평범하지?”
“솔직히 그렇네.”
“길드장님이 워낙 실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라. 그래도 있어야 할 건 다 있어.”
그녀는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경비아저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예린이 왔구나. 오오? 옆에 있는 친구가 소문의 그 사람인가?”
“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허허허! 알았다. 들어가 봐.”
경비아저씨는 기분 좋게 웃으며 주차장 입구 차단기를 올려주었다.
서예린은 주차장에 진입해 익숙하게 차량을 주차했다.
차에서 내리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임시현 씨, 맞으시죠?”
“어? 네. 그런데 누구시죠?”
“해오름달 길드에서 나왔습니다. 계약할 길드를 찾고 계시는 중이시죠?”
“저희는 발로란 길드입니다. 좋은 계약 조건을…….”
“예?”
이 사람들은 뭐야?
가디언즈 길드를 찾아온 건데, 갑자기 다른 길드 사람들이 들이닥치자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내 앞으로 서예린이 나섰다.
“저기요. 또 양아치 같은 짓 하지 마시고, 제발 조용히 돌아가 주실래요?”
그녀에게 이런 상황은 처음이 아닌 듯했다.
적대감이 풀풀 날리는 경고에도 상대방은 능글맞게 대응했다.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십니까? 좋은 인재를 찾아서 접촉하는 게 저희의 일인데.”
“그러니까 그 일을 왜 남의 길드 건물에서 하냐고요.”
“하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좋은 인재들을 찾다 보면 항상 이곳으로 오게 되네요.”
“진짜…… 시현아, 이 사람들은 무시해버려. 그냥 들어가자.”
서예린은 내 팔을 끌고 주차장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여러 길드에서 나온 사람들은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성급하게 계약하지 마시고 이 연락처로 꼭 연락해 주세요. 최고로 좋은 조건으로 맞춰드리겠습니다.”
“시현 씨 같은 재능 있는 분은 당연히 그만한 대우를 받으셔야죠. 가디언즈 길드에서 그만한 대우를 해줄지 의문이네요.”
“다른 말 안 하겠습니다. 업계 최고 조건! 관심이 있으시면 연락해 주십시오.”
아니, 이 사람들은 나를 본 적도 없으면서, 업계 최고 조건을 운운하는 거야?
억지로 쥐여주는 명함들을 예의상 버릴 수는 없어서 일단 받아들었다. 서예린은 출입증을 대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그들은 건물 안까지는 따라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마자 서예린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내가 이렇게 될까 봐 시험에서 눈에 띄지 말라고 한 건데…….”
“무슨 뜻이야?”
“실기 시험에서 네가 보여준 활약이 벌써 업계에 쫙 소문이 난 거야.”
“그게 소문이 날 정도야?”
“당연하지! 신입 세 명이 개미굴의 여왕까지 잡았으니, 소문이 안 나는 게 더 이상한 거야.”
“그렇구나.”
그녀의 설명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가디언즈 길드의 실기 시험은 주목을 많이 받는 편이거든. 그래서 매년 이렇게 예비 합격자들을 빼내려는 놈들이 몰려들어.”
“와…… 진짜 양아치 같은 놈들이네. 저 사람들은 상도덕도 없나?”
“상도덕을 아는 녀석들이었으면 절대 이렇게 행동 안 했겠지. 그래서 너 보고 소환술을 사용하지 말라고 한 거야. 네 능력은 어떤 길드에서건 무조건 탐낼 만한 능력이니까.”
전에 시험을 치기 전에 서예린이 했던 말이 이해가 됐다.
주머니에서 방금 받았던 명함들을 꺼내 들었다.
-찌익! 찍!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명함을 찢어버렸다.
돈, 계약 조건을 떠나서 기본적인 예의도 모르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지 않았다.
서예린은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살짝 풀렸는지, 찌푸렸던 얼굴에 미소가 살짝 맴돌았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가장 먼저 가디언즈 길드를 나타내는 로고가 보였다.
서예린을 따라 깔끔한 내부 통로를 걸었다.
거기에는 길드 활동을 찍어놓은 사진, 표창장, 신문 스크랩 등이 진열돼 있었다.
중간에 휴게실 같아 보이는 곳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어?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저씨!”
정태호와 윤세희였다.
“너희들 먼저 와 있었구나.”
“어, 우리는 면담도 다 끝냈거든.”
“저도 30분 전쯤에 이야기를 끝냈어요.”
그들의 옆에는 독개미 균열에서 봤었던 부모님도 함께 와 계셨다.
그들은 반가운 미소와 함께 인사를 건넸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태호 아버지입니다. 균열에서 우리 태호한테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태호 엄마예요. 지난번에 인사를 못 드려서 너무 아쉬웠어요.”
“안녕하세요, 임시현입니다.”
부모님의 정중한 인사에 나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저희 아들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죠? 어렸을 때부터 워낙 별난 아이라서…….”
“아뇨. 태호한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멋지게 할 일을 해냈으니까요.”
“거봐, 내 말 맞지? 민폐 안 끼치고 잘했다니까.”
“너는 좀 가만히 좀 있어. 얘는 이제 성인인데 왜 이렇게 철이 없니.”
어머니는 태호의 왼쪽 팔을 찰싹 때리며 핀잔을 줬다.
아버지는 내 눈치를 보며 민망한 듯 웃어 보였다.
정태호에게 어울리는 화목한 가족 분위기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음은 윤세희의 어머니가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세요. 윤세희 엄마입니다. 그날은 경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뭘.”
“그런가요? 딸이 집에서 시현 씨 이야기를 참 많이 하더라고요.”
“어머니,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왜 해요!”
윤세희는 크게 당황하며 어머니의 말을 막았다.
그런 딸의 반응에 어머니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쪽 어머니도 윤세희와 아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데 너희들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면담 다 끝났으면 돌아가도 되는 거 아니야?”
“당연히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를?”
“네. 아저씨 면담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든요.”
“……?”
내 면담이 끝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두 사람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했다.
그때, 가디언즈 길드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임시현 씨, 길드장님과 부길드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예. 부탁드릴게요.”
“다녀와, 아저씨.”
“기다리고 있을게요.”
정태호와 윤세희의 배웅을 받으며 직원의 안내를 따라갔다.
물론 서예린도 자연스럽게 내 뒤에 따라붙었다.
안내를 따라 걷는데 주변 직원들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보며 수군대기도 했다.
아까 주차장 경비 아저씨의 이야기가 떠올라 서예린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예린아, 이 길드에서 나 안 좋은 소문이라도 난 거야? 시선이 좀 뜨거운데?”
“으…… 응.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
찝찝한 의문을 남겨둔 채 복도를 걸었다.
-똑. 똑. 똑.
“임시현 씨를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오세요.
안쪽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직원은 문에서 비켜서면서 길을 내주었다.
내가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움직이자 서예린도 은근슬쩍 뒤따랐다.
“임시현 씨만 들어오라고 하셔서. 예린 씨는 밖에서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끄응, 알았어. 다녀와 시현아.”
그녀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평소처럼 억지 부리지 않고 깔끔하게 물러섰다.
나는 혼자서 면담실의 문을 천천히 열었다.
방안에는 세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사람은 여전히 마스크를 쓴 남진혁이었고, 그 옆에는 실기 시험에 대해 안내를 해주던 부길드장 오하영이 앉아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짙은 눈썹과 턱수염, 다부진 체격이 인상적인 중년 남성이었다. 아마도 저 사람이 길드장 강희섭인 것 같았다.
으음…… 그런데 길드장 아저씨가 나를 뚫어버릴 것처럼 노려보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어서 오세요. 시현 씨. 편하게 앉으세요.”
“네.”
오하영의 말에 따라 준비된 자리에 앉았다.
예전에 면접 준비를 많이 한 경험이 있지만, 이런 자리는 항상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했다.
그래도 집에서 미리 생각했던 예상 질문과 답변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리를 잡고 상대 쪽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길 기다리고 있는데…….
강희섭의 입에서 바로 질문이 튀어나왔다.
“너, 우리 예린이랑 어떤 사이야.”
“……네?”
처음부터 예상에 전혀 없던 질문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