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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3)화 (83/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3화

뒷이야기(3)

가디언즈 길드의 길드장, 강희섭은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봤다.

“서예린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둘이 어떤 사이인지 설명해 봐.”

“어…… 그냥 옆집에 사는 친구입니다.”

“거짓말! 친구라면서 그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막 껴안고 그랬단 말이야?”

강희섭은 독개미 균열에서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눈을 부라렸다.

확실히 그때를 떠올리면 나도 민망한 부분이 있었다.

어렵게 개미굴을 탈출해서 감정적으로 많이 고양된 상태였다. 그래서 조금 과감하게 행동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때는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한 겁니다. 딱히 다른 의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나의 해명에도 그의 매서운 눈빛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대답하긴 했지만, 길드의 일과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질문에 기분이 나빠졌다.

다행히도 내가 반응을 보이기 전에 옆에 있던 오하영이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펜을 사정없이 강희섭의 옆구리를 찔렀다.

-쿡!

“아악!”

와…… 진짜 인정사정없이 찌르시네.

순간 보고 있는 내가 움찔할 정도였다.

“이거 왜 이래?”

“왜 이러기는요? 길드에 손님으로 초대한 분에게 무슨 무례한 행동을 하시는 거예요?”

“무례한 행동이라니? 예린이의 보호자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

“예린이가 지금 나이가 몇인데 보호자 타령이세요.”

“너는 걱정도 안 돼? 저 녀석이 질 나쁜 사기꾼이면 어떻게…… 아! 아앗! 진짜 아프니까 그만 찔러!”

오하영은 거의 펜이 부러질 정도로 강희섭을 사정없이 찔렀다.

그 옆에 있던 남진혁은 큭큭 거리며 웃음을 참았다.

“죄송해요, 시현 씨. 이 멍청한 털보 말은 신경 쓰실 것 없어요.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세요.”

“아…… 예.”

강희섭은 뭔가 불만인 표정으로 구시렁거렸다.

오하영이 날카롭게 째려보자 움찔하며 완전히 입을 다물었다.

가디언즈 길드의 권력 구도가 한눈에 보이는 듯했다.

눈빛만으로 강희섭을 제압한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다시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길드에 시현 씨와 예린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런저런 소문이 나 있는 상태거든요. 예린이가 이 길드에서 워낙 많은 관심을 받는 친구라 이해를 좀 해주세요.”

아까 주차장 경비원 아저씨, 길드 직원들의 반응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도 오해받을 짓을 하긴 했으니, 딱히 억울해하기도 애매했다.

“순서가 뒤바뀌긴 했지만, 간단히 소개 먼저 할게요. 저는 가디언즈 길드의 부길드장을 맡은 오하영이라고 해요. 이쪽은 강희섭 길드장님, 마지막은 잘 알고 계시는 남진혁 길드원이에요.”

그녀의 소개에 따라 간단하게 눈인사를 나눴다.

“먼저 늦게 연락을 드려서 죄송해요. 그때 개미굴 균열에서 있었던 일은 저희에게도 좀 충격적인 일이라. 길드 내부적으로 논의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저 진혁…… 남진혁 길드원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상황 속에 C조 3팀이 보여준 저력에 굉장히 놀랐어요. 지원자 세 사람 모두 대단했지만, 특히 시현 씨의 활약을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더군요.”

“으음. 굉장히 부끄럽네요.”

오하영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아니꼽게 바라보던 강희섭이 불쑥 끼어들었다.

“쳇, 대단하기는…… 나 때는 말이야 혼자서 개미굴을…….”

-꿈틀!

오하영의 눈썹이 심하게 꿈틀거렸다.

굉장히 낮아진 목소리로 경고했다.

“길.드.장.님?”

“…….”

“새로 가입한 길드원들 때문에 서류 작업이 많이 밀렸던데. 계속 쓸데없는 소리 하시면, 오늘 작업 끝낼 때까지 퇴근 안 시켜드릴 거예요.”

“…….”

한방에 그를 제압하고 다시 내 쪽을 바라봤다.

“흠흠. 다시 이야기를 이어서 할게요. 혹시 밖에서 같은 팀원이었던 두 사람을 만나셨나요?”

“네, 부모님도 계셔서 인사를 나눴습니다.”

“원래 시현 씨가 오기 전에 그 두 사람과 길드 계약을 끝내려고 했는데, 둘 다 굉장히 특이한 계약 조건을 내걸었어요.”

“……?”

“시현 씨가 가디언즈 길드에 들어오는 게 그들의 조건이었습니다. 만약에 시현 씨와 계약을 못 맺으면 그 두 사람도 계약하지 않겠다더군요.”

“아…….”

두 녀석이 왜 나를 기다리나 했더니…….

정말 철없는 조건을 내건 두 사람이 황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지해 준다는 사실이 조금 기쁘기도 했다.

“그렇게 길지도 않은 시간인데 그 두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주셨나 봐요.”

“저도 조금 당황스럽네요. 그 친구들이 그런 조건을 내걸었을 줄은…….”

“저희는 세 분 모두 길드에 모시고 싶은 입장입니다. 그렇다 보니 시현 씨의 계약이 제일 중요해졌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조건이나 요구사항이 있으실까요?”

정태호, 윤세희의 계약도 나와 엮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내가 굉장한 갑의 위치 서게 됐다.

이런 자리에서는 항상 을의 위치에서 굽실거리기만 했는데, 처음으로 갑의 위치에 있으니 굉장히 기분이 묘했다.

뭐…… 그렇다고 갑질을 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면 괜히 정태호와 윤세희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이니까.

미리 생각해 왔던 것들을 차분히 상대방에게 전했다.

내가 원하는 건 아주 간단했다.

길드원이라는 신분, 그리고 제약이 적은 자유로운 길드 활동 보장.

농장의 일을 우선해야 해서 완전히 길드에 묶일 수는 없었다.

일종의 투잡 느낌?

실제로도 본업을 가진 채, 겸업으로 길드 활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오하영의 표정이 살짝 안 좋아졌다.

남진혁도 표정이 조금 안 좋아 보였다.

“혹시 겸업이 안 되나요? 미리 알아본 바로는 가능한 거로 알고 있었는데.”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저희는 시현 씨를 일반 길드원이 아닌 공격대원으로 채용할 생각이었거든요.”

“형이 가진 능력은 공격대에 큰 효율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예비 공격대원으로 추천했거든.”

일반적으로 길드는 크게 두 종류의 방식으로 일을 수행했다.

위험도가 높지 않고, 낮은 등급의 균열인 경우.

길드원 중에 가능한 사람끼리 임시로 팀을 구성해 사냥을 나선다.

사람이 부족한 경우에는 길드끼리 협업을 할 때도 있다.

반면 위험도가 높고, 높은 등급의 균열인 경우.

역할을 분담해 조직적으로 구성된 공격대가 해결했다.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는 만큼. 길드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자가 포함된다. 그래서 공격대의 실력이 그 길드의 위상과 직결됐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나를 채용하려 했다니.

인정을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지만, 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서요.”

“으음, 진혁이에게 듣기로는 농장일을 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네,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나는 흔들림 없는 태도로 대답했다.

“아쉽네. 형이라면 공격대에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러면 어쩔 수 없죠. 시현 씨의 생각을 존중해 드릴게요.”

두 사람은 깔끔하게 설득을 포기하고 억지로 권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동자에 남은 미련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오하영은 기본적인 계약 조건과 길드 가입 절차를 설명해 줬다.

설명이 대충 끝나갈 때쯤에 조용히 있던 강희섭이 입을 열었다.

“진혁이랑 부길드장은 잠시 나가 있어. 저 친구랑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

“뭐예요? 또 이상한 소리 하려고 그러시는 거죠?”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그러는 거야.”

이전과는 다르게 그의 태도는 아주 진지해져 있었다.

오하영도 뭔가를 눈치채고 남진혁과 함께 조용히 방을 나섰다.

방 안에는 나와 강희섭 단둘만이 남게 됐다.

문밖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완전히 사라지고 난 다음,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기석 본부장에게 너에 대한 부탁을 받았다.”

“……!”

“내 성격을 잘 아는 사람이라 그런 짓을 잘 하지 않는데, 아주 간곡하게 부탁을 하더군.”

으음.

아무래도 이기석 본부장이 나와의 계약을 위해 힘을 쓴 모양이었다.

근데 강희섭의 표정을 보니 오히려 역효과인듯했다.

“부탁은 바로 거절했다. 길드에 가입하고 싶으면 무조건 정해진 절차를 따르라고 못 박았지.”

역시…….

그는 겉으로 보이는 강한 인상처럼,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성격인 듯했다.

“솔직히 물어보지. 왜 우리 길드에 들어오려는 거냐?”

“…….”

“이기석 본부장 정도 되는 배경이 있으면, 여기가 아니더라도 쉽게 들어갈 만한 괜찮은 길드가 많이 있을 텐데?”

그의 말이 맞았다. 단순히 길드원이라는 신분만 필요한 거라면, 이기석을 통해서 쉽게 얻을 방법이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귀찮은 일을 자처한 이유?

표면적으로는 서예린과 친분 때문인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과거에 스스로 했던 다짐 때문이었다.

“조금 이야기가 길어질 텐데 상관없으세요?”

강희섭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주 예전의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십몇 년 전쯤에 제 아버지는 소를 키우며 농장을 운영하셨어요. 농장의 규모는 작았어도 가족의 생활을 지탱해 주던 소중한 농장이었죠.”

내 아버지에 대한 기억 대부분 농장에서 일하시는 모습이 전부였다.

그만큼 열심히 일하셨고 소중히 농장을 운영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우리 농장 근처에 균열이 발생했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균열의 발생을 미리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기술의 발달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거기다 시골이었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더 취약했다.

정말 운이 좋아서 금방 균열을 발견했고, 당연히 우리는 균열 발생을 신고했다.

빠르게 경찰차와 구급차는 도착했는데, 균열을 막아낼 각성자는 오지 않았다.

괴수들이 쏟아져나오기 직전에 각성자들이 도착했다. 그런데 그들은 술을 떡이 되도록 마신 상태였다.

-아∼ 정말! 신나게 놀고 있었는데. 귀찮게 이게 뭐야!

-술? 괜찮아, 괜찮아! 저런 허접한 균열은 눈감고도 막는다고.

-얼른 끝내고 가자. 귀여운 아가씨들 기다린다.

그들은 대충대충 전투를 시작했다.

자신했던 대로 괴수는 쉽게 막아냈다. 그런데 각성자 중의 한 명이 잘못 날린 마법이 우리의 농장을 타격했다.

-화르르륵!!

마법으로 옮겨붙은 불꽃은 순식간에 농장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농장을 싹 다 태워버린 뒤였다.

농장을 불태운 각성자들은 괴수와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가 버렸다.

아버지 앞에 남은 건 잿더미가 된 농장과 타죽은 소들의 시체였다.

-꽈앙!!

“저런 쳐죽일 놈들!”

내 이야기에 몰입했던 강희섭이 앞의 탁자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흠, 흠. 조금 흥분했군. 그래서?”

“당연히 아버지는 그 각정자들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했어요.”

그날 출동했던 각성자들의 잘못은 명백했다.

당시 현장에 목격자도 많이 있었고.

출동대기를 해야 할 시간에 술자리를 벌였다는 증거도 넘쳐흘렀다.

아버지는 당연히 합당한 처벌과 보상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일은 아버지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문제를 일으킨 각성자가 소속된 길드는 꽤 영향력이 큰 곳이었는데, 그 영향력으로 여러 곳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전투를 벌이다 보면 약간의 실수가 있을 수도 있는 법이죠. 어떻게 매번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겠습니까?

-이런 촌구석까지 파견 보내는 게 쉬운 일인 줄 아십니까? 계속 이런 식이면 더는 파견 보내기 힘듭니다.

-시끄럽게 해서 굳이 서로 얼굴 붉힐 필요 있습니까? 적당히 합의하시죠.

그 당시에 각성자가 부족한 시골에서는 큰 길드의 갑질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서도 고개만 흔들 뿐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심지어 같은 마을 사람들도 우리 가족의 억울함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주변의 압박 속에서도 아버지는 고군분투했다.

평생 가본 적도 없던 법원을 들락날락했고, 열심히 언론에 사건을 알리려 노력했다.

그때,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이 바로 사과 아저씨네 가족. 그리고 그 당시에 가디언즈 길드장이었다.

강희섭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전대 길드장님이?”

“네, 일면식도 없던 저희 아버지를 어려운 사정만 듣고 도움을 주려고 하셨었죠. 직접 기자를 소개해 주기도 하고, 저희를 위해서 인터뷰도 해주셨어요. 아쉽게도 의미 있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요.”

그 뒤로도 외로운 싸움을 이어나가던 아버지는 화병으로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셨다.

나와 어머니는 그렇게 허무하게 아버지를 보내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결심했어요. 만약에 내가 각성을 해서 길드에 들어가더라도, 저렇게 약자를 무시하는 놈들과는 함께하지 않겠다고…….”

“…….”

“그래서 길드에 들어가려고 생각했을 때, 가디언즈 길드를 먼저 떠올렸어요. 세월이 흘렀어도 변하지 않았을 거로 생각하면서요.”

정말 오랜만에 우리 가족의 숨겨진 이야기를 꺼냈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생각보다 괴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강희섭은 자신의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으음…… 내가 오해를 했나 보군.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괜찮습니다.”

“크흠, 여전히 특혜를 주거나 사정을 봐줄 생각은 없다. 모든 길드원이 그러하듯, 규칙과 절차에 예외는 없어.”

“물론이죠. 그 정도는 각오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 쪽으로 다가왔다. 씨익 웃으며 내게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가디언즈 길드의 길드장을 맡은 강희섭이다. 길드의 식구가 된 걸 축하한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손을 맞잡았다.

“임시현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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