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4화
마계농장 야유회(1)
아기 야쿰 삼 남매가 젖을 떼는 시기가 슬슬 다가왔다.
아직도 아침에는 나에게 꿍유를 받아먹지만, 그 외에는 엄마를 따라다니며 조금씩 풀을 뜯기 시작했다.
그만큼 내가 아기들의 식사를 챙기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여유로워지긴 했는데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식사를 챙겨주는 일이 나에게는 삼 남매와 매일 교감을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 시간이 줄어드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진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아기 야쿰들이 풀을 뜯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허전한 마음을 달래는 중이었다.
한창 넋 놓고 있던 와중에 큰뿔이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웬만하면 먼저 다가오는 일이 없어서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큰뿔아, 무슨 일이야?”
-부우우.
큰뿔이는 작게 울음소리를 내며 자기 뜻을 전했다.
나는 금방 녀석이 전하려는 뜻을 알아들었다.
“아∼! 조만간에 풀을 뜯으러 나설 생각이구나?”
-부우우. 부우우우.
아무래도 큰뿔이는 오랜만에 무리를 이끌고 신선한 풀이 있는 곳으로 나갈 생각인 듯했다.
이제 막 풀을 뜯기 시작한 삼 남매에게 좋은 경험이 되겠고, 출산이 임박한 초롱이도 신선한 풀을 뜯을 마지막 기회일 것 같았다.
“알았어, 큰뿔아.”
-부우우.
“나 심심한데 이야기 좀 더할까?”
-…….
큰뿔이는 나의 제안에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볼일은 다 끝났다는 듯 쿨하게 되돌아갔다.
거참 매정한 녀석일세.
나는 큰뿔이의 뒷모습을 보며 실실 웃었다.
울타리 쪽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처음 마계 농장에 왔을 때는 쌀쌀함이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어느덧 여름 초입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야쿰을 따라나섰다가 은율이를 처음 만났었는데, 작은뿔이 바위틈에서 은율이를 발견했었던가?
지난날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은율이가 오고, 요정과 꿀벌들도 만나고, 딸기밭도 만들고, 안드라스와 엘프리드가 새로운 농장의 식구가 됐다.
마치 어제 있었던 것처럼 추억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렇게 감성에 젖어 있던 도중,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농장 식구들끼리 회식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네.
농장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하기는 하지만, 그걸 일반적인 의미에서 회식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최근에 가디언즈 길드를 가입한 뒤. 3팀 친구들과 남진혁이 약속했던 회식을 했었다.
이미 개미굴에서 끈끈한 전우애를 다졌던 사이였지만, 모임이 끝난 뒤에 조금 더 사이가 돈독해진 것 같았다.
그 회식에서 굉장히 즐거웠던 기분이 남아 있어서, 농장 식구들과도 그런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식당에서 음식을 해 먹는 거로는 분위기가 안 살 것 같은데…… 그럼 나가서…… 야유회! 야유회가 좋겠다!
생각난 김에 내일 바로 야쿰들을 따라서 가볼까? 마차에 필요한 걸 실어서 따라가면 되겠지?
나는 머릿속으로 농장 야유회 계획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 * *
“야유회?”
“네! 지금껏 농장 식구들끼리 뭔가 단합할 만한 행사가 없었잖아요. 최근에 날씨도 딱 좋은 것 같은데, 모두 어떻게 생각하세요?”
농장 식구들은 야유회라는 개념이 생소했는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은율이도 처음 듣는 단어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아빠. 야유회가 뭐야?”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재밌게 놀면서 하루를 보내는 거야.”
원래는 구성원들끼리 단합과 친목 도모가 목적이지만, 은율이에게는 최대한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했다.
그런데 은율이의 표정이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왜 은율아?”
“그럼 나는 아빠랑 같이 일 안 하니까 야유회 못 가는 거야?”
생각지도 못한 이유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재치 있는 대답을 생각해냈다.
“아니지. 은율이는 텃밭 일을 도와주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다행히 설득력이 있었는지 은율이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나도 야유회 갈래!”
은율이는 신나서 소리쳤다.
나는 그런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사람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는 찬성이에요. 최근에 농장에만 있어서 조금 답답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장 먼저 리아네가 야유회 참가 의사를 드러냈다.
입맛을 다시는 것을 보니 벌써 맛있는 음식을 기대하는 듯했다.
“저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
안드라스 역시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엘프리드는 조용히 침묵을 유지했지만,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은 아니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를 것처럼 보였다.
세 사람은 모두 야유회에 참여할 것 같았다.
그러면 남은 한 사람은…….
“귀찮게 나가긴 왜 나가. 여기서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 해먹을 수 있잖아. 나가면 번거롭기만 하고 고생이야 고생!”
리아네가 살짝 실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카네프 님은 안 가실 거예요?”
“가려면 너희들끼리 가. 나는 편하게 여기서 쉴 테니까.”
역시나 카네프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대놓고 참가를 거절했다.
야유회로 들떴던 이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눈치 없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그의 행동이 너무나도 얄밉게 보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얄미워도 우리 농장의 식구인 것을…….
구성원끼리의 단합과 친목이 중요한 야유회에서 소외되는 사람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사장님의 제멋대로인 성격을 당해볼 대로 당해본 사람이었다.
이 정도의 난관은 충분히 예상했다.
이 비장의 카드는 최대한 아껴놓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흐음? 사장님은 안 가시게요?”
“귀찮아. 나중에 내가 먹을 음식이나 가져와. 너희끼리 다 먹지 말고.”
“아∼! 아쉽네요. 이번에는 농장의 첫 모임이라 이것저것 많이 준비하려고 했는데…… 물론 술도 포함해서 말이죠.”
나는 은근슬쩍 아주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흘렸다.
“……?!”
귀찮음이 가득했던 카네프의 표정에 살짝 흔들림이 생겨났다.
나는 슬쩍슬쩍 그의 표정을 살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맛있는 음식은 바로바로 먹어줘야 제맛인데. 거기다 술까지 곁들이면…….”
“…….”
“어쩔 수 없죠. 사장님은 두고 저희끼리만 가는 거로…….”
“자, 잠깐만! 정말 술을 가져오는 거야?”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는 카네프.
예전부터 카네프는 내가 사는 세계의 술을 궁금해했었다.
나에게 요청을 한 적도 있는데 그때마다 칼같이 거절했다.
내가 일터에 술을 가져가는 걸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을뿐더러, 귀찮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친목을 다지는 데는 적당한 술이 필수죠. 이번에 영혼석도 많이 생겼으니 최대한 거창하게 준비해 보려고요.”
뜻하지 않게 개미굴 여왕을 잡게 돼서 영혼석을 넉넉하게 챙겼다.
한동안은 영혼석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카네프는 얼굴을 찡그릴 정도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다.
“나도 간다. 야유회!”
“예? 억지로 안 오셔도 되는데. 불편하시면 집에서 편하게 쉬셔도 돼요.”
“시끄러! 나도 무조건 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카네프는 살짝 심통이 난 듯 대답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만면에 떠올렸다.
내가 고집불통의 난적을 쉽게 해결하자, 농장의 식구들은 놀라움과 감탄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 * *
야유회 개최가 확정되자마자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발레리안에게도 야유회의 참석을 권했는데…….
“야유회요? 카네프 님도 참석하시는 건가요?”
“네, 농장 식구가 모두 참석하기로 했어요.”
“하하, 시현 씨의 카네프 님을 다루는 솜씨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시네요.”
그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리안 씨도 괜찮으시면 참석하세요.”
“아! 저도 굉장히 참석하고 싶은데, 요즘에 일이 많이 바빠져서…… 죄송합니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아쉽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을 겁니다. 대신에 이거 가져가세요.”
발레리안은 품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 하나를 건넸다.
“이건?”
“사무실 법인 카드입니다. 야유회에 필요한 물건 사는 데 쓰세요.”
“앗! 안 주셔도 괜찮은데…….”
“시현 씨 혼자 준비하시느라 힘드실 텐데 이 정도는 지원해 드려야죠. 부담 없이 사용해 주세요.”
나는 발레리안의 배려에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잘생긴 미소가 더욱 빛나 보였다.
발레리안이 건넨 법인 카드 덕분에 부담 없이 야유회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준비물은 역시 맛있는 음식!
당장 마트로 가서 야유회에 먹을 음식 재료부터 살펴봤다.
무난하게 고기 종류를 준비하는 게 좋겠지?
흐음, 야외에서 먹는 건데 한번 바비큐로 준비해 볼까?
경치 좋은 야외에서 숯불을 피워놓고, 갖가지 재료를 구워 먹는 상상을 하니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좋았어!
이번 야유회 때는 바비큐를 해 먹는 거야.
결정을 내리자마자 빠르게 음식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바비큐용으로 적당한 두툼한 돼지 목살, 미리 손질된 구이용 모둠꼬치, 살이 통통한 새우, 각가지 버섯과 채소 등등.
맛있어 보이는 걸 하나씩 고르다 보니 어느새 카트에 수북하게 음식 재료가 쌓였다.
신나서 음식 재료를 고르다가 불현듯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준비하는 것도 함께했다면 더 재미있었을 텐데…….
언젠가 모든 농장 식구들과 함께 마음껏 쇼핑하러 오는 날이 있으려나?
머릿속으로 쇼핑하는 농장 식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상상만으로도 엄청나게 마음이 설렜다.
잠시 멍하게 서 있던 나는 작게 고개를 흔들며 현실로 되돌아왔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야유회의 필요한 물건을 찾아 마트를 돌아다녔다.
* * *
야유회 날 아침이 밝았다.
혹시 날씨가 안 좋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포근하고 시원한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아주 좋은 날씨였다.
아침 일찍 출근해 보니 농장 식구들은 벌써 일어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리아네는 미리 음식 재료들을 정리했고, 엘프리드는 오늘 마차를 이끌 말들에게 먹이를 줬다.
안드라스는 부탁했던 물품들을 꺼내 하나씩 확인하고 간단히 먼지를 털어냈다.
크게 내색은 안 했지만 모두 야유회를 기대하고 있었는지 얼굴에 설렘이 가득했다.
평소 같았으면 은율이도 침대에서 꾸물거리고 있었을 텐데, 오늘은 자리에서 일어나 금방 씻고 옷을 척척 갈아입었다.
오히려 먼저 준비를 끝내고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작은 여우 소녀의 앙큼한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음식 재료와 음료수들은 아이스박스에 꼼꼼히 담았다.
또 필요한 물건들을 마차에 실으니 짐칸이 그득해졌다.
우리가 바쁘게 야유회를 준비하는 동안, 야쿰 무리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오랜만에 멀리 떠날 준비를 했다.
느지막하게 카네프가 모습을 드러낼 때쯤, 마차에 모든 짐을 싣고 준비를 끝마쳤다.
큰뿔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부우우우!!!
그 울음소리에 맞춰 야쿰 무리와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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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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