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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6)화 (86/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6화

마계농장 야유회(3)

카네프와 안드라스는 음식을 요리할 준비를 척척 해나갔다.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미리 만들어 놓은 장작불에서 잘 만들어진 숯을 꺼내고, 그 숯으로 요리를 위한 숯불을 만들었다.

안드라스가 숯불을 정리하는 동안 카네프는 가져온 요리재료들을 살펴봤다.

“안드라스, 불 준비 다 끝났냐?”

“네, 카네프 님.”

“그럼 바로 시작해 볼까.”

카네프는 가장 먼저 두툼한 돼지 목살을 거침없이 숯불 위에 올렸다.

-치이이익!

고기가 익는 소리와 함께 군침이 도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버섯과 채소도 함께 숯불 위에 올라갔다.

처음에는 혹시 고기를 태우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안드라스의 말대로 카네프는 너무나도 능숙하게 고기와 재료들을 요리했다.

불 조절도 자유자재로 이루어졌고, 향신료를 뿌리는 손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나머지 농장 식구들이 테이블 앞에 앉자마자, 카네프는 잘 구워진 고기와 채소들을 큰 접시에 담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휘익!

-샤아아악!

그가 살짝 손을 휘젓자 두툼한 돼지 목살이 알맞게 썰려졌다.

속살 사이사이로 기름진 육즙이 촉촉하게 흘러나왔다.

“나는 계속 구워올 테니까, 먼저 먹고 있어.”

카네프는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보인 뒤,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지고 다시 숯불 앞으로 되돌아갔다.

상상 이상의 요리 실력도 굉장히 놀라웠는데, 거기다 우리를 배려하는 모습이라니!

평소 같지 않은 카네프의 모습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모두의 시선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는 돼지 목살 쪽으로 향했다.

“일단 먹어볼까요?”

-끄덕끄덕.

내 말을 시작으로 모두가 두툼한 고기를 한 덩이씩 자신의 접시 위로 옮겨갔다.

먼저 은율이가 먹기 편하게 고기를 썰어주고, 뒤늦게 나도 고기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갔다.

입에 넣자마자 깊고 진한 숯불 향이 느껴졌다.

그리고 부드러운 식감의 고기를 씹을 때마다 고소한 육즙이 뿜어져 나왔다.

완벽한 겉바속촉!

거기다 숯불 향 속에 이름 모를 허브 향기에 고기의 잡냄새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고기에서 나는 이 은은한 향기는 뭐죠?”

“‘라일라’라고 부르는 흔한 식용 풀인데. 쌉싸름한 맛과 함께 잡내를 잡아줘서 고기에 자주 뿌려 먹습니다.”

“와…… 진짜 맛있네요.”

내가 감탄을 터뜨리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은율이도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계속 고기를 받아먹었다.

카네프는 계속 숯불 앞을 떠나지 않고.

모둠꼬치, 새우, 갖가지 버섯까지 순식간에 구워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렇게 빠르고 알맞게 재료를 구워낼 수 있는지, 개인적으로 그 비법이 궁금할 정도로 완벽한 실력이었다.

모두가 먹을 음식을 충분히 만든 뒤, 카네프는 숯불에서 테이블로 합류했다.

“사장님, 요리 실력이 대단하시네요!”

“요리 실력이라고 할 것도 없어. 불을 이용해 대충 굽거나, 간단한 몇 가지 요리 정도만 할 줄 아는 거야.”

“그래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던데요?”

“단장으로 이곳저곳 떠돌던 시절에 요리를 많이 했었지.”

그의 이야기에 신기한 표정으로 물었다.

“단장이면 지위가 제일 높으셨던 거 아니에요? 그런데 요리를 하셨어요?”

대답은 안드라스 쪽에서 나왔다.

“처음부터 단장이셨던 건 아니었으니까요. 막내 생활도 꽤 오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와…… 사장님의 막내 생활이라니.

도저히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저도 이야기 들었어요. 처음에는 요리를 워낙 못해서 부단장 언니한테도 혼났다고…… 앗!”

리아네는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말을 급하게 멈췄다.

하지만 주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말을 꺼낸 리아네 뿐만 아니라 안드라스도 카네프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부단장 언니? 저번에도 이런 일이 있지 않았었나?

도대체 그 부단장이라는 사람이 누구길래…….

영문을 모르는 나와 엘프리드도 덩달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은율이만 주변 분위기에 상관없이 음식을 집중해 먹고 있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카네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 그때는 그 녀석한테 많이 혼났었지.”

다행히 무거운 분위기는 풀렸지만, 알 수 없는 씁쓸한 여운이 남아 주변을 맴돌았다.

내가 예상했던 야유회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기에.

분위기를 전환할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테이블 뒤쪽에 있던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개방했다.

안에 있던 내용물을 가득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탁!

“사장님도 오셨고, 맛있는 음식도 준비됐으니. 슬슬 술 한잔하실래요?”

굳어 있던 사람들 표정에서 약간의 흥미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 * *

적당한 술은 인간관계에서 윤활제 역할을 해준다.

서로 어색한 분위기도 누그러뜨려 주고, 평소에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도 더 쉽게 꺼낼 수 있게 된다.

아무래도 마계에서도 그런 역할은 비슷한 것 같았다.

-치이이익!

카네프는 시원한 캔맥주를 따자마자 호쾌하게 한 모금 들이켰다.

“캬아! 이 맥주 정말 괜찮은데? 거기다 이렇게 마시기 편하게 만들어졌다니!”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음식을 안주 삼아 캔맥주를 즐기는 모습은 더없이 즐거워 보였다.

확실히 술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쪽 세계의 맥주는 다 이런 맛인 건가?”

“그건 아니에요. 이것 말고도 종류가 엄청 많거든요. 나라마다 다르고, 또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맥주도 있어요.”

“흐음…… 그것참 흥미로운 이야기네.”

더 많은 맥주가 있다고 설명하자 카네프는 무서울 정도로 눈을 빛냈다.

술 덕분인지 아까의 우중충한 분위기도 사라지고. 평소보다 둥글둥글하고 편한 느낌을 줬다.

혹시 귀찮은 주사가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런 쪽으로는 굉장히 깔끔해 보였다.

오히려 귀찮아진 건 안드라스 쪽이었다.

“맥주를 담은 용기를 보니 섬세한 기술력이 느껴집니다. 편하게 용기를 개방할 수 있는 방식부터, 맥주의 풍미를 보존하는 견고함까지! 한눈에 봐도 배울 점이 정말 많은 물건이네요.”

“…….”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가 가문에서 아티팩트 기술을 배우던 때가 떠오릅니다. 아버님의 밑에서 꽤 혹독하게 가르침을 받았었죠. 동생과 다르게 배움이 느렸던 터라…….”

술에 조금 취한 안드라스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저 정도면 숨이 차지 않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다.

평소 같았으면 카네프가 먼저 나섰을 텐데.

맥주 맛에 취해 너그러워진 것인지, 아니면 신경을 안 쓰는 건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덕분에 나는 설명충으로 변한 안드라스를 상대하느라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래도 두 사람은 술을 마신 경험이 많은지, 나름대로 잘 조절해가며 마셨다.

반면에 딱 봐도 불안해 보이는 마족이 있었으니…….

“야, 너 괜찮냐?”

“에?”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괜찮냐고?”

“네. 괜찮아요.”

엘프리드는 약간 혀가 꼬여서 대답했다.

혼자서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더니, 잠시 안 본 사이에 조금 취해 있었다.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마셔. 무리해서 마시지 말고.”

“네에! 고맙습니다, 선배.”

엘프리드는 술에 취하니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됐다.

평소에는 도도한 귀공자 느낌이라면, 지금은 애교 많은 남동생이 된 것 같았다.

나름대로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다 큰 남정네의 애교를 보는 취미는 없었으므로, 엘프리드가 무리하지 않도록 술 대신 물을 컵에 따라줬다.

-슬금슬금.

내가 엘프리드를 챙기는 사이. 옆에 있던 은율이가 내 맥주캔으로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목소리를 높여 행동을 제지했다.

“앗! 은율이는 마시면 안 돼!”

“나도 아빠랑 같은 거 마실래.”

“안 돼. 술을 마시기에는 은율이는 너무 어려.”

“히잉…….”

맥주를 못 먹게 하자 심통이 난 표정으로 살짝 투정을 부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렸을 적에 아버지의 술을 몰래 마시다 혼났을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내가 아버지의 입장이 됐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기분이 묘했다.

“자∼ 은율이는 더 맛있는 과일 주스 먹자.”

맥주 대신에 이쁜 캐릭터가 그려진 과일 주스를 은율이에게 쥐여줬다.

과일 주스가 맛있었는지 더는 맥주를 마시겠다고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은율이처럼 맥주 대신에 과일 주스를 마시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리아네 씨는 맥주 안 드세요?”

“네? 아…… 저는 괜찮아요.”

“……?”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맥주에서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눈빛에서는 마시고 싶다는 욕망이 줄줄 새어 나왔다.

평소에 식탐이 많기로 유명한 리아네 씨.

이 정도로 참는 걸 보면 뭔가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말 못 할 사정이 있겠거니 생각하며 더는 술을 권하지 않았다.

아까의 무거웠던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미리 생각해 뒀던 화제를 슬쩍 꺼냈다.

“여러분! 제안이 하나 있는데 들어보실래요?”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모여들었다.

“이렇게 모두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자리는 처음이잖아요. 모인 김에 평소 불만이었던 점이나, 농장 생활에서 개선했으면 하는 점을 말해보는 게 어떨까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실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

야유회를 가겠다고 계획을 세우면서 미리 생각해 뒀던 일이었다.

농장을 책임지는 사람은 카네프였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나였다.

거기다 지금까지 농장의 모든 일은 내 위주로 흘러갔다.

식구가 많아진 만큼,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다.

조금은 진지한 내 제안에 모두의 표정이 제각각으로 변해갔다.

“아빠, 개선이 무슨 뜻이야?”

“응, 그건 뭔가 부족해 보이는 일이나, 잘못된 점을 고쳐서 좋게 만드는 거야. 은율이는 뭐가 변했으면 좋겠어?”

“으으음…….”

은율이는 어린아이답지 않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진지한 모습에 은근히 긴장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후, 은율이는 눈을 반짝이며 입을 열었다.

“나는…….”

“……?”

“아빠가 은율이랑 더 많이 놀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긴장할 정도로 심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어린아이다운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니…… 은율이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일일지도?

부드럽게 웃으며 은율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아. 의견 접수! 개선해 보도록 노력할게.”

“와아!”

은율이는 꼬리를 세게 흔들 정도로 좋아하더니 내 품 안에 쏙 안겨들었다.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최근에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느라 은율이를 챙기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분간은 은율이에게 더 신경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어.

예상외로 은율이가 첫 번째 의견을 제시하게 됐다.

그다음으로 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저요! 저도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반쯤 술에 취한 엘프리드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는 아까 은율이가 그랬던 것처럼 두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으…… 응. 이야기해 봐.”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긴 했지만, 지금 엘프리드의 모습은 약간 불안하게 느껴졌다.

뭐랄까?

첫 회식 자리, 그곳에서 반쯤 취해 손을 든 신입을 바라보는 사수의 심정이랄까?

그렇다고 입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

침착하게 엘프리드의 발언을 기다렸다.

그는 테이블의 모든 사람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 있는 모두에게 불만이 있어요.”

모두에게 불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으음…… 짚이는 기억이 없는데?

급하게 과거의 일을 떠올려봐도 딱히 엘프리드에게 잘못한 기억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눈치였다.

엘프리드는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며, 정말 억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불만을 털어놨다.

“왜…… 왜 저만 따돌리시는 거예요?”

“……?!”

“……?!”

……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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