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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8)화 (88/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8화

마계농장 야유회(5)

갑자기 등장한 누님 모습의 리아네는 주변을 쓱 둘러봤다.

그녀는 계속해서 거친 기운을 뿜어냈다.

“적당히 배도 채웠고, 맛있는 술도 마셨으니. 몸이 근질근질해져서 말이야. 안 그래? 검은수리 단장님?”

검은수리? 단장님?

리아네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그 끝에는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카네프가 있었다.

“단장 그만둔 지가 언젠데 아직도 단장 타령이야.”

“나로서는 아직 검은수리 단장으로밖에 안 보이거든. 이런 평화로운 농장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니까.”

“아무튼, 단장은 그만뒀어.”

카네프는 그녀의 변화가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옆에 있던 안드라스도 마찬가지였다.

리아네는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봐!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야.”

“……?”

“이렇게 구성원들이 모였으면, 당연히 서열을 정하는 게 먼저 아니겠어?”

“서열?”

“그래 서열! 누가 더 강한 존재인지 제대로 가려야지!”

야유회에서 갑자기 서열을?

“저기…… 여기는 평범한 농장입니다만? 서열을 굳이 가릴 필요가…….”

-쾅!

리아네는 테이블을 강하게 내려치며 내 말을 끊었다.

그녀의 거친 행동에 은율이가 깜짝 놀라서 내 품 안에 안겨들었다.

“물러터졌어!”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세상의 어느 곳이든 힘 있는 자가 통제하는 거야. 이 농장도 예외일 수 없어.”

막무가내인 그녀의 행동에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자연스럽게 카네프 쪽을 바라보며 도움의 시선을 보냈다.

어떻게 좀 해봐요, 사장님!

내 시선을 마주한 카네프가 맥주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잘됐네. 사실 나도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거든.”

“예에?!”

“크큭, 이제야 말이 좀 통하네. 역시 단장이야.”

리아네는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테이블을 벗어나 초원이 넓게 펼쳐진 곳으로 향했다.

갑자기 급전개되는 상황에 당황하며 물었다.

“사, 사장님? 정말로 그 서열 정하기를 하시게요? 아니, 그보다 갑자기 리아네 씨는 왜 저렇게 변하신 건데요?”

“아아, 몰라! 설명해 주기 귀찮아. 그냥 고약한 술버릇이 있다고 생각해.”

아니…… 세상에 술버릇으로 서열 정하기를 하는 사람이 어딨냐고!!

“뭐해? 빨리 안 나와?”

리아네가 살짝 짜증이 난 듯 우리를 향해 소리쳤다.

벌써 그녀의 주변으로 무시무시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누가 봐도 진심으로 싸우려는 모습이었다.

“뭐해? 안드라스, 부르잖아?”

“……네?”

“서열 정하기를 하려면 상대가 있어야 할 거 아냐? 빨리 나가서 상대해.”

안드라스는 진심으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조금 전에 몸이 근질거린다고 하신 거 아니었습니까?”

“몸이 근질거린다고 했지 내가 싸운다고는 안 했는데?”

“…….”

“그리고 이 귀찮은 일을 내가 하리? 누가 해야겠어?”

안드라스가 테이블을 둘러봤다.

취기에 못 이겨 고개를 꾸벅꾸벅하는 엘프리드 그리고 은율이를 껴안고 있는 나밖에 없었다.

“뭘 둘러보긴 둘러봐! 나다 싶으면 빨리 일어나야 할 거 아냐! 얼른 안 나가!”

거의 뭐 반쯤은 협박이나 다름없는 말로 카네프는 안드라스를 억지로 일으켰다.

그는 체념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리아네 쪽으로 향했다.

뒷모습이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사장님, 정말로 싸우게 하실 거예요? 그러다 다치거나 하면 어떻게 해요?”

“괜찮아. 예전에는 싸우는 게 일상이었어. 둘 다 적당히 알아서 할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야유회가 우리끼리 단결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거라며?”

“그렇죠.”

“원래 치고받고 싸우고 나면 사이가 엄청 돈독해진다고. 취지에 딱 맞는 일 아냐?”

“정말 그럴듯한 궤변이네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카네프는 새로운 캔맥주를 따면서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싸움 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법! 재미있는 구경거리에 맛있는 맥주라니…… 야유회에 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흔히 말하는 ‘팝콘각’에 오히려 즐거워하는 카네프.

“에휴…….”

다시 한번 눈앞의 마족이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지러운 상황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나마 정상인 안드라스를 위해 기도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제발 평범한 야유회로 끝날 수 있기를…….

* * *

안드라스와 리아네가 넓은 초원 위에 마주 섰다.

“뭐야? 단장이 아니라 뺀질이 네가 나온 거야?”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제 이름은 뺀질이가 아니라 안드라스입니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다 쓰러뜨릴 생각이었으니까.”

“제멋대로인 점은 여전하군요.”

“언제까지 입만 나불댈 거야? 설마 무서워서 시간 끄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안드라스가 양팔을 벌리자 소매에서 작은 아티팩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티팩트들은 주인을 보호하듯 안드라스의 주변을 떠돌았다.

“또 귀찮은 날파리들이야?”

“날파리가 아니라 ‘샤히트’라는 멋진 이름이…….”

-콰앙!!

무시무시하게 변한 라이네의 오른손 안드라스를 덮쳤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공격은 아티팩트가 발동한 방어막에 가로막혔다.

“……있습니다만?”

“킥킥, 날파리인지 아닌지 힘으로 증명해 봐.”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안드라스의 아티팩트들이 반격을 위해 빠르게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리아네는 아티팩트에 포위되는 것을 피하고자 몸을 뒤로 움직였다.

-우우우웅!

아티팩트들은 묵직한 진동음과 함께 강력한 마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만큼 강력한 위력을 담고 있었다.

-콰콰콰쾅!!

조금 전까지 리아네가 서 있던 곳은 순식간에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녀는 아티팩트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면서, 본격적으로 반격에 나섰다.

-끼기기긱!

금속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리아네의 오른손에 붉은 기운이 맺혔다.

손을 휘두르자 붉은 기운은 곧장 가까이 있던 아티팩트를 덮쳤다.

안드라스는 급하게 방어막을 펼쳤다. 하지만 붉은 기운은 마치 맥주캔을 찌그러뜨리듯, 방어막과 함께 아티팩트를 뭉개버렸다.

-퍼어엉!

그대로 아티팩트는 폭발하며 사방에 잔해를 흩뿌렸다.

아티팩트의 출력만으로는 방어가 힘들다는 걸 깨닫고, 안드라스는 철저히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공세를 이어나갔다.

거리의 이점을 이용한 빈틈없는 공격에 리아네는 다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리아네는 빈정거리는 말투로 안드라스의 싸움 방식을 비난했다.

“너무 겁먹은 거 아냐? 그렇게 도망만 다녀서야 싸울 맛이 나겠어?”

“유치한 도발에는 안 넘어갑니다. 그리고 도망이 아니라 전략적인 움직임입니다.”

“쳇…….”

안드라스는 침착하게 리아네의 도발을 받아쳤다.

그리고 그는 철저한 아웃 파이터 전략으로 계속 그녀의 체력을 깎아나갔다.

그때, 계속 아티팩트를 노리던 리아네가 갑자기 방향을 돌려 안드라스 쪽으로 달려들었다.

아티팩트와 서로 거리가 멀어진 상황을 노린 기습이었다.

그녀는 붉은 잔상을 남기며 순식간에 안드라스 코앞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올 거라 예상했습니다!”

-두두두둑!

-우우웅!

안드라스 주변 땅바닥에 숨어 있던 아티팩트들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리아네를 포위하고 방어막을 전개했다.

마치 덫에 걸린 것처럼, 그녀는 아티팩트들이 전개한 방어막 안에 갇히게 됐다.

“이제 끝입니다, 리아네 양.”

“정말 끝이라고 생각해?”

“설계는 완벽했습니다.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 두시…… 헉?!”

리아네는 오른쪽 손안에 잡혀 있는 아티팩트 하나를 보여줬다.

그걸 보자마자 안드라스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어, 어떻게 그걸?”

“날파리들이 조금 더 귀찮아지긴 했지만, 방식은 예전이랑 똑같잖아.”

“리아네 양, 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그 아티팩트를 내려놓…….”

-콰직!

-파지지직!

리아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손안의 아티팩트를 박살 내버렸다.

“끄아아악! 안돼!!”

그의 비명과 동시에 방어막을 전개하던 아티팩트들이 작동을 멈췄다.

* * *

“끝났군.”

“예?”

“가장 중요한 아티팩트가 부서져 버렸으니, 안드라스는 더 전투하기 힘들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안드라스 씨가 리아네 씨를 제압한 게 아니었나요?”

카네프는 빈 맥주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 안드라스는 리아네의 기습을 예상하고 함정을 팠지만, 리아네는 오히려 그걸 역이용해서 상대의 약점을 공략한 거야.”

“……?”

“대충 봐서는 아티팩트 모두 각자 명령을 받아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명령을 받아 주변 아티팩트를 통제하는 지휘 아티팩트가 따로 있어.”

“어…… 그런가요? 그냥 다 똑같아 보이던데?”

“당연하지. 자신의 약점을 대놓고 드러내는 바보가 어딨겠어.”

“그런데 리아네 씨가 함정을 역이용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나는 아직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카네프는 약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너에게 가장 중요하고 지켜야 할 물건이 있다면, 그걸 어디에다 두겠어?”

“음. 튼튼한 금고에 두거나, 아니면 직접 몸에 가지고…… 아!”

이제야 조금씩 전투의 공방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리아네 씨가 함정으로 뛰어든 건, 안드라스 씨 근처에 중요한 아티팩트가 있을 거라 예상한 거군요?”

“맞아. 공세에 몰려 기습하는 것처럼 보인 것도 안드라스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계획이었겠지.”

“그런데 안드라스 씨 주변에 아티팩트가 엄청 많았잖아요. 그중에 약점인 아티팩트는 어떻게 찾아낸 거예요?”

“많은 경험을 쌓거나, 재능이 뛰어난 싸움꾼들은 보이거든…….”

“……?”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약점이…… 마치 사냥감의 목덜미를 한꺼번에 낚아채는 포식자처럼 말이야.”

카네프의 마지막 말에 살짝 전율이 일었다.

직감만으로 상대의 약점을 확신하고, 불리한 상황 속에서 함정에 뛰어들 수 있다니…….

붉은 기운에 물든 그녀의 발톱에서 내 목덜미를 노릴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졌다.

“애초에 안드라스가 불리한 싸움이었어. 파괴와 질서는 상성이 엄청나게 안 좋은 편이니까. 그래도 꽤 선방한 편이지.”

“이런 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밌네요.”

“큭큭. 그렇지? 이만한 구경거리가 없다니까!”

CG가 빵빵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처럼, 두 사람의 격돌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거기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생생한 싸움의 긴장감까지!

테이블에 엎드려 자고 있는 엘프리드를 깨우고 싶을 정도였다.

무섭게 생각할 줄 알았던 은율이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싸움을 끝까지 지켜봤다.

이래서 고대 로마 사람들은 그렇게 커다란 콜로세움을 지었나 보다.

안드라스가 아티팩트의 잔해를 양손에 들고 돌아왔다.

축 처진 어깨와 슬픔 가득한 눈동자.

더욱 안쓰러워진 모습에 살짝 죄책감이 느껴졌다.

“고생하셨어요. 안드라스 씨.”

“정말 멋있었어.”

나와 은율이의 위로에도 안드라스는 힘없이 웃어 보일 뿐이었다.

“이제 너도 부단장쯤 됐으니. 나는 편히 쉬고 있으면 될 줄 알았는데…… 쯧쯧!”

“면목 없습니다, 카네프 님.”

“강점으로 약점을 가리는 건, 상대적 약자에게만 통하는 방법이다. 변하지 않으면 계속 물어뜯길 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안드라스는 평소와는 다르게, 무겁고 진지한 태도로 충고를 받아들였다.

카네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안드라스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어깨를 살짝 두드려줬다.

그것만으로도 안드라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걸어나간 카네프는 리아네 앞에 섰다. 그녀의 입가에 기대감 가득한 미소가 걸렸다.

“드디어 나왔네.”

“이봐, 적당히 즐긴 것 같은데. 조용히 들어가는 게 어때?”

“가장 중요한 디저트를 남겨놓을 순 없지.”

“아까 맛있는 요리 많이 먹었잖아. 적당히 먹어야 몸에 좋은 거야.”

“몰랐어? 디저트 먹는 배는 따로 있는 거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두 사람.

하지만 그 주변으로는 무시무시한 기운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하아…… 배탈 나도 난 모른다?”

-촤르르르륵!

카네프의 왼손에 감긴 사슬들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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