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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9)화 (89/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89화

마계농장 야유회(6)

-타앗!

이번에도 리아네가 붉은 기운을 흩뿌리며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카네프도 재빠르게 방어 자세를 취했다.

-깡! 까앙!

사슬이 특유의 살아 있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며 그녀의 연속적인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카네프의 역습!

-촤르르륵!!

-촤르르륵!!

수많은 사슬이 라이네의 사방에서 덮쳐들었다.

그녀는 양손을 휘두르며 사슬을 막아냄과 동시에 살짝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강하게 땅을 박차며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초원에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충돌음!

이전 안드라스와 리아네의 대결은 상대방과 거리를 조절하며 수를 읽는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상대방과 최대한 밀접한 상태에서 쉴 새 없이 공방이 이어졌다.

그 움직임은 눈으로 좇기 어려울 만큼 빨랐다.

“정말 대단하네요. 특히 리아네 씨가 사장님을 저렇게까지 몰아붙일 줄이야…….”

“두 사람 모두 아직은 전력을 다하지는 않고 있을 겁니다. 아마 탐색전으로 서로를 가늠하고 있겠죠.”

“……탐색전이요?”

안드라스의 말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이 탐색전이라면, 본격적으로 싸울 때는 도대체…….

-팟!

카네프와 리아네는 격돌을 멈추고 잠시 물러섰다.

안드라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두 사람은 방금의 미친듯한 격돌이 거짓말인 것처럼 평온한 표정이었다.

“끝까지 무기는 꺼내지 않을 거야?”

리아네의 물음에 카네프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리아네의 기세가 점점 흉흉해졌다.

“그렇게 나온다는 거지? 그럼 억지로 꺼내게 만들 수밖에…….”

리아네의 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머리에 뿔은 점점 더 거대해지고, 무시무시한 발톱도 날카로움을 더해갔다.

그녀가 창피해하던 꼬리도 치마 밖으로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의 붉은 기운 속에서 익숙한 흔적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 기운은…… 어디선가 느껴본 적이 있어.

서예린의 소환수…… 독개미들…… 맞아! 붉은 사슬!

익숙함의 원인을 찾아냈지만,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도대체 왜 리아네 씨에게서 저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그녀가 갑자기 변한 이유가 이 기운과 연관이 있는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들.

혼자 끙끙 앓다가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은 안드라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안드라스 씨, 리아네 씨는 왜 저렇게 변했는지 혹시 아세요?”

“저도 모든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예전에 있었던 사건의 단편적인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리아네 씨의 몸을 감싸고 있는 이상한 기운은 또 뭐고요?”

“그게…… 으음…….”

안드라스는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을 망설였다.

내가 쉽게 물러서지 않자 그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리아네 양의 개인적인 사정이 얽혀 있어서, 제가 마음대로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 그녀에게 직접 들으시는 게 맞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렇게 불안해 보이는 모습도 가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녀의 또 다른 일면일 뿐이죠.”

“또 다른 일면…….”

아쉽게도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그의 말대로 개인 사정이 얽힌 민감한 이야기라면 억지로 알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를 휘감은 불길한 기운이 나의 마음을 계속 심란하게 만들었다.

* * *

리아네의 팔은 반쯤 붉은 비늘로 뒤덮였다.

뿔과 꼬리 모두 평소보다 커다랗게 변했고, 세로로 길쭉하게 찢어진 동공은 지독한 살기를 내뿜었다.

“크르르르…….”

입에서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그녀의 변화에도 카네프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그나마 변한 점이라면 눈동자에서 서늘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아앙!!”

리아네는 더욱더 길쭉하게 붉은 잔상을 남기며 카네프에게 달려들었다.

직선적인 움직임이었지만, 워낙 빠른 탓에 카네프의 반응이 느리게 보였다.

푸른색 기운을 머금은 사슬이 카네프의 손짓에 따라 방어에 나섰다.

-촤르르륵!

-콰아앙!!!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사슬은 완벽히 리아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힘없이 출렁거리며 조금씩 빈틈을 노출했다.

지금껏 사슬로만 대응했던 카네프가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르르륵!

푸른 사슬을 금속 건틀릿처럼 양손과 팔 휘감았다. 그리고 그것을 무기 삼아 공격과 방어를 해나갔다.

더욱 격렬해진 붉은색과 푸른색의 격돌!

이제는 눈으로 좇기도 힘들 정도로 움직임이 격렬해졌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흐릿한 잔상뿐이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다시 한번 쉴 새 없이 공방이 이어지고, 폭약이 터지는듯한 굉음이 계속됐다.

잠시 후, 푸른색 기운이 붉은색 기운을 조금씩 압도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아네는 카네프에게 공격을 허용하며 멀리 튕겨 나갔다.

-쿠당탕…….

땅바닥을 구른 리아네는 금방 자세를 잡고 카네프를 노려봤다.

살짝 숨이 차오른 그녀와는 달리 카네프는 아직도 평온한 상태였다.

“그으으…… 거슬리잖아!”

-찌이이익!

리아네는 걸리적거리는 치마와 상의 일부분이 날카로운 손으로 뜯어내 버렸다.

속살과 속옷 일부분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아아아악!!”

커다란 포효와 함께 포악한 기운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오싹!

순식간에 불길한 기운이 주변을 가득 채우더니 순간적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눈치챘다.

“후읍…… 큭…… 큭큭큭!”

리아네의 얼굴에 광기 어린 미소가 피어났다.

차분한 미소를 짓던 그녀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빠…….”

“…….”

“언니…… 괴로워하고 있어.”

은율이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나도 느껴져…….”

은율이의 말대로 리아네는 분명 괴로워하고 있었다.

초원을 뒤덮는 불길한 기운 속에 도움을 바라는 듯한 신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신호에 맞춰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파직! 파지직!

새빨간 기운이 그녀를 중심으로 스파크를 일으켰다.

그 모습을 본 카네프는 굉장히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그만하지? 선을 넘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 텐데?”

“킥킥킥!”

카네프의 말은 완전히 무시한 채, 이번에도 리아네는 먼저 공격을 시도했다.

-……팟!

-콰아아아앙!!!!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그들을 중심으로 퍼져나오는 충격파.

“조심하십시오.”

“이런!”

“꺄아악!”

나는 반사적으로 은율이를 껴안았고, 안드라스는 아티팩트를 사용해 방어막을 전개했다.

방어막 덕분에 테이블 주변은 충격파에 휩쓸리지 않았다.

-부우우우우!!

-부우우우우!!

멀리서 불안해하는 야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조금 전까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던 시간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이건 아니야.

더는 이 싸움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안드라스 씨! 싸움을 말려야 해요!”

“안 됩니다! 지금 끼어들면 오히려 모두가 위험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이러다 정말 큰일 나겠어요!”

“카네프 님을 믿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나는 불안이 가득한 표정으로 두 사람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 * *

-꽈아아앙!!

엄청난 충격에 카네프가 주춤 뒤로 물러났다.

조금 전까지 리아네를 압도하던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그르르륵!”

리아네의 움직임은 완전히 짐승의 모습이나 다름없었다.

오로지 상대를 파괴하려는 본능만 남아 있었다.

쉴 새 없는 공격에도 카네프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 싸늘해졌다.

-샤아아아!

카네프의 사슬이 푸른 입자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푸른 입자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찬란한 빛을 내뿜었다.

“그으윽……?!”

리아네는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느끼고 잠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넓게 퍼져나간 푸른 입자들을 벗어날 순 없었다.

-우우우웅!!

-파아아앗!!

입자 하나하나가 동시에 공명하더니, 반투명하고 거대한 사슬들을 사방에서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사슬들은 동시에 리아네를 향해 덮쳐들었다.

“그아아아악!!”

그녀는 다시 한번 우렁찬 포효를 내지르며 붉게 물든 양팔을 휘둘렀다.

강력한 일격에 반투명한 사슬들이 순식간에 터져나갔다.

하지만 박살 난 사슬은 잠시 푸른 입자로 되돌아갈 뿐, 금방 다시 사슬로 변해 그녀를 압박했다.

리아네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결국에는 집요한 사슬의 공격을 떨쳐내지 못했다.

-촤르르륵!

“으윽!”

그녀의 오른발목에 사슬이 뱀처럼 조여왔다.

오른발목을 시작으로 나머지 다리와 양팔도 사슬에 의해 속박당했다.

카네프가 살짝 손을 휘젓자 완전히 결박된 채로 그의 앞으로 끌려왔다.

“장난은 끝이야. 괜히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알아서 들어가.”

“크아아아앙!!”

카네프의 차분한 말에도 리아네는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뒤틀 뿐이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리던 카네프는 다시 한번 손을 살짝 흔들었다.

-차르르르…….

반투명한 사슬이 온몸을 조여오듯 강하게 압박했다.

“끄으윽…… 컥!”

엄청난 압력에 리아네는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눈동자에 약간의 이성을 되찾았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

“큭큭…… 역시 검은수리 단장님이야. 쿨럭…… 이렇게 허무하게 제압당할 줄은…….”

“시끄럽고. 일 귀찮게 만들지 말고, 당장 평소의 리아네로 돌아와.”

“돌아가기 싫다면……? 나도 죽일 거야? 오빠를 죽인 것처럼?”

비아냥거리는 물음 속에 슬픔과 원망, 그리고 분노가 조금씩 묻어 나왔다.

카네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선을 넘는다면 언제든지 죽일 거야. 지금 당장에라도.”

“…….”

“네가 원했던 대로 서열 정리도 해줬으니. 빨리 들어가, 마지막 경고야.”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큭!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나는 전혀 돌아갈 생각이 없는데?”

“그럼 어쩔 수 없지, 험한 방법을 쓸 수밖에…….”

다시 한번 반투명한 사슬들이 몸을 옥죄어왔다.

고통으로 기절시키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녀는 끔찍한 고통 속에 꾸역꾸역 말을 내뱉었다.

“크윽! 언제까지…… 억제할 수…… 있을 것 같아?”

“…….”

“너도…… 알잖아? 끄윽! 결국에는…… 막을 수 없다는 걸…….”

“…….”

카네프는 처음으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서 아주 희미하게 감정의 편린이 떠올랐다.

그 안에는 허무함이 담겨 있었다.

그때-

“아! 사장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누군가의 외침이 뒤편에서 들려왔다.

* * *

나는 카네프에게 소리치며 달려갔다.

“리아네 씨를 정말 죽이실 셈이에요?”

“저기서 싸움 구경이나 할 것이지, 뭐 하러 여기까지 왔어.”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지금 이 모습을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하아…….”

그는 굉장히 귀찮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뱉었다.

“원래의 리아네 모습으로 되돌리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어.”

“이렇게 고문하듯 괴롭히는 게 방법이라고요? 다른 방법이 분명 있을 거예요.”

“네가 뭘 안다고…….”

“사장님도 이게 올바른 방법이라고는 생각 안 하시잖아요?”

“…….”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팽팽한 눈싸움 끝에 카네프는 체념한 듯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네 마음대로 해라.”

“생각보다 쉽게 허락하시네요?”

“이럴 때마다 네놈이 포기를 안 하니까 그렇지! 이 고집불통아!”

그동안 쌓인 게 있었는지 감정을 담아 버럭 소리쳤다.

내가 그랬었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뻘쭘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할 생각인데.”

“잠깐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생각해 둔 게 있는 거겠지?”

“네!”

확실한 건 아니었다. 그저 고통스러워하는 리아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나를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가라. 오래 버티지는 못해.”

카네프가 비켜서며 길을 열어줬다.

작게 고개를 끄덕인 뒤, 사슬에 묶여 있는 리아네에게 다가섰다.

그녀 주변으로 진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강한 기운이었다.

“저기, 괜찮으세요?”

“뭐야…… 너였냐?”

다행히 그녀는 나를 알아봤다.

“괜찮으시다면 ‘누님’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요?”

“……뭐?”

“그냥 리아네 씨라고 부르면 헷갈리잖아요. 다른 호칭으로 불러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크큭, 이런 모습을 보고도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거야?”

“인정하고 말고 할 게 어딨겠어요. 어떤 모습을 하던 함께 야유회에 나온 식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

내 진지한 대답에 리아네는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는 이윽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비웃음이 아니라 정말 순수한 의미의 웃음이었다.

“풋! 정말 물러터진 녀석이네. 이런 녀석이 단장 밑에 있을 줄이야…….”

“뭐. 타고난 성격인 걸 어떻게 하겠어요, 누님.”

“그래, 물러터진 동생!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리아네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조용히 물러나 주실 수는 없나요?”

“동생의 부탁이라도 나는 순순히 들어갈 생각이 없어. 쫓겨나듯 사라지는 건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거든.”

“음…….”

“어떻게 할 거냐? 단장처럼 억지로 나를 기절시키기라도 할 거냐?”

“저는 그런 일 못 해요. 즐거운 야유회에서 그런 일을 하고 싶지도 않고요.”

나는 조금 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잠시만 실례할게요.”

리아네의 얼굴을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흠칫!

내 손이 다가오자 그녀는 살짝 몸을 떨었다.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진한 경계의 빛이 떠올랐다.

나는 억지로 손을 움직이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차분하게 시선을 교환하며, 나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리아네의 두 눈이 스르륵 감겼다.

무언의 허락이 떨어지자 다시 손을 움직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뺨에 내 손길이 닿았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따스함과 함께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교감 능력이 발동되며 내 의식이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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