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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0)화 (90/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0화

마계농장 야유회(7)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의식을 되찾았다.

지난번 서예린의 소환수, 뽀삐의 의식 속에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도 있었다.

뽀삐의 의식이 바다의 깊은 곳처럼 어둡고 고요한 느낌이었다면, 리아네의 의식 속은 금방 폭발할 것 같은 화산처럼 새빨갛고 불안정했다.

이미 한 번 경험해 봤던 일. 나는 당황하지 않고 의식 속에서 리아네의 영혼을 찾아 나섰다.

붉은 기운이 급류처럼 빠르게 휘몰아쳤다.

어지럽고 거친 흐름을 뚫고 의식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급류가 시작되는 중심부에서 가장 위험해 보이는 소용돌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리아네의 영혼…… 정확히는 리아네 누님의 영혼을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온 거지?

-설명해 드릴 시간 없어요, 누님. 다른 리아네 씨는 어디에 있는 거죠?

그녀의 시선이 소용돌이의 중심부로 향했다.

나는 금방 지금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저 소용돌이 안에 있군요?

-맞아.

-그리고 누님도 저 소용돌이를 멈추게 할 방법이 없는 거죠?

-…….

내 질문에 리아네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폭주한 것도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인 것 같았다.

-소용돌이만 멈추면 되는데…….

-불가능해. 혼돈의 힘은 계속 커질 거야. 단장의 힘으로 엄청난 고통을 가해 억압하는 수밖에 없어.

정말 그 방법밖에는 없단 말이야? 사장님의 사슬로 고문이나 다름없는 고통을 줘야 한다고?

……잠깐?

사슬? 혼돈?

머릿속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렇게 의식 속에 들어올 때마다 보았던 붉은 사슬.

지금 이곳에는 그 붉은 사슬이 없었다.

붉은 사슬은 항상 영혼의 힘을 억압하고 봉인하고 있었어, 그 힘이라면 저 붉은 소용돌이도 억압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과 동시에 내 안에서 어떤 힘이 느껴졌다.

정말 신기하게도 붉은 소용돌이와 비슷한 느낌의 힘이었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더 생각하기보다는 곧바로 부딪쳐보기로 했다.

-누님! 저 좀 도와주세요.

-뭘 어떻게 도와달란 거지?

-제가 저 붉은 소용돌이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세요.

내 부탁에 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되물었다.

-까딱 잘못해서 저 혼돈 속에 휘말리면 너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어. 무섭지 않은 거야?

-당연히 무섭죠! 하지만 도와주고 싶어요. 야유회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으니까요.

-뭘 믿고 내게 부탁하는 거야? 내가 널 배신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해?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안 해요. 절대 그럴 리 없어요!

-…….

-이렇게 달라 보여도. 평소의 리아네 씨, 누님 모두 똑같은 존재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믿을 수 있어요.

대답을 들은 그녀는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정말 대책 없는 녀석이네. 왜 단장이 널 아끼는지 알겠어.

카네프가 날 아낀다는 대목에서는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좋아, 따라와라. 최대한 소용돌이 가까이 데려다줄 테니까.

-정말 고마워요!

리아네는 나를 이끌고 소용돌이 중심부로 향했다.

-콰아아아악!!

태풍을 정면으로 맞서는 것처럼, 휘몰아치는 붉은 기운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나보다 앞선 리아네가 나를 보호하듯 양팔을 들었다.

그 덕분에 조금이나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중심부에 거의 다 도달했을 때 앞서던 리아네가 외쳤다.

-더는 다가가기 힘들어! 여기서 버티는 것도 잠시뿐이야!

-알았어요!

소용돌이에 영향이라도 받았는지, 내 안에 들끓고 있는 미지의 힘을 끌어냈다.

[‘혼돈의 사슬’을 사용합니다.]

-촤르르륵!

팔에서 붉은 사슬이 생겨났다.

이 상황을 신기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소용돌이의 중심부를 향해 붉은 사슬을 내보냈다.

그런데 소용돌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거센 기운을 내뿜으며 사슬의 접근을 거부했다.

생각보다 사슬의 조작이 어려웠다. 그 탓에 사슬을 쉽사리 중심부로 보내지 못했다.

-뭐해? 나도 점점 버티기 힘들어!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으윽!!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중에 불현듯이 카네프가 사슬을 다루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느낌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사슬에 정신을 집중했다.

-촤륵! 촤르르르륵!

붉은 사슬이 조금씩 내 의지를 따르기 시작했다.

소용돌이에 흐물거리던 사슬은 힘을 되찾고 중심부로 다가섰다.

-콰콰콰콰각!!!

소용돌이는 더욱 격렬히 기운을 내뿜었지만, 붉은 사슬은 멈추지 않고 중심부를 휘감기 시작했다.

한 바퀴…… 두 바퀴…….

중심부 주변으로 붉은 사슬이 얽혀들었다.

완전히 제압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소용돌이를 조금씩 억제해나갔다.

-끼기기기기긱!!!

금속이 찢어지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소용돌이의 위력이 점점 약해졌다. 그리고…….

-스스스슥…… 퍼엉!!

소용돌이의 중심부는 붉은 사슬과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여파로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불길한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성공한…… 거죠?

-그래, 네가 성공했어…… 생각보다…… 대단한데?

-별말씀을요. 다 누님이 막아준 덕분이죠.

그녀는 버티느라 힘을 다 소모했는지 힘들게 말을 이었다.

소용돌이가 완전히 사라진 곳에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또 다른 리아네의 영혼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영혼에 의식을 연결했다. 그리고 소환수를 소환할 때처럼 쭉 끌어당겼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리아네가 어디론가 휙 끌려가기 시작했다.

-누님!

나는 다급히 팔을 뻗어 손을 낚아챘다.

그녀는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네?

-또 다른 나를 데려오려고 한 거 아냐?

-…….

-우리는 둘이서 하나지만, 함께할 수는 없어.

금방 그녀의 말을 이해했다. 하지만 전해지는 씁쓸한 감정에 쉽게 손을 놓을 수 없었다.

내가 망설이자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날뛰었더니 힘들어. 이제 쉬러 가고 싶으니 빨리 놔줘.

-자, 잠깐만요!

-……?

-도와주셔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겠죠?

내 물음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다음에 만나면 너한테 서열을 정하자고 할 텐데, 괜찮겠어?

-물론이죠. 이래 봬도 꾸준히 검술 수련을 하고 있다고요.

-큭큭, 그거 기대되는데?

리아네를 잡은 손에서 점점 힘이 풀려갔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내 손을 휙 뿌리쳤다.

손을 놓치자마자 그녀는 빠르게 어둠의 저편으로 끌려갔다.

-누님!

-……!!

리아네는 어둠에 삼켜지기 직전 나를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그녀가 완전히 어둠에 모습을 감추고, 또 다른 리아네의 영혼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아득해졌다.

* * *

눈을 뜨자 초원의 한가운데로 돌아와 있었다.

눈앞에 아직 의식을 잃은 리아네의 모습이 보였다.

카네프와 싸우며 내뿜던 흉포한 기세는 사라지고, 평소의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촤르르르…….

리아네를 구속하고 있던 사슬들이 천천히 풀려나갔다.

땅바닥에 쓰러지지 않도록 그녀를 부축했다. 그리고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드러난 어깨를 가려주었다.

내 옆으로 카네프가 다가왔다.

그는 말없이 나와 리아네를 번갈아 쳐다봤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는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이야기해 줄까?”

“……됐어요. 나중에 리아네 씨에게 직접 들을래요. 그게 맞는 일이잖아요?”

“쩝…….”

“그보다 제가 안 말렸으면 정말로 계속 공격하려고 하신 거예요?”

카네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의 오빠랑 약속했으니까. 혼돈에 삼켜지는 걸 억지로라도 막아주겠다고. 비록 내가 원망을 받더라도 말이야…….”

“…….”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대답에서 쉽게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책임감과 비장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와줘서 고맙다.”

“고맙긴요. 더는 야유회가 엉망이 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내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말에 카네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직도 야유회 타령이냐?”

“아직도 라뇨?! 제가 모두를 생각해서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데.”

“알았다, 알았어. 내 생애 최고로 즐거운 야유회였어. 이제 됐냐?”

“알아주시니 뿌듯하네요.”

나와 카네프는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아빠∼! 아빠∼!”

“모두 괜찮으십니까?”

멀리서 달려오는 은율이와 안드라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방긋 웃으며 열심히 손을 흔들어줬다.

* * *

-부우우우우!

-부우우우!!

돌아갈 준비를 하는 야쿰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리아네가 천천히 눈을 떴다.

“리아네 씨, 일어났어요?”

“으음…… 웅?”

그녀는 귀엽게 웅얼거리며 눈을 깜빡거렸다.

반쯤 잠에 취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어머?! 시현 님?”

“뭘 그렇게 놀라요?”

“아니, 지금 이게 어떻게…… 제가 왜 시현 님의 다리를 베고?!”

“예전에 기억 안 나세요? 제가 잠들었을 때, 리아네 씨도 이렇게 해주셨잖아요.”

“그건 그런데…… 죄송합니다. 금방 일어날게요.”

리아네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몸을 일으키려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하지만 격렬했던 싸움 탓인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무리하지 마세요.”

계속 내가 만류했지만, 그녀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걸쳐주었던 겉옷이 스르륵 내려가고, 뽀얀 양쪽 어깨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리아네 씨, 옷 상태가 안 좋으니 겉옷을 다시 걸쳐주시겠어요?”

“죄, 죄송합니다. 옷은 또 왜 이렇게 된 거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세요?”

“네…… 갑자기 참지 못하고 맥주를 마셨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리아네 씨는 술 마시면 기억을 못 하시는 타입이신가 보네요.”

“으음…… 아! 중간에 시현 님이 저를 부른 것 같은 기억이 나요. 아니, 이건 꿈인가?”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작게 웃었다.

“꿈에서 저를 보셨나 보네요.”

“예, 그런 것 같아요…… 아? 아니, 꿈에서 봤다는 게 다른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 그런 느낌이…….”

리아네는 횡설수설하며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얼굴은 더욱 새빨개져서 목덜미까지 물들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천천히 일어나 보실래요?”

“네…….”

나는 먼저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살짝 비틀거리는 그녀를 부축해 마차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천막부터 작은 아이스박스까지, 대부분 정리가 끝나 마차 짐칸에 실려 있었다.

마지막 짐을 싣는 엘프리드를 보며 말을 걸었다.

“어이, 엘린!”

-움찔!

“벌써 다 정리했나 보네. 엘린, 술은 다 깬 거야?”

“네, 그런데 계속 엘린이라고 부르실 겁니까?”

“뭔 소리야? 네가 따돌리지 말라고 울면서…….”

“으아아아악!”

엘프리드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내 말을 막았다.

“사, 상황 설명은 안 해도 돼요.”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너는 술에 취해도 전부 기억하는 타입이구나?”

“으으…… 엘린은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가족들만 사용하는 애칭이란 말이에요. 지금은 가문에서도 거의 사용하는 사람이 없는데…….”

“잘됐네. 공자님이라고 불리는 것보다는 좋잖아?”

“그건 그런데. 너무 어렸을 때 쓰던 애칭이라. 좀 창피하다고 해야 하나, 낯간지럽다고 해야 하나.”

“쯧쯧, 그러게 적당히 마시지. 왜 무리해서 본인의 흑역사를 직접 만들어?”

“이거 무를 순 없겠죠?”

“다른 사람들한테 네가 직접 이야기해 보던가.”

때마침 다른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짐 벌써 다 실었네. 고생했어, 엘린!”

“엘린 군, 술은 좀 깨셨습니까?”

“아빠! 엘린 오빠랑 무슨 이야기 했어?”

“…….”

이미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엘린’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농장 식구들.

엘프리드는 좌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심심한 위로의 뜻을 담아 어깨를 두드려줬다.

움직이는 야쿰 무리를 따라 마차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른 초원이 노을빛을 받아 누렇게 물들어갔다.

은율이가 내 품에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잠이 올 때 하는 습관인 걸 알기에 품 안으로 바짝 끌어안았다.

“은율아, 오늘 야유회 재미있었어?”

“응, 재밌었어……. 내일 또 갔으면 좋겠어.”

“하핫, 내일은 힘들겠지만, 다음에 꼭 다시 가자.”

“으응…….”

은율이는 마지막 대답을 남기고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안드라스와 엘프리드에게 질문을 던졌다.

“두 사람은 오늘 어땠어요?”

“즐거웠습니다. 불의의 사고가 있긴 했지만,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참에 농장의 정기적인 행사로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도 재미있었어요. 음식도 맛있었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것도 좋았어요. 다음에는 절대 생각 없이 술 안마실 거예요.”

안드라스의 호평과 엘프리드의 사회 초년생 같은 풋풋한 다짐을 들으며 빙글 미소를 지었다.

그때 옆에 있던 리아네가 내 소매를 끌어당겼다. 그녀는 불만이 있는 듯 볼을 살짝 부풀리며 물었다.

“시현 님, 저한테는 안 물어보세요?”

“리아네 씨에게는 이미 들었거든요.”

“……?”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조용히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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