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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2)화 (92/426)

마계농장에서 힐링하는 법 92화

딸기밭의 불청객(2)

“저장고 확인을 끝냈습니다. 설치해 둔 경보 알람과 마법은 모두 문제없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안드라스 씨.”

큰 문제가 없다는 안드라스의 확인에도 약간 뒤숭숭한 분위기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특히 미루는 아직도 축 처져서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시현 님, 일단 저희는 밭일을 마저 끝내러 가보겠습니다.”

“저도 가볼게요.”

“미루도 갈 거야? 오랜만에 아저씨랑 놀까?”

“괜찮아요. 제가 안 가면 다른 아주머니들이 고생하시니까 빨리 돌아가야 해요.”

미루는 내 품을 빠져나가며 괜찮다는 듯 웃어 보였다.

억지로 밝은 척하는 모습이 느껴져 마음이 더 안쓰러웠다.

포코 영감과 미루가 다시 밭으로 돌아가 일을 시작했다.

레빌도 간단한 인사만 남기고 그들을 뒤따랐다.

문제를 일으킨 데릭은 아직도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며 희희낙락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찝찝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옆에서 안드라스가 말을 걸어왔다.

“시현 님, 저 수인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입니까?”

“네. 본인은 실수라고 변명했는데, 레빌 아저씨의 말로는 일부러 그랬을 거라고 하더군요. 평소에 행실이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으음…….”

뭔가를 고민하던 안드라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딸기밭과 수인들에 대해서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투와 표정만으로 진지하고 심각한 내용이라는 걸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 님께서 수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들이 열심히 일해준 덕분에 딸기밭은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고요.”

“…….”

“하지만 그만큼 시현 님이 수인들에게 많은 혜택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일당을 계산해 줬고, 심지어 귀한 딸기도 적지 않게 나눠주셨죠. 충분히 은인이라 불릴 만한 보답이었습니다.”

안드라스는 잠시 말을 끊고 데릭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 세계에서는 많은 수인이 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그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죠. 그래서 수인들은 같은 수인들을 감싸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범죄를 일으키는 수인들까지도요.”

그가 말하는 의도가 조금씩 전해졌다.

“안드라스 씨는 수인들이 데릭의 잘못을 감싼다는 말씀인가요?”

“제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레빌이라는 수인 말고는 딱히 잘못을 물으려는 수인이 없더군요.”

“그건…….”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겼다면 오로지 시현 님이 손해를 감당해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저들이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

나도 모르게 반박하려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으로 그의 말을 곱씹을수록, 틀린 부분이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현 님께서 수인에게 대가 없는 호의를 베푸시더라도 저는 그 뜻을 존중할 겁니다. 하지만 저들이 시현 님의 호의를 무시하고, 오히려 악용하려 든다면…… 저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겁니다.”

안드라스는 진지하고 단호한 태도로 결의를 드러냈다.

너무 과하게 반응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마음 한편이 든든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고마워요, 안드라스 씨. 하지만 아직은 괜찮아요. 오늘도 큰 문제는 아니었잖아요? 너무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노파심에 드린 말씀입니다. 혹시나 마음이 너무 어지러워지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정중히 말을 마무리하며 더는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너무 무르게 행동하는 걸까?

나는 일하고 있는 수인들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 * *

다음 날.

나는 다른 농장일을 끝내고, 점심 즈음에 엘프리드와 함께 엘든 마을을 방문했다.

은율이도 따라오고 싶어 했지만, 잘 타일러서 리아네와 함께 농장에 남도록 했다.

어제 있었던 일로 마을을 방문하는 내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차를 타고 마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반겨주는 건 역시나 마을의 아이들이었다.

“와아! 딸기 공자님이다!”

“와아앗!”

“그래, 잘 지냈어? 위험하니까 너무 마차가 멈출 때까지 기다려.”

금방 주변으로 모여든 아이들 때문에 엘프리드는 급히 마차를 멈췄다.

그리고 짐칸에서 준비해 온 과자와 사탕을 꺼냈다.

이제 아이들도 군것질거리를 받는 일이 익숙해졌는지 서두르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자리를 잡았다.

“라일리, 잘 있었어? 억?! 그건 언니 이름이라고? 미안. 아저씨가 잘못 이름을 외웠나 보네. 릴리? 알았어, 다음에는 꼭 기억하고 있을게.”

“로이, 얼굴에 상처는 왜 난 거야? 친구랑 싸웠다고? 쯧쯧, 친구랑 친하게 지내야지.”

“오오! 버트, 키가 정말 많이 컸네. 이러다 금방 아저씨보다 커지겠는걸? 빨리 커서 딸기밭에서 일하고 싶다고? 알았어.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착하게 지내고 있으면 꼭 고용해 줄게.”

방문할 때마다 이렇게 얼굴도장을 찍다 보니 이름도 조금씩 외우게 됐다.

이렇게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면 아이들이 너무 기뻐했다.

반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실망하는 아이도 있어서 억지로라도 기억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엘프리드도 아이들에게 군것질거리를 나눠줬는데, 의외로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마족 형, 옆에 차고 있는 거, 진짜 검 맞죠? 한 번만 꺼내서 보여주시면 안 돼요?”

“안 돼! 검사에게 검은 자신의 일부분이나 똑같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구경거리가 아니야. 내가 검을 꺼내 들 때는 쓰러뜨릴 상대가 있을 때뿐이야.”

“오오! 멋있다!”

“저한테 검술 알려주면 안 돼요? 저도 형처럼 멋있는 검사가 되고 싶어요.”

“아직 검술을 배우기는 일러. 뭐…… 조금만 더 자란다면 기초적인 검술을 가르쳐 줄 수도 있지.”

“앗싸! 약속하신 거예요!”

“저도요! 저도 배우고 싶어요.”

약간 고고한 분위기에 멋진 검을 허리에 차고 있으니, 마을의 남자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거기다 잘생긴 귀공자 느낌의 외모 덕분에 여자아이들도 관심을 많이 드러냈다.

그냥 잘생긴 것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괜히 심술이 날 정도였다.

아이들에게 과자와 사탕을 거의 다 나눠줬을 때쯤.

귀여운 아기 토끼가 아장아장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이 마을에 처음 왔을 때 만났던 그 아기 토끼였다.

“꽁자님, 꽁자님!”

“아으으. 캐시 왔구나.”

축 처진 토끼 귀가 매력 포인트인 아기의 이름은 ‘캐시’.

캐시의 너무나도 귀여운 걸음걸이와 혀짧은 말투에 내 얼굴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자세를 낮춰 아기의 눈을 맞추며 물었다.

“캐시야, 설마 혼자 온 거야?”

“아니! 쪼기 엄마!”

멀지 않은 곳에서 여성 토끼 수인이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살짝 웃으며 눈인사를 보냈고, 그녀도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꽁자님, 나도 마싯는 거.”

“어이구, 혼자서 과자 받으러 온 거야? 이제 말도 잘하고, 완전히 다 컸네?”

“응! 나 이제 다 커써!”

내 칭찬에 아기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리고, 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신만만한 아기 토끼의 모습은 정말로 이 세상의 귀여움이 아니었다.

입이 귀에 걸리는 것을 겨우겨우 참아내며 아기를 살짝 안아 들었다.

슬쩍 토끼 부인의 눈치를 봤는데, 다행히 웃으며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털이 너무 보들보들하다.

이대로 온종일 껴안고 뒹굴뒹굴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자∼! 캐시는 어떤 과자를 좋아할까?”

아기 토끼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과자와 사탕을 이것저것 챙겨주고 있는데, 엘프리드가 슬쩍 옆으로 다가왔다.

-쿡! 쿡!

내 팔을 찌르며 무언의 눈빛을 보냈다.

그러면서 녀석의 시선이 닿은 곳은 내 품 안의 캐시였다.

자기도 안아보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작은 아기 토끼를 엘프리드의 품으로 보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아기를 안아 들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게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엘프리드가 아기를 안자 지켜보던 토끼 부인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하긴…… 몇 번 본적도 없는 마족이 자신의 아기를 안고 있으면 불안할 수밖에, 그래도 예전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게 엄청나게 달라진 점이랄까?

나는 엘프리드에게서 아기를 빼앗아 엄마의 품으로 돌려주었다.

아기 토끼는 과자와 사탕에 정신이 팔려 엄마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과자 고맙습니다, 시현 님.”

“하하, 뭘요. 그런데 오늘 미루가 안 보이던데, 혹시 무슨 일 있나요?”

평소 같았으면 곧바로 찾아 왔을 텐데 오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어제 있었던 일도 생각나며 괜히 걱정됐다.

“미루요? 글쎄요, 아마 집에 있지 않을까요? 보통 미루가 안 보일 때는 집에서 어머니를 돌보고 있을 때가 많거든요.”

“어머니를 돌본다고요?”

“아! 모르고 계셨구나…… 미루의 어머니가 몸이 좀 안 좋으셔서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거든요.”

처음 미루의 가족 이야기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혹시 아버지는……?”

“도시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으음…….”

워낙 밝은 아이라 그런 집안 사정이 있는 줄 꿈에도 몰랐다.

아이들에게 과자를 다 나눠주고 나면 라구스를 만나러 갈 계획이었는데, 잠시 일정을 미뤄야 할 것 같았다.

“혹시 미루가 어디서 사는지 알 수 있을까요?”

* * *

아기 토끼 엄마의 친절한 길 안내로 미루의 집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마을의 중심부에서 떨어진 외곽으로 향했다. 마차가 지나기 힘든 좁은 길이 나왔다.

“선배, 여기서부터는 걸어야겠는데요?”

“근처에 마차를 세우고 말들이 쉴 만한 곳을 찾아보자.”

마차를 끌던 말들이 풀을 뜯으며 쉴 만한 곳에 묶어두었다.

짐칸에서 미루에게 줄 군것질거리를 챙겨 걷기 시작했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좁은 길 반대편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오오? 이게 누구야? 마을의 은인이신 시현 님이잖아?”

껄렁껄렁한 말투로 아는 체를 하는 고양이 수인, 어제 문제를 일으켰던 데릭이었다.

내심 그와 만남이 불편했지만, 일단은 웃는 낯으로 인사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데릭 씨…… 맞으시죠?”

“어이쿠! 나같이 하찮은 놈의 이름까지 다 기억해 주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

정말로 감탄을 하는 건지 아니면 비아냥거리는 건지…… 예의를 찾아보기 힘든 그의 행동에 조금씩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몸에서 살짝 술 냄새가 풍겼다.

“혹시 누나네 집을 찾아가는 거야?”

“아…… 예, 아이들 나눠주려고 과자와 사탕을 가져왔는데. 미루에게도 가져다주려고요.”

“오! 과자 좋지. 나도 하나 먹어볼까?”

그는 내 동의도 구하지 않고 들고 있던 군것질거리에 손을 뻗었다.

끝도 없는 그의 무례한 행동에 울컥하려는 순간, 엘프리드가 먼저 불쑥 끼어들었다.

“이봐, 너한테는 볼일 없으니까. 당장 꺼져.”

“하하하, 예민하게 왜 이래? 나는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당장 꺼지라고 했다.”

엘프리드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기세가 쏟아져나왔다.

데릭은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물러섰다.

처음으로 그의 표정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 아?! 생각해 보니 약속 시각에 늦겠네. 빨리 가봐야겠어.”

그는 궁색한 변명을 내뱉으며 우리의 옆으로 비켜섰다.

특히 엘프리드에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멀리 떨어졌다.

거리가 멀어지자 다시 능청스럽게 웃으며 한마디를 남겼다.

“혹시 같이 놀고 싶으면 마을 술집으로 와. 나는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한잔하고 있을 테니까.”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는 후다닥 좁은 길을 따라 모습을 감췄다.

나와 엘프리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저놈이군요.”

“어? 어떻게 알았어? 안드라스 씨한테 들었어?”

“네, 오늘 이곳에 온다고 하니까 슬쩍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마을에 이상한 고양이 수인이 있을지도 모르니 경계하라고…….”

자연스럽게 어제 진지했던 안드라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내가 어지간히 걱정됐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다시 좁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기자기한 나무 울타리와 아담한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 초인종은 당연히 없을 테고. 그냥 미루 이름을 부르는 건 좀 그런가? 아니면 노크를 해야 하나?

집 대문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나무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저절로 열렸다.

“누구세…… 어? 사탕 아저씨?!”

“안녕, 미루야.”

미루는 내 모습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

본의 아니게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한 것 같아서 조금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깜짝 놀란 뒤에 반가운 표정을 짓던 미루는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뭐지? 갑자기 찾아온 게 실례였나?

“왜, 왜 그래 미루야?”

예상 못 한 반응에 당황하며 묻자, 미루는 애절한 눈동자로 대답했다.

“어제 삼촌이 잘못했던 일 때문에 찾아오신 거죠? 저 정말 열심히 일할게요. 그러니 딸기밭에서 계속 일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요!”

“그것 때문에 찾아온 거 아닌데?”

“에? 그럼……?”

“오늘 안 보여서 과자랑 사탕을 직접 가져다주러 온 거야.”

“정말…… 요?”

“당연하지. 내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 자! 여기 진짜로 가져왔잖아.”

아직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는 미루에게 들고 있던 군것질거리를 보여줬다.

그제야 미루는 안심하며 불안함을 지워냈다.

“저는 앞으로 딸기밭에 나오지 말라고 하실 줄 알고…….”

“미루가 정말 열심히 일한다고 모두 칭찬하는데 내가 왜 그러겠어.”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고양이 소녀는 갸르릉거리며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아! 너무 오래 문밖에서 계시게 했네요. 일단 들어오세요.”

“나는 과자랑 사탕만 전해주고 가려고 했는데…….”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빨리 들어오세요. 저희 엄마가 아저씨 엄청 보고 싶어 했단 말이에요.”

미루는 막무가내로 내 손을 이끌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엘프리드는 어색한 얼굴로 슬쩍 발을 뺐다.

“그럼 저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걸로…….”

“무슨 소리예요! 마족 오빠도 빨리 들어와요. 빨리!”

빠져나가려는 엘프리드도 미루의 손에 붙잡혔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작은 고양이 손에 이끌려 집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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